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3부 쇼와 사십년
14화제18장 우리 집의 세 가지 말
집에 돌아오니 스미코는 자고 아버지 방에는 불이 없었다.
건넌방 문틈으로 등불빛이 새어 나왔다. 할머니는 아직 앉아 계셨다. 등을 지고 앉아서 무릎 위에 손을 얹고 계셨는데, 아무도 없는데 낮은 소리로 뭐라고 하고 계셨다. 나는 문 앞에 서서 들었다. 절반은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들은 것은 맨 끝의 다섯 자였다.

"그래. 그러면 됐다."
1965년 3월 21일 · 경성 노량진, 조선호국신사 춘계 위령제
강바람이 참배로 자갈 위로 곧장 불어왔다. 앞줄 여자들의 치맛자락이 한꺼번에 같은 쪽으로 눕고, 흰 종이로 감은 유족 기장이 가슴에서 파닥거렸다. 어머니는 왼손으로 기장을 눌러 잡고 계셨다.
노량진 정류장에서부터 사람이 밀렸다. 임시 전차가 아침에만 여섯 번 더 들어온다고 했는데도 그랬다. 언덕을 올라가는 길 양쪽에 국민복이 두 줄로 서서 방향을 가리켰고, 중간중간 소학생만 한 아이들이 어른 손에 끌려 올라갔다. 신사는 이 언덕에 열아홉 해 전에 앉았다. 돌계단은 아직 모서리가 살아 있고 배전 기둥의 나무 색도 밝다. 오래된 것처럼 보이려고 지은 새 건물이라는 인상이 있다.
경내 오른쪽 천막에 유족 관계 창구가 셋 나와 있었다. 연금 수속, 주소 변경, 합사 증명 재발급. 세 줄이 다 길었다. 줄에 선 사람들은 대개 봉투를 손에 들고 있었고 봉투 겉에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우리 차례는 일곱 번째 대열이었다. 대열마다 앞에 팻말이 서 있고 팻말에는 연도가 적혀 있다. 쇼와 29년.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삼백 몇 명이라고 붙어 있었는데 자갈에서 올라오는 먼지 때문에 뒷자리 숫자는 보이지 않았다.
배전 앞에서 신관이 축사를 읽었다. 오래 읽었다. 자갈을 밟는 소리가 사방에서 조금씩 났다. 여자들이 발을 바꿔 디디는 소리였다. 그다음이 호명이었다.
흰 장갑을 낀 사관이 명부를 펴고 소리를 냈다.
"가네다 마사오. 마쓰야마 겐이치. 도요카와 노보루. 야스모토 다케히코."
이름이 하나 불릴 때마다 대열 어디선가 한 사람씩 고개가 숙여진다. 어머니 어깨가 숙여지는 것이 내 팔꿈치 옆에서 보였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숙이고 계셨으므로 변화가 없었다.
호명은 삼십 분 넘게 계속됐다. 가네다, 마쓰야마, 도요카와, 히라야마, 가나모토, 아라이, 오야마, 신하라. 전부 성이 두 자였고 전부 국어였다. 이름을 다 부르고 나서 사관이 명부를 덮었을 때, 나는 그 안에 조선 이름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알아챌 것이 없었다. 명부에는 호적에 적힌 대로 적힌다.
김성일 중장의 훈시가 있었다.
조선인으로 육군 중장까지 간 사람은 둘뿐이고 그중 하나가 저 사람이다. 유족 대열 사이에서 그 이야기가 낮게 오갔다. 예순일곱이라고 들었는데 등이 곧았다. 단상에 올라가서도 원고를 꺼내지 않았다.
"제군의 아들은 국경에서 죽었습니다. 이만의 겨울은 영하 삼십 도입니다. 나는 그 초소에 가 본 일이 있습니다."
말을 끊는 자리가 조금 이상했다. 문장의 끝이 아니라 조사 앞에서 한 번씩 쉬었다. 국어를 나중에 배운 사람들에게 남는 버릇이다. 아버지도 가끔 그렇게 하신다.
"길은 열려 있습니다. 나는 의주에서 났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국은 피를 묻지 않고 공을 묻습니다. 제군의 아들은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인으로 죽었습니다. 그것이 이 신사가 제군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박수는 없었다. 유족 대열에서는 박수를 치지 않는다. 앞줄의 늙은 남자 하나가 고개를 계속 끄덕이고 있었는데, 훈시가 끝난 뒤에도 한참을 더 끄덕였다.
내 뒤에서 두 여자가 낮게 말을 주고받았다.
"저이 아들은 어디 있대요."
"저이는 아들이 없다지 아마."
"그럼 저 자리에 왜 서요."
"서라니까 서지."
단상에서 내려온 중장은 유족 대표 넷과 차례로 악수를 했다. 손을 잡을 때마다 상체를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그다음에는 참모들과 함께 옆문으로 나갔고, 자동차가 언덕 아래에서 두 번 경적을 울렸다.
합사전 안은 어두웠다.
위패가 벽 세 면에 층층이 꽂혀 있고 촛불은 앞줄에만 있다. 뒤쪽으로 갈수록 나무 색이 검어진다. 유족은 한 번에 스무 명씩 들어가 자기 자리 앞에 삼십 초쯤 서 있다가 나온다. 신관 보조가 옆에서 손바닥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형의 것은 왼쪽 벽 네 번째 단, 끝에서 여섯 번째였다.
安本武彦
먹글씨였고 획이 반듯했다. 위패는 크기가 다 같고 글자 크기도 다 같다. 스물두 살이나 마흔 살이나 판이 하나다. 열두 번째 봄이니 이제 나무가 손때로 조금 진해졌을 뿐이다.
형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것은 잘 웃었다는 것뿐이다. 여섯 살 위였으니 같이 논 기억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입영 통지가 온 날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통지가 온 날은 기억나는데 그날 형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만 국경 초소라는 지명은 전보를 받고 나서야 처음 들었고, 지도에서 찾아본 것은 그다음 주였다. 학교 지도책에는 활자가 너무 작아서 돋보기를 대야 했다.
어머니가 두 걸음 앞으로 나가셨다.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셨다가, 숙인 채로 입을 여셨다.

이름 두 글자에 아, 하는 소리가 붙어 있었다.
아주 짧았다. 촛불이 흔들리는 소리보다 짧았다. 나는 그것을 다 듣기 전에 고개를 돌렸다.
돌린 쪽은 뒤였다. 뒤에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유족 스무 명이 문간에 서 있었고, 신관 보조는 오른쪽 벽 쪽을 보고 있었고, 그 옆의 사관은 명부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아무도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다시 앞을 봤다. 어머니는 벌써 손을 내리고 물러나 계셨다. 아버지가 어머니 팔꿈치를 잡으셨다. 삼십 초가 지났다고 보조가 손바닥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나오는 문에서 인쇄물을 한 장씩 나눠 주었다. 「호국의 영령에게」라는 제목이 굵게 박혀 있고, 뒷면에는 유족 연금 개정 요지와 다음 위령제 일자가 있었다. 종이가 얇아서 앞뒤 글자가 서로 비쳤다. 어머니는 그것을 넷으로 접어 기장 밑에 끼우셨다. 열두 해째 같은 크기의 종이를 같은 방식으로 접으신다.
돌아오는 길은 걸었다. 한강 인도교 위에서 어머니가 잠깐 서서 난간에 손을 얹으셨다. 물빛이 아직 겨울이었다. 아버지는 두 걸음 앞에서 기다리셨고 세 사람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하신 것에는 조선말로 따로 이름이 있다. 부르다. 그 낱말이 다리 위에서 갑자기 떠올랐고, 떠오르자 입 안에서 낯설었다. 소리는 아는데 손에 잡히는 데가 없는 물건 같았다. 국어로 그것을 뭐라고 하는지는 생각할 것도 없이 나온다. 그런데 어머니가 한 것은 그 국어 낱말이 아니었다.
금지된 것이 아니다. 합사전 안에서 조선말을 하지 말라는 규정은 없다. 신관도 사관도 그런 것을 적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안다. 알면서 뒤를 봤다.
전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 동작을 몇 번 되짚었다. 목이 왼쪽으로 돌아가고, 눈이 문간을 훑고, 다시 앞으로 왔다. 그 사이가 이 초쯤이었을 것이다. 그 이 초 동안 내가 무엇을 확인하려고 했는지 나는 종일 대답하지 못했다. 저녁에 집에 와서 신발을 벗을 때까지도 못했고, 그다음 날 아침에는 그 일을 잊었다.
1965년 3월 22일 · 경성 앵정국민학교 3학년 2반 교실, 교무실
3학년 2반은 낭독을 좋아했다. 예순두 명이 한 목소리로 읽으면 유리창이 조금 떨린다.
"봄이 왔습니다. 산에도 들에도 봄이 왔습니다."
다카야마 리쓰코는 교탁 옆을 천천히 걸으며 아이들의 입을 봤다. 오른쪽 셋째 줄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넷째 줄 끝에서 그녀는 걸음을 늦추었다.
구레하라 요시오는 책을 두 손으로 펴 들고 있었다. 자세는 완벽했다. 등이 곧고 팔꿈치가 책상에서 떨어져 있고 시선이 활자에 붙어 있었다. 입만 벌어지지 않았다.
낭독이 끝났다. 그녀는 출석부를 폈다가 다시 덮었다.
"구레하라."
아이가 일어섰다. 의자 다리가 마룻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셋째 줄부터 읽어 보세요."
아이는 책을 들었다. 손가락이 활자 위에 놓였다. 손가락은 정확한 자리에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자도 움직이지 않았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앞줄에서 누가 킥, 하고 웃다가 삼켰다. 시계 초침이 열다섯 번, 스무 번 갔다. 아이의 귀가 붉어졌다.
"앉으세요."
아이가 앉았다. 그녀는 다음 아이를 지명했고 수업은 그대로 흘러갔다. 두 달째다. 삼학기 개학하고 나서 이 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 이 교실에 아무도 없었다.
시도는 해 볼 만큼 해 보았다. 일대일로 남겨서 물어보았고, 종이에 쓰게 해 보았고, 그림을 그리게 해 보았고, 짝을 바꿔 주었고, 앞자리로 옮겨 주었다. 종이에 쓰라고 하면 아이는 쓴다. 가나도 쓰고 한자도 이 학년 배당분까지는 틀리지 않는다. 셈은 반에서 중간쯤 간다. 아침 조회에서 서사를 제창할 때도 아이의 입은 다른 아이들과 같은 박자로 움직인다. 다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한 번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아주 천천히 물어본 적이 있다. 어디 아프냐.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무섭냐. 아이가 또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왜 그러느냐고 묻자 아이는 그녀를 한참 올려다보다가 눈을 내렸다. 그 눈이 미안해하는 눈이었다는 것이 그녀를 오래 붙들었다.
교무실에서 그녀는 학적부를 꺼냈다.
소견란은 넉 줄이다. 지난 학년 담임이 적어 놓은 것은 두 줄이었다. 결석 없음. 온순함. 그녀는 만년필을 열고 그 아래에 적기 시작했다.
국어 발화 극히 부진. 지능이 아니라 언어 자체의
거기서 멈추었다. 뒤에 무슨 말을 붙일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부에서 내려온 학무 지침에 분류 항목이 있고, 항목 이름이 네 글자다. 그 네 글자를 쓰면 아이는 다음 학년에 특별 지도 대상이 되고, 그 기록은 상급학교 진학까지 따라간다.
옆자리의 노무라 훈도가 도시락 보자기를 묶으며 말했다.
"신당정 쪽 애들이 그래요. 반이 그렇습니다. 집에서 뭘 쓰는지 아무도 몰라요."
"부모가 문제지요. 애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건너편 훈도가 받았다. 두 사람 다 아이를 나쁘게 말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 해 본 사람의 말투였다.
그녀는 만년필 뚜껑을 닫았다. 문장이 끝나지 않은 채로 학적부를 덮었다.
그녀는 만년필 뚜껑을 닫았다. 문장이 끝나지 않은 채로 학적부를 덮었다.
남은 30화 · 약 109,015자 · 약 2시간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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