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태양 제6부 압록(鴨綠)
33화제46장 선포
1952년 2월 1일 · 서울 중앙청 앞 광장과 부속 회견장
새벽 다섯 시부터 사람이 들어왔다.

광장은 눈을 치워 놓았는데 치운 눈을 가장자리에 쌓아 놓아서 둔덕이 생겼고, 아이들이 그 위에 올라가 있다가 헌병에게 내려오라는 소리를 들었다. 내려왔다가 또 올라갔다.
나는 여덟 시에 도착해서 연단 왼쪽 아래의 통역석을 확인했다. 마이크 두 대, 접이식 의자 하나, 그리고 발밑에 전선이 세 가닥. 서울 시내에는 아직 전기가 고르지 않아서 발전차가 광장 뒤에 서 있었고 시동을 걸어 놓고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왔는지는 세지 않았다. 광장이 반쯤 찼고, 뒤쪽 계단과 무너진 담 위에도 사람이 올라가 있었다. 서울은 아직 사람이 돌아오는 중이었고 정부는 부산에 있었으므로, 이만큼 모인 것도 많은 것이라고 헌병 하사가 말했다.
나는 소리를 예상했었다. 만세 소리나 함성 같은 것.
그런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서 있었다. 앞줄에 선 노인 몇이 두루마기 앞섶을 여미고 있었고, 그 옆의 아주머니는 아이 손을 잡고 있었고, 그 뒤의 남자는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있었다. 아홉 시 삼십분에 국기가 올라갈 때 사람들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앞줄에서부터 뒤로, 사람들이 하나씩 손등으로 얼굴을 훔치기 시작했다.
내 오른쪽 두 걸음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소리 없이 어깨를 떨었다. 마흔쯤 되어 보였다. 옆 사람이 그의 팔을 잡아 주었고 그도 울고 있었다.
뒤쪽 어디선가 한 사람이 만세를 외쳤다. 두어 명이 따라 했다가 그쳤다. 그러고는 다시 조용해졌다.
내 옆으로 노인 하나가 밀려 들어왔다. 통역석 앞은 줄이 쳐져 있었는데 그 줄까지 왔다가 헌병에게 붙들렸다.
"군인 양반, 하나만 물읍시다."
"말씀하십시오."
"내레 원산 사람인데, 이제 기차가 다니갔소?"
나는 그 질문의 답을 몰랐다. 원산까지 철도가 어디까지 이어졌는지도 몰랐고, 안다고 해도 그 노인이 묻는 것은 철도가 아니었다.
"곧 다닐 겁니다."
노인이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고 힘이 셌다.
"고맙소. 고맙소."
그는 헌병에게 떠밀려 나가면서도 두 번 더 고맙다고 했다.
광장 네 귀퉁이의 확성기 옆에 방송국 차가 서 있었다. 이것이 부산으로 중계된다고, 아침에 공보처 사람이 말했다. 부산에서는 국제시장 한복판에 확성기를 달아 놓았다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아홉 시 사십분에 연단에 올랐다. 일흔여섯이었고, 바람이 부는데 모자를 쓰지 않았고, 원고를 손에 들었으나 거의 보지 않았다.
"동포 여러분."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왔다.
나는 두 번째 마이크 앞에 앉아 옮기기 시작했다. 외신 기자단이 연단 오른쪽에 스무 명쯤 있었고, 그들이 듣는 것은 내 목소리였다.
연설은 십칠 분이었다.
금일 우리는 국토완정의 대업을 이루었다고 그가 말했다. 삼천만 동포가 사십 년의 압박과 육 년의 분단과 이 년의 전화를 겪었다고 했다. 반만년 역사에 이 강토가 남북으로 갈린 것이 정당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유엔 총회가 지난달 십오일에 결의한 바를 인용했다. 우방 미국과 십육 개국 장병의 피에 대해 사의를 표한다고 했다.
압록강은 네 번 나왔다.
첫 번째는 강토의 북쪽 끝을 말할 때. 두 번째는 국군의 발이 그곳에 닿았다고 할 때. 세 번째는 그 물을 마셨다는 옛 이야기를 인용할 때. 네 번째는 마지막 문단에서, 압록강 물이 마르지 않는 한이라고 할 때.
나는 옮기면서 세고 있었다.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두 번째에서 이미 세고 있었다.
청천강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십칠 분 동안 나는 그 이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나오면 어떻게 옮길지를 미리 정해 두기까지 했다. 나오지 않았다.
회견장은 중앙청 안쪽 회의실이었다. 창유리가 절반쯤 합판으로 막혀 있어서 안이 어두웠고 조명등을 두 대 켰다.
대통령이 가운데, 왼쪽에 미국대사, 오른쪽에 유엔군사령관 리지웨이 대장. 나는 대통령 뒤 반걸음 옆에 섰다.
질문이 다섯 개쯤 지나갔다. 중공군 잔여 부대의 철수 시기. 총선거의 실시 여부. 피난민의 귀향. 배급.
여섯 번째로 뒷줄의 기자가 일어섰다. 영국 통신사 사람이었고 안경을 썼다.
"청천강 이북 지역의 행정 관할은 어디입니까."
나는 그것을 한국어로 옮겼다. 여덟 단어짜리 질문이 열두 어절이 되었다.
대통령의 대답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한민국이오. 대한민국 영토에 다른 관할이 있을 수 없소."
내가 그것을 영어로 옮기는 동안, 왼쪽에서 종이 한 장이 탁자 위를 미끄러져 갔다. 미국대사의 보좌관이 앞으로 밀었고 대사가 손끝으로 받았다. 타자한 것이었고 세 줄이었다. 그는 그것을 읽지 않았다.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의 손이었다.
나는 문장의 끝을 맺었다. The Republic of Korea. There can be no other jurisdiction.
그러고 나서 미국대사가 마이크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보충하겠습니다. 청천강 이북 지역은 현재 방사선 위험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해당 구역에서는 유엔군사령부의 민사 행정이 계속됩니다. 이는 주민의 안전과 구호를 위한 잠정 조치이며, 조건이 갖추어지는 대로 이양될 것입니다."
방 안이 조용했다.
나는 그것을 한국어로 옮겨야 했다. 한국 신문사 기자들이 앞줄에 앉아 있었고 그들 중 절반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옮겼다.
옮기는 동안 오른쪽 어깨 너머로 대통령의 손이 보였다. 손이 탁자 위에서 한 번 오므라들었다가 펴졌다. 그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는 보지 못했다. 내 자리에서는 뒤통수만 보였다.
한국 기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러면 아까 각하께서 말씀하신 것과 지금 대사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 어느 쪽입니까."
통역할 것이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서 있었다.
리지웨이 대장이 회견을 정리하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것을 옮겼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동안 나는 통역석의 서류를 챙기고 있었다.
오정민이 뒷줄 의자 사이에서 나왔다. 그녀는 종군기자 완장을 왼팔에 차고 있었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수첩을 이미 주머니에 넣은 뒤였다.
"한 대위님."
"오래간만입니다."
"밖에 사람들 보셨어요? 아직 안 가고 서 있어요."
"봤습니다."
그녀는 창의 합판 쪽을 잠깐 봤다가 나를 봤다.
"아까 그 마지막 질문요. 어느 쪽이냐고 물은 거."
"예."
"그거 제가 물으려고 적어 놨던 거예요. 저 사람이 먼저 물어서 안 물었어요."
"물으셨으면 제가 옮겼을 겁니다."
"알아요. 그래서 안 물었어요."
그녀는 그것을 나무라는 투로 말하지 않았다. 그냥 순서를 설명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오늘은 두 사람 말을 다 하셨네요."
나는 서류를 가지런히 맞추고 있었다. 가지런해진 다음에도 한 번 더 맞췄다.
밖에서 발전차 소리가 났다. 누가 시동을 껐고, 소리가 끊기자 광장 쪽의 웅성거림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러네요."
라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하지 않았다.
1952년 4월 · 평안남도 안주, 청천강 봉쇄선 제2검문소
다리는 상판이 성했다.
작년 겨울에 공병이 상판 두 군데를 갈아 끼웠고 난간은 새로 쳤다. 폭이 좁아서 트럭 한 대가 지나가면 사람은 가장자리에 붙어야 했다. 남쪽 끝에서 육십 걸음 되는 지점에 흰 페인트로 선을 그어 놓았다. 페인트는 두 줄이었고 그 사이가 한 뼘쯤 벌어져 있었다.
내 책상은 그 선에서 남쪽으로 네 걸음 되는 곳에 있었다.
야전 탁자 하나, 접이식 의자 하나, 그 위에 서류철 셋. 왼쪽에 미 헌병 중위의 탁자가 있고, 그 뒤에 천막이 둘 있는데 하나는 측정용이고 하나는 대기용이다. 오른쪽 조금 떨어진 곳에 김진하 대위의 탁자.
계수기 소리는 아침 여덟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났다. 딱, 딱, 딱딱, 딱. 처음 사흘은 그 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나흘째부터는 들리지 않았고, 대신 소리가 잦아지는 순간에만 고개가 저절로 들렸다.
절차는 넷이었다.
하나, 줄을 선다. 둘, 이름과 본적과 남쪽 연고자를 대고 명부에 대조한다. 셋, 천막에서 옷을 털고 머리와 손과 신발과 짐을 잰다. 넷, 기준을 넘으면 물로 씻고 다시 잰다. 다시 재서 또 넘으면 짐을 두고 간다. 몸이 넘으면 못 간다.
계수기는 표면만 잡는다. 그것은 작년 여름에 배웠다. 옷에 붙은 것, 머리에 붙은 것, 신발 바닥에 붙은 것을 잡는다. 몸 안에 들어간 것은 잡지 못한다. 그래서 이 줄에서 통과한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고, 이 줄에서 걸린 사람이 아픈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리 위에 예닐곱 명이었고, 줄을 선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사월 한 달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옮긴 문장은 네 글자였다.
돌아가시오.
미 헌병 중위가 하는 말은 매번 조금씩 달랐다. Not on the list. No sponsor. Reading's too high. Come back next month. Sorry, pop. 나는 그것을 전부 같은 네 글자로 옮겼다. 다른 말로 옮겨 본 적도 있었는데 그러면 되묻는다. 되물으면 시간이 걸리고, 시간이 걸리면 뒤의 줄이 길어지고, 줄이 길어지면 오후 다섯 시에 못 끝낸다.
돌아가시오, 라는 말은 방향을 지시한다. 나는 그것을 안다.
작년 정월에 나는 다른 다리 위에 서 있었고, 그때 나는 그 네 글자 대신 다른 네 글자를 골랐다. 내려가시오. 그 단어가 사람들을 어디로 보냈는지도 안다. 그 뒤로 나는 방향을 지시하는 단어를 고를 때 삼 초쯤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여기서는 삼 초가 없다. 하루에 이백 명이면 그 삼 초가 열 시간이 된다.
그날 오전에 여자 하나가 짐 때문에 걸렸다.
보퉁이를 두 번 씻겼는데도 계수기가 잦아지지 않았다. 안에 든 것은 겨울 이불 한 채와 놋그릇 몇 개와 사진이었다. 미 헌병 중위가 이불을 지목했다. 이불만 두고 가면 된다고 나는 옮겼다.
여자는 이불을 펴서 안쪽을 보여 주었다. 솜이 새것이라고 했다. 시집올 때 해 온 것이라고 했다.
"두고 가시면 나머지는 가져가실 수 있읍니다."
그녀는 이불을 접었다. 접는 데 시간이 걸렸는데 접는 방식이 정확했다. 네 귀를 맞추고, 반으로, 다시 반으로. 다 접은 이불을 천막 옆 무더기 위에 올려놓았다. 무더기는 그날 오전에만 어깨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점심때 김진하 대위가 자기 수첩을 펴놓고 뭔가 적고 있었다.
"뭘 적으십니까."
"돌려보낸 사람." 그는 연필로 줄을 하나 그었다. "오늘 오전에 서른하나."
"보고서에 들어갑니까."
"보고서에는 통과 인원만 들어가. 돌려보낸 건 안 세." 그는 수첩을 덮었다. 표지가 낡아서 모서리가 부풀어 있었다. "이건 내가 세는 거다."
"왜 세십니까."
김 대위는 잠깐 나를 봤다. 서울 사람 특유의 빠른 말씨였는데 그때만 느렸다.
"세면 좀 낫더라고."
'세면 좀 낫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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