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태양 제2부 아홉 개의 캡슐
10화제13장 남는 사람
그날 밤 그는 관저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홉 시가 지나서 참모부장을 불렀다.
"각서를 하나 받아 적게."

"예, 각하."
맥아더는 걷기 시작했다. 지도 걸이에서 창까지 열한 걸음, 창에서 문까지 아홉 걸음. 그는 늘 그 두 변을 왕복하며 구술했다.
"제목. 사월 오일자 합동참모본부 지령에 대한 해석. 하나. 본 지령은 조건부 명령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조건이 충족되었는지에 대한 판정 주체를 명시하지 않았다."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났다.
"둘. 판정에 필요한 정보는 전구에서 생산된다. 정보를 생산하는 자가 판정에 이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셋. 작년 십일월 삼십일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서 무기의 사용은—"
그는 멈췄다.
"—the field commander가 관장한다고 말했다."
그 구절에서 그는 두 걸음을 더 걷고 다시 멈췄다.
"장군은," 그가 말했다. "그 문장을 아직 취소하는 문서를 본 적이 없네."
"없습니다, 각하."
"그러면 그 문장은 살아 있는 것이지."
그는 마저 구술했다. 각서는 세 쪽이 되었다. 다 받아 적은 참모부장이 나가고, 방에는 그와 시계와 옆방의 라디오만 남았다.
라디오는 낮부터 켜져 있었다. 아무도 끄라고 하지 않아서 켜져 있었고, 지금은 관현악이 나오고 있었다.
맥아더는 옆방으로 건너갔다. 파이프를 왼손에 옮겨 쥐고, 오른손을 뻗어, 손가락 두 개로 손잡이를 돌렸다.
1951년 4월 14일 ~ 16일 · 대구, 미 제8군사령부 연락장교실
김진하 대위는 명령서를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눈으로, 한 번은 소리 내어.
"육군본부 정보처 발령, 제팔군사령부 연락장교. 한재우 중위." 그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세 번째 줄이군."
"예."
"이런 명령서는 위에서부터 읽지 않아. 아래에서부터 읽어. 아래로 갈수록 자리가 험하거든." 그는 안경을 고쳐 썼다. 서울 말씨였고, 말끝이 짧았다. "그런데 자네는 세 번째야. 그러면 누가 자네 이름을 위쪽에 올려놨다는 얘기지."
"모르겠습니다."
"몰라도 돼. 알면 그때부터 그 사람 눈치를 보게 되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열었다. 대구는 사월인데도 흙먼지가 났다. 창틀에 손가락을 대면 가루가 묻었다.
"훈시라고 할 것도 없는데, 세 가지만 하지." 그가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첫째, 자네가 옮긴 말은 자네 말이 아니야. 그러니까 자네가 책임질 것도 아니야. 둘째, 그렇다고 아무거나 옮기면 안 돼. 셋째—"
그는 잠깐 말을 끊었다.
"셋째는 나중에 하지. 지금 말하면 무슨 소린지 모를 거야."
그는 창을 닫고 돌아섰다.
"자네 학교는 어디까지 했나."
"예과 이 년 하다 말았습니다."
"영어는 어디서."
"오산학교에서 선교사한테 배웠습니다."
"오산이면 정주지." 그는 그 말을 하고 나서 더 묻지 않았다. 그것이 그 사람의 예의였다. "여기 미군들은 자네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하지 않아. 자기들 말을 알아듣는지만 궁금해하지. 그게 편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
회의실은 국민학교 교실을 쓰던 방이었다.
칠판을 떼어낸 자리에 못 구멍이 남아 있었고, 그 위에 상황도를 걸었다. 창은 셋이고 유리는 두 장이 깨져 판자를 댔다. 방 가운데에 탁자를 여섯 개 붙여 원탁 모양으로 만들어놓았다. 진짜 원탁이 아니라 네모난 탁자를 둘러 붙여 가운데를 비운 것이었다.
그 둘레에 의자가 열넷 있었다. 등받이가 있고 팔걸이가 있는 것이 넷, 등받이만 있는 것이 열.
벽 쪽에 접이의자가 여섯 개 세워져 있었다. 나무와 쇠로 된 것이고, 앉으면 소리가 났다.
"저기 앉으시면 됩니다." 미군 부관 하나가 접이의자 쪽을 가리켰다. 그는 친절하게 말했고, 다른 뜻은 없었다.
통역의 자리는 벽이다. 그것은 아무도 정하지 않았지만 어디를 가도 같았다. 원탁에는 말하는 사람이 앉고, 벽에는 말을 옮기는 사람이 앉는다. 옮기는 사람은 방의 결정에 한 걸음 물러나 있어야 하고, 그 한 걸음이 물리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나는 그날 처음 그 방에 들어갔다.
들어간 첫날부터 사령부가 술렁였다.
부관실에서 숙소 배정표를 다시 짜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가 사흘 만에 취소되었다는 이야기가 먼저 돌았다. 그다음은 도쿄에서 장군 하나가 바뀐다는 이야기였고, 그다음은 워싱턴에서 새 사령관이 온다는 이야기였다.
열흘 전부터였다고 했다.
십사일에는 오지 않았다. 십오일에도 오지 않았다. 십육일 아침 참모회의에 리지웨이 장군이 들어왔을 때, 방 안의 몇 사람이 서로를 봤다. 장군은 평소처럼 가슴에 수류탄과 구급낭을 매달고 있었고, 평소처럼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그 회의에서 내가 옮긴 것은 세 문장이었다.
국군 연락단에서 나온 대령이 보충병 수령 일정을 물었고, 나는 그것을 옮겼다. 미군 참모가 날짜를 말했고, 나는 그것을 옮겼다. 대령이 그 날짜로는 부대 재편이 안 된다고 했고, 나는 그것도 옮겼다.
세 문장을 옮기는 동안 나는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쥐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른다. 손목을 쥐고 있으면 손이 움직이지 않고, 손이 움직이지 않으면 말이 조금 느려지고, 말이 느려지면 틀릴 확률이 줄어든다.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요령이었다.

회의가 파하고 복도에서였다.
"뭔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부관 하나가 다른 부관에게 말했다.
"뭐가 있었는데."
"모르지. 있었으면 왔을 텐데 안 왔으니까, 뭔가 있었던 거지."
그것은 영어로 오간 말이었고, 듣는 한국 사람은 나 하나였고, 나에게 옮겨달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옮기지 않았다.
옮기지 않은 문장은 머릿속에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 옮긴 문장은 옮기고 나면 없어지는데, 옮기지 않은 문장은 그대로 있다.
콜린스 소령은 그날 오후에 정보처에서 내려왔다. 서류 뭉치를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고,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었다.
"연락장교실이 여기 맞습니까." 그가 문틀을 두드렸다. "축하합니다, 한 중위. 이제 좋은 방에 들어가시게 됐군요."
"좋은 방입니까."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방이죠. 하루에 네 시간씩 앉아서 남이 하는 말을 듣는데, 그중 삼십 분만 쓸모가 있습니다." 그는 창가에 서서 밖을 봤다. "그런데 그 삼십 분이 어디에 박혀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네 시간을 다 앉아 있어야 합니다."
나는 복도에서 들은 이야기를 물었다. 새 사령관 이야기가 사실이냐고.
콜린스는 어깨를 조금 올렸다가 내렸다.
"나는 적을 세는 사람이지 우리 편을 세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도 들으셨을 텐데요."
"들었습니다. 열흘 동안 세 가지 판본을 들었습니다." 그는 서류 뭉치를 고쳐 잡았다. "판본이 셋이면 그중 하나가 맞는 게 아니라, 아무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한 중위, 이런 일은 대개 소문이 도는 동안에 이미 끝나 있습니다. 소문이 멎으면 그때 뭐가 있었는지 알게 되는 거죠."
소문은 그 주에 멎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알게 되지 않았다.
김진하 대위는 그 이야기를 듣고 어깨를 으쓱했다.
"미군 인사는 우리가 알 바 아니야. 우리는 우리 인사도 모르는데."
"그렇습니다."
"자네 이 방에서 뭘 보고 있나."
"의자를 봤습니다."
그는 나를 한참 봤다. 그러고는 웃지도 않고 말했다.
"그게 셋째야."
십육일 저녁, 회의가 다 끝나고 방이 비었을 때 나는 다시 들어갔다.
전등은 하나만 켜져 있었다. 상황도의 붉은 선이 어제보다 두꺼워져 있었다. 원탁 위에는 재떨이 넷과 물잔 여덟 개가 그대로 있었고, 물잔 중 셋은 비어 있지 않았다.
나는 접이의자를 펴서 앉아보았다. 쇠가 한 번 삐걱했다.
앉으니 눈높이가 낮았다. 원탁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어깨와 손이 보이는 자리였다. 상황도는 잘 보였다. 사람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 자리는 지도를 보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라, 지도를 보는 사람들의 손을 보라고 만든 자리였다.
나는 일어나서 원탁까지 걸어가 보았다.
여섯 걸음이었다.
돌아올 때는 일곱 걸음이었다.
나가는 걸음과 들어오는 걸음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어느 쪽이 이 방의 진짜 치수인지 알고 싶어서 나는 한 번 더 걸었다.
여섯이었다.
1951년 4월 17일 ~ 20일 · 대구, 미 제8군사령부 회의실 및 사령부 뒷마당
국군 연락단 대령은 열한 시 이십분에 나갔다.
부산에서 온 전화 때문이었다. 부관이 들어와 귓속말을 했고, 대령은 미안하다는 손짓을 하고 일어섰다. 나가면서 나를 한 번 봤다. 따라 나오라는 뜻이 아니라 여기 있으라는 뜻이었다. 국군 연락장교가 자리를 뜬 뒤에도 통역은 남아 회의를 적는다. 그것이 우리 쪽 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았다.
회의는 후방 차단에 관한 것이었다. 유엔군이 삼십팔도선 북방에 새 진지를 파는 동안 적의 보급이 어떻게 내려오는가, 그것을 어디서 끊는가. 지도에는 철도가 굵게 그려져 있었고, 굵은 선 위에 붉은 동그라미가 열댓 개 있었다.
미 공군 연락장교가 그 동그라미들을 설명했다.
"이 열두 개는 지난달에도 쳤고 이번 달에도 칩니다. 문제는 여기 셋입니다. 이건 세 번 쳤는데 세 번 다 사흘 만에 복구됐습니다. 조차장하고 큰 교량입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참모 하나가 물었다.
"재래식으로는 안 됩니다. 부수려면 다른 방식이 필요한데,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니고—"
그는 거기서 반 박자 쉬었다.
"—별책 부록에 있습니다. atomic 쪽이요."
방 안의 몇 사람이 종이를 봤다. 누군가 의자를 조금 움직였다. 참모장이 곧바로 다음 안건을 말했고, 이야기는 보충병 수령 일정으로 넘어갔다.
삼 초였다.
나는 그 낱말을 안다. 뜻을 안다는 말이 아니라 소리를 안다는 말이다. 사십오년 팔월에 신의주에서 어른들이 그 비슷한 소리를 일본말로 옮겨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때 나는 열아홉이었고, 그 소리가 무슨 물건을 가리키는지 사흘 뒤에야 알았다.
그 뒤로 육 년 동안 나는 그 낱말을 회의실에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뒤로 육 년 동안 나는 그 낱말을 회의실에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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