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7부 남은 자들
39화제54장 교원 명부
복도로 나오니 3학년 2반 교실 문 앞에 아이가 하나 서 있었다.
오길남이다. 구레하라 요시오. 3학년 2반 출석부 열한 번. 봄에 이 아이는 두 달 동안 교실에서 입을 벌리지 않았다. 학교는 그 애를 언어 지체로 분류해 두었고 분류가 바뀐 적은 없다.

아이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선생님, 인차 갑니까."
조선말이었다.
인차라는 낱말을 그녀는 몰랐다. 넉 달 동안 대역란을 외우면서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말이다. 그러나 갑니까는 알아들었고, 아이가 자기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녀는 대답을 만들었다. 머릿속에서 두 번 세워 보고 입으로 냈다.
"나는 다시 아니 온다."
아이가 그녀를 보았다. 잘못 들은 얼굴이 아니라, 틀린 것을 들은 얼굴이었다.
"다시 안 와요." 아이가 말했다.
"다시 안 와요."
"예."
아이는 그러고 나서 교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안에서 다음 시간 인사 소리가 났다. 전부 국어였다.
그녀는 짐을 든 채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넉 달 동안 그녀가 배운 것은 낱말 몇백 개와, 교본 다섯 권의 대역란에 숨어 있던 스물세 개다. 그것을 찾아냈을 때 그녀는 자기가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붉은 연필로 표시를 하고 옮겨 적었다.
방금 이 아이는 그 낱말을 하나도 모르는 채로, 집에서 쓰던 말로, 그녀의 문장을 고쳤다. 그녀가 넉 달을 들여 만든 문장이 틀렸고 아이가 두 마디로 바로잡았다.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알 방법이 없다. 학교는 그 애를 말이 늦은 아이로 적어 두었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밥상 앞에 앉아 있었다.
최정규는 저녁을 늦게 먹는 사람이 아니다. 여섯 시에 상을 받고 일곱 시에 라디오를 켠다. 오늘은 상을 받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앉아라."
그녀는 앉았다. 국이 식어 있었다.
"학무과에 갔다 왔지."
"예."
"파면으로 나왔을 게다. 사유는 품위 어쩌고 하는 걸로."
밥그릇 뚜껑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았다.
"너는 안 잡혀갔다." 아버지가 말했다. 성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설명하는 목소리였다. "그 집 부자는 둘 다 들어갔고 너는 학교만 그만두면 된다. 그 차이가 어디서 나는지 아느냐."
"……."
"네 책상 위에 있던 책. 팔월에 내가 봤다."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부회 의원 명함은 그런 데 쓰는 거다. 나중에 가면 공범이 되고 먼저 가면 상담이 돼. 나는 네 이름은 대지 않았다. 한 자도 안 댔어."
식은 국 위에 기름이 굳어 얇은 무늬로 떠 있었다.
"내가 열아홉에 쌀 다섯 가마로 시작했다. 이 집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너는 모른다. 나는 사람 보는 법을 안다. 그 편수관은 잡히게 돼 있었어. 이번이 아니면 다음이었다. 그러면 네 이름은 그 옆에 저절로 붙는 거야."
그의 손이 상 위에 놓여 있었다. 손등에 검버섯이 두 개 있고, 왼손 약지 마디가 굽어 있다. 어릴 때 그녀는 그 굽은 마디를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된다." 아버지가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된다."
숨을 들이쉬었더니 갈비뼈 안쪽 어디가 걸렸다. 그녀는 그것이 다시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아버지가 숟가락을 들었다.
"먹어라. 식는다."
그녀는 일어섰다. 아버지가 무어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창씨명이었는지 본명이었는지 나중에 생각나지 않았다. 마루를 지나 댓돌 앞에서 구두를 신었다. 왼쪽을 신고 오른쪽을 신었다. 끈을 매는 데 손이 두 번 미끄러졌다.
대문을 열었다. 십일월의 찬 것이 얼굴에 왔다.
문지방을 넘으면서 그녀는 낮에 배운 문장을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다시 안 와요."
1965년 11월 18일 · 서대문형무소 제3사, 병감 앞 복도
아침 점호는 여섯 시 반이다.
방마다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방장이 인원을 복창한다. 육 명. 팔 명. 오 명. 복도 끝에서 간수부장이 그것을 받아 적고 사(舍) 총계를 소리 내어 부른다. 나는 마흔엿새 동안 그 숫자를 들었다. 백스물셋일 때가 많았고 사람이 들고 날 때마다 하나씩 오르내렸다.
그날 아침에 부른 숫자는 백열아홉이었다.
전날은 백스물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는 셀 것이 그것밖에 없다.
숫자가 하나 줄면 누가 나갔거나 누가 옮겨 갔거나 누가 죽은 것이다. 셋 중 어느 것인지 숫자는 알려 주지 않는다. 장부에는 그 셋이 각각 다른 칸에 적힐 것이다. 복도에서 소리 내어 부르는 것은 총계뿐이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수부장은 숫자를 부르고 장부를 덮었다. 배급 부정이 무릎을 폈고, 절도가 하품을 했고, 이유 없음은 이불을 세 번 접어 각을 세웠다.
지난 열흘 동안 나는 한 번도 불려 가지 않았다.
십월에는 닷새에 한 번꼴로 호송차를 탔다. 조서에 무인을 찍은 뒤로 그것이 끊겼다. 처음 며칠은 편했고 그다음에는 편하지 않았다. 부르지 않는 것도 그들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열흘 동안 나는 그들이 나에 대해 무엇을 결정하고 있는지 짐작해 보았고, 짐작이 하루에 두세 번씩 바뀌었다.
십일월이 되면서 아침에 마루가 차다. 밤에는 세 사람이 붙어 자게 된다.

그날 우리 방 당번이 나였다.
당번은 아침에 물통과 변기통을 들고 복도 끝 수채까지 간다. 왕복 두 번이다. 두 번째로 가는 길에 병감 쪽 철문이 열렸다.
들것이 나왔다.
앞뒤로 잡역부가 하나씩 들었고, 그 뒤에 흰 완장을 두른 의무보조원이 서류철을 들고 따라 나왔다. 들것 위에 홑이불이 덮여 있었는데 길이가 짧았다. 발이 나와 있었고, 이불을 위로 당겨 놓아서 얼굴은 덮여 있지 않았다.
지나갈 때 나는 벽 쪽으로 붙어 섰다. 그것이 규칙이다.
박두환이었다.
왼쪽 눈이 감겨 있지 않았다. 붓기가 빠져서 얼굴은 처음 봤을 때보다 작았다. 위 눈꺼풀이 반쯤에서 멈춰 있는 것이 그대로였다. 오른쪽 눈은 감겨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달 전 복도에서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 두 개가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얼굴이다.
잡역부의 고무신이 젖은 바닥에서 두 번 찍찍 소리를 냈다. 뒤쪽 사람이 키가 작아서 들것이 발 쪽으로 기울었다. 홑이불 자락이 한 번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들것이 네 걸음 지나갔다. 그동안 나는 물통을 들고 있었다.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 사람은."
의무보조원이 걸음을 늦추었다. 늙은 조선 사람이었다. 그도 수인이다.
"어젯밤에 갔소. 열이 사흘 갔지."
"병명이 뭡니까."
그가 서류철을 열어 보여 주었다. 보여 줄 이유가 없는데 보여 주었다. 병감 진료부 사본이다. 병명란에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급성 폐렴.
"십일월에 폐렴이 흔하오." 그가 말했다.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저 사람 몇 살이오." 그가 물었다.
"스물여덟입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철을 닫았다. 표지에 그날 날짜가 도장으로 찍혀 있었다. 십일월 십팔일.
복도 끝에 간수가 있었다. 나는 물통을 내려놓고 그쪽으로 갔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뭐야."
"방금 나간 사람 말입니다. 시신 인수인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간수가 나를 보았다. 스물 몇 살쯤 되는 사람이다.
"무연고는 형무소에서 처리한다."
"제가 인수하겠습니다."
"뭐?"
"저 사람 친구입니다. 대학 동기입니다."
간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규정을 말했다. 그가 규정을 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는 것이라는 게 목소리로 알렸다.
"미결수는 인수인이 못 된다. 신분이 없으니까. 가족이 있으면 가족이 하고, 없으면 형무소가 화장해서 공동묘지에 묻는다. 절차는 다 있어."
"제가 나가서 하면 안 됩니까."
"언제 나가는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물통 가지고 들어가."
방에 들어가자 이유 없음이 자기 이불을 반쯤 밀어 놓았다. 마루가 찬 자리를 덮어 준 것이다.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를 보지도 않았다.
낮에 차입이 들어왔다. 솜저고리 한 벌. 인수증 물품란에 어머니 글씨가 있고, 아래 반송란에 다른 글씨로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지물(紙物) 일 점. 규정 불허.
무엇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종이라는 것만 안다.
오후에 방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도항 위반이 나에게 무슨 말을 걸었는데 무슨 말인지 듣지 못했다. 창살 그림자가 마루를 지나 벽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벽 중간쯤 왔을 때 나는 세기 시작했다.
총독부 발행물 마흔한 종. 그 안에 심어 놓은 표제어 삼만 천사백 개. 흩어져 있고 목록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서고 제3열의 상자 스무 개. 지금은 압수품이다. 흥남 마루 밑의 원고지. 그것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 있었고 그 사람은 늙고 병들었다. 그리고 활자. 조선에 한글 활자는 없다.
넷이 만나야 한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넷을 다 아는 사람이 조선에 몇 명인지 세어 보았다. 아버지. 배 선생. 어머니는 얼마나 아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
언제 나가는데, 하고 간수가 물었다. 나무라려고 한 말이 아니다. 그냥 물어본 것이다.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담장 안에 하나도 없다. 대답을 가진 사람들은 별관에 있고, 그들은 급할 이유가 없다.
나가는 방법이 몇 가지인지도 세어 보았다.
세어 보니 많지 않았다.
두환은 아무것도 안 만들었다고 했다. 이십 대를 안 만드는 데 다 썼다고 했다. 그 사람은 이제 없고, 그 사람이 안 만든 것은 원래 없었으니까 여전히 없다. 남은 것은 그가 나에게 한 말뿐인데, 그 말도 종이에 적힌 데가 없다. 내가 죽으면 그 말도 없어진다.
복도에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마흔 초 동안 내가 한 말은 두환아, 두 번이 전부다. 그 이름을 두 번 부르고 끝났다. 그는 나를 부를 때 창씨명을 쓰지 않았다.
나는 벽 쪽으로 돌아앉았다.
아래쪽 구석, 마루와 만나는 자리. 동그라미 하나와 옆으로 그은 선 둘. 마흔엿새 동안 밤마다 손끝으로 따라간 자리다.
오른손 엄지손톱을 홈에 대고 눌렀다. 회벽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힘을 주면 손톱이 옆으로 미끄러진다. 그래서 짧게 여러 번 긁었다. 가루가 조금씩 났다.
소리는 아주 작았다. 두 번에 한 번은 미끄러져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소리는 아주 작았다. 두 번에 한 번은 미끄러져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남은 5화 · 약 20,249자 · 약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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