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태양 제6부 압록(鴨綠)
31화제43장 북쪽으로
문장은 하나였다.
우리는 유엔군이다. 우리는 여러분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다. 무기를 가진 사람은 지금 내놓으시오. 인민위원회나 자위대에서 일한 사람은 오늘 안에 신고하시오. 신고하면 조사를 받고 돌아갈 수 있다. 배급은 사흘 안에 시작된다.

민사장교가 영어로 읽으면 내가 옮겼다. 신계에서 두 번, 수안 못 미쳐서 네 번, 수안에서 세 번, 그다음 날 다섯 번.
세 번째쯤부터는 다음 문장이 입에서 먼저 나왔다. 여섯 번째쯤부터는 옮기는 동안 다른 생각을 했다. 열 번째쯤 되자, 내가 그 문장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이 내 입을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옮기는 사람의 자리는 원래 그런 자리다. 다만 하루에 열 번은 많았다.
수안의 어느 마을에서 노파 하나가 내 소매를 잡았다.
"신고하면 돌아온다는 거이 참말이오?"
나는 민사장교 쪽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게 되어 있읍니다."
"되어 있다는 거이 뭐인가."
나는 그 질문에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노파는 손을 놓고 자기 아들 이름을 세 번 말했다. 신고자 명부에 그 이름을 적어 준 것이 내가 그날 한 일의 전부였다.
그다음 마을에서는 사내 하나가 제 발로 걸어 나왔다. 마흔쯤 되었고, 저고리 앞섶을 여미면서 왔고,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세포위원장이었소."
민사장교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나는 옮겼다. 민사장교가 언제부터 언제까지였느냐고 물었다. 나는 옮겼다.
"작년 팔월부터 올 사월까지."
"몇 사람을 관리했나."
"열일곱 세대."
"그 명부가 있나."
사내가 들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그것이 명부였다. 그는 그것을 태우지 않고 일곱 달을 갖고 있었다.
민사장교가 나에게 말했다. 조사 뒤에 귀가 조치라고 전해라. 나는 그것을 옮겼다. 사내는 고맙다고 하지 않고 명부를 넘겨준 손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윤성갑 준위는 노획 문서 상자를 지프 뒷자리에 싣고 다녔다. 저녁마다 그 상자를 뒤졌고, 사흘에 한 번쯤은 소리를 냈다.
그날 밤 그가 소리를 낸 것은 중화 못 미친 곳의 학교 건물에서였다. 등잔 밑에서 그가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한 대위, 이거 좀 보라우."
나는 그날 오후에 대위가 되었다. 계급장은 아직 콜린스가 준 미제 은색 막대 두 개를 실로 얽어 단 것이었다.
"뭡니까."
"면 인민위원회 양곡 수납 대장이오. 여기 칸을 보라우. 세대주 이름, 가족 수, 경작 면적, 수납 예정량, 실수납량, 미수납 사유."
"그게 왜요."
"어제 민사부에서 받은 배급 대장 좀 꺼내 보라우."
나는 따블백에서 그것을 꺼냈다. 등사한 영문 서식이었고, 아래에 한글 번역이 붙어 있었다. 세대주, 가족 수, 경작 면적, 배급 예정량, 실배급량, 미배급 사유.
윤성갑이 두 장을 나란히 등잔 밑에 놓았다.
"칸이 여섯 개고 순서까지 같지 않소. 사람 미치겠구먼."
그는 웃었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 종류의 웃음이었다. 어깨만 두 번 더 움직이고 그쳤다.
"내레 만주에서 이십 년 서류를 봤소. 일본 놈들 것도 보고, 만주국 것도 보고, 팔로군 것도 봤디. 다 똑같습네다. 사람을 칸에 넣는 방식은 세상에 몇 개 없어."
구월 스무이레였다.
중화 남쪽 십오 리쯤 되는 길이었고, 길은 넓지 않아서 차 두 대가 겨우 비켰다. 우리는 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길 오른쪽 가장자리로만 왔다. 나중에는 오른쪽이 모자라서 논둑으로도 왔다. 등에 진 것, 머리에 인 것, 손수레, 소 없는 소달구지를 사람이 끌었다. 헌병이 확성기로 길을 비키라고 했고, 비키는 데 시간이 걸렸다.
우리 차가 서 있는 동안 그 대열이 옆을 지나갔다.
나는 얼굴을 보기 시작했다.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다.
여자, 여자, 아이, 노인, 여자. 머릿수건을 쓴 사람이 많아서 이마와 눈만 보였다. 눈만 봐도 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마흔아홉이고, 재옥이는 열아홉이다. 재옥이는 왼쪽 눈썹이 나보다 얕고, 어머니는 걸을 때 오른쪽 어깨가 조금 내려간다.
여자, 노인, 아이, 아이, 노인.
콜린스가 무전을 받느라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윤성갑은 자기 무릎 위의 서류를 보고 있었다. 아무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여자, 여자, 여자.
세다 보니 마흔이 넘어가 있었다. 마흔둘, 마흔셋. 나는 세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셌다. 얼굴을 하나 볼 때마다 숫자가 하나 올라가고, 숫자가 올라가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흔에서 헌병이 길을 텄고 우리 차가 움직였다.
내려가는 사람들 쪽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우리 쪽 트럭에서는 아직 노래가 나고 있었다.
나는 일흔 다음을 세지 않았다.

1951년 10월 19일 ~ 11월 초 · 평양, 대동강 강변과 시가
대동교는 물속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서 있었다.
가운데 두 경간이 내려앉아 상판이 물에 잠긴 채로 비스듬히 걸려 있었고, 그 위로 사람이 다녔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건너는 사람은 무릎까지 잠기는 구간을 열두 걸음쯤 걷고, 그다음에 철골을 두 손으로 잡고 기어 올라갔다. 물살이 세지 않아서 아이도 건넜다. 그 옆에 공병이 놓은 부교가 따로 있었고, 부교에는 헌병이 서 있었고, 헌병은 군용이라고 했다.
부교 앞에서 여자 하나가 헌병에게 붙들려 있었다. 등에 아이를 업고 손에 보퉁이를 들었는데, 아이가 자고 있어서 목이 뒤로 꺾여 있었다. 헌병은 스무 살쯤 되어 보였고 미군이었다.
"저쪽으로 가라고 해."
나는 옮겼다. 저쪽은 무릎까지 잠기는 쪽이었다.
여자가 아이를 가리켰다. 나는 그 손짓을 옮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옮겼다. 아이가 있습니다.
"군용이야. 규정이다."
"군용입니다." 내가 말했다.
여자는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서서 무너진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열두 걸음짜리 구간을 건너는 동안 아이는 깨지 않았다.
십월 십구일이었다. 작년에 이 도시가 처음 열린 날과 같은 날짜라고, 콜린스가 지프 안에서 지도 위 날짜를 짚으며 말했다.
"백선엽 소장이 작년에도 여기 먼저 들어왔다."
"압니다."
"올해도 그쪽이 먼저야. 하루 반 차이로."
강 건너에 도시가 있었다. 정확히는, 도시가 있던 자리의 골격이 있었다. 벽은 남고 지붕이 없는 건물이 줄지어 있고, 그 사이로 길이 나 있고, 길은 멀쩡했다. 길만 멀쩡하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다. 나중에 알았는데 길은 부수기 어려운 것이었다.
우리가 시내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많지는 않았다. 벽 그늘에서, 무너진 담 뒤에서, 하나씩 둘씩 나와서 길가에 섰다. 국군 트럭이 지나가면 손을 들었다. 트럭 위에서 병사 하나가 일어서서 자기 고향 이름을 외쳤다. 강서요, 강서 사람 없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는 세 번을 더 외쳤다. 세 번째에 길가의 노인이 손을 들어 오른쪽을 가리켰다. 병사가 그쪽을 향해 모자를 벗었다. 트럭은 서지 않고 갔다.
윤성갑 준위는 그날 오후 내내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군화에 흰 가루가 발목까지 묻어 있었다.
"뭘 보고 오셨습니까."
"세어 봤소."
"뭘요."
"이 동네에 서 있는 집이 몇 채인가." 그는 군화를 벗어 문지방에 털었다. "네 채 중에 한 채요. 아니, 그것도 후하게 잡은 거요. 벽이 세 면 남으면 서 있는 걸로 쳤으니까."
"작년에도 여기 오셨습니까."
"왔디. 작년 이맘때 여기 종로에 국밥집이 있었소. 문 앞에 솥을 걸어 놓고 김이 이만큼 올라왔는데." 그는 손을 눈높이까지 들었다가 내렸다. "지금은 솥 자리도 못 찾겠습네다."
인구 등록 천막은 옛 도청 자리 앞마당에 쳤다. 접이식 탁자 넷, 미제 등사기 하나, 담요를 덮은 나무 상자 위에 잉크병.
이름. 나이. 본적. 현주소. 세대주와의 관계. 직업. 1950년 6월 이후의 거주지 이동. 인민군 또는 노동당 관련 여부.
미 민사요원이 물으면 내가 옮기고, 대답을 다시 영어로 옮겼다. 하루에 이백 명쯤 지나갔다. 서식은 한 사람에 여덟 칸이었다.
여덟 칸 안에 안 들어가는 사람이 하루에 열댓 명 있었다. 남편이 언제 갔는지 모르는 여자, 아들이 인민군인지 국군인지 모르는 노인, 자기 나이를 두 살 다르게 아는 사람. 그런 경우 민사요원은 미상이라고 적었다. 나는 그 단어를 다섯 번쯤 옮기고 나서 그것이 옮기기 쉬운 단어라는 것을 알았다. 모른다는 말을 서류에 넣으면 아무 무게가 없어졌다.
십월 스무이레에 사내 하나가 왔다. 쉰 남짓, 이가 두 개 빠졌고, 발이 헝겊으로 감겨 있었다.
본적을 물었다.
"평안북도 정주군이오."
나는 펜을 놓지 않았다. 놓지 않으려고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쥐었다.
"어느 면입니까."
"갈산면."
우리 집은 남서면이었다.
"언제 나오셨습니까."
"칠월에."
민사요원이 왜 나왔는지를 물으라고 했다. 나는 물었다.
사내는 잠깐 생각했다.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어떻게 줄일까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사람이 앓소."
"무슨 병입니까."
"모르지비. 여름부터 앓는데, 좀 낫다가 또 눕고, 또 좀 낫다가 또 눕고. 젊은 사람이 더 빨리 갑네다."
민사요원이 내 쪽을 봤다. 나는 옮겼다. Illness. Cause unknown. 그가 그렇게 적었다. 여덟 칸 중에 그 칸은 없어서 여백에 적었다.
민사요원이 내 쪽을 봤다. 나는 옮겼다. Illness. Cause unknown. 그가 그렇게 적었다. 여덟 칸 중에 그 칸은 없어서 여백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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