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8부 불씨
44화제61장 인제 가는 눈길
저녁에 아이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아궁이에 불이 있고 등잔이 있어서 그랬다. 집에 가면 등잔을 못 켠다고 했다. 여섯이 남았다가 아홉이 되었고, 나중에는 열일곱이 다 방에 있었다. 어른들도 말리지 않았다.

영선은 공책을 폈다. 이것은 학교가 아니고, 이 시간에 하는 일에는 이름이 없다. 명부도 없고 교안도 없고 시간표에도 들어 있지 않다. 구장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경성에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쓸 데가 없었다.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도 학무과의 서류 한 장과 이 마을 사람들뿐이다.
"이거." 그녀가 주전자를 들었다.
"주전자."
"이거."
"문지방."
그녀는 소리 나는 대로 가타카나로 적었다. チュジョンジャ. ムンジバン. 적어 놓고 읽으면 아이들이 웃었다. 웃고 나서 다시 고쳐 주었다. 고쳐 준 것을 다시 적고, 다시 읽고, 또 웃었다.
맞지 않는 소리가 자꾸 나왔다. 아이들이 내는 소리 중에는 가나에 없는 것이 있었다. 있는 것으로 가장 가깝게 적어 놓으면 그것은 이미 다른 말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걸 알고 웃는 것이었다.
"선생님, 그거 말고요."
"어떻게 쓰면 돼요."
아이들이 서로 보았다. 열일곱 명 중에 조선 글자를 아는 아이는 없었다. 이 마을에는 그 글자를 아는 사람이 셋 있는데 셋 다 예순이 넘었고, 아이들은 그 노인들이 무엇을 아는지 모른다.
등잔 심지를 올렸다. 방이 조금 밝아졌다.
한 아이가 자기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눈."
영선이 적었다.
그때 오길남이 문 쪽으로 손을 뻗어 밖을 가리켰다. 마당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
"같은 말이에요?"
아이들이 서로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길남이 두 번 다시 말해 주었다. 한 번은 짧고 한 번은 조금 길었다. 영선은 두 번을 다 들었고 차이를 듣지 못했다.
그녀는 공책에 한 번만 적었다.
ヌン
1965년 12월 31일 밤 · 종로 6정목 자택
재숙이 라디오 앞에 배를 깔고 누워 다이얼을 돌렸다.
상중(喪中)이니 아무 데도 가지 말라고 어머니가 아침에 말했다. 재숙은 아무 데도 가지 않았고, 대신 여덟 시부터 라디오를 켜 놓고 있었다. 전화국 동무들이 명치정에 모인다고 했다는 말을 두 번 했고, 두 번 다 대답을 듣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랫목에서 삯일을 했다. 남의 집 아이 저고리 소매를 달고 있었다. 상중에 바느질을 해도 되느냐고 재숙이 물었을 때 어머니는 그런 걸 따질 형편이 아니라고 했다.
열 시부터는 한 해를 돌아보는 순서였다.
아나운서가 월별로 읽었다. 봄에 총리가 다녀갔고, 유월에 제국의회가 폐회했고, 팔월에 게르마니아에서 무슨 회의가 있었고, 시월에 남양에서 어떤 배가 진수했고, 십일월에 어(御) 즉위 사십 년 봉축 대전이 반도 각지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다고 했다. 남산 이야기가 나올 때 재숙이 몸을 일으켰다.
"그날 우리 나왔을까요, 화면에?"
"앞줄만 찍었다."
"그래도 몰라요."
십이월 항목은 짧았다. 독일이 달 뒤쪽 사진을 다시 보내왔다는 것과, 내지의 새 다리가 개통했다는 것이었다. 조선에 관한 것은 십일월에서 끝났다. 사람 이름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열한 시가 넘자 방송이 도쿄로 넘어갔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갑자기 넓은 데서 나는 소리로 바뀌었다. 절 마당이었다. 사람 소리가 멀리 깔려 있고 발밑에서 자갈 밟는 소리가 났다. 종을 치는 순서를 설명하고, 백여덟 번을 친다고 설명하고, 그다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첫 번째 종이 울렸다.
이 방에서 듣는 소리와 그 절 마당에 서 있는 사람이 듣는 소리 사이에 시차가 없다. 이 나라의 시계는 그 나라의 시계와 같은 시각을 가리킨다. 열두 시가 되면 여기서도 열두 시고 거기서도 열두 시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랬고 나는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두 번째 종이 울렸다. 여운이 길었다.
"어머니."
재숙이 라디오 소리를 조금 줄였다.
"할머니가 마지막에 자꾸 하시던 말 있잖아요. 그거 무슨 뜻이에요?"
어머니의 손이 멈췄다. 바늘이 천 위에 그대로 있었다.
"뭐라고 하시던."
"제영아, 인지 재영아, 인지. 계속 그러셨어요. 저녁마다요." 재숙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무슨 소린가 했는데 물어볼 데가 없어서."
"그건 뜻이 없다."
"없어요?"
"이름이다."
재숙이 어머니를 보았다.
"네 오빠 이름이야."
"오빠는 다케히코잖아요."
"호적에 그렇게 올렸지." 어머니가 바늘을 뽑아 천 끝에 꽂았다. "집에서는 재영이라고 불렀다. 네가 나기 전에. 그러다가 그 애가 학교 가고, 그다음에 영장 나오고 하면서 안 부르게 됐다. 할머니만 끝까지 그렇게 부르셨어."
재숙은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는요?"
"뭘."
"저도 그런 게 있어요?"
"재숙이."
재숙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그러고는 웃었다. 웃는데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저를 그렇게 부른 사람이 있어요?"
"할머니가 그러셨다. 너 업고 다니면서."
"저는 한 번도 못 들었는데요."
"들었지. 열아홉 해 들었어." 어머니가 소매를 뒤집었다. "무슨 소린지 몰랐던 거지."
재숙이 그 말을 받아 뭐라고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애는 입술을 몇 번 움직였다. 재숙, 하고 소리 내지는 않았다. 오빠라고 부를 때, 어머니라고 부를 때, 국(局)에서 제 이름이 불릴 때, 그 애가 아는 소리는 스미코 하나였다. 열아홉 해 동안 그 애 앞에서 사람들은 그 애를 한 가지로만 불렀고 다른 하나는 저 노인의 입에만 있었다.
라디오에서 종이 또 울렸다. 몇 번째인지 나는 세지 않고 있었다.
"그다음 말도 있었어요." 재숙이 말했다. "이름 부르고 나서 꼭 뭐라고 더 하셨는데. 짧은 거."
어머니가 소매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여기 있다."
"여기 있다."
"그거 아니야."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요기, 가 아니고."
재숙이 다시 했다.
"여기 이타."
"여기까진 됐다. 뒤엣것이 아니야. 혀를 여기다 붙여." 어머니가 제 아랫니 뒤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붙였다가 세게 떼야 돼. 있다."
"이따."
"있다."
"이따."
"세게. 처음부터 세게."
재숙이 입을 다물었다가 열었다. 손등으로 제 입 앞을 한 번 짚어 보았다. 전화국에서 배운 버릇이다. 교환수는 제 발음이 상대에게 어떻게 가는지를 늘 신경 쓴다. 하루에 삼백 번씩 번호를 또박또박 읽는 아이인데 그 아이가 두 음절에서 막혀 있었다.
그 애가 그렇게 열심히 무엇을 하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어머니, 이게 무슨 뜻이에요?"
"있다는 말이다. 여기 있다는."
"누가요?"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소매를 다시 무릎에 놓았다.
방 안이 조용했고 라디오만 울렸다.
나는 일어나 건넌방으로 갔다.
아버지가 쓰던 방이다. 책상은 그대로 있고 그 위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나는 반닫이에서 옮겨 온 공책 열네 권을 그 책상 밑에 두었다. 어머니가 옮기지 말라고 하지 않았으므로 옮겼다.
첫 권을 꺼내 폈다.
한 면에 마흔 줄. 줄마다 책 이름이 있고 쪽이 있고 줄 번호가 있고, 그다음이 있다. 나는 서른아홉을 읽고 하나를 못 읽는다. 이것을 스무 장 넘게 넘겼다.

열아홉 해 전 이 집에 아이가 하나 태어났을 때 나는 여덟 살이었다. 열 살에는 그 애를 업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마루에서 업고 마당을 돌았다. 그때 나는 그 애에게 말을 가르쳤다. 하늘, 이라고 했고 재숙이 따라 했다. 그것은 국어였다. 나는 아는 말로 가르쳤고 그것 말고 다른 말로 가르칠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마루 끝에 앉아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그때 한마디 했으면 되는 일이었다. 저 아이한테는 이 말로도 가르쳐라, 하고. 그 한마디를 안 한 것이 그 노인의 무슨 판단이었는지, 아니면 판단 같은 것이 아예 없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손자가 마당을 돌며 아이를 업고 있는 것이 보기 좋아서 그냥 보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나는 지금 그 마루 끝을 생각하고 있고, 거기 앉아 있던 사람에게 물어볼 것이 하나 생겼는데, 물어볼 데가 없다. 석 달 전이면 있었다.
이 집에서 그 말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이제 하나 남았다. 그 사람은 스무 해 넘게 남의 집 저고리 소매를 달았고, 오늘 밤에도 달고 있고, 내가 묻지 않으면 먼저 말하지 않는다.
문 너머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났다. 다시 한번 해 봐라.
공책 위에서 내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등잔불이 종이에 노랗게 얹혀 있었다.
그리고 재숙의 목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걸리지 않았다.
"여기 있다."
1966년 1월 1일 아침 · 경성 황금정 4정목 → 종로 6정목 자택
골목마다 대문에 기가 걸려 있었다.
집집이 하나씩, 같은 크기로, 같은 높이에. 어젯밤 반장이 명부를 들고 한 바퀴 돌면서 확인했을 것이다. 우리 집 것은 재숙이 걸었다. 상중이라도 그것은 걸어야 한다고 어머니가 말했고 아무도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일곱 시에 나왔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종로는 비어 있었다. 전차가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녔고, 정류장 나무 의자에 노인 둘이 앉아 있었다. 지나가면서 말이 들렸다. 조선말이었다.
"백범이 아직 산다더라."
"어디서."
"사천(四川) 어디라던가."
"죽었어. 신문에 났잖나. 십이 년 됐다."
"신문에 났으면 죽은 건가."
둘 다 웃었다. 웃음이 짧았고 그다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앞을 지나갔다. 저 이야기는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십 년 뒤에도 저 자리에 저만한 크기로 있을 것이다. 그 크기가 커지지 않는다는 것이 저 이야기의 성질이다.
어느 집 창문에서 라디오 소리가 났다. 신년 봉축 방송이었다. 아홉 시에 궁성요배를 한다는 안내가 두 번 나왔고, 그사이에 곡이 흘렀다.
작년까지 사십 년이었다. 오늘부터 사십일 년이다. 그것뿐이었다. 자정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어제와 오늘 사이에 무엇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세는 수가 하나 올라갔다.
황금정 사정목에 인쇄소가 있다.
간판은 그대로 있었다. 상호 밑에 활판·명함·전표라고 작게 적혀 있다. 셔터가 내려져 있고 그 위에 정월 휴업 종이가 붙어 있었다. 사흘 쉰다고 적혀 있었다. 사흘 뒤에는 이 셔터가 올라갈 것이고 활자를 뽑는 사람이 하나 더 들어올 것이다.
박두환은 십일월 십팔일에 서대문 병감에서 죽었다. 급성 폐렴이라고 적혔다. 스물여덟이었다. 인수인이 없어 무연고로 처리되었다. 나는 그것을 이레 뒤에 들었고, 그때 나는 아직 안에 있었다.
셔터 앞에 서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성냥을 그었고 바람이 없어서 한 번에 붙었다. 셔터 밑으로 기름 냄새가 조금 나왔다. 인쇄소는 문을 닫아도 그 냄새가 난다.
봄에 한 번 여기 왔었다. 그때 두환은 케이스 앞에 서서 활자를 뽑고 있었다.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고, 뽑으면서 나한테 말을 했고, 말하면서도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저 케이스에 조선 글자는 한 칸도 없다. 스물두 해 전에 활자를 못 만들게 했으니까 없는 게 당연하고, 없는 것을 두환은 매일 열 시간씩 들여다보았다.
두환이 나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있다. 나는 그것을 아직 반박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못 할 것 같다.
담배를 밟아 끄고 걸었다.
세 집 건너에 고물상이 있었다.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아래쪽 이십 센티쯤이 녹슬어 있고 그 녹이 셔터 홈을 따라 가로로 번져 있었다. 문 옆에 손수레가 세워져 있고 짐칸에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어제 온 눈이 밟히지 않은 채였다.
나는 그 앞을 지나갔다.
집에 오니 재숙이 마루에 올라서서 달력을 갈고 있었다.
미곡상에서 준 것이라고 했다. 위쪽에 후지산 사진이 있고 그 아래 큰 글씨가 있었다. 昭和四十一年.
작년 것을 못에서 빼서 내렸다. 못은 그대로 두고 새것을 그 못에 걸었다. 못 자리가 딱 맞았다.
"오빠, 어디 갔다 왔어요?"
"걸었다."
"세배 안 가요?"
"상중이다."
"아, 맞다." 재숙이 달력 아래를 손바닥으로 폈다. "저는 사일부터 나가요. 정월엔 전화가 많아요. 신년 인사한다고 다들 걸어서."
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안방으로 들어가 어머니 앞에 앉았다.
"어머니. 저 좀 가르쳐 주십시오."
어머니가 나를 보았다. 무엇을, 이라고 묻지 않았다. 잠깐 그대로 있다가 일어나 반닫이 문을 내렸다.
맨 밑에서 나무 필갑이 나왔다. 뚜껑을 미는 식이었고 옻칠이 벗겨져 있었다. 안에 붓 한 자루, 먹 반 토막, 손바닥만 한 벼루가 있었다. 붓끝이 닳아 뭉툭했다.
"이게 여기 있었습니까."
"그이 책상에 두면 안 되는 거였다."
어머니가 주전자에서 물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먹을 갈았다. 오래 갈았다. 먹 가는 소리가 방 안에서 유일한 소리였다. 밖에서는 아무것도 타지 않았고 아궁이는 새벽에 한 번 땐 뒤로 조용했다.
나는 열네 번째 공책을 가져와 폈다.
글씨가 있는 마지막 면. 열두 줄. 열두 번째 줄의 마지막 획이 오른쪽 아래로 흘러 있었다. 그 장을 넘겼다.
빈 면이었다. 줄도 그어져 있지 않았다.
"오늘은 하나만 해라." 어머니가 말했다.
붓을 쥐었다. 쥐는 법을 모르니 만년필처럼 쥐었고 어머니가 손가락 위치를 두 번 고쳐 주었다. 그러고 나서 내 손등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손이 찼다. 그리고 무거웠다. 스무 해 넘게 남의 집 저고리 소매를 단 손이어서 손끝이 굳어 있었고, 검지 옆이 골무에 눌려 납작했다.
이 손이 열네 권을 반닫이 밑에 넣고 그 위에 실패 상자를 얹었다. 시월 초하루 저녁에 순사들이 이 방까지 들어왔을 때도 이 손이 그 궤 앞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여기 없었다.
"동그라미."
붓이 갔다. 동그라미가 되지 않고 한쪽이 터졌다.
"됐다. 그 오른쪽에 내리긋기. 위에서 아래로, 길게."
내렸다.
"그 둘 밑에다, 사람 인 자처럼 생긴 걸 두 개. 나란히 붙여서."
두 개를 놓았다. 두 번째 것이 첫 번째보다 컸다.
"한 칸 띄고. 이번엔 가로로 하나 긋고, 왼쪽 끝에서 아래로 내리고, 밑에서 다시 가로로."
세 번에 나누어 놓았다. 모서리가 둥글게 되었다.
"그 오른쪽에 내리긋기 하나. 그 가운데쯤에 짧게 하나 붙이고."
손을 놓았다.
종이에 자국이 생겨 있었다. 두 덩어리였다. 앞 덩어리가 뒤 덩어리보다 크고 아래로 처졌고, 먹이 첫 획에 몰려서 거기만 진했다.
"이게 뭡니까."
"있다."
나는 그것을 오래 보았다. 열네 권에 삼만 천사백 개가 들어 있고, 그중 하나도 나는 읽지 못한다. 지금 이 면에는 하나가 있고 그것은 읽는다. 읽는 게 아니라 방금 만들었으니까 아는 것이다.
"아버지가 처음 넣은 게 이겁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이는 순서 얘긴 안 했어."
나는 낱말 오른쪽으로 한 칸을 비웠다.
아버지의 공책에서는 줄 머리에 책 이름이 오고, 쪽이 오고, 줄 번호가 오고, 끝에 낱말이 왔다. 나에게는 책이 없다. 쪽도 없고 줄 번호도 없다. 있는 것은 낱말 하나와 그 옆의 빈자리뿐이다.
"어머니. 여기다 뭘 씁니까."
"뭘 쓰다니."
"이 낱말을 어떻게 쓰는지, 그걸 알려면 뒤에 뭐가 하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문장 같은 거요."
어머니가 벼루 쪽으로 손을 뻗어 붓을 먹에 적셔 주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 빈자리를 짚었다.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불러 주었다.
"여기 있다."
문가에서 소리가 났다. 재숙이 사기그릇을 들고 서 있었다.
"뭐 해요?"
"아무것도 아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재숙은 들어오지 않았다. 문지방 밖에 그대로 서서 우리 손을 보고 있었다. 그릇에서 김이 올라와 그 애 턱 밑에서 흩어졌다. 잠깐 있다가 부엌으로 돌아갔고, 부엌에서 그릇 놓는 소리가 나고, 그다음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애가 부엌에 그대로 서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방금 배운 것을 앞에 놓고 나머지를 흉내 냈다. 앞 두 칸은 새 모양이라 어머니가 다시 손을 얹었고, 뒤 두 칸은 아까 것과 같아서 혼자 놓았다. 마지막 획에서 붓끝이 갈라져 자국이 두 갈래로 났다. 고치지 않았다.
먹이 마르지 않아서 나는 그 장을 덮지 않았다.
먹이 마르지 않아서 나는 그 장을 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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