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태양 제3부 춘계(春季)
17화제23장 책상 위의 명패
오후에 고든 딘이 왔다. 마흔여섯 살이고 변호사고 목소리가 사무적이다.
"각하. 태평양에 나가 있는 완성 캡슐은 아홉 개입니다."

"아홉."
"예. 사월 육일에 제구폭격전대에 넘겼습니다. 제가 서명했습니다."
방 안에 여섯 사람이 있었다. 아무도 다음 질문을 하지 않았다.
트루먼은 그것을 알아차렸다. 다음 질문은 하나뿐이다 — 아홉이면 되는가. 그 질문을 하면 표적이 몇 개인지를 묻게 되고, 표적이 몇 개인지를 물으면 목록이 이 방에 들어온다. 목록이 들어오면 이 방의 여섯 사람은 지명을 읽게 된다.
딘이 서류철을 닫았다. 닫히는 소리가 났다. 회의는 그것으로 끝났다.
십구일 밤에 그는 저녁을 먹고 다시 길을 건너갔다.
집무실에는 스탠드 하나만 켰다. 창밖으로 공사 중인 관저의 비계가 보였다. 밤에는 비계가 뼈대처럼 보인다.
책상 위에 나무 명패가 있었다. 앞면에는 THE BUCK STOPS HERE. 뒷면에는 I'M FROM MISSOURI. 사십오년 가을부터 이 자리에 있었고 그는 이것을 손님들에게 몇 번이나 뒤집어 보여주었다.
그는 그것을 자기 쪽으로 돌려놓았다. 글씨는 손님 쪽을 보게 만들어져 있어서, 이쪽에서는 뒤집힌 글자만 보였다.
그는 딸에게 편지를 쓰려다 종이를 도로 밀었다. 대신 노란 종이에 한 줄을 적었다.
이것은 여자와 아이들과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을 쓸어버리는 데 쓰인다.
그 아래에 또 한 줄을 적으려다 펜을 놓았다. 종이를 접어 서랍에 넣었다.
이십일은 일요일이었다.
그는 오전에 교회에 갔다가 블레어하우스로 돌아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쇼팽의 왈츠를 치다가 세 번째 마디에서 틀렸다. 다시 처음부터 쳤다. 또 틀렸다. 손가락은 스무 살 때부터 이 곡의 그 자리에서 틀렸다.
부인이 문간에서 잠깐 서 있다가 갔다.
오후에 해리먼이 전화를 걸어와 물었다. 각하, 내일 아침으로 잡을까요 아니면 더 두실까요.
"내일 아침."
"예."
"해리먼."
"예, 각하."
"사월 오일에 그 문서에 서명한 사람이 누구였나."
전화기 저쪽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합참입니다. 기관 명의입니다."
"기관은 사람이 아니지."
해리먼은 답하지 않았다. 트루먼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지만 뚜껑은 열지 않았다.
이십일일 아침 아홉 시 오십 분.
브래들리가 가져온 것은 한 장이었다. 사월 오일 지시의 발동을 승인함. 집행 권한은 전략공군사령부에 있음. 그 밑에 서명란.
그는 서명했다. 가운데 글자 S는 아무 이름도 아니다. 할아버지가 둘이었고 어느 쪽 이름을 붙일지 정하지 못해서 글자만 남았다. 그는 평생 그것을 설명해야 했다.
애치슨이 서류를 받아 들었다.
"런던은 어떻게 할까요."
트루먼은 창밖을 봤다. 비계 위에서 인부 하나가 무언가를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작년 십이월에 내가 총리한테 뭐라고 했지."
"상황을 바꿀 만한 진전이 있으면 항상 알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구두로요."
"그래. 구두로." 그는 만년필을 제자리에 꽂았다.
그날 런던으로는 아무것도 나가지 않았다.
1951년 5월 22일 · 부산, 임시 대통령 관저 응접실
내 군화는 아직 산 냄새가 났다.
이십이일 오전에 부산으로 가라는 지시가 왔다. 김진하 대위가 지프 조수석에서 뒤도 안 보고 말했다.
"자네가 명단에 있어서 그래. 신원 조회 끝난 통역 중에 살아서 걸어다니는 게 몇 없다."
"제가 왜 필요합니까. 대통령 각하는 영어를 하십니다."

"그러니까 필요한 거지."
나는 그 말을 그날 저녁에야 알아들었다.
부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후 내내 막혔다. 지프가 사람 사이를 비집고 갔다. 길가에 함지박을 놓고 앉은 여자들, 미군 담요로 지붕을 인 집들, 물지게. 산비탈이 판자로 덮여 있었다.
어느 골목 어귀에서 나이 든 여자가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억양이 우리 쪽이었다. 평안도. 나는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지나쳤고, 지프는 서지 않았다.
"북에서 온 사람들이 여기 많습니까."
"많지." 김 대위가 앞을 보며 말했다. "자꾸 온다."
관저는 도지사 관사를 쓰고 있었다. 일본식 목조에 서양식 응접실을 붙인 집이고, 마루가 밟을 때마다 소리를 냈다. 부관이 자리를 배치했다.
가운데 낮은 탁자. 오른쪽 소파에 대통령. 왼쪽에 무초 대사와 미군 장성 둘. 정일권 소장은 대통령 옆 팔걸이 없는 의자. 김 대위는 문 옆.
그리고 나는 벽이었다.
등받이가 곧은 나무 의자 하나가 벽에 붙어 있었고 부관이 손바닥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앉으면 대통령의 옆얼굴과 대사의 정면이 동시에 보이고, 두 사람 중 누구와도 눈이 마주치지 않는다. 이 자리를 만든 사람은 이 자리가 무엇을 위한 자리인지 알고 있었다.
인제에서는 사람 뒤에 앉는 법을 배웠는데 사흘 만에 다시 벽이었다.
스무 시 십오 분에 대통령이 들어왔다.
일흔여섯이었다. 등이 굽었고 손등에 검버섯이 있었고 걸음이 짧았다. 그런데 앉는 동작이 느리지 않았다. 그는 앉으면서 방 안을 한 번 훑었고, 훑는 동안 내 의자에서 반 박자 멈췄다.
무초 대사가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한 장이었다.
"Mr. President."
"Go ahead, Mr. Ambassador." 대통령의 영어에는 억양이 없었다. 미국 사람 억양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외국 사람 억양이 없었다.
대사가 읽었다.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wishes to inform the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that, in response to a major buildup of Chinese Communist forces, the United Nations Command has been authorized to employ special weapons against military targets within Manchurian territory."
나는 그 문장을 옮겼다.
"미합중국 정부는 대한민국 대통령 각하께, 중공군의 대규모 증원에 대응하여, 유엔군사령부가 만주 지역 내 군사 목표에 대하여 특수 무기를 사용할 권한을 부여받았음을 통보드립니다."
십이 초 걸렸다. 나중에 김 대위가 세어봤다고 했다.
그 십이 초 안에서 나는 한 번 갈라졌다.
special weapons. 특수 무기. 사월에 나는 다른 방에서 다른 낱말을 들었고, 그 낱말을 옮기지 않고 알파벳 그대로 수첩에 적어두었다. atomic. 오늘 이 종이에는 그 낱말이 없다. 한 번도 없다. 종이를 만든 사람이 그 낱말을 뺐고, 대사가 그것을 읽었고, 이제 내 차례다.
나는 그것을 원자탄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 방에서 그 말을 아는 사람은 나 말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한국어로 소리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순간 나 하나였다. 입만 열면 됐다.
내 왼손이 오른손 손목을 쥐고 있었다. 손목뼈가 눌리는 것이 느껴질 만큼 쥐고 있었다. 그런데도 문장은 나가는 중이었다. 입은 이미 다음 어절을 만들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이었다.
번역은 고르는 일이라고 나는 배웠다. 정확한 것을 고르는 일. 그날 밤에 정확한 것은 특수 무기였다. 종이에 그렇게 적혀 있었으므로 그렇게 옮기는 것이 정확했다. 정확한 것과 사실인 것이 다른 낱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나는 그 십이 초 안에서 처음 했다.
내가 옮긴 것은 특수 무기였다.
대사가 이어서 읽었다. 세부 사항은 현 시점에서 제공할 수 없다는 문장,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의 협조를 요청한다는 문장. 표적이 어디인지, 몇 발인지, 언제인지는 그 종이에 없었다. 나는 없는 것을 옮길 수 없으므로 없는 대로 옮겼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사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마루 밑에서 나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창밖에서 개가 짖었다. 미군 장성 하나가 무릎 위 모자챙을 두 번 만졌다.
사 초 뒤에 그가 입을 열었다. 한국말이었다.
"…알겄소."
그러고 나서 나를 봤다. 처음으로 똑바로 봤다. 나더러 옮기라는 뜻이었다.
"He says he understands."
그가 다시 말했다. 구한말 말씨가 섞인 한국어였다. 문장이 길고 어미가 옛날 것이었다.
"대사. 한 가지만 묻겠소. 만주 땅에다 그것을 놓으면, 강 이쪽은 어찌 되오. 압록강 이남 말이오. 거기도 내 백성이 있소."
나는 옮겼다. 옮기면서 '내 백성'을 my people이라고 했다. 그 말에 붙어 있던 것이 절반쯤 떨어져 나갔다.
대사가 답했다. 기술적 사항은 자기 소관이 아니며, 질문은 본국에 전달하겠다는 요지였다.
나는 그것을 한국어로 옮겼다. 대통령은 내가 다 옮길 때까지 기다렸다. 영어를 다 알아듣고 나서도 기다렸다. 그는 사십 년을 미국에서 살았고 프린스턴에서 박사를 했고 지금 이 방에서 영어를 제일 잘한다. 그런데도 기다렸다.
그때 나는 김 대위가 아침에 한 말을 알아들었다. 통역은 그가 못 알아들어서 있는 게 아니다. 이 대화가 두 나라 사이에 있었다는 것을 남기기 위해서 있다. 그가 영어로 대답해버리면 이것은 두 미국인의 대화가 된다. 그는 그것을 못 하게 하려고 자기 나라 말을 쓰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우리 국군이 그다음에 올라가야 하오. 그건 우리 손으로 하겠소. 그것도 적어 보내시오."
정일권 소장은 그동안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정일권 소장은 그동안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남은 27화 · 약 97,958자 · 약 2시간 20분
좋아요와 책갈피는 이 기기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