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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제3장 포로의 말

· 44화 중 3화 · 3,512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그날 저녁 나는 육본 정보처 앞으로 요청서를 썼다. 중국어 가능자를 사령부 연락반에 배속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유란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본직은 중국어를 하지 못함.

그리고 심문 서식 두 장을 다시 폈다.

열두 개의 태양 3화 제3장 포로의 말 — 헤더컷

첫 칸이 성명란이었다. 두 장 다 비어 있었다. 나는 거기에 未詳이라고 두 번 썼다.

물어보지 않았다.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름을 물어봐야 그것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이름은 짧다. 짧은 말은 손짓으로도 오간다. 그것을 나중에 알았다.


1951년 2월 13일 밤 ~ 15일 · 경기도 양평 지평리, 미 제23연대전투단 방어진지

중공군은 나팔을 불었고 프랑스 사람들은 사이렌을 돌렸다.

나팔은 능선 아래 어둠 속 여러 군데서 났다. 한 군데서 불면 다른 데서 받고, 받은 데서 또 받아서, 소리가 진지를 한 바퀴 돌았다. 소리가 도는 방향을 따라가면 우리가 어디까지 둘러싸였는지 알 수 있었다. 열두 시가 넘어서는 끊기는 데가 없었다.

프랑스 대대 쪽에서 손잡이를 돌리는 사이렌이 울기 시작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사람 소리가 아니라 쇠 소리였고, 나팔보다 높았다. 미군 통신병 하나가 참호 안에서 웃었다. 저것들 미쳤다고 했다.

나는 열세 시에 이 안에 들어왔고 열여섯 시에 길이 닫혔다. 나올 방법이 없었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프랑스말 때문이 아니다. 나는 프랑스말을 모른다. 연대전투단에 지게로 짐을 나르는 한국 사람이 백 명 넘게 붙어 있었고, 그 사람들과 미군 사이에 말이 필요했다. 그것이 내 일이었다.

조명탄이 오르면 진지 안이 잠깐 대낮이 된다. 그 빛에 지게가 보였다. 지게는 눈 위에 세워두면 사람처럼 보인다.

노무자들은 진지 안쪽 골짜기에 모여 있었다. 대부분 마흔이 넘었고 쉰도 있었다. 국군도 미군도 아니어서 군복이 없고, 솜바지에 미군이 준 방한외투를 걸친 사람이 반쯤 됐다. 총은 없었다. 총이 없는 사람들이 총알을 지고 능선을 올라간다.

반장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장교님, 여기서 나가는 길이 열립니까."

"모릅니다."

"그럼 언제 물어보면 압니까."

"물어볼 데가 없읍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모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사람들 쪽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거기 대고 뭐라고 한마디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나는 듣지 못했다. 사람들이 앉은 자리를 조금씩 좁혀 붙어 앉았다.


이튿날 아침에 프리먼 대령을 처음 가까이서 봤다.

그는 전날 밤 박격포탄 파편을 종아리에 맞았다. 후송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는 듣지 않았고, 바지를 걷어 붕대를 보여주면서 참모에게 뭐라고 짧게 말했다. 걸을 때 왼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그러면서도 지휘소 밖으로 계속 나갔다.

몽클라르 중령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쉰여덟이라고 했다. 원래 별을 달았던 사람인데 이 대대를 데리고 오려고 계급을 낮춰서 왔다는 이야기를 그날 들었다. 그가 지팡이 끝으로 언 흙을 두드리며 자기 부하들 사이를 지나갔다.

두 사람 사이의 말은 프랑스 부사관 하나가 옮겼다. 그 부사관이 영어를 했다. 그러니까 이 진지 안에서 프랑스말은 영어를 거쳐서만 움직였다.

그리고 그 영어를 내가 다시 한국말로 옮겼다.

한 문장이 세 번 옮겨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날 낮에 알았다. 문장은 옮길 때마다 조금씩 줄어든다. 프랑스 부사관은 영어 낱말이 부족해서 자기가 아는 낱말로 바꾸고, 통신병은 급해서 그중 절반만 받아 적고, 나는 받아 적힌 절반을 한국말로 만든다. 세 번을 지나오는 동안 사라지는 것은 대개 같은 종류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 남는 것은 명령의 뼈다귀뿐이다. 가라. 올라가라. 붙어라.

한낮에 미군 포병이 진지 안에서 수평으로 포를 쐈다. 능선 아래에서 사람들이 계속 올라왔다. 나중에 들으니 이쪽으로 붙은 것은 세 개 연대였고 두 개 연대는 밤에 길을 잃어 엉뚱한 골짜기로 갔다고 했다. 그 두 개 연대가 제 길을 찾았으면 지평리 이야기는 다르게 끝났을 것이라고, 이월이 지나고 나서 사람들이 말했다.


십사 일 밤이 제일 길었다.

프랑스 대대 정면의 한 지점에서 탄약이 떨어져 갔다. 무전이 들어왔다. 프랑스 부사관이 제 중대에서 받은 것을 영어로 바꿔서 연대 지휘소에 넣었다. 통신병이 받아 적었다. 나는 그 옆에 서 있었다.

통신병이 종이를 나에게 밀었다.

"숲 왼쪽. 고지 밑. 육십 미리 탄 두 상자, 소총탄. 지게 올려보내라고."

"왼쪽이 어느 쪽입니까."

"왼쪽이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나는 지도를 짚었다. "여기서 올라가는 사람의 왼쪽입니까, 저기서 적을 보고 선 사람의 왼쪽입니까."

통신병이 송수화기를 들어 물었다. 그쪽에서 영어로 뭐라고 했고, 그 사람은 다시 프랑스말로 물어야 했다. 대답이 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무전기 속에서 다른 목소리 셋이 겹쳐 들어왔다.

지게꾼들은 이미 상자를 지고 있었다. 노무자 반장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열두 개의 태양 3화 제3장 포로의 말 — 전환컷

통신병이 손바닥을 위로 뒤집었다. "한 중위, 저쪽은 지금 답할 사람이 없어. 총 쏘고 있다고."

물어보는 데 드는 시간과 물어보지 않는 데 드는 것을 나란히 놓을 저울이 나한테는 없었다. 탄이 없으면 정면이 뚫린다. 정면이 뚫리면 이 골짜기 안에 있는 백 몇 명도 같이 넘어간다. 그 백 몇 명 중에 지금 상자를 지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말했다. "숲 왼쪽입니다. 고지 밑으로 붙어서 올라가시오."

넷이 갔다. 나머지는 다른 쪽으로 갔다.


날이 트고 나서 어디로 갔는지를 알았다.

숲 왼쪽은 두 개였다. 올라가는 사람의 왼쪽과 서 있는 사람의 왼쪽 사이가 이백 미터였다. 그 이백 미터는 능선 어깨가 잘려서 아래에서 위로 훤히 보이는 자리였다. 밤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상자는 세 개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하나는 터져서 탄이 흩어져 있었다. 흙이 얼어서 아무것도 파묻히지 않고 전부 위에 있었다.

프랑스 부사관이 나중에 나에게 왔다. 그는 자기 중대가 부른 지점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 보여주었다. 숲의 모서리, 능선에서 백 미터 아래. 그는 그 두 마디를 다 말했다고 했고, 나는 그가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종이에 적힌 것을 보면 그것은 한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옮겨지는 동안 앞의 한 마디가 떨어져 나갔을 뿐이다.

"미안하오." 그가 영어로 말했다. 그것이 그가 아는 영어 중에 제일 정확한 낱말이었을 것이다.

넷 중 하나가 전날 저녁에 나한테 성냥을 빌렸다. 불을 붙이고 나서 그가 내 얼굴을 보더니, 눈썹 위 그 흉터는 어디서 얻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더 묻지 않고 성냥을 돌려주었다. 이름은 묻지 않았다. 그날은 아무 이름도 묻지 않는 날이었다.

지게 네 개가 눈 위에 그대로 서 있었다. 밤에 조명탄이 오르면 그것이 사람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나는 다시 했다.


십오 일 오후에 전차가 들어왔다.

남쪽 길에서 먼저 먼지가 보이고 그다음에 소리가 왔다. 스무 대쯤 됐다. 전차 위에 타고 오던 보병들은 오는 길에 절반이 떨어져 나갔다고 했다.

진지 안에서는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참호 밖으로 나와 서서 그것을 봤다. 어떤 사람은 앉아 있었다. 프랑스 병사 둘이 서로 담뱃불을 붙여주는데 손이 떨려서 두 번 실패했다.

연대 지휘소 무전에서 보고가 올라갔다. 진지 고수. 포위 해소. 적 격퇴.

나는 그 영어를 들으면서 옮길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문장에는 한국 사람이 들어갈 칸이 없었다. 노무자는 병력이 아니고, 병력이 아닌 것은 전사 통계에 들어가지 않으며, 통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보고에 오르지 않는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서식이 그렇게 생겼다.

프리먼 대령이 나가는 것을 그날 저녁에 봤다. 그는 이틀을 버티다가 상급 지휘부의 명령으로 물러났다. 들것을 마다하고 부축을 받아 절뚝거리며 걸어서 갔다.

나는 능선 쪽을 한 번 더 봤다. 지게 네 개는 아직 서 있었고, 누가 치우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1951년 2월 21일 ~ 28일 · 대구 미 공보원(USIS) 번역실, 대구 시내

KILLER. 대문자 여섯 자였다.

오정민은 그것을 원고지 한가운데 옮겨 적고 아래에 줄을 그었다. 그러고는 그 줄 밑에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번역실은 창이 하나뿐이고 그 창 앞에 등사기가 놓여 있었다. 철필로 원지를 긁는 소리, 잉크 냄새, 먹지에서 묻어나는 검은 가루. 손을 씻어도 손톱 밑은 저녁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그녀는 여기서 일곱 달째 미국 사람들의 문장을 한국말로 바꿔왔다.

그녀는 해주에서 나서 여섯 살에 서울로 왔고, 이화여전 문과를 다니다 전쟁을 만났다. 영어는 학교에서 배웠고 일본어는 학교에서 강요당했다. 두 개의 남의 말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 말이 늘 셋째가 된다는 것을, 그녀는 스무 살 무렵부터 알고 있었다.

작전명은 처음이 아니었다. THUNDERBOLT는 벼락이라고 썼다. 벼락은 하늘에서 오고 사람이 붙인 이름 같지 않아서 무난했다.

이번 것은 사람이었다.

"살인자 작전이라고 쓰면 됩니까." 그녀가 말했다.

김 선생이 안경을 벗어 소매로 닦았다. 예순 가까운 사람이고 총독부 시절에도 남의 글을 옮겨 먹고살았다.

"오 선생, 그렇게 써서 신문에 내면 그날로 이 방 없어져요."

"그럼 뭐라고 씁니까."

"섬멸 작전. 소탕 작전. 뭐라도." 그가 안경을 다시 썼다. "옛날에도 그렇게 했어요. 위에서 험한 말이 내려오면 우리가 순한 말로 갈아서 내려보내는 거지. 그게 이 일이야."

"그건 옮긴 게 아니잖습니까."

"옮긴 거 아니면 뭐요."

"만든 겁니다."

김 선생이 웃었다. 화를 내지 않고 웃는 그 웃음이 그녀는 늘 견디기 힘들었다.

김 선생이 웃었다. 화를 내지 않고 웃는 그 웃음이 그녀는 늘 견디기 힘들었다.

남은 41화 · 약 146,858자 · 약 3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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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태양전 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