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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제19장 여섯 층의 방

· 44화 중 14화 · 3,538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방은 생각보다 좁았다. 창이 크고, 창밖은 해자였고, 물 위에 소나무 그림자가 있었다.

원수는 책상 뒤에 없었다. 그는 방 한가운데 서 있다가 우리가 들어오자 손을 내밀었다. 일흔한 살인데 등이 곧았다. 정모를 쓰지 않았고, 셔츠 깃에 계급장이 없었다. 파이프는 손에 들려 있었지만 불은 붙어 있지 않았다.

열두 개의 태양 14화 제19장 여섯 층의 방 — 헤더컷

친서를 읽는 데 사 분이 걸렸다. 그는 서서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종이를 책상에 놓고, 그때부터 걷기 시작했다.

창에서 문까지 아홉 걸음, 문에서 창까지 아홉 걸음. 그는 걸으면서 말했고, 나는 그가 창 쪽으로 돌아설 때마다 목소리가 반 박자 늦게 왔다.

"The President of Korea asks for divisions. Divisions are men. Men are not the problem. Equipment is the problem, and equipment is decided six thousand miles from here."

나는 옮겼다. "대통령 각하께서 사단을 청하셨습니다. 사단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문제가 아닙니다. 장비가 문제이고, 장비는 여기서 육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결정됩니다."

정 소장이 답했다. 국군의 사기가 회복되고 있고, 훈련이 진척되고 있고, 대통령의 뜻이 굳다는 요지였다. 나는 짧게 옮겼다.

원수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They tell the field commander what he may not do. They have never yet been able to tell the field commander what he may not see."

"야전 지휘관에게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는 말해줍니다. 무엇을 보아서는 안 되는지는 아직 아무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다시 창 쪽으로 돌아섰다.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자기 말을 하다가 남의 말을 인용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The commander in the field will have charge of the use of the weapons. As he always has."

나는 그 문장 앞에서 반 초 걸렸다. 정관사 때문이었다. 그냥 무기라면 관사가 저렇게 붙지 않는다. 저것은 어느 문서에서 통째로 떠온 문장이고, 떠올 때 원래 붙어 있던 관사까지 같이 온 것이다.

"야전의 지휘관이 그 무기의 사용을 관장하게 됩니다. 늘 그래왔듯이."

정 소장의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회견은 이십이 분이었다. 나는 손목시계를 보지 않았고, 나가면서 복도 벽시계를 봤을 뿐이다. 원수는 문 앞까지 나와 정 소장과 악수했고, 마지막에 나를 봤다. 나를 본 것이 아니라 내 어깨 너머 문을 봤을 수도 있다. 그는 그동안 자기를 세 번 삼인칭으로 불렀다. 야전 지휘관이 두 번, 이 사령부가 한 번.


돌아오는 비행기는 낡은 수송기였고 방한복을 입어도 발이 시렸다. 창이 없어서 밖이 보이지 않았다.

정 소장이 담요를 무릎에 덮고 한참 있다가 나를 불렀다.

"한 중위."

"예, 각하."

"아까 그 방에서 우리 얘기가 몇 분이나 나왔지."

"…삼 분쯤입니다."

"그렇지." 그는 담요를 끌어올렸다. "우리 군대가 지금 어떤 꼴인지, 그 방에서 말했다면 자네는 그걸 영어로 어떻게 만들었겠나."

나는 답하지 못했다. 엔진 소리가 다시 커졌다.

"옮길 말이 없지." 그가 눈을 감았다. "나도 없었네."

그 말을 나는 옮기지 않았다. 옮길 사람이 없었다. 대구에 내려서 숙소에 들어간 뒤에, 나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쪽 수첩을 꺼내 그 두 문장을 적었다. 날짜와 시각도 적었다. 적고 나서도 그것이 무엇에 쓰일지는 몰랐다.


1951년 5월 10일 ~ 15일 · 강원도 인제, 국군 제3군단 사령부

트럭에서 내리자 참모장이 직접 나와 있었다. 대령이 중위를 마중 나오는 법은 없으므로 나는 잘못 온 줄 알았다.

"한 중위인가."

"예, 대령님. 팔군사령부에서 파견 나왔습니다."

"영어 되지."

"예."

"우리말은."

나는 그를 봤다. 그는 농담을 한 것이 아니었다.

"정주 출신입니다."

"됐어. 오후 회의부터 들어가."

천막 세 동을 지나 판자로 지은 회의실로 갔다. 안에는 야전 탁자를 이어 붙인 자리가 있고 벽에 오만분지일 지도가 걸려 있었다. 지도 아래쪽 귀퉁이가 습기로 우그러져 있었다.

참모장이 걸어가면서 뒤도 안 보고 말했다.

"군단장 각하 말씀은 자네가 받아서 다시 해라."

"영어로 말씀입니까."

"우리말로."


회의는 열네 시에 시작했다.

군단장은 스물아홉 살이었다. 나보다 네 살 위다. 소장 계급장이 어깨에서 반듯했고 군화가 깨끗했고 자세가 좋았다. 그가 자리에 앉자 방 안의 모두가 자세를 고쳤다.

그가 입을 열었다.

"어… 오늘, 각 사단의, 배치 상황을. 보고를 하라."

문장은 그렇게 잘렸다. 조사가 자꾸 틀렸고, 틀린 조사가 문장의 뜻을 뒤집는 자리에서도 틀렸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는 사람의 속도로 말했다. 천천히, 낱말을 하나씩 놓듯이.

나는 받아서 다시 놓았다.

"각 사단의 현 배치 상황을 보고하라는 말씀이십니다."

열두 개의 태양 14화 제19장 여섯 층의 방 — 전환컷

사단 참모 하나가 일어섰다. 그가 보고하는 동안 군단장은 지도를 봤다. 보고가 끝나자 그가 뭔가 물었는데, 물음의 절반이 일본말이었다. 결절(結節)이라는 낱말을 그는 게쓰세쓰라고 발음했다.

"군단장 각하께서는 그 지점의 도로 결절이 몇 개인지 물으십니다."

연대장이 대답했다. 나는 그것을 다시 군단장에게 옮겼다. 옮기면서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는 한국말을 한국말로 옮기고 있었다. 두 사람 다 한국 사람이고, 둘 다 한국 군인이고, 방 안에서 외국인은 미 십군단에서 온 연락장교 하나뿐이었다.

그 미군이 말할 차례가 오면 나는 영어를 한국말로 옮겼다. 그때는 아무도 이상해하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나자 나는 다른 것을 알아차렸다. 연대장들이 대답할 때 군단장을 보지 않았다. 나를 봤다. 보고를 하면서 눈은 내 얼굴에 있었고, 문장이 끝나면 내가 옮기기를 기다렸다가 그제야 군단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것을 두 번 겪고 나서 일부러 자리를 옮겼다. 군단장 뒤 반 발짝, 그의 어깨선에 가리는 자리로. 그렇게 앉으니 사람들이 다시 군단장을 봤다.

말을 옮기는 자리는 늘 벽 쪽이라고 나는 배웠다. 그날 나는 벽 쪽이 아니라 사람 뒤에 앉는 법을 배웠다.


이튿날 저녁에 군단장이 나를 따로 불렀다.

천막 안에 접이의자 두 개와 야전 침대가 있었다. 그가 앉으라고 손짓했다. 사병이 차를 놓고 나갔다.

"君は、英語はどこで."

"오산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선교사한테."

"ああ。日本語は."

"국민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차가 식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는데 그런 소리는 원래 나지 않는다.

"私はね." 그가 찻잔을 들었다가 놓았다. "この言葉が、一番楽なん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하들 앞에서는." 그는 한국말로 바꿨다. 바꾸는 데 한 박자가 걸렸다. "안 쓴다. 알겠나."

"예, 각하."

"자네가 있으니, 편해."

나는 그 말을 옮길 사람이 없어서 그냥 들었다. 밖에서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고, 천막 천이 바람에 두 번 부풀었다.


오마치가 나온 것은 십사일 회의였다.

구사단 쪽 대령 하나가 지도 앞으로 나가 손가락을 얹었다. 인제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선 위였다.

"군단장 각하. 여기가 우립니다. 여기 하나뿐입니다. 이 고개가 막히면 군단 전체 보급이 끊깁니다. 여기에 우리 부대를 하나 놓아야 합니다."

나는 옮겼다. 군단장이 미군 연락장교를 봤다. 나는 그것을 영어로 옮겼다.

미군 소령이 지도를 들여다보고 말했다.

"That's inside X Corps' zone, sir. It's not your boundary to fill."

"그 지역은 미 십군단 책임 구역이라, 군단에서 부대를 배치할 사안이 아니라고 합니다."

대령이 다시 말했다. "그럼 십군단이 놓으면 됩니다. 놓아달라고 하십시오."

군단장이 답했다. "…어. 군(軍) 쪽에, 올리겠다. 정식으로."

"군사령부에 정식으로 건의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구사단 대령이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각하. 건의 말고, 지금 우리 병력으로."

"그건." 군단장이 손바닥을 탁자에 얹었다. 손이 크지 않았다. "구역 밖이다. 규정이 있다."

대령은 잠깐 더 서 있다가 앉았다. 앉으면서 의자가 한 번 삐걱했다.

미군 소령이 수첩에 뭔가 적었다. 다음 안건은 오월분 탄약 불출이었다.

나는 시계를 봤다. 오마치라는 말이 이 방에서 처음 나온 때부터 다음 안건이 시작될 때까지 육 분이었다.


그날 밤 최봉래 중사가 내 천막에 왔다. 군단 통신 중사고 나보다 두 살 위다. 안동 사람이라 말끝이 올라간다.

"중위님, 담배 있니껴."

나는 갑을 던져줬다. 그는 두 개비를 뽑아 하나를 내게 주고 하나를 물었다.

"저는 안 피웁니다."

"그라믄 왜 갖고 다니니껴."

"…이런 때 쓰려고요."

그가 웃었다. 그러고는 내 지도를 끌어다 놓고 담뱃불로 한 지점을 짚었다. 종이가 살짝 그을렸다.

"여게가 오마치라예."

"압니다. 오늘 회의에서 나왔습니다."

"전화선도 여게로 지나갑니더. 저희가 깔았습니더." 그는 손가락으로 선을 따라 내려갔다. "저 밑에까지 한 가닥입니더. 한 가닥."

"두 가닥은 못 깝니까."

"선이 없니더."

그는 담배를 끝까지 태우고 발로 비볐다. 그러고 나서 지도의 그을린 자리를 손바닥으로 두어 번 문질렀는데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담배를 끝까지 태우고 발로 비볐다. 그러고 나서 지도의 그을린 자리를 손바닥으로 두어 번 문질렀는데 지워지지 않았다.

남은 30화 · 약 108,225자 · 약 2시간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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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태양전 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