ILLUSIONTOON

12화제16장 칠십만

· 44화 중 12화 · 3,345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마오의 전보는 이십일일 밤에 왔다.

짧았다. 시기를 놓치지 말 것, 적의 재편이 끝나기 전에 칠 것, 부대를 아끼되 전기를 아끼지 말 것. 펑더화이는 그것을 두 번 읽고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열두 개의 태양 12화 제16장 칠십만 — 헤더컷

조선인민군 연락장교가 인민군 세 개 군단의 준비 상황을 보고했다. 말끝이 이북 말이었다.

"동해안 쪽은 사흘 안에 다 됩네다. 다만 포탄이 모자라서—"

"모자라는 건 다 모자라오." 펑더화이가 말했다. "그건 보고가 아니오."

연락장교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스물 몇 살이었고 얼굴이 붉어졌다.

회의가 파하고 참모들이 나갈 때, 작전처장이 뒤에 남아 담배를 권했다. 펑더화이는 받지 않았다.

"사령원 동지." 작전처장이 말했다. "후방 보급로가 통창 쪽을 지납니다. 작년 십일월에 거기서—"

"다음."

"예?"

"다음 안건을 말하시오."

"…없습니다."

"그러면 자시오."

작전처장은 경례하고 나갔다. 펑더화이는 등불 심지를 조금 낮추고 혼자 앉아 있었다. 그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올리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 개월째였다.


이십이일 저녁, 해가 능선 뒤로 넘어가고 나서 명령이 나갔다.

명령서는 열한 줄이었다. 개시 시각, 주공 방향, 각 병단의 목표선, 포병 준비사격 시간, 도하 순서.

펑더화이가 마지막 줄에 서명했다. 만년필이 아니라 붓이었고, 잉크가 조금 번졌다.

무전실에서 손가락이 키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규칙적이었고 오래 이어졌다. 유선반에서는 교환수가 같은 문장을 세 번씩 되풀이해 읽었다. 전령 넷이 차례로 갱도 입구를 나갔고, 입구의 거적이 네 번 들렸다 내려왔다. 거적이 들릴 때마다 갱도 안으로 저녁 공기가 들어와 등불이 눕고, 지도 위의 강이 잠깐씩 움직였다.

그 소리를 따라 산에서 일어난 것이 칠십만이었다.


1951년 4월 22일 밤 ~ 25일 · 대구, 미 제8군사령부 상황실

상황판에 첫 화살표를 그은 사람은 사병이었다. 파란 색연필을 쥔 손이 고랑포리 북쪽에서 짧게 미끄러졌고 끝에 촉이 붙었다. 촉은 남쪽을 향했다. 길이는 손가락 두 마디쯤.

"몇 시 거야." 콜린스가 물었다.

"이십이 시 사십 분입니다, 소령님."

"올려."

강을 건너는 데는 밤새가 걸리고 그것을 판에 올리는 데는 사 초가 걸린다. 나는 그 사 초를 봤다.

김진하 대위가 뒤에서 내 어깨를 쳤다. 그는 헤드셋 한 짝을 내게 넘기고 자기 것을 귀에 걸었다.

"한 중위, 오늘 밤은 좌측이다. 일사단 쪽 무전을 자네가 받아서 저 사람들 말로 만들어."

"예."

"만들 때 말이야." 그는 색연필 통을 내 앞으로 밀었다. 서울 말씨는 이런 데서 유난히 반듯하게 들린다. "우리 애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판에 올라가는 건 숫자야. 좌표하고 숫자. 그 외엔 아무것도 올리지 마라. 올려도 안 받아 적어."

헤드셋에서 잡음이 터졌다. 목소리가 그 안에서 젖은 채로 올라왔다.

"여기는 킹 둘, 여기는 킹 둘. 감도 있소."

"킹 둘, 여기 본부. 감도 좋소. 상황 보고하시오."

"강 건넜습네다. 벌써 건넜습네다." 이북 사람이었다. 평안도는 아니고 황해도 쪽. "앞이 새까맣습네다. 새까매요."

나는 새까맣다는 말을 삼 초쯤 들고 있었다. 그 다음에 영어로 옮겼다.

"Estimated two enemy battalions crossing at grid two four seven, possibly regimental strength. Continuous."

색연필이 판 위로 올라갔다. 새까맣다는 말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숫자를 붙이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고 배웠는데, 밤이 깊으면 결국 내 몫이 된다. 무전에서 오는 것은 언제나 '많다', '새까맣다', '끝이 안 보인다' 셋 중 하나고, 판에 올라가야 하는 것은 대대인지 연대인지다. 그 사이를 건너는 다리는 나밖에 없다. 나는 킹 둘에게 되물었다.

"킹 둘, 폭이 얼마나 되오. 자네 정면으로 몇 백 미터요."

"…모르겠습네다. 안 보입네다."

"불빛은 세어봤소."

"세다 말았습네다."

나는 이 대대라고 옮겼다. 이 대대라고 옮긴 근거는 없었다. 근거가 없다는 것도 옮기지 않았다.


밤 두 시가 넘어가면 무전은 두 종류로 갈린다. 우리 쪽 것과 영국 여단 것.

영국 여단 망은 다른 방에서 받는데, 벽이 얇아서 이쪽까지 들렸다. 그쪽 목소리들은 어딘가 느긋했다. 총소리가 뒤에 깔린 채로도 문장이 끝까지 갔고, 끝을 흐리지 않았다.

열두 개의 태양 12화 제16장 칠십만 — 전환컷

"…we are having a rather sticky time of it up here."

미군 소령 하나가 그걸 받아 적었다. 나는 그 사람의 연필을 보고 있었다. 그는 설마리 옆에 '저지 중(holding)'이라고 썼다.

나는 콜린스에게 물었다.

"소령님. 저 사람 지금 어렵다는 겁니까, 견딘다는 겁니까."

콜린스가 커피를 든 채로 잠깐 있었다. 그는 프린스턴에서 자란 사람 특유의, 말을 고르는 동안 눈을 내리는 버릇이 있다.

"영국 사람 말은 나도 통역이 필요해, 한."

"그럼 판에는 뭐가 올라갑니까."

"저 소령이 알아들은 게 올라가지."

나는 다시 내 헤드셋을 잡았다. 킹 둘이 아직 살아 있었다. 그는 이번엔 물을 얘기했다. 개울이 아래에 있는데 그 아래가 이제 자기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물을 옮기지 않았다. 물은 판에 올릴 항목이 아니다.

김 대위가 뒤에서 상황판을 보고 있었다. 파란 화살표가 밤새 두 마디쯤 더 내려와 있었다.

"한 중위. 자네 고향이 정주랬지."

"예."

"거긴 강이 크나."

"작습니다."

"그래." 그는 그것으로 끝냈다. 그가 왜 그걸 물었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사흘째 새벽에는 목소리가 하나씩 없어졌다.

없어지는 방식이 다 달랐다. 어떤 것은 문장 중간에 끊겼고, 어떤 것은 인사를 하고 끊겼고, 어떤 것은 스무 번 부르면 열아홉 번 조용하다가 한 번 잡음만 돌려보냈다. 나는 그 잡음도 옮겨야 하는지 잠깐 생각했다.

킹 둘은 스물세 시 십이 분에 마지막으로 말했다.

"본부, 여기 킹 둘. 이제 뒤로 못 가겠습네다. 우리 뒤에도 있습네다."

"킹 둘, 반복하시오."

"뒤에도 있다고요."

나는 그것을 영어로 만들었다. Enemy in rear. Position enveloped. 여섯 단어. 그가 말한 것은 열넷이었고, 그중에 '못 가겠습네다'가 있었는데 영어에는 그 자리가 없었다. 나는 색연필 잡은 상병에게 좌표를 불러주었다. 상병이 판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는 부대가 포위됐다는 뜻이다. 동그라미 안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옆방에서는 영국 사람들이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들도 하나씩 줄었다. 새벽에 그중 하나가, 아주 또렷하게, 이제 나가겠다고 말했다. 어디로 나간다는 말은 없었다.

김진하 대위가 담배를 물었다가 도로 뺐다. 그는 밤새 그것을 세 번 했다.

나는 킹 둘을 스물세 시 이십 분에 한 번 더 불렀고, 이십칠 분에 한 번 더 불렀다. 규정에는 세 번 부르고 기록하게 되어 있다. 나는 여섯 번 불렀다. 여섯 번째에 김 대위가 내 손목을 잡았다.

"됐다."

"아직 시간이."

"됐어." 그는 내 앞의 기록지를 끌어다 자기가 마지막 줄을 그었다. 시각과 좌표와 '교신 두절'. 그가 쓴 글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자네는 옮기는 사람이야. 부르는 사람이 아니고."


이십오일 아침에 상황판을 닦았다.

당번병이 양동이와 젖은 걸레를 들고 왔다. 아직 어린 애였고, 판에 손이 닿지 않아 궤짝을 하나 끌어다 딛고 올라섰다. 파란 것과 붉은 것이 같이 지워졌다. 걸레는 두 번 왕복하면 판을 다 훑는데, 그 두 번이면 사흘이 없어진다. 상병이 새 색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깎은 부스러기가 판 아래 받침에 쌓였다.

콜린스가 서류를 들고 지나가다 멈췄다.

"여단이 천 명 넘게 없어졌다더군."

"확실합니까."

"아직 세는 중이래." 그는 서류를 겨드랑이에 끼웠다. "세는 데는 시간이 걸려."

당번병이 걸레를 헹구러 나갔다. 판은 깨끗했고, 젖은 자리가 마르면서 가장자리부터 색이 돌아왔다. 상병이 깎아둔 색연필을 집어들고 판 앞에 섰다. 그는 어디부터 그릴지 몰라서 잠깐 서 있었다.


1951년 4월 23일 ~ 30일 · 대구, 미 제8군 정보참모부 적정과

판독대의 유리 밑에서 전구가 켜지자 필름 속의 계곡이 하얗게 떠올랐다.

"오사공, 육칠칠." 판독관이 스테레오스코프를 밀어주었다. "소령님이 직접 보시는 게 낫습니다."

콜린스는 안경을 벗고 접안부에 눈을 붙였다. 두 장의 사진이 하나로 겹치면서 능선이 솟았다. 능선 북쪽 사면에 회색 점들이 있었다. 점 하나는 사람 하나가 아니다. 점 하나는 사람이 지나간 자리이거나, 사람이 판 자리이거나,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 골짜기 것부터 세어봤나."

"세 번 셌습니다. 매번 다릅니다."

"차이가 얼마야."

"백이십하고 백구십 사이입니다."

콜린스는 눈을 떼고 연필로 사진 뒤에 두 숫자를 적었다. 판독관은 스물세 살이고 몬태나가 아니라 오하이오에서 왔고 전쟁 전에는 인쇄소에서 일했다. 그는 자기가 세는 것이 무엇으로 변하는지 모른다.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콜린스는 생각했다.

콜린스는 눈을 떼고 연필로 사진 뒤에 두 숫자를 적었다. 판독관은 스물세 살이고 몬태나가 아니라 오하이오에서 왔고 전쟁 전에는 인쇄소에서 일했다. 그는 자기가…

남은 32화 · 약 114,903자 · 약 2시간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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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태양전 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