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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제29장 명령에 없는 사람들

· 44화 중 21화 · 3,396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1951년 5월 27일 ~ 28일 · 제8군사령부 작전과, 그리고 사령부 복도

원문은 네 장이었고 항목이 열아홉 개였다.

열두 개의 태양 21화 제29장 명령에 없는 사람들 — 헤더컷

나는 그것을 한국어로 옮겼다. 옮기는 데 세 시간 반이 걸렸고, 옮긴 것을 검토하는 데 한 시간이 더 걸렸다. 검토는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놓고 항목 번호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한 줄씩 맞춰보는 일이다.

항목 삼. 각 군단은 오월 이십구일 영시부로 예하 부대의 전방 정찰 활동을 지정선 이남으로 제한한다.

항목 오. 지정 시각에 항공 회랑을 비운다. 해당 시각 전후 두 시간 동안 서북 방면 상공에 아군기 진입 금지.

항목 칠. 각 부대는 오월 이십구일 팔시 삼십분까지 이동을 완료하고 완료 보고한다.

항목 구. 이격 거리는 별표에 따른다.

별표는 따로 한 장이었다. 거리와 방위와 시각이 칸에 들어 있고, 칸 위에 아무 설명이 없다. 무엇으로부터의 거리인지 그 종이에는 적혀 있지 않았다.

항목 십사가 눈에 관한 것이었다.

지정 시각 전후에 서북 방면에서 강한 섬광이 관측될 수 있다. 전 인원은 그 방향을 직접 보지 않는다. 섬광이 인지되면 즉시 고개를 돌리고 팔로 눈을 가린다. 쌍안경·조준경으로 그 방향을 관측하지 않는다. 잔상이 남는 인원은 지휘계통에 보고한다.

"섬광 실명"이라는 말을 나는 만들어 썼다. 사전에 있는 말이 아니다. 영어에는 한 단어가 있고 우리말에는 없어서, 두 낱말을 붙여 하나처럼 보이게 했다. 김진하 대위가 그 대목에서 물었다.

"실명이라는 게 영영 안 보인다는 말이오?"

"원문에는 일시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회복된다고."

"대부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럼 '일시적'을 앞에 붙이시오. 우리 애들이 보면 놀라니까."

나는 붙였다. 붙이고 나서 한참 봤다.

항목 십오는 그 아래에 붙어 있었다. 지정 시각 이후 서북에서 오는 바람 방향에 유의하고, 이상 관측 사항은 즉시 보고한다. 무엇이 이상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옮겼다. 원문이 비워둔 자리는 번역문에서도 비워두는 것이 규칙이다.


세 번 읽었다.

첫 번째는 오탈자를 잡으려고 읽었다. 두 번째는 항목 번호가 원문과 어긋나지 않았는지 보려고 읽었다. 세 번째는 이유가 없었다.

세 번째에 없는 것이 보였다.

열아홉 개 항목은 전부 부대에 관한 것이었다. 군단, 사단, 연대, 대대, 정찰조, 항공기, 관측소, 통신소. 사람이 나오는 대목은 전부 계급이 붙어 있었다.

민간인이라는 낱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원문을 다시 폈다. 혹시 내가 옮기면서 빠뜨렸는가 싶어서였다. 빠뜨린 게 아니었다. 원문에도 없었다.

목록의 열두 곳 중 열한 곳은 만주다. 거기 사는 사람은 적국 사람이니 우리 명령서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고 하면, 그건 그런대로 말이 된다.

그런데 신의주는 조선이다.

우리 정부가 자기 영토라고 부르는 땅이고, 거기 사는 사람은 서류상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에 관한 항목이 열아홉 개 중에 없었다.

나는 네 번째로 읽었다. 그건 세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것이었다.

콜린스 소령이 서류를 가지러 들어왔다가 내 책상 앞에 섰다.

"아직도 그거 보고 있어?"

"별표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별표를 집어 눈높이로 들었다. 숫자만 든 종이는 뒤에서 보면 그냥 격자다.

"칸 위에 제목이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이 거리가 무엇으로부터의 거리인지 안 적혀 있습니다."

"적으면 안 되니까 안 적은 거야."

"한국어본에도 적지 말까요."

콜린스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는 대답을 고르는 사람의 얼굴이 되었다가, 고르기를 그만두었다.

"원문에 없는 건 넣지 마."

"알겠습니다."

"한." 그는 문 쪽으로 가다가 돌아섰다. "번역이 원문보다 친절하면 그건 번역이 아니야. 그 말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자네가 나한테 한 말이야. 이월에."

나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있었다.


김진하 대위는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사무실 안에서 피우지 않고 늘 창턱에 팔을 걸치고 밖으로 연기를 뱉는다.

"대위님. 번역은 끝났습니다."

"수고했소."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말해보시오."

"항목 중에 주민에 관한 게 없습니다."

그는 담배를 입에서 떼지 않은 채로 나를 봤다.

"주민이라니."

"신의주는 우리 땅입니다. 거기 사람들에 대한 항목이—"

"한 중위." 그가 담배를 창밖으로 털었다. "이 명령서가 누구한테 가는 거요."

"각 군단입니다."

"그럼 각 군단이 신의주 사람한테 뭘 할 수 있소. 지금 우리 전선이 어디요."

"…소양강 남쪽입니다."

열두 개의 태양 21화 제29장 명령에 없는 사람들 — 전환컷

"거기서 신의주까지 사백 킬로가 넘소. 우리 손이 안 닿는 데 있는 사람 얘기를 부대 이동 명령서에 왜 적소."

"그러면 어느 서류에 적습니까."

김진하는 창턱에서 팔을 내렸다. 그가 화를 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건 우리 관할이 아니오."

"그러면 누구—"

"한 중위." 그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나도 정주 사람 아는 이가 있소. 그런데 나는 그 얘기를 오늘 하지 않을 거요. 오늘 내가 할 일은 이 종이를 열두 시까지 올려보내는 거요. 당신 일도 그거고."

그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 갑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번역 잘했소. 밑에 이름 적으시오."


이튿날 아침이었다.

미 작전참모 중령은 매일 여덟 시 사십 분쯤에 사령부 이층 복도를 지나 회의실로 간다. 그는 걸으면서 서류를 읽지 않는다. 그건 내가 삼 주 동안 그를 봐서 아는 것이다.

나는 여덟 시 삼십오 분부터 복도 창가에 서 있었다. 손에 한국어본 사본을 들고 있었는데, 그건 그 자리에 서 있을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문장을 세 번 만들었다.

첫 번째. 중령님, 이 명령에는 민간인에 관한 항목이 없습니다. 짧고 정확하지만 그다음이 없다.

두 번째. 신의주는 대한민국 영토이며 그곳 주민은— 이건 내 소관이 아니고, 내가 그런 말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

세 번째. 중령님,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이게 제일 나았다. 물음으로 시작하면 상대가 문을 열어준다.

여덟 시 사십일 분에 그가 복도 끝에 나타났다. 복도 바닥은 나무이고 그의 구두는 소리가 컸다. 부관 하나가 반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나는 두 걸음 앞으로 나가 경례를 했다.

그가 걸음을 늦췄다. 아주 조금 늦췄다. 그리고 나를 봤다. 아는 얼굴이라는 표시로 눈썹을 한 번 올렸다.

"Lieutenant."

내 왼손이 오른손 손목을 쥐고 있었다.

"번역 확인이 끝났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Good."

구두 소리가 복도를 지나 회의실 문 앞에서 멈췄다가, 문이 열리고 닫혔다.

나는 손에 든 사본을 봤다. 열아홉 개 항목이 거기 있었고 나는 그것을 전부 정확하게 옮겼다.


1951년 5월 29일 04시 20분 ~ 08시 40분 · 가데나 활주로와 B-29 기내 폭탄창

유도로에 열두 개의 불빛이 줄지어 있었다.

데커는 제1기 앞바퀴 옆에 서서 그것을 세었다. 앞에서 뒤로 한 번, 뒤에서 앞으로 한 번. 셀 이유는 없었다. 열두 대가 있는 걸 알고 있었고 자기가 사흘 동안 열두 개를 조립했다.

비가 새벽에 그쳤고 콘크리트가 젖어 있었다. 엔진 예열 소리 때문에 옆 사람 말이 안 들려서, 정비반은 손짓으로 이야기했다.

여섯 명이 여섯 대에 나눠 탔다.

노백은 제5기였다. 어제저녁에 데커가 그를 붙잡고 순서를 두 번 복창시켰다. 노백은 왼손 검지에 아직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그걸로 공구를 잡지 않아도 되게끔 순서를 조금 바꿔 외웠다. 매케이브는 제3기, 크로퍼드는 제7기, 페렐리는 제9기, 개럿은 제11기, 룬드퀴스트는 제12기.

사흘 동안 다섯이 붙어서 하던 일을 오늘은 각자 혼자 한다.

"상사님." 노백이 소리를 질렀다. 엔진 소리 때문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복창 순서."

"플러그 뽑고, 케이지 열고, 공구 걸고, 들어올리고, 넣고, 돌리고, 잠그고, 플러그 꽂고, 서명."

"몇 번에 확인해."

"돌리고 나서 한 번, 잠그고 나서 한 번입니다."

"가."

그레이디 대위가 사다리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텍사스 사람이고 말이 느리다.

"데커 상사, 우리 오늘 아침 몇 시에 밥 먹지."

"기내에서 드십시오."

"거기 뭐가 있는데."

"샌드위치하고 커피통 두 개입니다."

"그럼 밥은 저녁에 먹는 걸로 하지."

04시 20분에 제1기가 굴러나갔다.


순항에 올랐을 때 밖은 아직 어두웠다.

기장이 삽입 고도를 유지한다고 알렸다. 폭격 고도까지 올라가는 것은 나중이다. 그래야 폭탄창이 사람 손이 얼지 않을 만큼만 춥다.

데커는 항법석 뒤 통로를 지나 폭탄창 문 앞에 섰다. 무전사가 헤드셋을 반쯤 벗고 그를 봤다.

폭탄창은 좁고 어둡고 춥다. 좁은 것은 물건이 육십 인치짜리이기 때문이고, 어두운 것은 등이 하나뿐이기 때문이고, 추운 것은 기압을 걸지 않기 때문이다. 좁은 통로가 물건 옆으로 나 있고 사람 하나가 옆으로 서면 꽉 찬다.

데커는 안전줄을 고리에 걸었다. 그다음 손목시계를 봤다.

그리고 장갑을 벗었다.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는 잠금이 물리는 순간의 걸림을 못 느낀다. 규정에 벗으라고 되어 있지 않고 끼라고 되어 있지도 않다. 훈련 때부터 다들 벗었다.

장갑 두 짝을 작업복 앞주머니에 눌러 넣었다. 그 주머니 덮개에 필름 배지가 물려 있었다. 배지는 가슴에 있고 손은 여기 있다.

장갑 두 짝을 작업복 앞주머니에 눌러 넣었다. 그 주머니 덮개에 필름 배지가 물려 있었다. 배지는 가슴에 있고 손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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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태양전 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