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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제50장 요약

· 44화 중 36화 · 3,643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4월 9일 오전, 열한 번째 사람이 들어왔다.

이름은 서기중, 예순셋, 평안남도 강서 출신. 그는 걸상에 앉으라는 말을 듣고도 서 있다가, 위원장이 두 번 말하자 앉았다. 손을 무릎에 올려놓는 데 시간이 걸렸다.

열두 개의 태양 36화 제50장 요약 — 헤더컷

"1948년부터 인민위원회 서기였다고 되어 있소."

"예. 그렇습네다."

"자원했소?"

노인이 말을 시작했다. 나는 손목시계를 봤다. 아홉 시 십이 분이었다.

그는 마을에 붓을 잡을 줄 아는 사람이 둘뿐이었다고 했다. 자기와 훈장 노인인데 훈장 노인은 다리를 못 썼다고 했다. 1948년 봄에 면에서 사람이 나와 명부를 적을 사람을 데려오라고 했고, 그래서 자기가 갔다고 했다. 첫해에는 호적만 옮겨 적었다고 했다. 이듬해에 공출 장부가 붙었고, 그다음 해에 징집 명부가 붙었다고 했다. 자기는 명부에 이름을 적었을 뿐 사람을 끌고 간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자기 큰아들 이름도 자기 손으로 적었다고 했다. 적지 않으면 자기가 적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 아들이 어디 있는지는 1950년 시월 이후로 모른다고 했다.

그가 그 대목에서 잠깐 말을 멈췄다. 위원장이 기다려줬다. 노인은 다시 시작해서 1950년 여름에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를 말했다. 마을 사람 열아홉의 이름을 적었고, 그중 넷이 돌아오지 않았고, 그 넷의 집이 지금도 자기 집 앞이라고 했다.

끝났을 때 아홉 시 삼십삼 분이었다.

나는 영문 칸에 이렇게 적었다.

Village clerk, People's Committee, 1948–1950. Duties: household registry, requisition ledgers, conscription lists. Claims service was not voluntary. Son conscripted, missing since Oct 1950. No evidence of direct participation in arrests.

한글 요지 칸에는 여덟 자 줄로 이렇게 넣었다. 一九四八年 以來 人民委員會 書記. 一九五〇年 自願 아님.

세어보니 영문이 마흔여섯 단어였다. 나는 그날 오후에 다른 사람들 것을 세어봤다. 짧은 것이 서른하나, 긴 것이 여든셋. 평균 예순 근처였다.

옮겨지지 않은 것은 붓이었다. 마을에 붓을 잡을 줄 아는 사람이 둘뿐이었다는 것. 그것은 경력도 아니고 동기도 아니어서 어느 칸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참관 장교는 영문을 읽는 데 십오 초쯤 썼다. 그는 만년필로 서명하고 서류를 왼쪽으로 밀었다.

등급 도장은 위원장 책상 위에 셋이 있었다. 갑, 을, 병. 갑은 송치, 을은 보류 후 재심, 병은 훈방이다. 도장을 찍는 소리는 셋 다 같다.

서기중은 을이었다.

"왜 을입니까."

내가 물은 것이 아니라 서기중이 물었다. 위원장이 나를 봤고, 나는 그 질문을 통역해야 하는지 잠깐 생각했다. 통역할 대상이 없었다. 질문도 한국어였고 대답할 사람도 한국인이었다.

"재심에서 정리될 거요. 나가시오."

노인은 일어나면서 걸상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나가는 길에 그는 내 앞을 지나갔다. 나를 보지는 않았다.


여섯 시에 심사가 끝나면 부본을 정리해서 묶는다. 그날 저녁에 나는 그것을 묶지 않고 한 장씩 다시 읽었다.

예순한 장이었다. 4월 첫 주 것까지 합친 숫자다.

Youth League, ward level, 1949–1950. Claims coercion.
Schoolteacher. Taught prescribed curriculum. No party membership found.
Self-defense unit, night watch duty. Age 17 at time of service.
Warehouse guard, county supply depot. Illiterate. Signed by thumbprint.

전부 비슷하게 생겼다. 문장 구조가 같고, 시제가 같고, 마지막 줄이 대개 부정문이다. 아니라고, 자원이 아니었다고, 증거가 없다고. 여섯 달치를 쌓아놓으면 한 사람이 예순한 번 진술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최정근 소위가 문간에서 나를 봤다. 스물셋이고 해주 사람이고, 3월에 배속되어 와서 제5분과에 있다. 그는 하루에 열댓 명을 본다.

"선배님, 아직 계셨습니까."

"곧 갈 걸세."

그가 들어와서 내 책상 위의 부본을 몇 장 넘겨봤다. 그러고는 진심으로 말했다.

"선배님은 잘 하십니다. 저는 아직 길이 안 맞아서요. 자꾸 길어집니다. 위원장님이 줄이라고 하시는데, 줄이면 무슨 말인지 제가 모르겠고, 안 줄이면 안 들어가고."

"익숙해지네."

"그렇습니까."

"그렇더군."

그가 인사하고 나갔다. 나는 부본을 묶어서 서랍에 넣고, 등을 끄고, 복도로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 말을 다시 들었다. 잘 하십니다.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을 잘 한다는 것인가. 나는 그 문장을 대동강 다리를 건널 때까지 여러 번 뒤집어봤고, 뒤집을 때마다 뜻이 하나씩 더 생겼다.


1953년 · 부산 영도, 판자촌과 방직공장

물은 새벽 네 시 반부터 나왔다.

재옥은 그보다 십오 분 먼저 나가서 양철통을 놓았다. 비탈길에 판잣집이 층층이 붙어 있고, 공동수도는 그 층계의 맨 아래에 있다. 물통을 놓아 자리를 잡아두는 것은 규칙이 아니라 관습이어서, 규칙보다 지키기 어렵다.

앞줄에서 여자 둘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거 왜, 아래 골목 셋째 집 있제. 그 집 딸 혼사 깨졌다 카더라."

"와?"

열두 개의 태양 36화 제50장 요약 — 전환컷

"북에서 왔다 안 카나. 신의주 쪽이라 카던데."

"신의주면… 아이고."

"몸에 든 기라 카데. 겉으로는 모른다 카고."

두 사람은 그다음에 무엇이 몸에 들었다는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아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재옥은 양철통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손잡이는 철사를 감아 만든 것이라 새벽에는 차다.

물을 받아 지고 올라올 때 계단이 백열두 개다. 그녀는 그것을 세어본 적이 있고, 이후로는 세지 않는다.

비탈에는 집이 매년 늘었다. 판자와 미군 상자 나무와 깡통을 펴서 만든 지붕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데, 위에서 보면 지붕이 물결처럼 이어져 있어서 어디가 어느 집인지 분간이 안 된다. 비가 오면 위쪽 집에서 흘러내린 물이 아래쪽 집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것 때문에 싸움이 나고, 싸움이 나면 말씨가 나온다. 재옥은 싸움에 끼지 않는다.


공장은 다리 건너에 있었다.

영도다리는 정해진 시각에 한쪽이 들린다. 다리가 들리면 사람들이 난간 앞에 멈춰 서서 배가 지나가는 것을 본다. 난간 기둥에는 종이쪽지가 붙어 있다. 풀로 붙인 것도 있고 실로 묶은 것도 있다. 이름과 나이와 고향과, 여기서 기다린다는 말. 비를 맞아 글자가 번진 것이 절반이다.

재옥은 그 앞에서 걸음을 늦춘 적이 있다. 한 번이다. 종이 한 장에 무엇을 적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이름, 나이, 고향, 그리고 찾는 사람. 넷 중에 셋이 그녀가 지우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다리를 건널 때 물 쪽만 본다.

공장에서 그녀가 맡은 것은 정경기 뒤쪽이었다. 실이 감기다가 끊어지면 손으로 잇는다. 잇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을수록 좋고, 매듭이 작을수록 좋다. 재옥의 매듭은 작았다. 정주에서 무명을 짜던 손이 여기서는 다른 실을 만지는데, 손가락이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장 안은 소리로 가득 차서 사람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여공들은 입 모양으로 말하거나 팔꿈치로 찌른다. 공기 중에는 흰 보풀이 떠 있고, 저녁에 코를 풀면 그것이 나온다. 열두 시간을 서 있으면 무릎이 아니라 발바닥이 먼저 아프다.

점심은 주먹밥이다. 배급 밀가루를 얻은 날은 수제비를 끓여서 나눠 먹는데, 그런 날은 다들 말이 많아진다.

반장이 그녀 뒤에 서서 한참 보다가 말했다.

"니 손 빠르다. 어데서 배웠노."

"집에서요."

"집이 어덴데."

"…강원도예요."

반장은 더 묻지 않았다. 그녀가 강원도 어디냐고 물었으면 재옥은 대답을 준비해두지 않았다는 것을 들켰을 것이다. 그날 이후 반장은 그녀에게 끊어진 실을 몰아줬다. 신임이라는 것이 그런 식으로 왔다.


하숙집 주인은 예순쯤 된 여자였고, 방 두 개에 여덟을 넣었다. 밥은 두 끼, 국은 한 끼.

일요일 오후에 주인이 사람을 하나 데리고 들어왔다. 머리를 곱게 빗고 옥색 저고리를 입은 여자였다.

"김 씨 아지매다. 잘 봐주는 사람이라."

중매쟁이는 앉자마자 재옥의 손을 잡아 뒤집어 봤다. 손바닥의 굳은살을 만지고, 손목을 만지고, 그다음에 얼굴을 봤다.

"나이가?"

"스물하나요."

"고향은."

"강원도요."

"강원도 어데."

"…춘천 쪽이요."

"춘천 사람이 말이 그리 안 하제."

방 안이 잠깐 조용했다. 하숙집 주인이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얘가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옮겨 다녀서 그렇심더."

중매쟁이는 웃지 않았다.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접고, 일어섰다. 문지방을 넘으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요새는 저쪽서 온 사람은 신랑 집에서 진찰서를 달라 캅니더. 알아두이소."

문이 닫히고 나서 하숙집 주인이 재옥의 무릎을 툭 쳤다.

"신경 쓰지 마라. 저 아지매는 원래 말이 저렇다."

"…예."

"근데 니, 진짜 강원도가?"

재옥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인은 그 침묵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일어나서 부엌으로 갔다. 그날 저녁 국에 건더기가 평소보다 조금 많았다.

그날 밤 재옥은 다들 잠든 뒤에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입만 움직였다.

정거장. 정거장. 좋다. 좋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혀끝이 자꾸 앞니 뒤로 갔다. 정주에서는 그 자리에서 소리가 났다. 여기서는 그 자리가 아니다. 어머니. 어머니. 그 단어는 한 번에 됐다. 오마니라고 부르던 사람이 이제 없으니까 굳이 고칠 것도 없었다.

하루에 한 단어씩이면 일 년에 삼백예순다섯이다. 그녀는 그 계산을 하고 나서 자기가 몇 개나 남았는지는 세지 않기로 했다.

하루에 한 단어씩이면 일 년에 삼백예순다섯이다. 그녀는 그 계산을 하고 나서 자기가 몇 개나 남았는지는 세지 않기로 했다.

남은 8화 · 약 30,526자 · 약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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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태양전 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