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태양 제1부 통역(通譯)
6화제8장 고향의 발음
1951년 3월 28일 ~ 31일 · 대구 제8군 후방사령부, 피난민 수용소
타이프 소리가 한 번 멎었다.

작전과 문 앞에서 국군 연락장교 하나가 서류를 들고 서서 말했다. 김백일 장군이 죽었다고. 대관령 근처에서 비행기가 떨어졌다고.
"오늘?"
"오전이랍니다."
미군 소령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누구요?"
"일군단장입니다." 내가 옮겼다.
"아, 그 사람." 소령이 서류로 돌아갔다. "흥남에서 배에 사람 태운 그 사람 아니오?"
"그건 알몬드 장군이 결정한 거지." 옆에서 다른 사람이 말했다. "붙어서 설득한 게 민사부 통역이었다던데. 조선 사람 의사라던가. 그 사람하고 김 장군하고 둘이 매달렸다더군."
타이프 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삼십 초였다. 사람 하나가 죽은 소식이 방을 지나가는 데 삼십 초가 걸렸고, 그중 팔 초가 통역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 팔 초를 그날 저녁까지 붙들고 있었다. 통역이 붙어서 설득했다. 통역이. 붙어서. 설득했다.
옮기는 것 말고 다른 것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배에 사람이 탔다는 뜻이다.
이십구 일 오후에 나는 수용소로 갔다.
용무는 있었다. 사령부에서 이북 출신 민간인 중에 지형에 밝은 사람을 찾는 일이 있었고, 나는 그 명목으로 명단을 들고 갔다. 명단에는 출신 도가 적혀 있었다. 평안북도 항목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수용소는 창고 건물 두 채였다. 안에 가마니로 칸을 질러 한 칸에 한 가족씩 들어가 있었고, 칸 위로는 뚫려 있어서 소리가 다 넘어갔다. 아이 우는 소리가 어느 칸에서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정주 사람은 세 번째 칸에 있었다. 예순 몇으로 보였다. 이름을 확인하고 앉았다.
"어르신, 정주 어디십니까."
"읍내서 십 리."
그 다섯 자를 듣는데 목뒤가 서늘했다. 다섯 중에 셋이 내가 아는 자리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섯 해가 넘도록 나는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저도 정줍니다. 오산학교 서무 보던 한경모 씨 아들입니다."
노인이 나를 다시 봤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 봤다.
"기래?" 그가 무릎을 고쳐 앉았다. "한 서무 아들이 여기 있네."
"우리 집이 아직 있습니까."
"있디. 뒤안에 감나무 있는 집 아니가. 있어."
"어머니는요."
"계시디. 떠나기 전날에 느이 집 앞을 지났어. 마당에 나와 계십디다." 노인이 손등으로 코를 문질렀다. "느이 누이가 다 컸더라. 베 짜는 거 보구 왔다. 손이 빠르드만. 열여덟인가."
"열아홉입니다."
"기럼 열아홉이갔디."
나는 숨을 한 번 쉬고 물었다. "어르신, 몇 월 며칠에 내려오셨습니까."
"작년 섣달이디."
"섣달 며칠입니까."
"며칠인지는…" 그가 천장을 봤다. "눈이 억수로 오던 날이야. 그날 밤에 떠났으니까."
"섣달 초순입니까, 중순입니까."
"기게 중요한가."
"중요합니다."
노인은 대답 대신 나를 봤다. 그 눈에는 나를 딱하게 여기는 기색이 조금 있었다.
날짜를 알면 그 뒤로 몇 달이 지났는지 셀 수 있다. 몇 달이 지났는지를 알면 그동안 무엇이 지나갔는지를 셀 수 있다. 내가 아는 확인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한 서무는 안됐디." 노인이 말했다. "정해년 겨울에 갔잖니. 땅 뺏기고 나서 그 겨울에."
나는 그것을 몰랐다.
"몇 월입니까."
"정월인가 섣달인가."
"정월입니까, 섣달입니까."
"기억이 없어."
나는 수첩을 폈다가 아무것도 적지 않고 닫았다.
"어르신은 왜 내려오셨습니까."
"군인들이 다리를 끊는다길래."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리 끊기 전에 건너야디."
"식구분들은요."
"큰아들네는 남았어. 밭이 있으니까 못 움직이디." 그가 가마니 벽 쪽으로 눈을 돌렸다. "밭 있는 사람은 못 떠나. 여기 이 창고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밭 없던 사람들이야. 다 그래."
노인이 내 무릎을 두 번 두드렸다.
"괘니 애쓰디 말라. 느이 오마니는 밭 있고 딸 있으니까 산다."
그날 밤 콜린스가 사령부 뒷마당으로 나를 불러냈다. 그가 커피를 두 잔 가져왔다. 나는 설탕을 넣지 않는다. 그는 그걸 벌써 알고 있었다.
"한 중위, 하나 물어봅시다."

"예."
"너는 왜 여기 있냐."
깡통 잔이 뜨거워서 나는 손을 바꿔 쥐었다.
"명령을 받았읍니다."
"그건 어디 있느냐에 대한 대답이지 왜에 대한 대답이 아니오." 그가 자기 잔을 들여다봤다. "나는 프린스턴에서 당나라 문서를 읽다가 여기 왔소. 아무도 나한테 왜냐고 안 묻더군. 그래서 내가 나한테 물어봤는데 답이 없었소. 그게 일 년 전이오. 지금도 없소."
"소령님은 답이 있으셔야 합니까."
"내 서명이 들어가는 종이가 하루에 열 장이오. 그중에 숫자가 들어간 게 여덟 장이고." 그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 숫자로 사단이 움직이고 폭격 순서가 정해지오. 숫자에는 이유가 안 붙소. 그냥 숫자니까. 그런데 그 숫자를 쓰는 손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오. 없으면 그건 그냥 계산기지."
나는 낮에 들은 여덟 초를 생각했다. 통역이 붙어서 설득했다.
"소령님." 내가 말했다. "옮기는 사람이 옮기는 것 말고 다른 것을 해도 됩니까."
"뭘 말이오."
"흥남에서 통역 하나가 장군을 설득했다고 들었읍니다. 그래서 배에 사람이 탔다고."
콜린스가 나를 잠깐 봤다. "그 사람은 그날 자기 자리에서 나온 거요."
"그래도 됩니까."
"됐는지 안 됐는지는 나도 모르오." 그가 어깨를 폈다. "다만 그 사람 이름은 아무도 기억 안 할 거요. 배에 탄 사람 수는 남을 거고."
그러고는 화제를 바꿨다. 그가 잔을 흔들면서 지나가듯 말했다.
"오키나와에서 뭘 크게 판다더군. 공사 규모가 이상하다고."
이튿날 윤성갑이 그것을 좀 더 알고 있었다.
"가데나 말입니까." 그가 담배를 붙였다. "구덩이를 판답디다. 콘크리트로. 활주로 옆에다."
"무슨 구덩이입니까."
"비행기가 그 위로 올라선답네다. 그러니까 땅에 구덩이를 파고 거기서 밑에서 위로 뭘 올려 붙이는 거디요." 그가 연기를 뱉었다. "중위님, 비행기 배때기 밑에서 위로 올려 붙일 만큼 큰 게 뭐가 있갔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초가 두 겹이랍디다. 안쪽 보초는 바깥쪽 보초를 못 들어가게 하고." 그가 웃었다. "그런 거 지키는 보초는 내레도 서봤습네다. 만주국 때. 안에 뭐가 있는지는 끝까지 몰랐고요."
삼십일 일 밤에 나는 막사 밖에 나와 섰다.
대구는 벌써 봄이었다. 흙냄새가 났고 어디서 개구리 소리가 났다. 정주는 아직 얼어 있을 것이다. 사월 초순까지는 언다.
나는 낮에 들은 그 소리를 혼자 내어봤다.
오마니.
다섯 해 만에 내 입에서 나온 소리였고, 노인의 것과 같지 않았다. 어딘가 서울이 묻어 있었다. 나는 한 번 더 해봤다.
1951년 3월 25일 ~ 31일 ·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 제3적재피트 공사장
삽날이 산호에 부딪히는 소리는 흙에 박히는 소리와 다르다. 흙은 삼키고 산호는 되받는다. 오키나와의 붉은 흙은 한 자 반이면 바닥이 났고, 그 아래는 죽은 바다였다.
"착암기를 불러야겠습니다." 공병 중대 소위가 도면을 접으며 말했다. 걷어붙인 팔뚝이 벌써 벌겋게 익어 있었다. "손으로는 안 됩니다. 이건 흙이 아니라 돌이에요."
로이 데커는 도면을 보지 않았다. 사흘 전에 외웠다.
"깊이 팔 피트 육 인치. 폭 십사 피트." 그가 말했다. "밑에 유압 승강대가 들어가고, 승강대 정격은 오 톤입니다. 오 톤을 올리는 물건 밑이 무르면 안 되니까 산호까지 내려가는 겁니다."
"뭘 올리는데요, 오 톤씩이나."
"도면에는 안 적혀 있습니다."
소위는 잠시 데커의 얼굴을 봤다. 상사 계급장을 단 서른 살짜리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소위들은 대개 한 번 더 묻거나, 묻기를 그만둔다. 소위는 착암기를 부르러 갔다.
도면은 한 장이었다. 위쪽에 제3적재피트라고 찍혀 있고, 아래쪽에 깊이와 폭과 승강대 정격이 있었다. 용도란은 인쇄된 칸만 있고 안이 비어 있었다. 비워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채울 생각이 없었다는 식으로 비어 있었다.
바람은 남서쪽에서 왔고 사탕수수 냄새가 났다. 활주로 건너편에서 B-29 한 대가 엔진 시운전을 하고 있었다. 프로펠러 뒤로 붉은 먼지가 길게 누웠다.
오후에 착암기 두 대가 들어왔다. 산호는 부서지면서 흰 가루가 되었고, 그 가루가 땀에 젖은 목덜미에 앉아 굳었다. 현지 인부 열댓이 손수레로 그것을 퍼냈다. 통역을 붙일 만큼 큰 공사는 아니어서 손짓으로 시켰다. 늙은 축에 드는 인부 하나가 구덩이 벽면을 손바닥으로 만져보고 뭐라고 말했는데,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고 아무도 되묻지 않았다.
거푸집 목재는 필리핀에서 왔다. 나사못이 모자라서 이틀을 쉬었고, 사흘째 아침에 트럭 두 대분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콘크리트는 산호를 부숴 만든 것이라 회색이 아니라 흰빛이 돌았다.
받침대가 도착한 것은 이십팔일 오후였다.
나무 상자 넉 대분. 겉면에는 부품 번호와 중량, 그리고 "취급 주의"라는 스텐실만 찍혀 있었다. 데커는 뚜껑을 뜯고 안을 봤다. 강철 요람이었다. 안쪽 곡면에 펠트를 댔고 펠트 위에 다시 가죽을 씌웠다. 무엇을 눕히려고 만든 물건인지 곡면이 말하고 있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줄자를 뽑았다.
곡면의 지름을 재는 데는 두 번이 필요했다. 한 번은 자기 손으로 끝을 잡고, 한 번은 노백을 불러 잡게 했다. 두 번 다 육십 인치였다.
레일은 그다음이었다. 요람 두 개를 앞뒤로 물리는 간격이 콘크리트에 박은 앵커로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 사이를 재니 백이십팔 인치가 나왔다.
육십 인치, 백이십팔 인치, 오 톤.
데커는 줄자를 감았다. 스프링이 되감기는 소리가 짧게 났다. 세상에 그 세 숫자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물건은 하나뿐이었고, 그는 그 물건의 매뉴얼을 삼 년째 갖고 있었으며, 괌의 창고에 몸통 아홉 개가 코어 없이 누워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요람 안쪽 가죽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보고 상자 뚜껑을 도로 덮았다. 뚜껑을 덮을 때 못 하나가 비뚤게 들어가 목재가 쪼개졌다. 그는 그 못을 뽑아 다시 박았다.
승강대 시험은 다음 날 했다. 콘크리트 덩어리에 고리를 박아 요람에 얹고 유압을 올렸다. 덩어리는 사 톤 반이라고 적혀 있었다. 승강대는 팔 피트 육 인치를 삼십사 초에 올렸다가 사십 초에 내렸다.
"느립니다." 무기중대 하사 하나가 말했다.
"천천히 올라가야 하는 물건이니까 천천히 올라가게 만든 거다."
"내려올 때가 더 느린데요."
"올라가는 건 실수해도 되고 내려오는 건 안 되니까."
하사는 알아들은 얼굴을 하지 않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데커는 유압 계통의 이음매 아홉 군데를 하나씩 손등으로 만져 기름이 배어나오는지 봤다. 두 군데에서 배어나왔다. 그는 그것을 적었다.
하사는 알아들은 얼굴을 하지 않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데커는 유압 계통의 이음매 아홉 군데를 하나씩 손등으로 만져 기름이 배어나오는지 봤다. 두 군데에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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