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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제41장 끊어진 젖줄

· 44화 중 30화 · 3,895자 · 약 6분 · 무료

글자3 / 5

전보는 세 통이었다.

첫 통은 유월 스무닷새에 보냈다. 병력을 더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도하 기재, 공병 연대, 그리고 레일. 마오는 사흘 만에 답했다. 공병 두 개 연대를 보내겠다고 했고, 지구전의 방침을 견지하라고 했고, 적을 지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승리라고 했다. 레일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없었다.

열두 개의 태양 30화 제41장 끊어진 젖줄 — 헤더컷

둘째 통은 칠월 초순에 보냈다. 현 정면에서 공세를 중지하고 방어로 전환할 것을 건의한다고 썼다. 답이 오지 않았다.

셋째 통은 칠월 스무엿새에 보냈다. 그것을 쓰는 데 한 시간이 걸렸고 세 번 고쳐 썼다. 첫 판에는 병참선의 물리적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썼다가 지웠다. 둘째 판에는 병사들에게 돌아가는 양식이 하루 한 근에 못 미친다고 썼다가 그것도 지웠다. 그런 문장은 읽는 사람을 방어하게 만든다. 전 전선의 부대를 압록강 이북으로 물릴 것을 건의한다고 마지막 판에 적었다. 그것뿐이었다. 답이 오지 않았다.

팔월 셋째 날 참모장이 네 번째를 쓰자고 했다.

"세 번 썼으면 됐네."

"주석 동지께서 아직 보지 못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보셨어."

펑더화이는 이십 년을 그 사람 곁에 있었다. 주석이 무엇에 답하고 무엇에 답하지 않는지를 알았다. 답하지 않는 것은 대개 하라는 뜻이었고, 다만 그 이름을 문서에 남기지 말라는 뜻이었다.

작전과장이 오월의 손실 집계를 다시 올렸다. 팔만 오천에서 구만 사이. 폭이 오천이나 되는 것은 세는 사람이 세는 중에 죽기 때문이라고 작전과장이 변명처럼 덧붙였다. 그 안에 사단 하나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 포위된 채 사흘을 버티다가 오천 명이 손을 들었다.

"전선에 가서 병사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신는지 눈으로 보라고—"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그만두었다. 그 말을 해야 할 상대는 이 방에 없었다.


팔월 아흐레 밤, 그는 작전과장을 부르지 않고 직접 썼다.

등불을 하나만 켰다. 종이를 반듯하게 놓고, 붓을 적시고, 첫 줄을 썼다.

각 병단은 팔월 십오일 이십사시를 기하여 현 정면의 부담을 덜고 다음 선에서 방어 배치를 새로 갖춘다.

그는 붓을 내려놓고 그 줄을 다시 읽었다. 스물여덟 자였다. 그 스물여덟 자 안에 퇴각이라는 두 글자는 없었다. 철수도 없었고, 후퇴도 없었고, 강을 건넌다는 말도 없었다.

바깥에서 물소리가 났다. 밤새 비가 왔다.

그는 그 줄을 고치지 않았다.


1951년 6월 ~ 7월 · 모스크바 크렘린, 쿤체보 별장

공군 대표가 명단을 가져온 것은 새벽 다섯 시였다. 별장의 창밖에서 소나무가 희끄무레해지기 시작하는 시각이었고, 스탈린은 아직 자지 않았다.

"몇 장인가."

"넉 장입니다."

"읽게."

공군 대표는 첫 장을 들었다. 손이 종이보다 조금 더 떨렸다.

"오월 이십구일 랑터우 비행장. 자하로프,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대위. 천구백이십일년생. 랴잔주 출신. 제이십팔근위전투비행사단—"

"그만."

"예."

"몇 명인가."

"확인된 것이 백한 명입니다. 미확인이 더 있습니다. 랑터우와 다구산과 선양 세 곳을 합친 숫자이고, 조종사가 아홉이고 나머지는 정비병과 대공포 인원입니다."

"미확인이라는 건."

"찾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스탈린은 파이프를 물지 않고 손에 쥔 채로 탁자를 한 번 두드렸다.

"그 사람들 주머니에 뭐가 들어 있었나."

공군 대표가 잠깐 말을 찾았다.

"중국공산당 신분증입니다. 중국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군복도 중국 것입니다. 규정대로였습니다."

"그럼 죽은 건 누군가."

방 안에 사람이 넷 있었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군단장은 뭐라고 올렸나."

"보복 출격 허가를 요청했습니다. 사흘째 매일 올라옵니다."

"보복은 상대가 있어야 하는 거야. 상대에게 우리가 누군지 말해 줘야 하고." 스탈린은 파이프를 탁자에 눕혔다. "그 사람에게 답신을 보내게. 요청을 접수했다고만."

"승인이라고 읽을 것입니다."

"승인이라고 안 썼는데 그렇게 읽으면 그건 그 사람 잘못이지."


몰로토프는 오후에 왔다. 이 년 전에 그에게서 외무성을 거두어 갔는데도 그는 여전히 부르면 왔고, 여전히 서류를 다 읽고 왔다. 스탈린은 그 점을 좋아했고 그것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항의를 하려면." 스탈린이 말했다. "무엇부터 해야 하나."

"사실을 적시해야 합니다."

"어떤 사실을."

"오월 이십구일 만주에서 소비에트 시민이 사망했다는 사실입니다."

"거기까지 쓰면 그다음 줄은 뭐가 되나."

몰로토프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이런 문답의 규칙을 삼십 년 동안 배웠다.

"그들이 왜 만주에 있었는가를 써야 합니다."

"쓰면."

"군단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열여덟 달 동안 우리가 없다고 한 것을 우리 손으로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유엔에서 미국이 하는 말은 전부 우리가 만들어 준 것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 비행사가 격추한 미국 비행기 천 몇백 대의 책임이 우리에게 옵니다."

"천백 대라고 하던데."

"그것도 우리 숫자입니다."

스탈린은 종이 귀퉁이에 연필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베이징은 어떻게 되겠나."

"만주의 공업이 없어졌습니다. 철도도 세 군데가 끊겼습니다. 그들이 오 개년 계획을 세워 놓았는데 그 계획의 바닥이 안산과 번시였습니다." 몰로토프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앞으로 십 년 동안 그쪽에서 우리에게 요청할 것이 많아집니다."

열두 개의 태양 30화 제41장 끊어진 젖줄 — 전환컷

"많아지겠지."

"그것을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누구 견해인가."

"제 견해입니다."

스탈린은 연필을 놓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육군상을 부르게."

육군상은 저녁에 왔다. 스탈린은 그에게 두 개만 물었다.

"미국이 몇 발 갖고 있나."

"작년 말 추산으로 사백 발에서 사백오십 발 사이입니다. 올해 안에 더 늘어납니다."

"우리는."

육군상이 숨을 한 번 쉬었다.

"스물다섯 안팎입니다."

"실을 것은."

"투-4입니다. 미국의 B-29를 뜬 것이라 사거리도 그대로입니다."

"미국까지 가서 돌아오나."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럼 어디까지 가나."

"일본의 미군 기지까지 갑니다. 서유럽은 전부 사정 안에 들어갑니다."

스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거리를 늘 지도가 아니라 손가락으로 재는 사람이었다. 손가락이 닿는 곳에 있는 것이 일본과 서유럽뿐이라면, 그것을 치는 날 시작되는 것은 스물다섯과 사백오십 사이의 교환이었다.

"베이징에서 뭐라고 하나."

"공중 엄호를 늘려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육군상이 잠깐 멈췄다. "그 이상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엄호는 계속하게. 그 이상은 없네."


스톡홀름에서 온 전문은 유월 십사일 밤에 책상에 놓였다. 대사관 참사관이 미국 측 인사와 사적으로 만났다는 형식이었고, 실제 내용은 두 문단이었으며, 그중 스탈린이 세 번 읽은 것은 한 문장이었다.

미합중국 정부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영토 및 소비에트 부대에 대한 공격 의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오월 이십구일의 행동은 전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향한 것이다.

그는 그 문장을 손톱으로 짚어 내려갔다. 소비에트 부대. 그런 것은 만주에 없었다. 없다고 열여덟 달 동안 말해 왔으므로 없었다. 그러므로 미국이 공격 의도를 갖지 않았다고 말한 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미국은 그 문장을 쓰면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쪽이 그것을 알아볼 것도 알고 있었다.

스탈린은 전문을 몰로토프 쪽으로 밀었다.

"이건 답장을 요구하는 문장이 아니야."

"그렇습니다."

"뭘 요구하는 문장인가."

몰로토프가 안경을 고쳐 썼다.

"받으라는 것입니다."


유월 이십팔일, 스웨덴 주재 대사관으로 회신 지침이 나갔다. 문서에는 협의도, 승인도, 양해도 적히지 않았다. 조선 문제의 해결은 관계 당사국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문장 하나가 들어갔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성명은 내지 않았다. 신문에도 나가지 않았다.

같은 날 저녁 별장에서 그는 넉 장짜리 명단을 다시 꺼냈다. 스물아홉 줄이 한 장에 들어갔고, 마지막 장은 절반이 비어 있었다. 그는 첫 줄을 다시 보았다. 자하로프,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랴잔주. 랴잔은 모스크바에서 남동쪽으로 이백 킬로미터쯤이고, 오카강이 지나가고, 봄에 물이 넘친다.

그는 명단을 접어서 책상 오른쪽 두 번째 서랍에 넣었다. 서랍에는 열쇠가 있었고 열쇠는 그가 갖고 있었다.

"사인란은."

문 옆에서 보좌관이 수첩을 폈다.

"군단에서 올린 원안에는 전사로 되어 있습니다."

"고치게."

"어떻게 고칠까요."

"훈련 중 사고. 전부 같은 문구로. 유족에게 나가는 통지서도 같은 문구로."

보좌관이 받아 적었다. 연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두 번 났다.

"스탈린 동지, 통지서에 부대명을 적지 않으면 유족이 물어볼 것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죽었느냐고."

스탈린은 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유월 말의 모스크바는 밤이 짧아서, 열한 시가 되어도 소나무 위쪽이 아직 파랬다.

"그들은 거기 없었네."


1951년 9월 10일 ~ 30일 · 38선 이북, 신계·수안·중화 축

팻말은 이미 뽑혀 있었다.

내가 탄 지프가 그 자리에 닿았을 때 나무 기둥만 비스듬히 남아 있고, 널판은 앞서 간 트럭 어딘가에 실려 있었다. 병사 하나가 흙 묻은 손을 바지에 문지르며 지나갔다. 미 제1군단의 공병 표지를 단 트럭 두 대가 그 자리를 그대로 밟고 올라갔다.

"기념품." 콜린스 소령이 말했다. "삼 개월 뒤에 오하이오 어느 거실 벽에 걸려 있을 거다."

나는 시계를 봤다. 아홉 시 십사 분이었다.

이 선을 넘는 것은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여섯 해 전 겨울에 남쪽으로였고, 그때 나는 열아홉이었고 혼자였고 밤에 걸었다. 이번에는 낮이고, 앉아서 가고, 뒤에 사단 하나가 따라온다.

나는 무언가가 올라올 줄 알았다. 목이나 눈 쪽에서. 그런데 올라온 것은 다른 것이었다. 오늘 몇 개 마을을 지나는지, 통역이 몇 번 필요한지, 물을 어디서 채우는지. 나는 수첩을 꺼내 그날의 마을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트럭 위에서는 노래를 했다. 곡조는 알겠는데 가사는 반쯤 만들어 붙인 것이었고, 삼팔선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올 때마다 뒤 칸에서 발을 굴렀다. 짐칸 바닥이 북처럼 울렸다.

그날 저녁 상황판 앞에서 콜린스가 청색 화살표 세 개를 짚었다. 서쪽이 미 제1군단, 가운데가 제9군단, 동쪽 끝의 것이 백선엽 소장의 국군 제1군단이었다. 화살표 셋의 길이가 하루 사이에 다 늘어나 있었다.

"오늘 우리 전면에서 접적이 몇 번이었는지 아나."

"모릅니다."

"두 번. 한 번은 낙오병 넷이고 한 번은 지뢰다." 그는 연필 끝으로 판을 톡톡 쳤다. "작년 시월에는 이 축선에서 하루에 열댓 번씩 붙었다."

'두 번. 한 번은 낙오병 넷이고 한 번은 지뢰다.' 그는 연필 끝으로 판을 톡톡 쳤다. '작년 시월에는 이 축선에서 하루에 열댓 번씩 붙었다.'

남은 14화 · 약 51,619자 · 약 7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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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태양전 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