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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제44장 평양의 재

· 44화 중 32화 · 3,598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그날 밤 나는 작전과 천막에 남아 있었다.

벽에 붙은 것은 이십오만분의 일 지도였다. 평양이 가운데 아래쪽에 있고, 위로 순안, 숙천, 안주, 그리고 안주에서 왼쪽으로 강이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그 강 위쪽에 박천이 있고, 조금 더 위에 정주가 있다.

열두 개의 태양 32화 제44장 평양의 재 — 헤더컷

나는 지도에 손을 대지 않았다. 지난 유월에 한 번 손가락을 댄 적이 있고, 그때 손가락이 덮은 면적을 나중에 계산해 봤고, 그 계산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종이를 한 장 찢어 가장자리를 곧게 접었다. 평양 표시에 접은 자리를 맞추고, 정주 표시까지 끌고 가서 연필로 그었다. 그 종이를 축척자 밑에 갖다 댔다.

백육십.

트럭으로 하루다. 지프면 반나절이다. 나는 그것을 두 번 계산했고 두 번 다 반나절이 나왔다.

지도 위에 청색 연필로 그은 선이 하나 있었다. 안주에서 강을 따라 동쪽으로 올라가다가 산줄기를 타고 꺾이는 선. 그 선은 며칠 전에 그어졌고, 나는 그것을 여러 번 봤는데 그때까지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근거 문서는 8군사령부 민사처에서 나온 등사본이었다. 두 장이었다.

제목은 방사선 위험 구역 설정 및 출입 통제에 관한 건이었다. 구역은 청천강 하구에서 시작해 하천선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다가 특정 좌표에서 산릉을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이북의 모든 출입은 허가제였다. 허가 권한은 유엔군사령부에 있고, 실무는 각 군단 민사참모부에 위임되어 있었다. 허가 사유는 다섯 가지로 열거되어 있었다. 군사 작전. 방사선 측정 및 조사. 의료 및 구호. 시설 복구. 그리고 사령관이 특별히 인정하는 경우.

가족을 찾는 것은 다섯 가지 안에 없었다.

나는 신청서를 썼다. 소속과 계급과 군번을 적고, 목적지에 평안북도 정주군 남서면이라고 적고, 사유란에 세 줄을 적었다. 본적지. 직계 가족 소재 확인. 소요 시간 이십사 시간.

콜린스가 그것을 읽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이름을 추천란에 썼다. 그가 그렇게 하는 데 삼 초쯤 걸렸다.

십일월 이일에 돌아왔다.

서류는 접힌 자국 없이 그대로 왔다. 도장이 하나 찍혀 있었고, 아래쪽에 처리 결과를 적는 칸이 있었다. 반려.

그 옆에 사유를 적는 칸이 있었다.

거기 적힌 것은 네 글자였다.

해당 없음.


1951년 11월 ~ 12월 3일 · 자강도 낭림산맥 은신처

갱도는 흑연을 캐던 자리였고 입구에서 안쪽으로 백사십 걸음이 들어갔다. 그 끝에 굴을 넓혀 만든 방이 있었다. 나무 침상 넷, 탁자 하나, 탁자 위에 등잔 하나. 아주까리 기름이라 그을음이 많이 났다.

아침 보고는 셋이었다.

인원. 식량 일수. 무전 감도.

"인원 백열둘입니다. 어제보다 셋 줄었습니다."

"어디로 갔나."

"둘은 초소에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아직 못 찾았습니다."

"식량."

"현 인원으로 열아홉 일입니다. 하루 두 끼로 계산한 것입니다."

"무전."

"나흘째 잡히지 않습니다. 강계 방향도, 만포 방향도."

김일성은 손등으로 눈을 한 번 눌렀다. 서른아홉이었고, 갱도에 들어온 뒤로 사흘에 한 번씩 눈이 아팠다. 그을음 때문인지 불빛 때문인지는 몰랐다.

"셋 줄었는데 식량 일수는 왜 그대로인가."

참모가 잠깐 말이 막혔다.

"어제 계산할 때 셋이 아직 있었습니다."

"다시 하게."

그는 이런 것을 놓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굴 안에서 그가 실제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하루에 두 끼를 먹느냐 한 끼 반을 먹느냐 정도였고, 그것이라도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다음 주에 정확하게 할 것이 없어졌다.

방 안쪽 벽에 궤짝이 하나 놓여 있었다. 내각의 인장과 최고사령관의 인장, 미결재 서류철 두 권, 그리고 훈장 상자가 들어 있었다. 시월에 강계에서 나올 때 그것을 지고 온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지금 없었다.

그는 하루에 한 번 그 자물쇠를 확인했다. 확인하는 데 삼 초가 걸렸고, 삼 초 뒤에는 다시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작년 십이월에 그는 만포 별오리에서 사람들을 세워 놓고 문책을 했다. 패전의 책임, 명령 불복종, 전투 조직의 불성실. 그때 그가 읽어 내려간 명단은 열 몇 줄이었고 그는 그것을 다 읽었다. 지금 이 굴 안에 문책할 사람은 없었다. 문책은 다음 단계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절차였다.


길은 셋이었다.

그는 그것을 종이에 적어 본 적이 없다. 적으면 남고, 남으면 누군가 읽는다. 다만 머릿속에서는 늘 순서가 있었다.

하나,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간다. 둘, 소련으로 간다. 셋, 남는다.

첫째는 유월에 없어졌다. 지안과 만포진의 도하점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쪽으로 가는 길에 마을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팔월에 만포 방면으로 내보낸 정찰조 넷 중 둘이 돌아왔고, 돌아온 둘은 열흘 뒤에 앓아누웠다. 하나는 아직 살아 있고 하나는 시월에 갔다. 그 뒤로 그는 만포 쪽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둘째는 십일월 이십육일에 없어졌다.

소련 영사관 연락원은 서른 몇 살의 조선 사람이었고 러시아말을 잘했다. 그는 갱도까지 들어오지 않고 입구에서 스무 걸음 아래 바위 뒤에서 기다렸다. 김일성이 내려갔다.

"회답이 왔습니다."

"읽으시오."

연락원은 종이를 꺼내지 않았다. 외워 왔다.

"귀하의 신변에 관해서는 현재로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회답입니다."

바람이 능선을 타고 내려와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그게 전부요?"

"예."

"이유는."

열두 개의 태양 32화 제44장 평양의 재 — 전환컷

"이유는 없습니다."

김일성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서른에 소련 땅에서 대위 계급장을 달았고, 서른셋에 원산에 배로 내렸다. 그 뒤 여섯 해 동안 그가 모스크바로 올려 보낸 문서는 수백 통이었고, 내려온 회답 중에 이유가 붙은 것은 거의 없었다. 그동안 그가 배운 것 중 하나는, 그쪽에서 이유를 적지 않은 문장은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유를 적을 수 없어서라는 것이었다.

"동무가 보기에는 어떻소."

연락원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니, 동무 생각을 묻는 거요. 저쪽에서 왜 곤란하다고 하는 것 같소."

연락원은 오래 서 있었다. 바람이 두 번 더 지나갔다.

"저쪽은 지금,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동무는 언제 돌아가시오."

"내일 새벽에 출발합니다."

"이 회답을 가지고 온 것에 대해서는 동무 책임이 아니오."

연락원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바위 뒤에서 나오지 않은 채로 그렇게 했다.


십이월 이일 아침에 연락원이 한 번 더 왔다.

이번에는 종이를 가지고 왔다. 손으로 옮겨 적은 것이었고, 지난번에 외워서 전한 것과 같은 문장이 한 줄 있었다. 서명도 직인도 없었다. 그런 종이는 나중에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증명할 수 없다.

김일성은 그것을 반으로 접어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다.

박헌영은 그날 저녁에 그 이야기를 꺼냈다.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등잔이 하나였으므로 얼굴의 반쪽만 보였다. 박헌영은 쉰한 살이었고 갱도에 들어온 뒤로 말수가 늘었다.

"남조선에 아직 조직이 있습니다."

"어디에."

"지리산과 전남 일대에 남은 것이 있고, 도시에도 남은 세포가 있습니다. 연락선을 다시 잇는 데 석 달이면—"

"이십만이 어디 있었소."

김일성의 목소리가 갱도의 벽을 두 번 때리고 돌아왔다. 바깥 통로에서 발소리가 멈췄다가 멀어졌다.

박헌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이 탁자 위에 그대로 있었다.

"작년 유월에 동무가 나한테 그랬소. 인민군이 서울에 들어가면 이십만이 일어난다고. 나는 그걸 모스크바에 그대로 적어 보냈소. 내 이름으로."

"그랬습니다."

"그랬습니다, 라니."

"그렇게 말씀드린 것이 맞습니다."

김일성은 앉았다. 앉은 뒤에 자기가 언제 일어섰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참 뒤에 그는 주전자를 끌어당겨 박헌영 앞의 그릇에 물을 따랐다. 물은 미지근했고 흙 냄새가 났다. 박헌영이 두 손으로 받아 마셨다. 마시는 소리가 났다.

"동무는 어떻게 하겠소."

"저는 서쪽으로 가겠습니다. 중국 동지들이 아직 후위를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쪽 길은 봤소?"

"보지 못했습니다."

"보지 않은 길을 왜 가겠다고 하오."

박헌영이 그릇을 내려놓았다.

"수상 동지께서 물으시니 대답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그날 밤 박헌영이 한 말 중에 가장 정직한 말이었다. 김일성은 알아들었고,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등잔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가 가라앉았다.


십이월 삼일 새벽 다섯 시가 조금 넘어서 그는 침상에서 내려왔다.

군화를 신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발이 부어 있었다. 그는 각반을 두 번 다시 감고, 외투를 입고, 탁자 위의 것들을 손대지 않았다. 지도는 펴놓은 채로 두었다. 등잔은 심지를 내려 두었다.

당번병이 일어나 앉았다.

"수상 동지."

"위쪽 능선까지 다녀오겠소. 초소 자리를 다시 봐야겠소."

"제가 모시겠습니다."

"둘이면 되오."

경위병 둘이 따라나섰다. 스물한 살과 스물세 살이었고, 둘 다 함경도 사람이었고, 하나는 총을 메고 하나는 들었다.

갱도 입구에서 그는 잠깐 섰다. 하늘이 낮았다. 별이 하나도 없었고 능선의 윤곽만 조금 밝았다. 눈이 오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온다면 정오쯤일 것이었다. 그런 것은 스무 살에 산에서 배웠고, 그 뒤로 틀린 적이 별로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두고 가지 않았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서명한 문서도 없었다.

세 사람은 갱도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비탈을 올라갔다.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여섯 번씩 짝을 맞추다가 흐트러졌다가 다시 맞았다. 소리는 능선 아래에서 한동안 들렸고, 그다음에는 들리지 않았다.

정오가 조금 지나서 눈이 왔다.

오후 내내 왔다. 굵지 않고 고르게 왔다. 갱도 입구 앞의 비탈에 발자국 세 줄이 나 있었고, 세 시쯤에는 줄의 가장자리가 뭉개졌고, 다섯 시쯤에는 어디가 줄이고 어디가 비탈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당번병이 여섯 시에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올렸다.

당번병이 여섯 시에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올렸다.

남은 12화 · 약 44,668자 · 약 6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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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태양전 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