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태양 제1부 통역(通譯)
4화제5장 살인자라는 이름
사흘이 갔다.
첫날 그녀는 열한 개의 후보를 적었다. 살인자 작전, 살인 작전, 섬멸 작전, 소탕 작전, 격멸 작전, 킬러 작전. 그리고 지웠다. 살인자라고 쓰면 신문이 못 싣는다. 섬멸이라고 쓰면 그 이름을 붙인 자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붙였는지가 사라진다. 그것이 사라지면 독자는 미군이 점잖은 이름을 붙이는 군대라고 믿게 된다.

둘째 날에는 국어사전을 폈다. 살(殺). 죽일 살. 사람 인(人). 놈 자(者). 이 세 글자를 붙여 만든 말은 조선말에 하나뿐이고, 그 하나는 재판에서 쓰는 말이다. 군대의 이름이 아니다. 미국말에서 killer는 사냥꾼에게도 붙고 병에도 붙고 농담에도 붙는다. 그 폭이 조선말에는 없다.
없는 것을 어떻게 옮기는가.
셋째 날 오후에 신문사 기자가 자료를 받으러 왔다. 그는 외투 안에 종이를 넣고 다니며 그것으로 바람을 막는 사람이었다.
"오 선생, 오늘 거 나왔소?"
"작전명 때문에 늦읍니다."
"작전명이 뭔데."
그녀가 원고지를 돌려 보여주었다. 기자가 여섯 자를 보더니 입술 안쪽을 빨았다.
"이거 그대로 실으면 우리 신문 편집국장이 나를 죽입니다." 그가 웃지 않고 말했다. "죽인다는 말이 이렇게 쉬운데, 참 이상하지."
"뭐라고 쓰실 겁니까."
"섬멸이라 쓰겠지요. 다 그렇게 쓸 겁니다." 그가 담배를 귀에 꽂았다. "오 선생, 우리도 알아요. 아는데 안 쓰는 거요."
그날 저녁 그녀는 사전을 덮었다.
이십사 일 아침에 그녀는 원지를 새로 끼우고 보도자료를 긁었다. 국한문 혼용, 세로쓰기.
作戰名은 「Operation KILLER」임.
그리고 그 옆에 괄호를 열었다.
(이 作戰名은 美軍이 붙인 것으로 韓國語로 옮길 수 없다. 譯者)
역자, 라고 두 자를 넣을 때 철필 끝이 원지를 뚫었다. 그녀는 그 자리를 밀랍으로 메우고 다시 긁었다.
공보관은 서른대여섯쯤 되는 사람이었다. 예의가 발랐고 그녀의 영어를 칭찬한 적이 두 번 있었다.
그가 원지를 형광등에 비춰 들고 괄호를 찾았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스 오, 이건 논평입니다."
"사실입니다."
"사실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논평을 내지 않읍니다. 우리는 알립니다." 그가 원지를 내려놓았다. "이 이름 때문에 워싱턴도 곤란해하고 있어요. 국방부에서 작전명이 여론에 좋지 않다는 말이 나왔읍니다. 나도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읍니다."
"그러면 더욱 그렇게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건 기자가 쓰는 겁니다. 우리가 쓰는 게 아니고요." 그가 붉은 연필을 들었다. "미스 오, 당신 자리는 옮기는 자리입니다."
붉은 선이 괄호 위로 두 번 지나갔다. 원지에서 밀랍 가루가 조금 일었다.
등사기가 돌 때 그녀는 옆에 서 있었다. 백사십 장. 괄호가 있던 자리는 아무 흔적도 없이 매끈했다. 지운 자리는 인쇄되지 않는다.
이십칠 일 저녁, 시장통에서 김이 오르는 국솥 앞에 서 있다가 옆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거창 이야기였다.
"신원면 쪽이라 카데요."
"몇이나 됩니까." 그녀가 물었다.
"백이 넘는다 카고."
옆에 있던 다른 여자가 국그릇을 놓았다. "백이 뭐라예. 오백이라 카던데. 우리 시숙이 그 아래 산다 아입니까."
"칠백이라 카는 사람도 있어예."
그녀는 수첩을 꺼냈다. 백여. 오백. 칠백. 세 줄을 적고 그 옆에 각각 누구한테서 들었는지를 적었다. 국이 식는 동안 숫자는 한 번 더 바뀌었다.
이월 십일 일이라고 했다. 열여섯 날이 지났는데 대구에서는 아직 아무 신문에도 한 줄이 없었다.
"공비가 들어와서 그랬다 카데요." 처음 여자가 말했다.
"그 동네 사람들 다 아는데예. 산에 있던 사람들은 벌써 내려갔다 아입니까." 둘째 여자가 국그릇을 밀어놓았다. "새댁, 자꾸 물으면 안 됩니더."
그녀는 더 묻지 않고 국값을 치렀다. 시장 골목은 어두웠고 사람 지나가는 자리마다 언 진창이 밟혀서 소리가 났다. 판잣집 처마 밑에서 아이 둘이 미군 깡통을 두들기며 놀고 있었다.
숫자가 자꾸 달라진다는 것을, 그녀는 이날 처음 알았다. 한 사건에 숫자가 셋이면 셋 다 틀린 것이 아니다. 아무도 세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십팔 일에 한강 이남에서 적의 저항이 무너졌다는 자료가 내려왔다. 그것은 옮기기 쉬웠다. 숫자가 정확했기 때문이다.
미 공보원 이층 복도 끝에 종군기자 등록 관련 서식이 쌓여 있었다.
그녀는 한 장을 뽑아 들고 계단 밑 창턱에서 채웠다. 이름. 오정민. 나이. 스물넷. 학력. 이화여전 문과. 어학. 영어, 일본어.
소속 신문사 또는 통신사, 라는 칸이 있었다. 그 칸을 그녀는 비워두었다.
가방을 열어 서식을 넣다가 먹지 밑장이 잡혔다. 이십사 일에 원지와 함께 눌러 쓴 것이었다. 공보관은 원지 위의 붉은 선만 보았고 밑장까지는 보지 않았다.
밑장에는 괄호가 그대로 있었다. 글자가 뒤집혀 있어서 그녀는 창에 대고 비춰 읽었다.
韓國語로 옮길 수 없다.
그녀는 그것을 넷으로 접어 서식 사이에 끼우고 가방을 닫았다.

1951년 2월 말 ~ 3월 초 · 경상북도 경산·청도의 국민방위군 교육대
장부는 두꺼웠고 글씨는 좋았다.
붓펜으로 세로줄을 그어놓고 한 칸에 한 사람씩 적혀 있었다. 이름, 본적, 나이, 입소일. 획이 흐트러진 데가 없었다. 이런 글씨를 쓰는 사람은 서둘러 쓰지 않는다.
미 군사고문단에서 나온 감찰 소령이 장부를 넘기며 손가락으로 줄 수를 짚었다. 나는 그 옆에서 교육대 간부의 말을 받아 옮겼다.
"현재 인원 천이백사십 명입니다."
"Twelve hundred forty on hand."
소령이 장부를 덮고 마당으로 나갔다. "점호."
마당에 세우는 데 사십 분이 걸렸다.
먼저 나온 사람들이 서 있는 동안 뒤에서 계속 나왔고, 나오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부축해서 나왔다. 부축한 사람도 부축받는 사람도 걸음이 같았다.
옷은 여름 것이었다. 십이월에 걸어 내려온 사람들이니까 십이월에 입고 있던 것을 그대로 입고 있는데, 십이월에도 그것은 여름 것이었다. 짚으로 발을 감은 사람이 여럿이었고 아무것도 감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간부가 호명을 시작했다. 이름을 부르면 예, 하고 대답한다. 대답이 없으면 옆줄에서 누군가가 대신 손을 든다.
소령이 그것을 보고 있다가 손을 들었다. "멈추시오. 이쪽 열부터 내가 직접 센다."
그는 한 줄 끝에서 다른 줄 끝까지 걸어가면서 손끝으로 사람 어깨를 하나씩 스쳤다. 두 번 셌다.
"팔백일 명." 그가 나를 보았다. "장부는 천이백사십."
나는 그것을 한국말로 옮겼다.
간부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천막 안에도 들어갔다.
바닥에 짚을 깔고 그 위에 사람이 누워 있었다. 한 동에 백 명씩 넣는다고 했다. 누운 사람들은 우리가 들어가도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려다 앉은 자세에서 멈춘 사람이 둘 있었다. 냄새는 지린내와 신 냄새가 섞인 것이었는데, 그것이 사람 냄새인지 짚 냄새인지 나는 구별하지 못했다.
소령이 한 사람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열여덟이나 열아홉으로 보였다.
"어디서 왔나."
내가 옮기니 그 아이가 대답했다. "여주서 왔읍니다."
"걸어서 왔나."
"열아흐레 걸었읍니다."
"밥은 하루에 몇 번 주나."
아이가 나를 봤다. 나는 그 눈이 무엇을 재고 있는지 알았다. 대답이 저 미국 사람 귀에 들어가고 나면, 저 미국 사람은 지프를 타고 가고 나는 여기 남는다. 그 계산을 하고 있었다.
"괜찮읍니다." 아이가 말했다.
"괜찮다고 했나?" 소령이 나를 보았다.
"괜찮다고 했읍니다."
옮긴 것은 맞다. 옮긴 것만 맞다.
마당으로 다시 나왔다. 사람들은 아직 세워진 채로 있었다.
"차이가 사백삼십구 명이오. 이 사람들은 어디 있소."
"후송했읍니다."
나는 잠깐 멈췄다. 후송. 이 낱말은 군대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쓰인다. 부상자를 뒤로 보내는 것. 병원으로 옮기는 것.
"Evacuated." 내가 말했다.
소령이 고개를 들었다. "어디로."
간부가 나를 보았다. 나는 그 질문을 옮겼다. 그가 다시 나를 보았다.
"어디로 후송했느냐고 묻읍니다."
"...조치했읍니다."
"조치라는 게 어디로 갔다는 말입니까."
그의 입이 한 번 벌어졌다가 닫혔다. 마당에서 누가 기침을 했고, 그 기침이 끝나는 데 오래 걸렸다.
침묵은 통역이 안 된다. 나는 소령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그대로 서 있었다. 소령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침묵은 통역이 안 된다. 나는 소령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그대로 서 있었다. 소령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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