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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제51장 북에서 온 여자

· 44화 중 37화 · 3,543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발각은 화요일 저녁에 있었다.

같은 방 순임이가 자기 보퉁이를 찾다가 남의 것을 풀었다. 재옥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순임이의 손에 빗이 들려 있었다.

열두 개의 태양 37화 제51장 북에서 온 여자 — 헤더컷

손때가 밴 참빗이었다. 등마루가 닳아서 결이 흐려졌고, 살 사이에 검은 것이 끼어 있다. 스무 해 넘게 한 사람의 머리만 빗은 물건은 그렇게 된다.

"이거 어디 거고?"

순임이가 빗을 들어 등불에 비쳤다. 등불이 흔들려서 빗살의 그림자가 벽에서 늘어났다 줄었다 했다.

"오래된 거네. 요새 이런 거 안 팔던데."

재옥은 문지방을 넘지 않고 서 있었다.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에 지나간 것은 병이 아니었다. 국제시장 어느 좌판에서 이런 빗을 봤던가, 남쪽에도 이런 것이 있는가, 순임이가 그다음에 무엇을 물을 것인가. 살 사이에 낀 검은 것이 무엇인지 물으면 뭐라고 하나. 그것은 머리카락이다. 스무 해 넘게 한 사람의 머리를 빗은 빗에는 그 사람이 남는다.

윗목에서 자던 애가 돌아누우면서 이불을 걷어찼다. 순임이가 그쪽을 한 번 보고 다시 빗을 봤다.

"어머니 거야."

"어무이가 여 계시나?"

"…어머니 거야."

순임이가 재옥을 봤다. 그 눈에는 의심이 없었다. 있는 것은 호기심이고, 호기심은 의심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순임이는 어깨를 으쓱하고 빗을 재옥에게 건넸다.

"곱다. 나도 이런 거 하나 있었으면."

재옥은 빗을 받았다. 받는 손이 떨리지 않도록 하는 데 힘을 다 썼기 때문에, 고맙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밤에 다들 자리에 누운 뒤, 그녀는 보퉁이를 다시 쌌다. 겉옷을 펴고, 속옷을 개어 넣고, 그 아래에 무명 조각을 깔았다. 빗은 그 무명 조각 밑으로 넣었다. 넣고 나서 손끝으로 겉을 눌러봤다. 만져지지 않았다. 그녀는 한 번 더 눌러보고, 손을 뺐다.


1954년 1월 ~ 2월 · 평안북도 박천·운산 일대, 봉쇄구역 내부

안쪽으로 들어가는 절차는 나오는 절차보다 간단했다.

나오는 사람은 계수기를 통과해야 하고 검진을 받아야 하고 기록에 이름이 있어야 한다. 들어가는 사람은 서명만 하면 된다. 오정민은 그것이 이 선의 성격을 한 줄로 요약한다고 생각했다.

서약서는 영문 한 장, 국문 한 장이었다. 국문 쪽의 번역이 나빴다. '본인은 구역 내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결과에 대하여 정부 및 유엔군에 하등의 청구를 하지 아니함.' 오정민은 '하등의'라는 말에서 잠깐 손을 멈췄다가 서명했다. 삼 년 전 같으면 여백에 괄호를 치고 다른 말을 적어 넣었을 것이다.

호송 하사관이 옷깃에 무언가를 꽂아줬다. 사각형 배지였다.

"필름입니다. 나오실 때 반납하세요."

"이게 무엇을 잽니까."

"쬔 걸 잽니다."

"숫자가 얼마면 나쁜 겁니까."

"그건 판독하는 데서 압니다. 문제가 되면 알려드립니다."

배지는 가슴께에 달렸다. 그녀는 그것을 손끝으로 한 번 만져보고 외투 단추를 채웠다.

지프에는 넷이 탔다. 그녀와 하사관과 미국 잡지의 특파원, 그리고 사회부에서 나온 배동헌이었다. 배동헌은 참관 자격이라고 했고, 지프가 검문소 차단봉을 지날 때 창밖으로 침을 뱉었다.

"이기 우리 땅인데 우리가 허가를 받고 들어갑니더. 기자 양반, 이거부터 쓰소."

"그것도 쓰겠습니다."

"미국 잡지에 나가는 기사에 그거 안 씁니더."

"쓸 겁니다."

배동헌은 웃었다. 웃음의 뜻은 그다음에 나왔다.

"쓰소.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는 두고 보입시더."


운산 쪽 마을에는 스물세 가구가 남아 있었다.

부엌에 재가 없다는 것을 오정민이 먼저 봤다. 불을 땐 지 오래된 아궁이는 재가 삭아서 가루가 되고, 가루는 바람에 날려서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재가 없는 부엌은 검은 것이 아니라 회색이다.

배급은 월 단위로 온다. 옥수수가루와 밀가루, 그리고 있는 달에는 분유.

한 여자가 배급표를 들고 왔다. 표에는 도장 찍는 칸이 열두 개고, 그해 것은 넉 달치가 비어 있었다. 재작년 것은 두 달, 작년 것은 석 달.

"안 오는 달은 왜 안 옵네까."

"길이 얼면 못 온다고 합디다."

"그럼 언 달에는 뭘 먹습네까."

여자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부엌 쪽으로 갔다. 오정민은 배급표의 빈칸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 1952년 2월, 3월. 1953년 1월, 2월, 12월. 1954년 1월.

스물세 가구 중에 나가지 못한 집이 열넷이고 나가지 않은 집이 아홉이었다. 오정민은 그 둘을 구분해서 적었다.

나가지 못한 집은 이유가 서류였다. 1951년 여름에 인구 등록을 할 때 그 마을은 명부가 두 번 작성됐고, 두 번 다 빠진 이름들이 있다. 이름이 없으면 남쪽 검문소에서 계수기 앞에 설 자격 자체가 없다. 한 노파가 자기 손자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여줬는데 그것은 1949년 국민학교 상장이었다.

나가지 않은 집은 이유가 각각이었다. 한 노인은 마당 끝을 가리켰다.

"내 아바지가 저기 있고 내 형이 저 뒤에 있소. 나 혼자 어드메로 갑네까."

"봄까지 배급이 안 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열두 개의 태양 37화 제51장 북에서 온 여자 — 전환컷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살디요."

노인의 손등에 마른버짐 같은 것이 번져 있었다.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노인도 모르고 오정민도 몰랐다. 그녀는 그것을 '손등에 흰 것'이라고만 적었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적지 않는 것. 그것이 종군기자 노릇을 하면서 그녀가 얻은 유일한 기술이었다.

특파원은 밖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아픈 사람을 찾았다. 머리가 빠진 사람, 잇몸에서 피가 나는 사람, 반점이 있는 사람. 이런 것이 실린다고 그가 말했다. 이런 것이 아니면 편집장이 지면을 안 준다고 했다.

오정민이 본 것은 다른 것이었다. 아이 넷이 담벼락 아래 나란히 앉아 있는데 넷 다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열량을 아끼는 몸은 논다는 것을 그만둔다. 그중 제일 큰 아이가 여섯 살쯤 됐고, 눈을 뜨고 있었고, 사진기를 봤는데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 마을에서 지난겨울에 죽은 사람이 아홉이었다. 노인 다섯, 아이 넷. 오정민은 아홉의 이름을 전부 물어서 적었다. 이름을 적는 데 이십 분이 걸렸는데, 두 사람의 이름은 마을에서도 확실치 않아서 물음표를 달았다.

지프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가 배동헌에게 물었다.

"이 구역이 대한민국 행정으로 넘어오면 배급이 늡니까."

배동헌은 한참 걸어가다가 대답했다.

"안 늡니더."

"그럼 왜 넘겨받으려고 하십니까."

"우리 손으로 굶기는 기 낫습니더."

그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 얼굴로 앞을 봤다. 오정민은 그 문장을 그대로 수첩에 적었다.


숙소는 안주의 여관이었다. 등잔 하나에 담요 두 장.

그녀는 첫 문장을 세 번 썼다.

첫 번째. '1951년 5월 29일 이후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는 아직 세지 않았다.' 지웠다. 결론은 첫 문장이 될 수 없다.

두 번째. '박천 북쪽 어느 마을의 부엌에는 재가 없다.' 남겨뒀다.

세 번째. '이곳에서 사람은 폭탄으로 죽지 않는다.' 이것은 셋째 줄에 놓기로 했다.

완성된 첫 단락은 이랬다. 박천 북쪽 어느 마을의 부엌에는 재가 없다. 불을 안 땐 지 오래되면 재도 없어진다. 이곳에서 사람은 폭탄으로 죽지 않는다. 배급표의 빈칸으로 죽는다.

그녀는 그 아래에 아홉 개의 이름을 적었다. 두 개에는 물음표가 붙어 있었고, 그녀는 물음표를 지우지 않았다.


나올 때 그녀는 배지를 반납했다. 두 달 뒤에 한 줄짜리 통지가 왔다. 판독 결과 특기 사항 없음. 숫자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 종이를 취재 수첩 사이에 끼워두고, 그 마을 사람들은 배지를 달지 않았다는 것을 그 아래 여백에 적었다.

기사는 4월에 미국 잡지에 실렸다. 사진은 특파원의 것이 쓰였고, 아이 넷이 앉아 있는 사진은 쓰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그녀는 세 군데를 돌았다.

첫 번째 신문사의 편집국장은 차를 내오게 하고 삼십 분을 이야기했다. 결론은 이랬다. "외신 전재로 나가면 우리 신문이 미국 잡지의 대변이 됩니다. 오 선생 글인데 우리 지면에서는 남의 글이 돼요."

두 번째 신문사에서는 문화부장이 원고를 두 번 읽었다. "지금 이게 나가면 이북서 내려온 사람들 취직이 더 어려워집니다. 나는 그 사람들 편이라서 이걸 못 싣습니다."

세 번째 신문사에서는 담당자가 원고를 받아 들고 서서 말했다. "지면이 없습니다."

"언제 생깁니까."

"글쎄요."

그녀는 그날 저녁 다방에 앉아 수첩을 펴고 세 줄을 나란히 적었다. 남의 글이 된다. 그 사람들이 다친다. 지면이 없다. 세 줄의 글씨 크기가 같아지도록 마지막 줄을 다시 썼다.


1954년 여름 ~ 1957년 · 오키나와 가데나, 그리고 아이오와 시더래피즈

인사계 사무실은 선풍기가 두 대였고 둘 다 왼쪽으로만 돌았다.

데커는 재입대 서류에 서명하러 갔다가 자기 인사 기록을 봤다. 인사계 병장이 표지를 넘겨 항목을 짚어주는 동안 그는 서서 그것을 읽었다. 1943년 입대. 1946년 전역. 1948년 재입대. 1949년 병기학교. 1950년 8월 괌. 1951년 3월 가데나.

1951년 5월 항목에는 여섯 글자가 있었다. 특수 임무 참가.

"이게 답니까."

"뭐가 말입니까, 상사님."

"오십일 년 오월."

병장이 목록을 다시 봤다.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안 들어와 있는데요. 훈장 상신도 없고, 징계도 없고요."

"됐어."

밖으로 나오니 활주로 쪽에서 엔진 시험을 하고 있었다. 노백이 담배를 붙이면서 물었다.

"뭐라고 씁디까."

"여섯 글자."

"여섯 글자에 뭘 넣습니까."

"특수 임무 참가."

노백은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나서 웃었다. 웃음이 짧았다.

"그럼 우리가 한 게 특수 임무입니까, 임무입니까."

"그건 인사계가 알겠지."

데커는 그것으로 그 이야기를 끝냈다. 노백은 두 번 묻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두 사람은 삼 년째 같은 반이었다.

데커는 그것으로 그 이야기를 끝냈다. 노백은 두 번 묻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두 사람은 삼 년째 같은 반이었다.

남은 7화 · 약 26,983자 · 약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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