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태양 제4부 열두 개의 태양
23화제31장 같은 아침
정주에서 한재옥은 빨래를 널고 있었다.
열아홉이었고 그날 아침에 이불 홑청을 빨았다. 이불 홑청은 무겁다. 짜는 데 힘이 들고, 널 때는 두 손으로 들어 올려서 줄에 걸친 다음 양쪽 끝을 맞춰 당겨야 주름이 안 진다.

마당 줄은 감나무하고 헛간 기둥 사이에 매여 있다. 어머니는 안에서 콩을 고르고 있었다. 그 소리가 문 너머로 들렸다. 사기그릇에 콩이 떨어지는 소리.
바람은 거의 없었다. 널어놓은 홑청이 늘어진 채로 가만있었다.
빨래집게가 모자라서 그녀는 홑청 가운데를 줄에 두 번 접어 걸쳤다.
그때 마당이 밝아졌다.
해가 뜬 지 세 시간이 넘었고 아침볕은 이미 마당에 들어와 있었는데, 그것과 다른 밝음이 왔다. 그림자가 사라졌다. 감나무 그림자도, 그녀 자신의 그림자도, 젖은 홑청이 땅에 만들던 얼룩도 잠깐 안 보였다. 그러고는 도로 생겼다.
그녀는 서북쪽을 봤다. 산등성이 위로 하늘이 밝았다. 구름 뒤에서 등을 켠 것 같은데, 등이 아주 크고 아주 멀리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한 번 더 밝아졌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짧았다.
밝은 것이 가시고 나서 그녀는 손등으로 눈을 한 번 눌렀다. 잔상이 남아서였다. 노란 얼룩이 잠깐 있다가 없어졌다.
"재옥아." 어머니가 안에서 불렀다. "뭐 하네."
"홑청 널디요."
"바람 없는데 마르갔니."
"오후에 든답데다."
그녀는 홑청의 왼쪽 끝을 당겨서 주름을 폈다.
한참 뒤에 유리창이 흔들렸다. 방문 옆 작은 창인데, 틀이 헐거워서 마당에서 무거운 것을 내려놓아도 흔들리는 창이다. 두 번 흔들리고 멈췄다. 조금 있다가 또 한 번 흔들렸다.
어머니가 물었다.
"어디서 뭘 터뜨리나 보다."
"기런가 봅네다."
콩 고르는 소리가 다시 났다.
그녀는 대야에서 마지막 것을 꺼냈다. 베갯잇 두 장이었다. 물이 덜 짜여서 손목으로 한 번 더 비틀었다. 물이 마당 흙에 떨어져 검은 점을 만들었다.
한 장을 줄에 걸고, 다음 장을 걸었다.
1951년 5월 30일 ~ 31일 · 김포 비행장
발령은 아침 브리핑이 끝나고 삼십 분 만에 났다.
김포에 미군 폭격기 한 대가 내려앉아 있는데 지상 지원 통역이 하나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제 오전에 내렸고, 오늘 부품이 올라간다고 했다. 연락기가 열한 시에 있었다.
한 시간 남짓 걸렸다. 기내는 시끄러워서 옆 사람과 말을 할 수 없었고, 나는 창으로 아래를 봤다. 논에 물이 들어가 있었다. 모내기 철이다.
기체는 활주로 남쪽 끝 유도로에 서 있었다.
지프가 그 앞을 돌아가는 동안 나는 그것을 옆에서 봤다.
큰 기체다. 바퀴가 사람 키만 하고, 날개 밑에 서면 하늘이 안 보인다. 앞바퀴 근처에 사다리가 걸려 있고 그 밑에 공구 상자가 열려 있었다.
동체 왼쪽 앞에 흰 페인트로 이름이 쓰여 있었다. 여자 이름이었고, 글자가 기울어져 있었다. 그 옆에 그림이 있었는데 페인트가 벗겨져서 무엇인지 잘 안 보였다.
폭탄창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그 아래를 지나가면서 위를 봤다. 안은 비어 있었다. 가로대가 있고 갈고리가 있고 줄이 늘어져 있었다. 통로가 옆으로 나 있었다. 사람 하나가 옆으로 서면 꽉 찰 만한 폭이다.
기름이 한 방울 떨어져서 콘크리트에 자국이 생겼다.
승무원들은 날개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비행복 지퍼를 반쯤 내리고 등을 바퀴에 기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신발을 벗고 양말 바람이었다.
그중 하나는 스물두 살쯤 되어 보였다. 얼굴에 아직 여드름 자국이 있었다.
내가 통역한 문장은 이런 것들이다.
"항공유 몇 갤런이 필요한지 물어봐."
"저쪽 드럼은 백 갤런짜리라고 말해줘. 몇 개 필요한지."
"어제 올려보낸 규격하고 오늘 온 물건이 다르다. 이음쇠 안지름을 다시 재서 적어줄 테니 창고에 같은 게 있는지 봐 달래."
"오늘도 여기서 자야 한대. 침상 열한 개."
"열한 개 말고 열두 개. 저 친구가 짐이 많아."
"담요는 몇 장이오? 밤에 춥소?"
"이 사람들 밥은 우리 취사장에서 먹여도 되겠소?"
"통조림 있으면 그거면 된답니다."
"물은 끓인 것만 주라고 하시오. 저 사람들 배탈 잘 나오."
"수통에 채워 가도 되겠냐고 묻습니다."
"되지요. 저기 물통 있소."
정비반장이 이음쇠 규격을 종이에 받아 적었다. 그가 물었다.
"한 중위, 이거 미제 규격이라 우리 창고엔 없을 거요. 수원에 가면 있을라나."
나는 그것을 옮겼다. 미군 정비사가 대답했다.
"없으면 내일 아침에 다시 실어 오면 된답니다."
"그럼 오늘도 못 뜨는구먼. 이틀째요."
"못 뜹니다."
세상에서 제일 사소한 문장들이다. 갤런, 드럼, 이음쇠, 침상, 담요, 통조림. 나는 그것들을 정확하게 옮겼고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통역이라는 일은 대개 이렇다. 나는 작년 여름부터 이 일을 했고, 그동안 옮긴 문장의 아홉 할은 물건 이름이었다. 큰 문장은 드물다. 드물어서 무거운 게 아니라, 드물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만 기억하는 것이다.
오늘 오후에 내가 옮긴 문장은 스무 개쯤 되고 그중에 큰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드름 자국이 있는 병사가 나에게 껌을 내밀었다.
"영어 어디서 배웠습니까?"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선교사한테."
"선교사요." 그는 껌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이모부가 목사입니다."
그는 잠깐 있다가 말했다.
"어제 펜시 위에는 구름이 좀 있었습니다."
번시. 나는 그 이름을 이레 전에 소리 내어 읽었다. 회의실에서, 국군 작전참모 대령이 연필로 받아 적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통역을 부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 뒤에 다른 승무원이 담배를 비벼 끄면서 말했다.
"열한 번째가 안 왔어."
"들었어."
"누구 얘기 들었어?"
"아니."
그 두 사람은 그러고는 다른 얘기를 했다. 야구 얘기였던 것 같다.
해 질 무렵에 헌병이 왔다.
말뚝과 밧줄은 어제부터 기체 둘레에 쳐져 있었다. 낮에는 정비를 해야 하니까 걷어두었다가, 저녁에 다시 친다. 트럭에서 두꺼운 천을 내리는 것도 어제와 같은 순서일 것이다.
그들은 폭탄창 문을 닫고, 사다리를 걷고, 동체 아래쪽에 천을 쳤다.
천은 컸지만 기체 전체를 덮지는 못했다. 배 밑과 날개 안쪽만 가려졌다. 위쪽 절반은 그대로 보였고, 동체에 쓰인 여자 이름도 그대로 보였다.
바람이 불어서 천이 한쪽 끝에서 들렸다. 헌병 하나가 그 끝을 잡아 다시 눌렀다. 눌러도 또 들렸다. 그는 돌을 가져다 얹었다.
헌병 하사 하나가 나에게 왔다.
"저 사람들 통역이오?"
"오늘만 그렇습니다."
"이 근처에 우리 애들 말고 누가 오면 이름 적어 두시오." 그는 수첩을 흔들어 보였다. "구경하러 오는 놈들이 꼭 있소."
"저도 적습니까."
그는 나를 잠깐 봤다.
"중위님은 됐소."
초병 둘이 남고 나머지는 트럭을 타고 갔다.
나는 활주로 옆 배수구 턱에 서서 그것이 끝날 때까지 봤다. 볼 이유는 없었다. 내 일은 끝났고 정비반도 철수했다. 그런데 나는 천이 다 쳐지고 돌이 얹히고 트럭이 갈 때까지 거기 있었다.
돌아설 때 발이 저렸다.
김포의 밤은 소리가 많다. 발전기가 돌고, 트럭이 오가고, 어디선가 라디오가 켜져 있다.
나는 격납고 옆 빈 드럼통에 앉아 있었다. 담배를 안 피우니까 손에 할 일이 없어서 수통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콜린스 소령이 언제 왔는지 모르겠다. 발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었더니 이미 와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 드럼통에 앉았다.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사도 하지 않았다. 일어서지도 않았는데, 그는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한 시간쯤 그렇게 있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른다. 라디오가 노래를 끝내고 다른 노래를 시작했고, 그것도 끝났다. 트럭이 세 번 지나갔다. 발전기가 한 번 꺼졌다가 다시 걸렸다. 그동안 나는 수통 뚜껑을 몇 번 돌렸는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손을 무릎에 놓고 앞을 보고 있었다. 앞에는 격납고 벽밖에 없었다.
전에도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은 적이 있다. 이월에 지평리 뒤에서 그랬고 사월에 임진강에서 그랬다. 그때는 둘 다 피곤했기 때문이고, 피곤한 사람 둘이 말없이 앉아 있는 것은 편한 일이다.
오늘은 그것과 달랐다. 나는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고, 기다린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고, 그는 기다리게 두었다.
콜린스 소령은 오월 십칠일에 동부 정면의 신규 유입 병력을 판정한 사람이다. 그 판정이 어느 서류의 어느 칸에 들어갔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 서류를 본 적이 없다. 다만 그 무렵 그의 사무실 불이 밤마다 켜져 있었던 것은 안다.
어디선가 초병이 교대하는 소리가 났다. 자정이 넘었다는 뜻이다.
그가 말했다.
"내 숫자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다음 노래가 시작됐다.
1951년 5월 29일 오후 ~ 31일 · 제8군사령부 상황실, 기상반
전화 세 대가 한꺼번에 울렸다. 세 사람이 받았고, 셋 다 짧게 대꾸하고 끊었다. 그러고는 다시 조용해졌다.
오후 내내 그런 식이었다. 서류는 평소보다 빨리 돌았고 말은 평소보다 적었다. 작전과 상황판에는 아침에 붙인 표지가 그대로 있었다. 압록강 하구에서 선양까지 열두 개의 검은 압정. 아무도 그것을 떼지 않았고, 아무도 그 앞에 오래 서 있지 않았다.
나는 저녁 보고서 두 건을 옮겼다. 하나는 동부 정면의 접촉 소실 보고였고 하나는 보급 요청이었다. 두 건 다 그 일과 관계가 없었다. 관계가 없는 문서만 골라 책상에 쌓아둔 사람처럼, 사령부 전체가 그날 오후 내내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여섯 시쯤 통신과 하사관 하나가 무슨 농담을 했다. 두어 명이 웃다가 멈췄다. 멈추는 데 걸린 시간이 웃은 시간보다 길었다.
김진하 대위가 커피를 두 잔 들고 와 한 잔을 내 책상에 놓았다.
"설탕 안 넣었네."
"예."
"자네는 그게 무슨 맛인지 알고 먹나."
그는 자기 잔에 설탕을 세 숟갈 넣고 저었다. 숟갈이 잔에 닿는 소리가 그 방에서 제일 컸다.
"오늘 자네 몇 건이나 옮겼나."
"열한 건입니다."
"열한 건 중에 몇 건이 압록강 이야기던가."
"없읍니다."
김진하 대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황판 쪽을 한 번 보고, 자기 잔을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김진하 대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황판 쪽을 한 번 보고, 자기 잔을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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