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태양 제3부 춘계(春季)
15화제20장 장군의 한국어
십오일 아침에 나는 십사일 회의록의 영문 대조본을 만들었다.
한글본은 서기병이 만들었고 나는 그 옆에 영문을 붙였다. 항목 순서는 한글본을 따른다.

서기병이 만든 초안에서 오마치 건은 세 번째 항목이었다. 참모장이 그것을 보고 연필을 들었다.
"이건 아직 건의 단계지."
"예, 대령님."
"결정된 것부터 위로 올려. 탄약, 보충병, 도로 보수. 그다음에 건의 사항."
나는 항목을 다시 배열했다. 오마치는 아홉 번째로 내려갔다. 원래 자리에서 여섯 줄 아래였다. 나는 영문 쪽에도 같은 순서로 옮겨 적고, 그 줄 끝에 recommended, pending higher headquarters라고 붙였다. 잉크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밖에서 트럭이 지나갔고, 지도가 걸린 벽이 조금 울렸다.
1951년 5월 16일 ~ 19일 · 강원도 인제 현리와 그 남쪽 산길
십육일 저녁 여덟 시에 남쪽으로 가는 유선이 죽었다.
최봉래 중사가 교환기 앞에서 스위치를 위아래로 열 번쯤 젖혔다. 그러고는 손을 뗐다.
"끊깄습니더."
"어디서요."
"모르지예. 저 밑에서."
무전기로 넘어갔다. 잡음 사이에서 목소리 하나가 올라왔다. 젊은 목소리였고 숨이 차 있었다.
"고개에 있습니다. 고개에 이미 있습니다. 우리 뒤에 있습니다."
참모 하나가 송수화기를 낚아챘다.
"어느 고개인가. 방위각 대라."
"고개에 있다고요. 올라가는 길에 이미."
"방위각을 대라니까."
거기서 끊겼다. 참모는 송수화기를 든 채로 이 초쯤 있었다. 그러고는 아무 데도 아닌 곳을 보면서 그것을 내려놓았다.
나는 그날 저녁 영문 상황 통보를 세 번 만들어 십군단 연락장교에게 넘겼다. 세 번 다 같은 문장이 들어갔다. Route interdicted. 차단됨. 나는 그 단어를 고르면서 다른 단어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 단어가 맞았다.
명령은 계속 나갔다. 스물세 시에 한 번, 자정에 한 번, 새벽 두 시에 한 번. 세 번 다 같은 명령이었다. 확인하라, 보고하라, 견지하라. 세 번째에는 받는 쪽이 없었다. 참모는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읽고 나서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 사이에 군단장이 한 번 통신 천막에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등이 여전히 곧았고 군화도 여전히 깨끗했다.
"한 중위."
"예, 각하."
"십군단에… 상황을. 정확하게, 보내라."
"예."
그가 뭔가 더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일본말로 짧게 덧붙였다.
"正確に."
정확하게, 라는 뜻이다. 그는 같은 말을 두 번 한 것이다. 한 번은 자기가 서툰 말로, 한 번은 자기가 편한 말로. 나는 두 번 다 알아들었고, 두 번 다 옮길 데가 없었다. 그가 나가고 천막 문이 닫혔다.
그다음부터는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다. 무너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물이 새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십칠일 새벽에 경비행기 한 대가 떴다.
나는 그것을 소리로 먼저 알았다. 엔진이 두 번 털털거리다 걸렸고, 조금 뒤에 활주 소리가 났고, 그다음에 소리가 위로 올라갔다. 하늘이 아직 검었다.
천막 밖에 사람들이 나와 서 있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소리가 남쪽으로 멀어지는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고, 소리가 안 들리게 되고 나서도 조금 더 서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 한 소령이 웃옷을 벗어 무릎에 놓고 앉아 있는 것을 봤다. 그는 왼쪽 어깨의 실을 손톱으로 뜯고 있었다. 실밥이 하얗게 일어났고, 계급장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천이 원래 색으로 남아 있었다. 그 부분만 덜 바랬다. 사각형이 하나 찍혀 있는 것 같았다.
옆에서 대위 하나가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하지 않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아무도 서로를 보지 않았다.
떼어낸 것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주머니에 넣었다. 넣는 동작이 하도 조심스러워서, 멀리서 보면 무엇을 꺼내는 중인지 넣는 중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소령이 나를 봤다.
"자네도 떼."
"…예."
"떼라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종이에 계급과 군번과 통역이라는 직책이 적혀 있고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이게 어긋나면 우리 초소에서 잡힙니다."
소령이 그 종이를 한참 봤다. 그러고는 웃옷을 도로 입었다. 계급장이 없는 쪽 어깨가 조금 얇아 보였다.
내가 계급장을 떼지 않은 것은 그 이유 하나였다. 나중에 사람들이 물으면 나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다른 것으로 알아들었다.
산길은 사흘이었다.
첫날은 스무 명쯤이 같이 갔다. 오후에 열둘이 됐고 저녁에 여덟이 됐다. 줄어드는 데 사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앞이 갈라지면 사람들이 나뉘고, 나뉘면 그것으로 끝이다.
물은 계곡에서 마셨다. 나무껍질은 둘째 날부터 벗겼다. 소나무 겉껍질을 칼로 걷어내면 안쪽에 흰 것이 있다. 최 중사가 그것을 손바닥만 하게 떼어 내게 줬다.
"씹으이소. 삼키지 말고."

"먹어봤습니까."
"어릴 때 마이 먹었니더."
둘째 날 오후에 우리는 다른 무리와 만났다. 열 명쯤이었고 판초에 사람 하나를 싣고 있었다. 어깨에 총 멘 사람은 그중 셋뿐이었다.
그중 상병 하나가 내 어깨의 계급장을 보더니 다가왔다.
"장교님. 이름 좀 적어주십시오."
"무슨 이름 말입니까."
"저기 위에서 죽은 사람들 이름 말입니다." 그는 왔던 쪽 능선을 턱으로 가리켰다. "적어놓으면 나중에 누가 압니다. 저는 글씨를 잘 못 씁니다."
나는 공용 수첩을 꺼냈다. 그가 부르는 대로 적었다. 셋이었다. 두 번째 이름에서 그가 한참 막혔다.
"성이 백가인지 배가인지…"
"어느 쪽으로 적을까요."
"…백가로 해주십시오."
나는 백가로 적었다. 그 옆에 물음표를 붙일까 하다가 붙이지 않았다. 그 수첩은 그해 여름까지 내 가방에 있었고, 나는 그 세 이름을 아무 데도 내지 못했다. 낼 곳이 어디인지 물어볼 사람을 찾지 못해서였다.
능선 하나를 넘을 때 길가에 종이가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중 한 장을 주웠다. 군단 회의록이었다. 십사일 자, 등사판으로 민 것. 아홉 번째 항목이 오마치였고 내가 붙인 영문 주기가 그 옆에 그대로 있었다. recommended, pending higher headquarters.
나는 그것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왜 넣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내가 가진 것 중에 내가 만든 것은 그것뿐이었다.
최 중사가 뒤에서 말했다.
"중위님, 그거 무게 나갑니더."
"종이 한 장입니다."
"종이가 젤 무겁니더."
셋째 밤에 그가 뒤처졌다.
그는 첫날부터 오른쪽 다리를 끌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은 것이 배려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자정 무렵에 발소리 간격이 벌어졌다. 나는 두 번 뒤를 돌아봤다. 두 번 다 그는 있었고, 두 번째에는 손을 들어 가라는 시늉을 했다.
"먼저 가이소."
"같이 갑니다."
"아이라예." 어둠 속에서 그의 숨소리가 짧게 잘렸다. "쉬었다 가께예."
나는 열 걸음쯤 더 가서 다시 섰다. 발소리가 아직 들렸다. 스무 걸음쯤 더 가서 또 섰다. 그때는 안 들렸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부르면 소리가 난다. 능선 아래에 불빛이 두 번 지나간 것을 나는 그날 저녁에 봤고, 그 불빛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른다. 나는 부르지 않았고, 부르지 않은 이유를 그 자리에서 이미 문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소리가 나면 나도 죽고 그도 죽는다. 그 문장은 그날 밤에 완전했다.
나는 계속 걸었다. 새벽까지 걸었고, 걷는 동안 그 문장을 여러 번 다시 만들어 봤다. 매번 문장은 맞았다.
십구일 아침 여섯 시쯤에 능선 아래에서 아군 초소를 봤다.
모래주머니와 기관총 하나와 초병 둘. 나는 손을 들고 내려갔다. 초병이 총을 들었다.
"거 서라! 누구요!"
내 입에서 나온 것은 이름이 아니었다.
"육군 중위. 군번 삼이사일일."
"뭐라고요!"
"군번 삼이사일일."
초병이 총을 내리지 않은 채로 옆의 병사에게 뭐라고 했다. 옆 병사가 수첩과 몽당연필을 꺼내 적기 시작했다.
"삼이사일이라고요?"
"삼이사일일입니다."
"삼, 이, 사, 일, 일."
"맞습니다."
그가 다시 한번 읽었다. 이번에는 맞게 읽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가 다 적을 때까지 기다렸다.
1951년 5월 17일 ~ 19일 · 대구, 미 제8군 정보참모부 적정과
전화 세 대가 동시에 울렸을 때 방 안에 사람은 둘뿐이었다.
콜린스가 둘을 집었다. 하나는 어깨와 턱 사이에, 하나는 왼손에. 세 번째는 팔코너가 뛰어들어와 받았다. 그 뒤로 십 분 동안 세 대가 다 울린 채로 있었다.
동부 정면에 관한 것이었다. 국군 삼군단 예하 두 개 사단의 위치를 아무도 대지 못했다. 십군단은 자기 우측이 비었다고 했고, 육본은 복귀 인원을 세는 중이라고 했고, 공군은 도로에 사람이 가득한데 그게 누구 사람인지 판별이 안 된다고 했다.
"사진으로는 구별이 안 됩니다." 판독관이 젖은 인화지를 들고 왔다. "남쪽으로 가는 건 우리 쪽이고 북쪽으로 가는 게 저쪽이라고 보통 치는데, 지금은 양쪽 다 남쪽으로 갑니다."
콜린스는 인화지를 받아 불빛에 대봤다. 도로가 검었다. 검은 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이 배율에서 알 수 없다.
"오월 십오일 이후로 새로 확인된 부대 번호만 뽑아. 확인된 것만. 추정은 따로."
"몇 시까지입니까."
"아침."
'오월 십오일 이후로 새로 확인된 부대 번호만 뽑아. 확인된 것만. 추정은 따로.'
남은 29화 · 약 104,843자 · 약 2시간 30분
좋아요와 책갈피는 이 기기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