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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제1장 다리 위에서

· 44화 중 1화 · 3,544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1951년 1월 4일 밤 ~ 5일 새벽 · 서울 한강 남안, 미 제8군 후위 통제소와 부교 진입로

확성기 나팔 안쪽에 얼음이 얼어 있었다. 손톱으로 긁어내자 부스러기가 손등에 떨어졌고, 손등 위에서도 녹지 않았다.

열두 개의 태양 1화 제1장 다리 위에서 — 헤더컷

부교에 트럭이 올라설 때마다 널판이 한 번 내려앉았다가 물을 때리고 다시 떠올랐다. 열 시간째 같은 소리였다. 강은 다리 밑에서만 흐르고 있었다. 양쪽으로는 얼음이 강폭의 절반씩을 덮었고, 공병이 폭약으로 터놓은 가운데 물길만 검게 열려 있었다.

통제소라고 부르지만 천막도 없다. 모래주머니를 허리 높이로 쌓고 그 안에 야전전화 한 대와 지프 한 대를 세워둔 것이 전부다. 나는 그 안에서 반 발짝 뒤, 왼쪽에 선다. 여섯 달 동안 배운 것 중에 제일 쓸모 있는 것이 그 반 발짝이다. 앞에 서면 미국 사람이 나를 보고 말하게 되고, 옆에 나란히 서면 한국 사람이 나한테 매달린다. 뒤 왼쪽에 서 있으면 둘 다 서로를 본다. 그러면 나는 소리만 갈아 끼우면 된다.

의자는 없다. 통역은 앉는 자리가 아니다.

"한 중위."

공병 소위가 지프 발판에 한쪽 발을 올린 채 지도판을 무릎에 얹고 있었다. 스물서넛쯤 됐을 것이다. 사흘 동안 면도를 못 했고 사흘 동안 나와 같은 말만 주고받았다. 그는 내 계급장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미군 대열에서 국군 중위의 은색 막대기는 아무 문도 열지 못한다. 열리는 것은 내 입이 열 때뿐이다.

"이십이 시부로 이 다리는 군 차량 전용이오. 도보 통행 전면 금지. 저 사람들 여기서 빼내시오."

"어디로 뺍니까."

"하류. 굽이 아래에 얼음으로 건너는 데가 있소."

"두께를 압니까."

소위가 지도판에서 눈을 들었다. 화가 난 얼굴이 아니라 대답할 말이 없는 얼굴이었다.

"우리가 잰 건 상류 쪽이오. 아래는 우리 소관이 아니오."

"그럼 뭐라고 합니까."

"군용 다리다, 하류로 가라." 손등으로 서쪽을 그었다. "그 두 가지만."

국군 헌병 상사가 개머리판으로 사람들 어깨를 밀며 대열 옆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밀 때마다 같은 소리를 냈다. 비켜. 비키라니까. 이 사람들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중년 사내 하나가 종이를 펴 들고 상사 앞을 막았다. 도장이 찍혀 있는 종이였다.

"이거 시청서 받은 겁니다. 여기 도장 있잖습니까."

"시청이 어디 있는데. 시청이 어제 부산 갔어."

"그럼 이건 뭡니까."

"종이지." 상사가 그것을 밀어냈다. "아저씨, 종이 먹고는 못 건너."


나는 나팔을 입에 댔다.

앞줄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얼굴이 서른 개쯤 되고, 그 뒤로 강변길을 따라 얼마나 더 있는지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등에 진 것들이 전부 사람 키만 했다. 이불이 제일 많았다.

두 낱말이 있었다.

돌아가시오, 라고 하면 왔던 데로 간다. 강변길을 되짚어 올라가 헌병이 세워둔 표지 앞에 선다. 표지 앞에는 다시 줄이 생기고, 그 줄은 밤새 줄어들지 않는다. 아이들은 줄 안에서 잔다.

내려가시오, 라고 하면 아래로 간다. 아래에는 얼음이 있다. 최소한 얼음은 있다.

일 초를 썼다. 이 초는 쓰지 않았다.

"군용 다립니다! 걸어서는 못 건넙니다! 하류로 내려가시오! 하류로 내려가시오!"

목소리가 나팔 안에서 한 번 부딪히고 나갔다. 앞줄이 옆으로 갈라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고, 갈라지고 나서는 빨랐다. 짐 진 등들이 서쪽으로 돌아서서 강변길 아래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그쪽은 가로등도 없고 초소도 없어서, 스무 걸음쯤 가면 형체가 어둠에 먹혔다.

아이를 업은 노파 하나가 대열에서 빠져나와 내 앞에 섰다. 포대기 밖으로 아이 손이 나와 있었는데, 한쪽에만 벙어리장갑이 끼워져 있고 그 장갑은 실로 소매에 매여 있었다.

"장교 양반. 아래로 얼마나 내려가면 됩니까."

나는 하류가 몇 리인지 몰랐다. 얼음이 어디서부터 두껍고 어디서부터 얇은지도 몰랐다. 그날 밤 그 자리에서 그것을 아는 사람은 강 이쪽에 없었다.

"내려가시면 건너는 데가 있읍니다."

노파가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고 돌아섰다. 포대기 매듭을 한 번 추스르는 손이 보였다.

나는 그 문장을 열한 번 말했다. 세 번째부터는 뜻이 없어지고 소리만 남았다. 하류로. 내려가시오. 같은 말을 열 번 넘게 하면 그것은 말이 아니라 밀어내는 손이 된다. 열한 번째에는 나팔을 입에서 떼지 않고 그대로 팔을 내렸다.

강변길 아래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한참 나다가 그쳤다.


마지막 차량이 건넌 것이 다섯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공병들이 남안 쪽 계류색을 끊자 부교가 상류 쪽으로 천천히 돌아누웠다. 물 때리는 소리가 멎으니까 다른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날이 트기 시작할 무렵 나는 강둑 위로 올라갔다.

하류 쪽 얼음은 밤새 밟혀서 잿빛으로 닳아 있었다. 그 위에 검은 것들이 있었다. 구멍은 둥글지 않고 길쭉하게 찢어진 모양이었고, 가장자리가 위로 들려 있었다. 얼음이 얇게 깨질 때 그렇게 된다. 구멍 주변에는 보퉁이들이 남아 있었다. 사람은 남지 않는다.

구멍을 세었다. 여섯 개까지 세고, 나는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쥐었다. 그다음부터는 세지 않았다.

강 건너 서울 쪽에서는 연기가 세 군데서 올라오고 있었다. 바람이 없어서 곧게 섰다. 무엇이 타는지는 여기서 알 수 없었다.

열두 개의 태양 1화 제1장 다리 위에서 — 전환컷

헌병 상사가 옆에 와서 담배를 붙였다. 성냥불이 바람에 두 번 꺼졌다.

"밤중에 소리가 크게 납니다. 얼음 꺼지는 소리가." 그가 연기를 뱉었다. "그래도 건넌 사람이 더 많읍니다, 중위님. 훨씬 더 많읍니다."

그는 위로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자기가 본 것을 말했고, 그건 사실이었을 것이다.

내려올 때 얼음 가장자리에서 벙어리장갑 한 짝을 보았다. 실이 한 뼘쯤 늘어진 채로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지 않았고 그 위에 눈을 오래 두지도 않았다.


대구로 가는 트럭 짐칸에는 사령부 서류 궤짝이 열두 개 실려 있었고 사람은 넷이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궤짝 하나에 흰 페인트로 G-2라고 찍혀 있었는데, 나는 그때까지 그 부호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다.

수첩 두 권을 꺼냈다.

공용 수첩에는 부대 약어와 옮기기 까다로운 단어들을 적는다. 회의에 들어가면 이걸 무릎에 펴놓는다. 이날은 적을 것이 없었다.

다른 한 권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표지 안쪽에는 다섯 해 전에 적어둔 주소가 있다. 평안북도 정주군. 그 아래에 두 이름. 최복순, 한재옥. 열아홉이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장을 폈다.

내려가시오, 라고 썼다. 그 옆에 돌아가시오, 라고 쓰고 줄을 그어 지웠다. 지운 쪽이 더 굵어졌다.

그 아래에 두 줄을 적었다.

열한 번.

여섯.

트럭이 웅덩이를 지나면서 아래쪽 획이 길게 끌렸다. 고쳐 쓰지 않고 그 밑에 세 번째 줄을 그었다. 그 줄에는 아직 적을 것이 없었다.


1951년 1월 10일 ~ 1월 21일 · 경기도 여주 제8군 전방지휘소, 대구 후방사령부

앞유리를 접어 내리라고 했을 때 부관이 두 번 되물었다. 영하 이십오 도입니다, 각하. 리지웨이는 대답 대신 장갑을 고쳐 꼈다. 유리 너머로 보는 것과 유리 없이 보는 것은 다르다. 그는 쉰다섯이었고, 그 차이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두 번의 전쟁에서 배웠다.

지프는 북으로 갔다. 도로 위의 모든 것은 남으로 갔다.

그는 세었다. 길가에 버려진 차량 열아홉 대. 그중 열한 대는 견인만 하면 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끊어진 채 눈 위에 늘어져 있는 야전전화선 여섯 군데. 아무도 잇지 않았다. 전선을 잇는다는 것은 여기 다시 온다는 뜻이고, 다시 올 생각이 없는 군대는 전선을 잇지 않는다.

병사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를 보지 않았다. 별 셋을 단 지프가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아무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는 것 — 그것이 보고서 백 장보다 정확한 자료였다.

가슴 장구에는 수류탄 하나와 구급낭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참모들 사이에서 그것을 두고 뭐라고들 부르는지 그는 알고 있었고, 떼지 않았다. 그는 병사들이 자기 가슴에 달린 것을 보기를 원했다.

삼거리에서 지프를 세웠다. 나무 팻말에 화살표가 셋 붙어 있었는데 셋 다 남쪽을 가리켰다. 부산, 대구, 그리고 어느 병참소의 부호. 북쪽으로 가는 길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았다.

"이 길은 어디로 가나."

무전병이 지도를 폈다가 접었다. "모르겠읍니다, 각하."

"자네 중대가 사흘 전에 저 길로 내려왔네."

"밤이었읍니다."

리지웨이는 그 대답을 나무라지 않았다. 밤에 내려온 길을 낮에 알아보지 못하는 군대. 그것은 병사의 잘못이 아니다. 아무도 그에게 그 길을 다시 올라갈 것이라고 말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농가 마당에 사단 지휘소 표지가 서 있었다. 안에는 난로가 있었고 난로 옆에 지도판이 있었다. 지도에는 어제 날짜의 부호가 찍혀 있었다.

리지웨이는 장갑을 벗지 않고 손목시계를 보았다.

"적이 어디 있소."

사단장이 지도 위로 손을 뻗어 청색 반원을 그렸다. "이 선 북쪽으로 추정합니다."

"추정 말고. 어디 있소."

"정찰대가 어제 접촉했읍니다."

"귀관이 마지막으로 그 땅을 직접 본 것이 언제요."

난로 안에서 장작이 한 번 튀었다. 부사단장이 지도판 쪽으로 반걸음 옮겼다가 멈췄다.

"여기서 북쪽 첫 고지까지 걸어서 몇 분이오." 리지웨이가 다시 물었다. "귀관이 재봤소, 아니면 참모가 적어준 것이오."

대답이 없었다.

"소장, 귀관은 오늘부로 지휘에서 물러나시오. 부사단장이 지휘를 인수하시오. 열여덟 시까지 이 지휘소를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 이동시키시오."

그는 다시 손목시계를 보았다. 삼 분이 걸렸다. 그날 오후에 한 번 더 같은 일을 했고, 그때는 이 분 사십 초였다.

군단장이 지프까지 따라 나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 기록이 나쁘지 않읍니다. 도쿄에서도 평이 좋았고요."

"기록은 도쿄에 있소." 리지웨이가 발판에 발을 올렸다. "나는 여기 있소."

'기록은 도쿄에 있소.' 리지웨이가 발판에 발을 올렸다. '나는 여기 있소.'

남은 43화 · 약 153,972자 · 약 3시간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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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태양전 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