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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제59장 십사 년

· 44화 중 42화 · 3,850자 · 약 6분 · 무료

글자3 / 5

1959년 5월 · 부산, 영도의 한 방

원면 배정 서류에는 종업원 명부가 딸려 온다. 공장이 몇 사람을 먹여 살리는지 미국 쪽에 보이기 위한 것이고, 그래서 이름과 나이와 본적이 다 적혀 있다.

열두 개의 태양 42화 제59장 십사 년 — 헤더컷

부산 영도의 방직공장 것이 사무실에 들어온 것은 오월 초였다. 여공 이백열아홉 명. 나는 그것을 영역하면서 본적란을 봤다. 그렇게 안 본 명부가 팔 년 동안 없었다.

교회 명부, 이북 도민회 명부, 구호소 등록부. 신문에 사람 찾는 광고는 내지 않았다. 문장을 스무 번쯤 만들어봤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를 어떻게 쓸지에서 걸렸다.

백사십일 번에 韓在玉이 있었다. 一九三二年生. 本籍 平安北道 定州郡.

이 년 전에도 한 번 내려간 적이 있다. 그때는 개성에서 온 사람이었고, 이름 석 자만 같았다. 그 여자는 자기 잘못도 아닌데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나는 명부를 무릎에 올려놓고 그 이름 위에 줄을 그었다.

이번에는 사흘을 놓아두었다가 갔다.


통일호가 부산에 닿은 것은 아침이었다. 영도다리를 건너는데 물비린내가 났다.

명부의 주소는 없는 주소였다. 산비탈에 판잣집이 붙어 있고 골목이 골목으로만 이어져서, 번지는 종이 위에만 있었다.

복덕방 노인이 알려주겠다고 했다. 말끝이 익숙했다.

"어디서 오셨읍네까."

"서울서 왔읍니다."

"고향 말입니다."

"정주입니다."

노인이 나를 한 번 더 봤다.

"나는 선천이오. 방직 다니는 처녀들은 저 위에 모여 삽네다. 물지게 지고 올라가는 데."

계단이 예순 몇 개였다. 세다가 놓쳤다. 위로 갈수록 계단 폭이 좁아지고 나중에는 흙에 나무를 박아놓은 것이 계단이었다.

노인이 문 하나를 가리키고 계단 밑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그냥 가고 없었다.


문이 열렸다.

그녀는 손에 물그릇을 들고 있었다. 나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릇을 내려놓지도 않았다.

십사 년이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45년 겨울, 그 애는 열세 살이었다.

"들어오시라요."

그러고는 입을 다물었다. 다음 말은 다른 소리로 나왔다.

"들어오세요. 좁아요."

방은 두 사람이 누우면 찰 만했다. 벽에 신문지를 발랐고, 못에 작업복이 걸려 있고, 밑에 보퉁이 하나가 있었다.

우리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밥은요."

"먹었다."

"거짓말."

그녀가 나가서 풍로에 불을 붙였다. 나는 방에 앉아 신문지 벽을 봤다. 사 년 전 신문이었다. 무슨 회담 기사가 거꾸로 붙어 있었다.


보리밥에 된장국, 김치, 자반 한 토막.

"차릴 게 없어서요."

"많다."

나는 다 먹었다. 국물까지 먹었다. 그녀는 자기 밥은 반쯤 남기고 내 그릇만 봤다.

"공장은 몇 년 됐냐."

"오십삼년부터요. 그전에는 부두에서 그물 손질했고."

"부산 온 건."

"오십이년 삼월에요."

"혼자."

"오는 동안은 아니었고요."

그녀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고 나도 더 묻지 않았다. 함께 오다가 함께 닿지 못한 사람 이야기는 그날 밤에 할 것이 아니었다.

"방값은."

"주인이 이북 사람이라 싸게 줘요. 그것만 알고 딴 건 몰라요."

말투에 정주가 없었다. 자음이 눕는 자리가 없고 어미가 짧았다. 부산 말도 아니고 서울 말도 아닌, 아무 데도 아닌 말이었다. 그것을 만드는 데 몇 해가 걸렸을지 나는 안다. 나는 그 반대 일을 해서 먹고사는 사람이다.

그릇을 물리고 그녀가 손을 닦았다. 그리고 보퉁이를 끌어다 매듭을 풀었다.

안에서 헝겊에 싼 것을 꺼냈다. 헝겊을 벗기니 참빗이었다.

빗살 두 개가 빠져 있었다. 왼쪽에서 셋째와 넷째. 어머니는 그 빗으로 머리를 빗고 나서 빗살 사이에 낀 것을 손가락으로 훑어 종이에 모아두었다. 종이는 부엌 선반 위에 있었다.

나는 상 모서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울었다.

재옥은 일어나지 않았다. 손도 대지 않았고 그만하라고도 하지 않았다. 무릎에 손을 얹고 앉아서 그대로 있었다.

얼마나 걸렸는지 모른다. 그날 나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내가 시간을 재지 않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팔월 삼일이에요."

그것이 어머니에 대해 그녀가 꺼낸 첫마디였다.

"새벽에요. 뒷산에 모셨는데 땅이 얕아서 돌을 쌓았어요. 셋째 골에서 왼쪽으로 열 걸음, 소나무 밑이에요."

나는 수첩을 꺼내지 않았다. 꺼낼 뻔했는데 손이 멎었다. 그것을 적으면 그것도 기록이 된다.

"팔월 삼일."

"예."

열두 개의 태양 42화 제59장 십사 년 — 전환컷

"몇 시쯤이냐."

"닭 울기 전에요."

그녀는 그다음 말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오빠 원망 안 해요."

원망하지 않으려면 먼저 원망할 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 자리를 그녀는 만들지 않았고, 그것을 알려주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참 뒤에 그녀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묻지 않았는데 했다.

"오십일년 오월에요. 스무아흐레였는데, 그날 날이 좋았어요.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어요."

내가 무엇을 아는지 그녀는 모르고, 그래서 처음부터 말했다. 날짜부터 말했다. 나는 그 날짜를 팔 년 동안 매일 갖고 다녔다.

"북서쪽이 두 번 밝았어요. 해 뜨는 데가 아닌 데서요. 눈이 아파서 감았다가 떴는데 벌써 없었어요. 두 번째 것은 첫 번째보다 조금 아래였고."

그녀는 왼손을 들어 어깨 높이에 세웠다가, 오른손을 그보다 조금 낮게 들었다. 십사 년을 지나온 손이 그 높이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참 있다가 유리가 흔들렸어요. 소리가 늦게 왔어요."

풍로 위에서 물이 끓다가 잦아드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오셔서 하늘을 보셨어요. 아무 말도 안 하시고요. 한참 보시다가 들어가셨어요. 그날 점심에 국수를 하셨어요."

나는 무릎 위에 손을 놓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아팠다.

"동네에서는 신의주가 어떻게 됐다더라 그랬어요. 그런 말은 전에도 많았으니까요.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고."

방 밖에서 누가 물지게를 지고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통 안에서 물이 규칙적으로 넘쳤다.

"저는 빨래를 마저 널었어요. 널어야 마르니까요."

그녀는 거기서 잠깐 쉬었다. 자기가 한 말을 확인하는 사람처럼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사나흘 있다가 비가 왔어요. 빨래를 다시 해야 했어요. 얼룩이 안 지워져서 두 번 삶았어요. 그래도 안 지워지는 건 안 지워졌어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나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말해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아낼 수 없었고, 알아내지 못한 것을 옮기지 않는 버릇이 나한테는 있다.

"그게 다예요."

재옥이 말하는 동안 나는 그것을 셌다. 세지 않으려고 했는데 세어졌다. 삼 분이 조금 안 됐다.

내가 그날 어디 있었는지 그녀는 묻지 않았다.

오는 기차에서 나는 그 대답을 만들어두었다. 세 번 고쳤다. 짧게도 해보고 길게도 해봤다. 마지막 것은 스물여덟 자였고 나는 그것을 외우고 있었다.

묻지 않으면 대답은 나가지 못한다. 그 문장은 아직 내 안에 있다.


바깥이 어두워졌다. 아래쪽 판잣집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났다가 그쳤다. 어디선가 라디오를 켰다가 곧 껐다.

서울로 올라와 살라고 말할 뻔했다. 방을 얻어주겠다, 사무실에 자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런 말이 순서대로 준비되어 있었다. 하나도 하지 않았다.

재옥이 빗을 들어 소매로 한 번 닦았다. 빗살 빠진 자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두 번 문지르고 멈췄다가 한 번 더 문질렀다.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내밀 뻔했는데 내밀지 않았다. 그 빗은 어머니가 준 것이 아니고 재옥이 가져온 것이다. 돌을 쌓은 것도 재옥이다.

그녀가 헝겊으로 다시 쌌다. 네 귀를 접어 넣고 보퉁이 안쪽 깊은 데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매듭을 지었다. 묶는 데 오래 걸렸다. 서두르지 않았다.


1962년 10월 ·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 연구실과 집

강의계획서는 4월에 인쇄된다. 그해 가을 학기 '근대 동아시아, 1839~1949'는 스물두 번의 강의로 짜여 있고, 마지막 주는 국공내전과 신중국 성립이다.

1949년에서 끝난다. 콜린스가 그렇게 잘랐다.

학과장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시대 구분은 담당 교수의 재량이고, 1949년에서 끊는 개설 과목은 다른 대학에도 있다. 자료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판단하기에 이르다, 학부 강의에서 다루기에는 논쟁이 과열되어 있다 — 이유는 얼마든지 있고 전부 그럴듯하다.

연구실 책장 셋째 칸에 그 시기 자료가 꽂혀 있다. 1953년부터 1956년까지 나온 공개 보고서들. 낙진 실측 등고선, 검역선 지도, 상원 원자력합동위원회 청문회 속기록 세 권. 그는 그것을 전부 읽었고 강의에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조교인 대학원생이 한 번 물어본 적은 있었다.

"1951년은 안 하십니까. 학생들이 그걸 제일 궁금해하는데요."

"내 분야가 아니야."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고, 조교도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더 묻지 않았다.


10월 23일 화요일. 전날 밤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와 쿠바 이야기를 했다.

아침에 학교로 가는 길에 라디오 가게 앞에 사람이 여남은 명 서 있었다. 식당에서는 아무도 밥값 계산을 틀리지 않았고 다들 평소보다 조용히 먹었다.

강의실에 서른한 명이 앉아 있었는데 아무도 필기를 하지 않았다. 콜린스는 예정대로 1936년 시안 사건을 강의했다. 장쉐량이 자기 상관을 붙잡아두고 무엇을 요구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성공했는지. 오십 분을 다 썼고 한 번도 창밖을 보지 않았다.

강의가 끝나고 학생 하나가 남았다. 3학년이고, 학기 내내 앞에서 둘째 줄에 앉았고, 한 번도 질문을 한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

"교수님."

"응."

"1951년 5월 29일에 어디 계셨습니까."

콜린스는 분필을 놓고 손가락에 묻은 것을 털었다. 털어도 잘 안 떨어졌다.

"대구에. 미 제8군 정보참모부에."

"거기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적 병력을 셌다. 정면에 몇 개 사단이 들어왔는지, 며칠에 몇 명이 새로 넘어왔는지. 그걸 숫자로 만들어서 위로 올렸다."

학생은 그 대답이 끝인 줄 알고 기다렸다.

"5월 17일에 내가 서명한 판정서가 하나 있다. 동부 정면에 신규 유입 병력이 있다는 것. 자네가 오늘 신문에서 읽은 것들은 전부 그 서류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 그 서류가 어떤 문장의 조건을 채운 거다. 그 문장은 4월 5일에 이미 워싱턴에서 써놨었고."

"그럼 교수님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말을 들으러 대답한 게 아니야."

학생이 가방을 고쳐 멨다. 얼굴이 붉어졌다.

"죄송합니다."

"미안할 것 없다. 좋은 질문이었다. 다음 주에 보자."

학생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콜린스는 칠판을 지웠다. 지우고 나서 다시 한번 지웠다.

학생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콜린스는 칠판을 지웠다. 지우고 나서 다시 한번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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