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태양 제6부 압록(鴨綠)
35화제48장 빈 집
비탈을 내려오는 길에 나는 마을의 물길을 봤다.
뒷산에서 내려온 도랑이 밭 사이를 지나 마을 가운데로 들어가고, 우물 옆을 지나 아래쪽 논으로 빠진다. 여름이라 물이 있었다. 도랑 바닥에 이끼가 끼어 있고 그 위로 물이 얇게 흘렀다.

작년 유월에 비가 왔을 것이다. 그 비는 이 도랑을 타고 저 우물 옆을 지나갔을 것이다.
나는 도랑을 눈으로 따라갔다. 산에서 마당으로, 마당에서 우물로, 우물에서 논으로.
지프가 있는 데까지 백 걸음쯤 남았을 때 계수기가 울기 시작했다.
병사가 길에서 벗어나 도랑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소리가 잦아졌다가 다시 성겨졌다가 도랑 바닥에서 다시 잦아졌다. 상사가 지도판에 숫자를 적었다.
딱딱딱, 딱, 딱딱딱딱.
지프에 오를 때까지 소리가 났다. 세어 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1952년 9월 ~ 11월 · 평안남도 안주, UNCACK 민사부 북부지구 사무소
줄은 네 시부터 섰다.
문을 여는 것은 여덟 시인데 사람들은 어둠 속에 먼저 와서 돌을 놓아 자리를 표시하고, 그 돌 뒤에 쭈그리고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안주의 옛 면사무소는 창이 여섯인데 넷은 판자로 막혀 있었다. 남은 둘로 들어오는 빛이 명부 위에 사각형 두 개를 그렸고, 나는 그 사각형 안에서 이름을 읽었다.
배급은 세 가지였다. 밀가루, 분유, 옥수수가루. 배급표에 도장을 찍는 것이 내 오른손이 하는 일이었다. 세대주 이름, 식구 수, 그리고 붉은 인주.
"식구가 몇이오."
"다섯입네다."
명부에는 셋이었다. 여자는 예순쯤 되어 보였고 손등이 갈라져 있었다. 나는 명부를 소령에게 밀었다.
"Three registered, sir. She says five."
콜린스 소령은 명부를 보지 않고 여자를 봤다. 그는 5월에 정보참모부에서 이리로 왔다. 다섯 달째 같은 책상에 앉아 있는데도 그는 아직 사람을 먼저 보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둘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봐."
"작년에 죽었소?"
"…죽지 않았습네다. 시집간 딸이 도로 왔습네다. 저 아래 신안주에서."
"등록을 옮겼습니까."
여자가 나를 봤다. 등록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날 오전에 그런 경우가 열한 건 있었다. 콜린스는 열한 건 전부에 임시 배급을 승인하고, 열한 건 전부에 재등록 기한을 붙였다. 그가 서명하는 속도는 빨랐다. 자기가 무엇에 서명하는지 아는 사람의 속도였다.
문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다가온 것은 열한 시쯤이었다. 검은 양복 위에 군용 방한복을 걸치고 있었다.
"사회부 배동헌이라 합니다. 서울서 왔심더."
경상도 말씨였다. 그는 명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명부, 우리가 받아야 안 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명부 아입니까."
"미군 명부입니다."
"여기가 미국 땅입니까."
나는 그 말을 통역하지 않았다. 콜린스는 영어를 기다리다가, 기다리는 동안 배동헌의 얼굴을 봤고, 통역이 오지 않자 다시 서류로 돌아갔다.
배동헌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담뱃갑을 내 책상에 놓고 목소리를 낮췄다.
"대위님도 이북 사람 아입니까. 내 말 들어보소. 저 사람들이 지금 미국 종이로 밥을 먹으면, 나중에 우리 정부가 도지사를 보내도 밥을 못 줍니더. 그때 되면 저 사람들이 누구 백성이겠습니까."
"지금 밥을 못 먹으면 나중이 없습니다."
"그 말도 맞습니더. 그래서 어려운 깁니다."
10월 6일에 우물 세 개가 닫혔다.
측정반이 안주 북쪽 마을 여섯 곳을 돌았고, 여섯 곳 중 세 곳의 우물에서 계수기가 울었다. 나머지 셋에서는 울지 않았다. 세 곳과 세 곳 사이의 거리는 걸어서 한 시간이 안 됐다.
콜린스가 고시문 초안을 내밀었다. 영어 여덟 줄이었다.
"오늘 안에 붙여야 해."
나는 그 여덟 줄을 옮겼다. This well is closed by order of the Civil Assistance Command. 명령에 의하여 이 우물을 폐쇄함. 그 아래에 폐쇄 사유가 있었다. Water unfit for human consumption. 음용에 부적합함.
부적합이라는 말은 나쁘지 않았다. 나쁜 것은 그 아래 줄이었다. Alternative source: nearest approved well, 8 km. 대체 수원 — 팔 킬로 밖의 우물.
팔 킬로는 이십 리다. 나는 그것을 '이십 리'로 적었다. 킬로미터로 적으면 그 마을에서 아무도 읽지 못한다.

고시문은 세 장이었고, 나무판에 붙이는 데 못 여섯 개가 들었다. 첫 번째 우물가에서 노파 하나가 내 소매를 잡았다.
"장교 양반. 이거 언제까지요."
"기한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기한이 없으면 언제까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두레박을 들고 갔다. 우물 쪽이 아니라 마을 안쪽이었다.
돌아오는 지프 안에서 내가 먼저 말했다.
"소령님. 이십 리입니다."
"뭐가."
"물 길으러 가는 거리요. 왕복 사십 리. 물 한 통에 하루의 절반입니다. 노인은 못 갑니다. 노인이 못 가면 닫은 우물에서 밤에 뜹니다."
콜린스가 운전병에게 세우라고 했다. 지프가 섰고, 흙먼지가 앞으로 지나갔다.
"그럼 마시게 두란 말이냐."
"저는 그런 말을 한 게 아닙니다."
"내가 묻고 있잖아. 두 개 중에 하나야. 닫거나, 두거나. 자네가 세 번째를 알면 지금 말해."
"세 번째를 아는 사람이 여기 아무도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건 답이 아니야."
"소령님이 원하는 게 답입니까, 동의입니까."
그가 나를 봤다. 우리는 1951년 1월부터 알았고, 그동안 그는 내게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다. 그날도 높이지 않았다. 다만 그가 다음 말을 고르는 데 걸린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다.
"자네는 나한테 규칙을 느슨하게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어. 규칙을 느슨하게 하면 누가 마시는지 내가 고르게 돼. 나는 그걸 고를 자격이 없어."
"규칙이 정밀해지면 예외가 없어집니다."
"예외가 있으면 사람이 죽어."
"예외가 없어도 죽습니다."
그는 운전병에게 가자고 했다. 안주까지 십오 분 동안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열 시가 넘어 콜린스가 내 숙소로 왔다. 문을 두드리지 않고 열려 있는 문틀을 손등으로 두 번 쳤다.
"미안하다고 말하러 왔어."
"무엇에 대해서 말입니까."
"낮에 목소리."
"목소리는 안 높이셨습니다."
"높이고 싶었어. 그게 나한테는 같은 거야."
나는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설탕은 넣지 않는다. 그는 컵을 받지 않고 서 있었다.
"사과를 받아줘, 한."
"사과받을 이유가 없읍니다."
"이유가 없다는 게 무슨 뜻이야."
"소령님이 틀린 말을 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저도 틀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사과할 게 없습니다."
콜린스는 문틀에 손을 얹은 채로 잠깐 서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시작하려다가 그만두는 것이 어깨에서 보였다. 그는 컵을 받지 않았고, 나가면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지프를 부르지 않고 걸어서 왔다는 것은 그가 돌아선 뒤에야 알았다. 밖에서 엔진 소리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도에는 불이 하나뿐이었다. 그 아래를 지나갈 때 그의 등이 잠깐 밝아졌다가, 그다음 열 걸음은 어두웠고, 계단 아래에서 다시 한 번 밝아졌다. 나는 그 세 번을 끝까지 봤다.
1953년 3월 ~ 6월 · 평양, 부역자 심사위원회 제3분과
방은 원래 교실이었다. 칠판이 있던 자리에 못 자국 네 개가 남아 있고, 그 아래에 심사관 셋의 책상이 붙어 있었다. 가운데가 위원장, 좌우가 심사관. 왼쪽 벽에 미군 참관 장교의 책상이 따로 하나 있었다. 창은 남향인데 유리가 없어서 기름종이를 발랐고, 오후가 되면 방 전체가 누렇게 됐다.
내 자리는 심사관들 옆도 아니고 참관 장교 옆도 아니었다. 두 책상 사이, 벽에서 한 자쯤 떨어진 곳에 걸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대상자가 들어오면 그의 얼굴은 심사관 쪽을 향하고, 나는 그의 오른쪽 뺨을 본다.
서식은 국한문 혼용 세로쓰기였다. 성명, 본적, 현주소, 직업, 경력, 그리고 마지막에 '要旨'라고 인쇄된 네모 칸이 하나 있었다. 칸의 세로 길이는 열두 자, 가로가 다섯 줄. 그 칸에 들어가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다. 영문 부본은 그 옆에 붙는다. 참관 장교가 서명하는 것은 영문 쪽이다. 그는 한국어를 읽지 못한다.
심사관 셋은 각각 달랐다. 위원장은 육군 법무 출신으로 목소리가 크고 질문이 짧았다. 오른쪽 심사관은 친척 관계를 물었다 — 형제가 몇이오, 지금 어디 있소. 왼쪽 심사관은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는 서류만 보고 서류에만 표시했고, 그래서 하루가 끝나면 그의 것이 제일 깨끗했다.
하루에 스물넷에서 스물여덟 명을 봤다. 나는 그중 절반은 입을 열지 않는다. 심사관도 대상자도 한국어를 쓰는 날에는 통역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날 내가 하는 일은 듣고, 줄이고, 쓰는 것이다. 오른손 옆에 잉크가 마르지 않게 뚜껑을 열어둔 병이 있고, 하루가 끝나면 그 병이 삼분의 일쯤 준다.
하루에 스물넷에서 스물여덟 명을 봤다. 나는 그중 절반은 입을 열지 않는다. 심사관도 대상자도 한국어를 쓰는 날에는 통역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날 내가…
남은 9화 · 약 34,169자 · 약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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