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4부 의사당(議事堂)
24화제32장 본회의장
윤 의원은 현관 쪽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있었다. 다들 그의 등을 두드리고 위로했고, 그는 그 위로를 좋은 태도로 받았다.
나를 보더니 손을 들었다.

"수고했네."
"예."
그가 다가와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른손이었다. 손바닥이 두껍고 따뜻했고, 어깨뼈 조금 위쪽을 두 번 눌렀다. 언제나 같은 자리다.
"다음 회기에 다시 하세."
나는 그 말을 세고 있었다. 열 번째다.
"예. 다시 하겠습니다."
"자네 자료가 좋았어. 오늘 정무총감도 그 지가 조사 이야기를 하지 않던가. 저쪽도 우리 걸 읽은 거야." 그가 웃었다. "읽게 만든 것만 해도 어딘가."
차가 왔고 그는 나갔다.
나는 복도를 걸어 나왔다. 서류철은 왼손에 들고 있었다. 계단 중간쯤에서 그것을 오른손으로 옮겨 잡고, 창가에 서서 표지를 열었다.
제3조. 당해 선거구 내에 일 년 이상 주소를 가지고.
일 년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육 개월로 하면 이동이 잦은 사람들이 들어오지만 명부 작성이 번거로워진다. 번거로워지면 지가 조사 이야기가 또 나온다. 그러면 육 개월이 아니라 다른 데를 손봐야 한다.
나는 서류철을 닫고 계단을 내려갔다. 아래층 현관은 아직 사람이 많았다.
1965년 6월 20일 · 경성 종로 6정목 자택,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수과 창구
가방 안에 든 것은 종이 마흔여덟 장이었다.
관부연락선 삼등 선실에서 나는 그것을 베고 잤다. 부산에서 경성까지 열두 시간은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6월 11일에 부결된 개정안의 조문과 부칙과 참고 자료. 도쿄를 떠나던 날 누마타 조사역이 "가져가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하고 건넨 것이다. 버리라는 말을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닌지는 묻지 않았다.
종로 6정목 골목에 들어서니 어머니가 평상에서 재봉틀을 밟고 있었다. 발판 소리가 먼저 났고, 소리가 멎은 다음에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왔구나."
"예."
"밥은."
"연락선에서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더 묻지 않고 미싱 밑에 깔린 옥양목을 손바닥으로 폈다. 마당에 물을 뿌린 자리가 아직 검었다. 장마가 오기 전의 저녁이었다.
할머니 방에서는 여름 냄새가 났다. 창호지에 밴 습기, 요 밑의 골풀, 그리고 약 냄새. 오월에 도쿄로 갈 때는 할머니가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지금은 누워 있었고, 이불이 배 위에 얇게 덮여 있었다.
"어디가 편찮으신 겁니까."
"의원이 왔다 갔다." 어머니가 문지방에 서서 말했다. "종로 나카무라 의원. 연세지요, 하더라."
"약은 뭐라고."
"먹는 약 두 봉. 그것뿐이다."
할머니가 눈을 떴다. 나를 보는 데 시간이 걸렸다. 눈동자가 천장에서 벽으로, 벽에서 내 쪽으로 옮겨 오는 것이 보였다.
"재호야."
두 음절이었다.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의사당에서도 연락선에서도 편수과 창구에서도 나는 야스모토 다케오였고, 그 이름은 부르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 사이에 아무 틈이 없다. 재호는 틈이 있다. 반 박자쯤.
"예. 다녀왔습니다, 할머니."
할머니가 뭐라고 더 말했는데, 나는 앞의 두 마디만 알아들었다. 무엇이 어떻다는 말이었고,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물어보지는 않았다. 물어보면 다시 말해야 하고, 다시 말하려면 숨을 써야 했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대접을 씻고 있었다.
"저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그냥 하시는 말이다."
"아니, 아까 저더러."
어머니가 대접을 엎어 놓았다. "네 아버지 저녁 늦다고." 그러고는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어머니는 거짓말을 할 때 손을 두 번 닦는다.
아버지는 밤 열한 시가 넘어 들어왔다. 나는 마루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신을 벗고, 나를 보고, 왔느냐고 했다. 부결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도쿄 이야기도, 윤 의원 이야기도 묻지 않았다. 그러고는 우물가로 가서 손을 씻었다. 편수과 사람들은 등사 잉크와 인주를 하루 종일 만지니까 손을 씻는 것이야 이상할 것이 없다. 다만 오래 씻었다. 물소리가 그치고 나서도 한참 뒤에 방문이 닫혔다.

이튿날 오전에 총독부 청사에 갔다. 개정안을 준비하면서 편수과에서 빌린 취학률과 국어 해득률 통계철을 돌려주어야 했다. 광화문통 쪽 현관은 여름에도 서늘하다. 대리석이 발소리를 두 번씩 되돌려준다.
학무국 편수과 창구 앞에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젊은 여자였다. 흰 반소매 저고리 같은 여름 블라우스에 감색 치마, 손에는 검정 손가방. 국민학교 훈도들이 방학 전에 관청에 올 때 하는 차림이다.
나는 그 뒤에 줄을 섰다. 서지 않아도 됐지만 섰다.
"「국어 지도용 조선어 대역 자료」요. 초등과 삼학년용으로 있는 대로 주십시오."
창구 안쪽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대출은 안 됩니다. 열람이나 배부 신청만 받습니다."
"배부로 하겠습니다."
"신청서를 쓰셔야 합니다."
여자가 손가방을 창구 턱에 올려놓고 펜을 받았다. 등이 곧았다. 성명란에 다카야마 리쓰코, 소속란에 경성 앵정국민학교 훈도. 글씨가 반듯했다. 그리고 목적란에서 잠깐 멈추더니, 한 문장을 썼다. 문장은 짧지 않았다.
창구 안쪽에서 촉탁 하나가 나와 신청서를 받았다. 스물예닐곱쯤 된 사내로, 소매에 검정 토시를 끼고 있었다. 나는 그를 안다.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가와바타다. 강원도 철원 사람이라고 들었다.
"가와바타 씨."
"아, 야스모토 선생님. 도쿄에서 언제 오셨습니까." 그가 허리를 접듯이 인사했다. 이 사람은 늘 필요 이상으로 공손하다.
"어제요. 이거 반납입니다."
"예, 예. 두고 가시면 제가 대장에 올리겠습니다."
그는 통계철을 옆으로 밀어놓고 여자의 신청서를 접수철 위에 놓았다. 도장을 잡았다. 인주에 두 번 눌렀다.
그리고 손이 멈췄다.
길지 않았다. 숨 한 번쯤. 그는 목적란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도장을 찍었다. 접수 번호를 적고, 신청서를 접수철 뒷장에 끼우고, 철끈을 조였다. 철끈 매듭을 두 번 감았다. 종이 한 장이 늘었다.
편수과 창구 뒤로 목재 서가가 벽을 다 덮고 있다. 나는 사월에도 여기 왔었고, 그때 아버지의 책상이 안쪽 셋째 줄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아버지가 자리에 없었다.
"자료는 사흘 뒤에 오십시오." 그가 여자에게 말했다.
복도에서 그 여자를 다시 만났다. 창밖 은행나무에 매미가 붙어 있었고, 소리는 아직 얇았다.
"실례합니다. 아까 창구에서."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
"삼학년용을 신청하셨더군요. 그런 자료가 아직도 나옵니까."
"나옵니다." 그녀가 말했다. "많지는 않습니다. 국어를 가르치는 데 쓰라고 만든 것이니까요."
"쓰십니까, 실제로."
"아직 한 번도 안 봤습니다." 그녀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했다. "그래서 보려고 합니다."
"학교에서 필요합니까."
"우리 반에 두 달째 말을 안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녀가 손가방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국어를 못 하는 건 아닙니다. 하다가 멈춥니다. 저는 그 애가 어디서 멈추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뭘 못 하는지 알아야 가르치지 않겠습니까."
"그건 학무국이 아니라 의무과에 물으실 일 같습니다만."
"의무과에서는 지체라고 합니다." 그녀가 나를 똑바로 보았다.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대고, 소속을 대고, 장마가 늦다는 이야기를 했다. 전부 국어로 말했다. 그녀도 나도 다른 말을 한마디도 쓰지 않았고, 그것을 이상하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스물다섯쯤으로 보였다. 태어났을 때 이미 학교에 조선어라는 과목이 없었던 세대다. 나는 그 세대와 그 앞 세대의 경계선 위에 어정쩡하게 얹혀 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조금 전에 본 신청서 목적란을 다시 떠올렸다. 반듯한 글씨였다.
본교 삼학년 아동 중 국어 해득이 지체된 자가 있어, 그 아동이 쓰는 말을 알기 위하여 신청함.
1965년 6월 24일 밤 10시 ~ 새벽 3시 ·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수과 서고 제3열
편수과 사무실에 남은 불은 안형석의 책상 위 하나뿐이었다.
책상에는 『국어 보급 교본』 개정판 제3권의 교정지가 펼쳐져 있었다. 왼쪽이 국어 본문, 오른쪽이 대역란이다. 제17과. 국어 예문은 이렇다 — 아버지는 밭에서 일합니다. 어머니는 물을 긷습니다.
그는 대역란의 첫 줄에서 펜을 멈추고, 밭 자리에 다른 세 글자를 넣었다. 따비밭. 그다음 줄에서 물을 긷는다는 말 뒤에 물동이라는 낱말을 하나 더 붙였다. 국어 쪽에는 물동이가 없다. 대역 쪽에만 있다.
한 과에 하나. 한 권에 스물을 넘기지 않는다. 문맥에서 튀어나오는 자리에는 넣지 않는다. 이 세 가지는 그가 스스로 정한 것이고, 스물다섯 해 동안 어긴 적이 없다.
따비밭은 산비탈을 따비로 일군 좁은 밭이다. 이 낱말을 쓰는 사람은 이제 강원과 함경의 산골에 몇 남았고, 그들이 죽으면 낱말도 같이 없어진다. 교본을 읽는 아이는 뜻을 모른다. 소리만 읽는다. 소리만 읽어도 종이 위에는 남는다.
교정지 여백에 인쇄국 도장이 찍혀 있었다. 초판 사만 팔천 부. 조선 안의 국민학교 전부와 부·군 연맹, 애국반 상회 교재로 내려간다. 종이도 활자도 잉크도 운반도 배포도 총독부가 한다. 검열은 국어 본문을 본다. 대역란을 끝까지 읽는 사람은 이 청사 안에 그를 포함해 셋이 안 된다.
그는 교정지를 봉투에 넣고, 봉투를 결재함에 올려놓고, 잉크병 뚜껑을 닫았다.
그는 교정지를 봉투에 넣고, 봉투를 결재함에 올려놓고, 잉크병 뚜껑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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