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태양 제5부 낙진(落塵)
26화제35장 아침에 토하는 사람들
그날 저녁, 재옥은 오마니 이마에 물수건을 갈아주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마당 끝에서 아랫말까지 도랑이 하나 나 있다. 뒷산에서 내려와 마을을 가로질러 논으로 빠지는 물길이다. 사흘 비에 도랑이 넘쳤고 넘친 물이 아랫말 안마당들을 지나갔다. 그때 재옥은 그것을 보면서 논둑 걱정만 했다.

도랑에는 지금 물이 조금밖에 없었다. 바닥에 앙금이 말라붙어 있고 그 위에 풀이 눌려 있었다.
재옥은 도랑을 따라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1951년 6월 10일 ~ 14일 · 제8군사령부 상황실, 오염 예상도 앞
지도는 오후 세 시쯤 걸렸다.
하사관 둘이 사다리 없이 의자 위에 올라가서 걸었고, 한쪽이 자꾸 처졌다. 압정이 벽에 박히는 소리가 여섯 번 났다. 다 걸고 나서 둘 다 내려와 한 발짝 물러나 보더니, 한쪽이 다시 올라가 왼쪽 위를 반 뼘쯤 올렸다.
가로 다섯 자쯤 되는 것이었다. 오만분의 일이 아니라 이십오만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손가락 한 마디가 서너 킬로미터였다.
윗머리에 인쇄된 제목은 예상 방사선 강하 구역이었다.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판독 주의사항이 다섯 줄 붙어 있었다. 한국어본은 없었다. 나는 그날 오후에 한국어본이 나오느냐고 문서과에 물었고, 문서과 하사관은 요청이 들어오면 만든다고 했다. 나는 요청을 넣지 않았다.
팔코너 대위가 지나가다 멈춰 섰다.
"겨울 것 같지가 않군."
"무슨 뜻입니까."
"학교에서 배울 때는 이렇게 안 그렸거든. 바람 방향으로 길게 뻗은 담뱃재 모양이라고 배웠지." 그는 턱으로 지도를 가리켰다. "저건 담뱃재가 아니라 물감 엎지른 거 아닌가."
그는 커피를 들고 갔다.
김진하 대위는 저녁 무렵에 와서 그 앞에 섰다. 한참 보다가 나를 불렀다.
"이거 어디까지 우리가 봐도 되는 건가."
"거는 데 제한을 두지 않았으니까 봐도 되는 걸 겁니다."
"봐도 되는데 우리 말로는 안 만들어준다."
"요청하면 만든다고 합니다."
"요청은 누가 하나."
"연락장교가 합니다."
김진하 대위는 그 말에 웃지 않았다. 그는 지도의 아래쪽, 우리 쪽 전선이 그려진 자리를 손등으로 두어 번 두드리고 갔다. 거기에도 작은 얼룩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임진강 북쪽이고 하나는 그보다 동쪽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조금 더 서 있다가 내 자리로 돌아갔다. 요청서는 그날도, 그다음 날도 쓰지 않았다.
그 지도 앞에 혼자 선 것은 사흘 뒤 밤이었다.
야간 근무는 자정에 교대한다. 열한 시가 넘으면 상황실에는 전화 당번 하사관 하나와 나뿐이다. 그날은 하사관이 뒤쪽 책상에서 편지를 쓰고 있었고 등은 두 개만 켜져 있었다.
나는 지도 앞으로 갔다.
압록강 하구부터 짚어 내려왔다. 안둥과 신의주 위에 제일 진한 것이 얹혀 있었다. 거기서 남동으로 혀처럼 흘러내리다가 중간에 끊기고, 끊긴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다른 얼룩이 따로 있었다. 그런 것이 여기저기 있었다. 어떤 것은 손바닥만 하고 어떤 것은 엄지손톱만 했다. 그 사이는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데가 안전하다는 뜻인지, 재보지 않았다는 뜻인지는 지도가 말해주지 않았다.
정주를 찾았다.
경의선이 지나가고 하천이 둘 만나는 자리에 定州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그 옆에 인쇄된 것은 그것뿐이었다. 읍이 하나 점으로 찍혀 있고, 나머지는 등고선과 물길이었다. 우리 마을은 그 지도에 없었다. 이십오만분의 일에는 마을이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읍에서 서북으로 하천을 따라 두 마디쯤 올라간 자리를 눈으로 짚었다. 하천이 한 번 꺾이고 산자락이 내려오는 데다. 어릴 때 그 산자락 위에서 기차를 세었다.
얼룩 하나가 그 근처까지 와 있었다.
가장자리였다. 안쪽도 아니고 바깥쪽도 아니었다. 선을 그은 사람이 연필을 든 손을 조금만 다르게 움직였어도 그 자리는 안이 되었을 것이고 조금만 더 다르게 움직였으면 밖이 되었을 것이다.
오월 이십삼일에 나는 열두 개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옮겼다. 열두 개를 다 옮기고 나서 그 종이를 한 번 더 처음부터 읽었다. 그때 나는 정주라는 두 글자가 거기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확인하고 나서 숨을 한 번 쉬었다. 그 숨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그날 밤에 이미 알고 있었다.
목록에 없는 것과 지도에 있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목록은 사람이 고른 것이고 지도는 고른 뒤에 일어난 것이다.
나는 손가락을 지도 위에 놓았다.
집게손가락 끝이 종이에 닿는 넓이는 손톱만 하다. 나는 그것을 자로 재본 적이 있다. 작년 겨울 대구에서, 할 일이 없던 밤에, 야전지도 위에 손가락을 눌러놓고 연필로 둘레를 그려서 쟀다. 가로 일 점 오 센티, 세로 일 점 팔 센티였다.
이십오만분의 일에서 일 센티는 이 점 오 킬로미터다. 그러니까 내 손가락 끝은 삼 점 칠오 킬로미터 곱하기 사 점 오 킬로미터를 덮는다. 십육 점 팔칠오 제곱킬로미터.
그 안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나는 세어보려고 했다.
읍내 장터와 정거장이 들어간다. 갈산 쪽 학교 자리가 들어간다. 하천 이쪽 편의 마을들이 들어가고 건너편 것도 절반쯤 들어간다. 우리 집이 들어가고, 우리 집에서 걸어서 반 시간 안에 닿는 집이 전부 들어간다.
몇 사람인지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십육 점 팔칠오까지는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알고 있었고 그다음은 아무것도 몰랐다. 마을이 몇인지 모르고 집이 몇인지 모르고 그 집에 몇이 사는지 모른다. 육 년 전에 떠났다. 떠날 때 세지 않았다.
세려고 해보았다. 우리 마을은 스물여섯 집이었던 것 같다. 스물여섯이 맞는지, 그것이 내가 열두 살 때의 수인지 열여섯 살 때의 수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한 집에 다섯이라고 치면 백서른이다. 그 수를 나는 세 번 마음속으로 말해보았고, 세 번 다 그것이 근거 없는 수라는 것을 알았다. 근거 없는 수를 세 번 반복하는 것은 계산이 아니다.
손가락을 그대로 둔 채로 한참 서 있었다. 손톱 밑까지 종이의 결이 배어들 만큼 오래 있었다.

이튿날 아침에 콜린스 소령에게 물었다.
"그 구역의 판독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는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왜."
"거기 시간당 몇 뢴트겐이라고 쓰여 있는 칸이 있습니다. 그 숫자가 그 구역 전체의 숫자입니까."
콜린스는 연필을 놓았다. 대답하기 전에 담배를 찾다가 갑이 빈 것을 보고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측정 지점의 수치야. 지역의 수치가 아니라."
"그러면 그 선은 무엇입니까."
"측정한 점 몇 개를 이어놓은 거지. 점과 점 사이는 계산이고, 계산은 바람하고 지형을 넣어서 하는 거고, 그날 바람은 우리가 다 알지 못해." 그는 나를 보았다. "지도는 지도야, 한. 땅이 아니고."
"예."
"그 이상으로 읽으면 틀리게 읽는 거야."
"예."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서 그 문장을 한국어로 옮겨보았다. 옮길 상대는 없었다. 측정 지점의 수치입니다. 지역의 수치가 아닙니다. 소리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여 두 번 했다. 세 번째에는 뒷부분을 바꿔보았다. 지역의 수치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말도 정확했다. 정확한 문장이 두 개 있었고 둘 다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날 밤 근무 때 나는 지도 앞으로 다시 갔다.
전날 손가락을 얹었던 자리에 자국이 남아 있었다. 종이가 조금 눌리고 기름이 배어 인쇄된 등고선 하나가 흐려져 있었다. 침을 묻혀 문지르면 더 번질 것이었다.
나는 다시 손가락을 얹었다가, 뗐다.
1951년 6월 하순 ~ 7월 초 · 정주, 마을과 밭
부엌에서 나오는데 안방 문이 열려 있었다.
오마니가 앉아 있었다. 열여드레 만이었다. 이불을 개어 벽에 붙여놓고, 그 앞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창을 보고 있었다.
"오마니."
"오늘 며칠이네."
"이십삼일이오."
"보리 다 쓰러지갔다."
오마니는 벽을 짚고 일어섰다. 한 번에 일어서지는 못하고 두 번 만에 섰다. 재옥이 팔을 잡으려 하니까 손등으로 밀어냈다. 마루까지 걸어 나와 신을 신고 마당에 내려서서, 처마 밑에 서서 한참 하늘을 보았다.
"밥 좀 주라."
그날 아침 오마니는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국까지 마셨다. 재옥은 빈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뒤를 두 번 돌아보았다.
낮에는 오마니가 툇마루에 나와 앉아 콩을 골랐다. 손이 전처럼 빨라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저녁까지 한 됫박을 골랐다. 재옥이 저고리를 빨려고 벗기다가, 오마니 어깨가 전보다 좁아진 것을 보았다. 손으로 잡으니 뼈가 만져졌다.
"오마니, 살이 많이 빠졌소."
"열흘을 굶었는데 안 빠지갔네." 오마니가 팔을 뺐다. "먹으면 도로 찐다."
그 주에 마을이 다시 밭으로 나갔다.
아랫말도 나왔다. 아침마다 게우던 사람들이 낫을 들고 보리밭에 섰다. 여드레 전까지 마당에 대야를 내놓았던 집에서 아이가 뛰어나와 논둑을 달렸다.
보리를 베고, 묶고, 지게로 져 나르고, 마당에 널고, 도리깨질을 했다. 낮에는 비행기 소리가 나면 엎드렸다가 지나가면 다시 일어나 두드렸다. 저녁에는 논에 물을 대고 못줄을 잡았다. 못줄 잡는 것은 재옥과 이만술네 손녀였다. 줄을 팽팽히 당기고 서 있으면 뒤에서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한 줄씩 심고, 다 심으면 소리를 맞춰 줄을 옮긴다.
이만술은 논에 들어와 있었다. 유월 초에 열흘을 앓아누웠던 사람인데 제일 앞줄에서 심었다.
"아즈바이, 좀 쉬시라요."
"쉬긴 뭘 쉬어. 다 나았는데." 그는 허리를 펴고 종아리에 붙은 거머리를 손톱으로 떼어냈다. "죽갔다 죽갔다 하다가도 때 되면 낫는 게 사람이야. 내레 마흔에도 그랬고 쉰에도 그래."
해가 지고 개구리가 울었다. 물 댄 논이 하늘빛을 그대로 받아서, 못줄 너머로 하늘이 두 개 있었다.
해가 지고 개구리가 울었다. 물 댄 논이 하늘빛을 그대로 받아서, 못줄 너머로 하늘이 두 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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