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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제54장 이주 명령 제7호

· 44화 중 39화 · 3,356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소 문제는 10월 7일 오후에 터졌다.

박천 쪽에서 온 남자가 소를 끌고 집결지에 들어왔다. 마흔쯤 됐고 소는 늙었다. 헌병이 소를 세우자 남자가 소고삐를 두 손으로 감았다.

열두 개의 태양 39화 제54장 이주 명령 제7호 — 헤더컷

"제5조입니다. 가축은 못 갑니다."

"팔면 됩네까."

"파실 데가 없습니다."

구역 밖으로는 짐승도 고기도 나가지 못한다. 그것이 규정이다. 남자는 그 규정을 세 번 들었고 세 번 다 알아들었는데, 알아듣는 것과 고삐를 놓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미군 민사장교가 소를 잡는 것은 허가한다고 했다. 다만 고기는 구역 안에서 소비할 것. 나는 그것을 옮겼다.

"오늘 밤에 여기서 다 먹으랍니다."

남자가 나를 봤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얼굴이 아니라, 알아들었는데 그 말을 한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눈이었다.

소는 운동장 뒤편에서 잡았다. 그날 밤 국이 두 가마 끓었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받아 갔다. 오랜만에 냄새가 났다. 아이들이 두 번씩 받으러 갔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남자는 받지 않았다. 그는 운동장 구석에 앉아서 자기 짐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헌병 하나가 국그릇을 들고 가서 옆에 놓아줬다. 그릇은 아침까지 거기 있었고, 아침에는 기름이 하얗게 굳어 있었다. 그 남자는 대열이 떠날 때 맨 앞에 서 있었다. 짐을 지고, 앞을 보고 있었다.


정주에서 나오는 마지막 대열은 10월 11일 아침에 떠났다.

앞에서부터 열을 지어 나가는데, 백 명쯤 나가면 뒤에서 다시 백 명이 붙는다. 길은 하나뿐이고 그 길은 남쪽으로 내려간다. 확성기로 읽는 문안은 짧다. 나는 그것을 열두 번쯤 읽었다.

"주민은 지정 시각에 집결지로 가시오. 짐은 한 사람에 하나. 가축은 갈 수 없습니다."

세 번째 줄에서 매번 목이 걸렸는데 그건 문장 탓이 아니라 확성기 탓이었다.

마지막 대열이 마을 어귀를 벗어날 때 나는 지프 옆에 서 있었다. 대열 뒤쪽이 언덕을 넘어가고, 먼지가 가라앉고, 남은 것은 빈 마을이었다.

나는 돌아봤다.

지붕들이 있고, 그 뒤에 뒷산이 있었다. 산 중턱까지는 나무가 없고 그 위로는 있다. 나무가 없는 자리 어딘가에 돌무더기가 하나 있는데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재작년 여름에 나는 거기까지 올라갔고 십오 분을 있었다.

최정근이 지프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앞으로 돌아섰다.

그날 밤 숙소에서 둘째 수첩을 펴고 한 줄을 적었다. 1954년 10월 11일. 마을을 본 시간, 십사 초.

적어놓고 나서 손목시계를 풀어 등잔 앞에 놓고 십사 초를 다시 세어봤다. 초침이 문자판의 사분의 일도 가지 못했다. 나는 한 번 더 셌다. 두 번째에도 같은 자리에서 멈췄다.


1955년 6월 · 서울 경무대 접견실

접견실은 창을 다 열어놓았는데도 더웠다.

의자는 여덟이었다. 대통령의 자리가 창을 등지고 하나, 그 맞은편에 미국대사와 유엔군사령부에서 온 장군이 둘, 오른쪽으로 우리 쪽 배석자 둘, 왼쪽 벽에 기록하는 사람이 하나. 그리고 대통령 의자에서 왼쪽 뒤로 반 보 떨어진 곳에 등받이 없는 걸상이 하나 있었다. 그것이 내 자리다.

배석자에게는 이름표가 놓인다. 통역에게는 놓이지 않는다. 회의록에도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통역을 통하여'라고만 적힌다.

나는 두 시에 도착해서 한 시간을 복도에서 기다렸다. 무릎 위에 용어표를 놓고 마지막으로 훑었다. 조약 조문의 한국어 공식 표기, 부속 조항 번호, 기관 명칭. 이런 자리에서 틀리면 안 되는 것은 뜻이 아니라 이름이다. 뜻은 다시 물어볼 수 있고 이름은 그럴 수 없다.

대통령이 들어온 것은 세 시 오 분이었다. 여든이라고 들었다. 걸음이 느렸고, 앉을 때 손으로 팔걸이를 짚었고, 앉고 나서는 등을 곧게 폈다.

미국대사가 영어로 인사했다. 대통령이 그것을 알아듣는 것을 나는 그의 눈에서 봤다. 그는 대답을 한국어로 했다.

"먼 길에 더운데 오시라 해서 미안하오."

나는 그것을 옮겼다. 그가 영어를 나보다 오래 썼다는 것을 방 안의 여섯 사람이 다 알고 있었고, 여섯 사람이 다 모르는 척했다.


안건은 하나였다. 조약 부속 조항 중 청천강 이북 특별지역에 관한 부분.

미국대사가 먼저 읽었다. 그 지역의 보건·급식·이동 관리는 유엔군사령부가 계속 담당한다는 조항이다. 그가 유지 사유를 셋 들었다.

첫째, 그 지역의 급식은 전량 미국 예산이다. 예산과 관리는 붙어 다녀야 한다. 둘째, 오염 측정과 출입 통제는 훈련된 인력과 장비가 있어야 하는데 대한민국 정부에는 아직 없다. 셋째, 이 조항 때문에 미국 의회가 예산을 승인한다. 조항이 없어지면 예산도 없어진다.

셋 다 사실이었다. 나는 셋 다 옮겼다.

대통령이 다 듣고 나서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대사. 그 땅이 우리 강토요, 아니오."

"대한민국 영토입니다, 각하."

"내 강토에 들어가는 데 내가 허가를 받소. 내 백성이 굶는데 내가 쌀을 못 넣소. 이런 나라를 나라라 하겠소?"

열두 개의 태양 39화 제54장 이주 명령 제7호 — 전환컷

"각하께서 쌀을 넣으실 수 있게 되면 저희도 기쁘겠습니다. 다만 지금 쌀을 넣을 배가 없습니다."

"배가 없으면 사람을 보내지. 나는 도백(道伯)을 이미 보냈소."

이 대목에서 대사의 표정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그는 대통령이 올봄에 북부 여섯 개 도에 도지사를 임명한 일을 말하는 것으로 알아들었고, 실제로 그 말이었다.

"각하. 그 임명은 통고를 받았습니다. 다만 현지에서는 도지사와 우리 민사부가 같은 마을에 각각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만 남기면 되지 않소."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느 쪽을 남길지가 문제인 게지."

대통령이 웃었다. 웃음이 오래가지 않았다.

장군이 그때 처음 입을 열었다. 그는 서류철을 펴고 숫자를 읽었다. 특별지역의 측정반은 열한 개 반, 인원 백사십이 명, 그중 한국인이 스물아홉 명이고 전부 통역과 보조라고 했다. 통행증 발급은 작년 한 해 이만 삼천 건, 그중 거부가 사천 건이라고 했다. 이 업무를 넘겨받으려면 장비와 훈련된 인원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보유한 계수기는 스물두 대라고 했다.

"스물두 대로는 못 합니다, 각하."

우리 쪽 배석자 하나가 그 말에 대답했다. 외무부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장군님. 스물두 대밖에 없는 이유가 사 년 동안 저희에게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면 다룰 사람이 있습니까."

"주시면 배웁니다."

"배우는 동안에는 누가 합니까."

나는 그 세 마디를 옮기면서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세 마디가 다 옳으면 회담은 앞으로 가지 않는다.

대통령이 그다음에 목소리를 낮췄고, 낮췄기 때문에 방 안이 더 조용해졌다.

"내가 사십 년을 미국에서 살았소. 미국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닌 걸 나만큼 아는 사람이 이 나라에 없소. 그런데 대사. 남의 나라 땅을 좋은 뜻으로 맡아주는 것도 맡는 것이오."

나는 마지막 문장에서 잠깐 걸렸다. '맡아주다'와 '맡다'의 차이를 영어로 만들려면 단어가 두 개 필요하다. administer on our behalfadminister. 나는 그렇게 옮겼다.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끄덕임이 동의인지 이해인지는 알 수 없었다.


네 시 이십 분쯤에 대통령이 손을 들어 나를 멈췄다.

내가 문장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방 안의 모두가 나를 봤다. 통역이 멈추면 회담이 멈춘다.

대통령이 몸을 반쯤 돌려 나를 봤다.

"자네."

"예, 각하."

"고향이 어디인가."

"평안북도 정주입니다."

그는 대답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매미가 울고 있었다. 그 소리가 한 번 끊겼다 다시 이어지고, 또 끊겼다 이어졌다. 대통령의 손이 팔걸이 위에 놓여 있었고 손등의 힘줄이 한 번 움직였다. 대사가 통역을 기다리는 얼굴로 나를 봤다가, 이것이 통역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시선을 내렸다. 기록하는 사람은 펜을 든 채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네 번째로 매미 소리가 이어졌을 때 대통령이 다시 앞을 보았다. 그러고는 한국어로, 아까 하던 말을 이어서 했다. 문장의 중간부터였다.

"대사. 사람이 안 사는 땅을 관리한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소. 나는 사람을 다시 넣자는 것이오."

나는 그것을 옮겼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박자 늦게 나왔다.


회담은 다섯 시 십분에 끝났다. 합의된 것은 실무 협의를 계속한다는 것뿐이었다.

기록하는 사람이 회의록 초안을 내게 보여줬다. 한 시간 오십오 분이 종이 두 장이었다. 마지막 줄은 이랬다. '雙方은 實務協議를 繼續하기로 함.' 그 위에 오간 말은 요지로 들어가 있고, 요지에는 강토도 백성도 도백도 없었다. 나는 두 장을 다 읽고 이상 없다고 했다.

돌계단을 내려가는데 미국대사가 걸음을 늦춰 나와 나란히 섰다.

"대위."

"예, 대사님."

"당신 통역은 정확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같은 방에서는 그게 제일 어려운 일입니다."

그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것을 잡았다. 차가 마당을 돌아 나갈 때까지 나는 계단 중간에 서 있었다.

사 년 동안 내가 들은 칭찬을 세어보면 네 개다. 빠르다. 틀린 데가 없다. 잘 하십니다. 정확하다. 네 개를 나란히 놓으면 같은 말이 네 번 있는 것이다.

계단 아래에서 운전병이 지프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려가면서 그 단어를 한 번 더 들었다. Accurate. 정확하다.

계단 아래에서 운전병이 지프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려가면서 그 단어를 한 번 더 들었다. Accurate. 정확하다.

남은 5화 · 약 20,130자 · 약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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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태양전 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