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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제12장 기차 안에서 한 말

· 44화 중 9화 · 3,588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함흥경찰서 이층 방은 서쪽으로 창이 나 있어서 오후에 볕이 들었다. 책상 위에 영희의 일기장이 펼쳐져 있었다. 표지는 두꺼운 마분지였고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그 책상까지 그것이 어떻게 왔는지 영희는 알지 못했다. 집을 뒤졌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야스다 형사는 서른 몇 살쯤이었고 셔츠 소매를 걷고 있었다. 그는 일기장을 한 장씩 넘겼다. 넘기다가 멈추고, 손가락으로 한 줄을 짚었다.

쇼와 사십년 9화 제12장 기차 안에서 한 말 — 헤더컷

"이건 뭐냐."

영희는 목을 빼서 보았다. 자기 글씨였다.

"...날씨입니다."

"이 글자 말이다."

그가 짚은 것은 국어 문장 사이에 섞여 든 언문 대여섯 자였다. 일기는 거의 다 국어로 쓰여 있었다. 학교 일, 시험, 선생님 이름, 반 아이들. 그런데 열흘에 한 번쯤, 혼자만 알면 되는 대목에서 손이 저절로 언문으로 갔다. 그런 줄도 모르고 썼다.

야스다는 복도로 나가 누구를 불렀다. 잠시 뒤에 순사 하나가 들어왔다. 나이가 마흔쯤 되고 얼굴이 길었다. 가나야마라고 불렸다.

영희는 그 얼굴을 보고 숨이 잠깐 걸렸다. 기차 앞자리에서 신문을 접던 사람이었다.

가나야마 순사는 책상 옆에 서서 일기장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국어로 옮겼다. 옮기는 솜씨가 좋았다. 그는 영희 쪽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오늘 국어를 썼다고 꾸지람을 들었다.'"

야스다가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오늘 국어를 썼다고 꾸지람을 들었다.'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야스다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의자를 끌어 책상 앞으로 당겨 앉았다. 의자 다리가 마루를 긁었다.

"국어를 썼는데 꾸지람을 들어?"

"예."

"누구한테."

영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문장은 이태 전에 쓴 것이었고, 그때 자기가 국어라는 두 글자로 무엇을 가리켰는지 지금 설명하려니 입이 붙었다. 학교에서 쓰는 국어가 있고, 집에서는 그것을 다르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물어볼 만한 일이 아니었다.

야스다는 일기장을 처음부터 다시 넘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언문이 나오는 데마다 손톱으로 표시를 냈다. 종이 위에 반달 모양 자국이 하나씩 늘었다. 열몇 개쯤 되었을 때 그는 넘기기를 그만두었다.

"기차에서 한 말은 조서에 못 붙인다." 그는 일기장을 손바닥으로 두 번 눌렀다. "이건 붙는다."


세 시간이 지났다. 볕이 책상 끝까지 물러났다.

야스다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계속 같은 것을 물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썼느냐. 집에서는 무슨 말을 하느냐. 아버지는 무엇을 하느냐. 그리고 다시, 국어라는 말을 그렇게 쓰는 것을 어디서 배웠느냐.

영희는 그것이 어려운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질문이었다면 이렇게 오래 붙들려 있을 리가 없었다. 쉬운 질문에 답을 못 해서 붙들려 있는 것이라면 답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어머니가 저녁을 차려 놓았을 것이다.

"우리 학교에 계시던 선생님이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이름."

영희는 말했다. 작년까지 계시다가 경성으로 가신 분이었다. 조회 시간에 늦게 오는 아이를 혼내지 않던 분이었고, 국어 시간이 아닌데도 낱말을 자꾸 적어 가시던 분이었다. 아이들이 그 버릇을 흉내 내며 웃었다.

가나야마 순사가 벽 쪽에서 처음으로 움직였다. 그는 한 걸음 다가와 야스다의 귀에 대고 짧게 뭐라고 말했다. 야스다가 눈썹을 올렸다.

"경성 어디."

"학회 쪽인 모양입니다. 사전을 만든다는."

"사전."

"낱말을 모으는 겁니다."

야스다는 만년필의 뚜껑을 뺐다.

방 안에 다른 소리가 없어서, 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세 글자였다. 세 글자를 쓰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이 아닌데도 그는 천천히 썼다. 다 쓰고 나서 뚜껑을 닫고, 조서를 뒤집어 놓았다.

"가도 좋다."

영희는 일어섰다. 다리가 저려서 한 번 휘청했다. 가나야마 순사가 문을 열어 주었고, 그때도 그녀를 보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영희는 일기장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되돌아가서 달라고 할 생각은 나지 않았다. 삼 년 치였고 표지가 닳은 것이 아까웠다.

정문 앞에서 그녀는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이층 창에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자기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되짚어 보았지만 나쁜 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선생님을 나쁘게 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좋은 분이었다고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어두웠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나왔다.

"영희야, 어디 갔다 왔니. 밥은 먹었니."

"다녀왔습니다."

영희는 신을 벗고 마루에 올라섰다.


1942년 10월 1일 · 경성 화동정 사전편찬실 → 종로경찰서 → 함흥행 열차

그날 아침 화동정 편찬실에는 난로를 아직 놓지 않았다.

쇼와 사십년 9화 제12장 기차 안에서 한 말 — 전환컷

안형석은 창가 자리에서 'ㅁ' 항목의 뜻풀이를 손보고 있었다. 낱말 하나에 뜻이 여섯 개 붙어 있었고 그중 셋째와 넷째가 사실상 같은 말이어서, 그것을 합칠지 말지를 벌써 이틀째 붙들고 있었다. 붉은 펜의 잉크가 굳어 두 번 흔들었다.

아홉 시 십오 분에 아래층에서 소리가 났다.

계단을 올라온 사람은 여섯이었다. 앞에 선 자가 모자를 벗지 않고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러고 나서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폈다.

"호명하는 사람은 나오시오."

이름이 불렸다. 이극로가 먼저 일어섰다. 그는 걸어 나가면서 의자를 책상 밑으로 밀어 넣었다. 이윤재는 안경을 벗어 닦고 다시 썼다. 정인승은 펼쳐 놓은 원고를 덮고 문진을 그 위에 올렸다. 한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현배가 외투를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형사는 대답 대신 턱으로 문을 가리켰다. 이희승이 마지막으로 섰다.

열한 사람이었다.

형석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일어설 이유가 없었다. 명부를 든 형사가 손가락으로 종이를 짚어 내려오다가 열한 번째에서 멈추고 종이를 접었다. 형석의 이름은 그 아래 다섯 번째 줄에 있었다. 그는 그것을 거꾸로 읽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열한 사람이 계단을 내려간 뒤에 방에는 여섯이 남았다. 아무도 자리에 앉지 않았다.

남은 형사들이 서랍을 열기 시작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원고와 카드는 책상 뒤 벽을 따라 있었다. 사과 궤짝만 한 나무 상자에 항목별로 나뉘어 들어 있었고, 상자마다 옆면에 손으로 쓴 종이표가 붙어 있었다.

순사 하나가 마루에 앉아 상자를 하나씩 앞으로 끌어냈다. 봉인지에 풀을 발라 뚜껑에 붙이고,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옆면에 번호를 적었다. 여섯 자리씩이었다. 글씨가 서툴러서 획이 굵었다.

형석은 벽에 등을 대고 서서 그것을 보았다. 봉인지 붙는 소리가 났다. 물기 있는 종이가 나무에 붙을 때 나는, 아주 작은 소리였다.

상자는 스무 개였다. 다 나가고 나서 벽장 안쪽에 먼지 자국만 스무 개 남았다.

"여기 남은 분들은 이름과 주소를 적어 놓고 가시오." 형사가 말했다. "부르면 오시고."

젊은 편찬원 하나가 손을 들었다. 스물예닐곱이었다.

"저것들은 어떻게 됩니까."

"압수품이오."

"언제 돌려받습니까."

형사는 그 질문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잠깐 쳐다보았다. "그건 내 소관이 아니오."

형석은 자기 이름과 주소를 적었다. 종로 6정목. 글씨를 평소보다 반듯하게 썼다. 반듯하게 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손을 그렇게 놀리면 다른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안국정 네거리에서 그는 한 번 섰다. 전차가 지나갔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시월 초하루였고 볕이 좋았다.


사흘 뒤 새벽에 종로 6정목 집 대문을 누가 두드렸다.

형사는 둘이었다. 하나는 마당에 서 있고 하나만 마루에 올라왔다.

"안형석."

"예."

"옷 입으시오."

정옥분이 벽장에서 두루마기를 꺼내 왔다. 손이 떨려서 옷고름을 두 번 놓쳤다. 형석은 그것을 받아 자기가 맸다.

안순임이 안방에서 나왔다. 쉰일곱이었고, 신발도 안 신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우리 아들이 뭘 했다고 이러오. 이거 놓으시오. 놓으라니까."

마당의 형사가 반걸음 물러섰다. 그는 노인을 밀지 않았다. 밀 것도 없었다. 그는 마루 쪽을 보며 말했다.

"뭐랍니까."

"노인네가 뭘 알겠나."

순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같은 말을 다시 했다. 알아듣는 사람이 그 마당에 셋 있었고 셋 다 대답하지 않았다.

형석은 방으로 들어갔다. 잠깐 옷을 챙기겠다고 했고 형사는 문을 열어 둔 채 등을 돌려 주었다.

방 아랫목에 둘째 재호가 아직 자고 있었다. 큰아이 재영은 벌써 일어나 벽에 붙어 서 있었다. 열 살이었고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책상 옆 바닥에 상자가 하나 있었다. 사과 궤짝보다 작았다.

형석은 그 앞에 앉았다. 뚜껑을 열고, 맨 위에 놓인 것에서 얇은 뭉치 하나를 집어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 자는 아이의 요 자락을 들어 그 밑으로 밀어 넣었다. 손바닥으로 요를 한 번 눌러 폈다. 아이는 깨지 않았다.

뚜껑을 다시 덮고, 끈을 고쳐 묶었다.

서른 셈쯤 되는 시간이었다.

마루로 나오자 네 살배기가 어느새 깨어 기둥을 붙잡고 서 있었다. 형석과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으므로 울 줄도 몰랐다.

마당의 형사가 방에서 상자를 들고 나왔다. 그는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한 손으로 대문을 열었다.

"이거 뭡니까." 마루의 형사가 물었다.

"종이요."

옥분이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나왔다. 손에 삶은 감자 두 알이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형석의 두루마기 주머니에 넣었다.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순임이 대문까지 따라 나왔다. 골목에 사람이 서넛 나와 있었고, 그들은 노인이 소리치는 것을 들으면서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노인의 말은 그 골목 사람들이 다 알아듣는 말이었다.

형석은 어머니 쪽을 보지 않았다. 한 번 보면 다음 걸음이 안 떼어질 것 같았다.

형석은 어머니 쪽을 보지 않았다. 한 번 보면 다음 걸음이 안 떼어질 것 같았다.

남은 35화 · 약 125,869자 · 약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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