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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제33장 바람이 바뀌는 날

· 44화 중 24화 · 3,064자 · 약 4분 · 무료

글자3 / 5

이튿날 아침 브리핑은 여덟 시에 시작해서 열 시가 다 되어 끝났다. 그중 십오 분을 기상장교가 썼다.

하퍼라는 이름의 대위였다. 그는 지시봉 대신 접은 지도를 들고 나와 펴면서 말했다.

열두 개의 태양 24화 제33장 바람이 바뀌는 날 — 헤더컷

"겨울이었으면 이 브리핑은 삼 분이면 끝납니다."

나는 옮겼다. 국군 쪽 자리에 앉은 사람은 김진하 대위와 작전참모부 소령 한 명뿐이었다.

"시베리아에 고기압이 앉으면 흐름이 한 방향으로만 나갑니다. 북서에서 남동으로. 십일월부터 삼월까지는 그 방향이 거의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계절에는 예보가 산수입니다."

그는 지도 위쪽에 손바닥을 얹었다가 대각선으로 쓸어내렸다. 손바닥이 지나간 자리에 요동, 신의주, 평양이 차례로 들어갔다.

"오월 말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기압은 물러갔고 지상풍은 하루에도 방향을 몇 번씩 바꿉니다. 어제 아침 지상은 서남서, 정오에는 북서, 오후에는 다시 남서였습니다. 상층은 다릅니다. 상층은 사철 서에서 동으로 흐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미군 작전참모부 중령이 물었다.

"높이 올라간 가벼운 것은 동쪽으로 갑니다. 개마고원을 넘고 동해를 건넙니다. 무거운 것은 그렇게 멀리 못 갑니다. 가까운 데서 내려앉습니다. 문제는 그 '가까운 데'가 어제 몇 시의 바람을 탔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겁니다."

"열두 군데가 다 같습니까." 중령이 물었다.

"아닙니다. 넷은 공중에서 터졌습니다. 불덩이가 땅에 닿지 않으면 딸려 올라가는 흙이 없습니다. 그 넷은 이 브리핑의 대상이 아닙니다."

"나머지 여덟은."

"땅에서 터졌습니다. 다리와 조차장과 지하 창고를 부수려면 그래야 합니다." 하퍼 대위는 지도를 한 뼘 옆으로 밀었다. "불덩이가 땅을 파먹습니다. 파먹은 흙이 위로 올라갑니다. 올라간 것은 반드시 내려옵니다. 여덟 군데 전부 그렇습니다."

회의실 안에서 의자 하나가 삐걱거렸다.

김진하 대위가 나를 보았다. 나는 그 대목을 옮기다가 한 단어에서 걸렸다.

하퍼 대위가 쓴 말은 폴아웃이었다. 나는 그 말을 옮길 한국어를 갖고 있지 않았다. 낙하산의 낙(落)에 티끌 진(塵)을 붙이면 될 것 같았지만 그런 낱말은 아직 어느 사전에도 없었고, 내가 지어서 쓰면 그것은 통역이 아니라 발명이었다.

"떨어져 내리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나는 말했다.

"뭐가 떨어지나."

"흙입니다. 흙하고, 그 밖의 것들입니다."

김진하 대위는 더 묻지 않았다. 나는 무릎 위에 놓인 수첩에 그 단어를 알파벳으로 적었다. 그 아래에 한국어 후보를 셋 적었다가 셋 다 줄을 그었다.


마지막 장은 강수 예보였다.

하퍼 대위는 다음 사흘의 등압선을 짚었다. 서해 쪽에서 저기압이 하나 올라오고 있었다. 삼십일일 저녁부터 유월 이일까지, 평안도 서해안에서 평양 이북까지 비. 곳에 따라 많은 비.

"사흘입니다." 그가 말했다.

회의실 뒤쪽에서 대령 하나가 물었다. 군수 쪽 사람이었다.

"비가 오면 공중에 있는 게 씻겨 내려가는 것 아니오. 그러면 좋은 소식 아니오?"

하퍼 대위는 대답하기 전에 삼 초쯤 지도를 보았다. 지도 위에는 아무것도 새로 나타나지 않았다.

"It comes down, sir."

김진하 대위가 몸을 기울였다. "뭐라고 하나."

한 단어였다. 나는 그 한 단어를 옮겼다.

"떨어집니다."

"뭐가 떨어져."

나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앞에서는 다음 안건이 시작되고 있었고, 나는 다음 안건을 옮겨야 했다.


브리핑이 끝나고 복도에서 콜린스 소령을 만났다. 그는 창틀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브리핑 내내 뒷줄에 앉아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기상장교가 쓴 그 말." 그가 물었다. "한국어로 뭐라고 했지?"

"옮기지 못했읍니다."

"없나."

"없읍니다."

그는 담배를 창밖으로 털었다.

"영어에도 오래된 말은 아니야. 몇 해 전까지는 없었을걸. 누가 만들었겠지. 만들어놓으면 그다음부터는 다들 원래 있던 말처럼 쓴다."

"만든 사람이 누굽니까."

"몰라." 그는 잠깐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가 그만두었다. "그건 내 부서 일이 아니라서."

그가 먼저 갔다. 나는 창틀에 남은 재를 손등으로 쓸어 떨어뜨렸다.


열두 개의 태양 24화 제33장 바람이 바뀌는 날 — 전환컷

그날부터 이틀 동안 나는 기상반 근처를 두 번 지나갔다. 두 번 다 문 앞에서 멈췄다가 그냥 갔다.

삼십일일 저녁에 세 번째로 갔다. 하퍼 대위는 없고 하사관 하나가 야근표를 쓰고 있었다. 벽에 걸린 예보도는 아침 것 그대로였다. 저기압의 중심이 서해 한가운데 있었고, 그 둘레로 그은 선들이 서북쪽 육지 위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선들 안쪽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보지 않으려고 하면 그 자리가 먼저 보인다.

"필요한 거 있으십니까." 하사관이 물었다.

"아닙니다."

밖으로 나왔다. 마당에 지프 한 대가 시동을 걸어놓은 채 서 있었고 운전병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서쪽 하늘 낮은 데에 구름이 두껍게 깔려 있었고 그 위로는 아직 볕이 남아 있었다. 비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하늘은 아무 표정도 없었다.


1951년 5월 30일 ~ 6월 2일 · 평안북도 정주, 마을과 밭

두레박 줄이 손바닥에 닿는 감촉으로 재옥은 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안다. 줄을 열두 번 당기면 두레박이 올라온다. 그날 아침에는 열네 번을 당겨야 했다. 오월 내내 비가 없었다.

물동이를 이고 돌아오는 길에 아랫말 아즈마이 둘이 밭머리에 서서 북서쪽을 보고 있었다. 재옥도 서서 같은 데를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 낮은 데에 누런 기운이 조금 있었는데, 그것은 봄이면 늘 있는 것이었다.

"어제 그거이 뭐이가."

"기래, 뭐이가."

둘은 같은 말을 서로에게 두 번씩 하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 물독에 물을 붓고, 재옥은 부엌 뒤 그늘에 놓아둔 베틀에 앉았다. 낮에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비행기가 온다. 사람이 걸어가는 것도 보고 소가 끄는 것도 본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은 새벽과 저녁에 일하고 낮에는 집 안에서 손을 놀린다.

오마니는 툇마루에서 보리를 골랐다. 손이 느렸다.

"오마니, 오늘은 못자리 물 대야 하는데."

"해 지고 가자우."

보리는 아직 벨 때가 아니었다. 이삭이 누렇게 서기 시작했을 뿐이고, 논에는 못자리가 파랬다. 유월 중순이면 낫을 들고, 그다음에는 허리를 펴지 못한다. 재옥은 열아홉이 되도록 그 순서를 어긴 해를 보지 못했다.

해가 기울고 나서 둘은 논으로 나갔다. 물꼬를 트고 논둑을 밟는 일이었다. 재옥은 발로 흙을 눌러 다지면서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리가 나면 엎드려야 한다. 작년 가을에 아랫말 논에서 그렇게 하다가 못 일어난 사람이 있었다.

"자꾸 쳐다보믄 일이 안 되네." 오마니가 말했다.

"안 쳐다봐도 무섭소."

"기래도 해야디."

재옥은 계속 밟았다. 물이 논둑 아래로 새는 자리를 찾아 흙을 떠서 메우고 다시 밟았다. 저물 때까지 비행기는 오지 않았다.


저녁 인민반 회의는 이만술네 사랑에서 했다. 등잔을 문에서 먼 쪽에 놓고 창에는 가마니를 쳤다. 등화관제는 작년 가을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리정순이 앞에 앉았다. 재옥과 한동네에서 자랐고 두 살 위였고, 작년부터 여성동맹 세포위원이 되었다. 회의 때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어제 일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많디 않네. 다들 봤으니까니 그렇디." 이만술이 담뱃대를 무릎에 놓았다. "내레 마흔 해를 여기 살았는데 그런 건 처음이야. 아침인데 아침보다 밝았어."

"소리는 안 났댔디요." 누가 말했다. "빛만 두 번 나고, 한참 있다가 문짝이 덜컹거렸디."

"화약고가 터진 거이야." 이만술이 말했다. "신의주 쪽에 저장한 게 있다고 들었어. 그게 한꺼번에 갔으면 그렇디."

"폭격이디요, 뭐." 아랫말 사람이 말했다. "폭격이 아니면 뭐이가."

리정순이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한 번 눌렀다.

"미제의 새로운 만행입니다. 상급에서 그렇게 내려왔습니다."

방이 잠깐 조용해졌다.

"기래, 어떤 만행인데." 이만술이 물었다.

리정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인 얼굴도 아니었다. 그냥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서 초여름 파종 실적과 공출 일정을 읽었다. 재옥은 그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정순이가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데 정순이가 뒤에서 재옥의 소매를 잡았다.

"너 어제 어디 있었네."

"빨래 널고 있었디."

"밖에 있었구나."

"응."

정순이는 그 말에 무슨 말을 더 붙이려다 말고 갔다.

정순이는 그 말에 무슨 말을 더 붙이려다 말고 갔다.

남은 20화 · 약 73,383자 · 약 1시간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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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태양전 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