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3부 쇼와 사십년
17화제23장 보안과의 조선말
열 시에 회람이 왔다.
인사 발령. 보안과장 미야기 사무관 이하 배치 확정. 미야기는 재작년 봄에 왔고 서른여섯이다. 가와카미보다 여섯 살 아래고 고등문관시험 출신이다. 이번 회람에도 미야기 밑으로 사무관보 하나가 더 붙는다고 되어 있었다.

가와카미는 서랍에서 도장을 꺼냈다. 인주 뚜껑을 열고, 두 번 굴리고, 자기 이름 칸에 찍었다. 칸은 왼쪽에서 아홉 번째다. 열다섯 해 동안 이 회람에서 그의 칸은 조금씩 오른쪽으로 갔다가 다시 왼쪽으로 돌아오곤 했다. 위로 간 적은 없다.
내지에 오래 있는 자가 위로 간다는 것은 그도 안다. 외지 근무가 길어지면 인사에서 잊힌다. 조선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은 조선을 아는 사람이 됐다는 뜻이고, 조선을 아는 사람은 조선에 두는 것이 편리하다.
미야기가 과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그를 불렀다.
"가와카미 군, 어제 그 함흥 건 말인데, 조회 회신 왔나."
"아직입니다. 오늘 중에 온다고 했습니다."
"오면 바로 넣어 줘. 나는 열한 시에 국장실에 들어가야 해."
"예."
미야기는 조선어를 한 마디도 못 한다. 재작년에 부임할 때 배우겠다고 했다가 석 달 만에 그만두었다. 가와카미는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배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취조실에서 조선어가 필요한 일은 이제 노인 사건에서나 생긴다.
점심 전에 강만수 순사부장이 조회 회신철을 들고 들어왔다.
"경부보님, 함흥에서 왔습니다."
가와카미는 철을 받아 들면서 조선말로 물었다.
"강 부장, 오늘 점심은 뭐 먹으려나."
"구내식당에 갑니다."
강만수는 국어로 대답했다.
"구내식당 오늘 카레라던데. 자네 카레 좋아하나."
"저는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가와카미는 웃었다. 그는 이 사람과 이런 식으로 십 년쯤 이야기해 왔다. 자기가 조선말로 물으면 강만수는 국어로 답한다. 처음 몇 해는 조선말로 답하다가 언젠가부터 그러지 않게 됐다. 가와카미는 그것을 이 사람이 조심성이 많은 탓이라고 이해한다. 조선 사람은 관청 안에서 조심을 한다. 그것이 이 땅의 예의 같은 것이다.
그는 조선말을 잘한다. 그것을 스스로 안다. 취조실에서 조선말로 물으면 대개 십오 분쯤에 사람이 무너진다. 국어로 두 시간 걸릴 것이 조선말로 십오 분이다. 그가 조선말로 묻는 이유는 빠르기 때문이지만, 빠르다는 것 말고도 이유가 있다. 사람이 자기가 어릴 때 쓰던 말로 질문을 받으면 그 얼굴이 달라진다. 그 달라지는 얼굴을 그는 여러 번 봤고, 그때마다 자기가 이 사람들을 조금 안다고 느꼈다.
이 땅에서 나서 마흔두 해를 살았다. 내지에 있는 사촌은 명절에 그를 조선 사람 취급한다. 그는 그 농담을 싫어하지 않는다.
"강 부장, 이거 말이야."
그는 회신철의 한 줄을 손톱으로 짚었다.
"함흥에서 이 사람 주소가 두 번 바뀐 걸로 나오는데, 두 번째 것이 우리 쪽 등록하고 안 맞아."
"천공카드 쪽에 다시 넣어 보겠습니다."
"그래. 그건 자네가 나보다 빠르니까."
강만수가 철을 도로 받아 옆구리에 끼었다. 나가려다가 문 앞에서 돌아섰다.
"경부보님."
"응."
"아까 그 카레 말입니다. 저는 카레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가와카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그랬나."
"물으셨을 때 대답을 해야 해서요."
강만수는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 그 말도 국어였다. 가와카미는 한참 웃다가 서류로 돌아갔다. 저 사람은 농담을 늦게 한다. 조선 사람은 농담을 늦게 하는 데가 있다.
오후에 그는 광주리를 다시 훑었다.
오전에 보류함에 넣은 것이 열한 장이었다. 보류는 일주일을 둔다. 일주일 안에 같은 내용이 한 장 더 오면 조사로 올라가고, 안 오면 폐기로 내려간다. 이 규칙은 그가 만든 것이고 아무도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한 적이 없다.
그는 열한 장을 하나씩 다시 읽었다. 두 장은 폐기함으로 내렸다. 나머지는 그대로 두었다.
그러다 아래에서 세 번째 것을 다시 집었다.
우표가 붙어 있고 소인은 경성 중앙국이었다. 이름이 없었다. 주소도 없었다. 글씨는 자를 대고 쓴 것처럼 반듯했고, 문장이 넉 줄이었다. 그는 그 넉 줄을 한 번 읽고, 엽서를 뒤집어 뒷면의 빈 곳을 보고, 다시 뒤집어 한 번 더 읽었다.
읽는 데 걸린 시간은 처음 것보다 길었다.
그는 엽서를 보류함 위에 잠깐 놓아 두었다가, 손끝으로 밀어서 그 옆 함으로 옮겼다. 옮기고 나서 함 안의 다른 종이들과 모서리를 맞추어 가지런히 눌렀다.
1965년 4월 10일 오후 · 경성, 조선총독부 청사 학무국 편수과
학무과 조사계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고 했다. 세 시에 온다고 해서 나는 복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청사 복도는 길다. 한쪽 끝에 서면 반대쪽 끝의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스무 걸음쯤 전부터 보게 된다. 바닥에 왁스 냄새가 났고 창으로 들어온 볕이 다섯 칸 건너 하나씩 마름모로 떨어져 있었다. 소사가 재떨이를 비우며 지나갔다.

문패를 세면서 앉아 있다가 복도 끝에서 여섯 번째 것을 봤다.
編修課
아버지가 이 청사를 다니신 지 스물두 해가 됐다. 내가 다섯 살 되던 해 가을부터다. 그전에 아버지가 무엇을 하셨는지는 우리 집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 들어와 본 적이 없다. 국민학교 때 어머니 심부름으로 정문 수위실까지 온 적이 한 번 있었고, 그때도 아버지는 아래로 내려오셨다.
나는 일어나서 그쪽으로 걸었다.
문을 열자 풀 냄새가 났다.
책상이 열넷쯤 되고 그 위에 종이가 산이었다. 벽 한쪽에 『국어독본』 견본이 학년별로 쌓여 있었다. 표지 색이 학년마다 다르다. 일학년이 연분홍이고 육학년이 짙은 감색이었다. 그 옆에 교정지가 널려 있고 붉은 연필 자국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벽에 표어가 셋 붙어 있었다. 국어를 상용하자. 정확한 활자, 바른 국민. 그리고 오래된 것 하나가 못 자국만 남기고 뜯겨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젊은 남자가 일어섰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소매에 토시를 끼고 있었다.
"야스모토 편수관님 계십니까."
"저기 계십니다. 아드님이십니까."
"어떻게 아십니까."
"얼굴이 닮으셨습니다."
그는 웃었다. 웃는 얼굴이 조심스러웠다. 촉탁 가와바타라고 했다.
아버지는 창가 맨 안쪽 자리에 계셨다. 창밖으로 궁의 지붕이 보였다. 청사가 앞을 막고 서 있으니 뒤쪽 창에서만 보인다. 기와가 낡아서 볕에 회색으로 떴다.
"왔구나."
"조사계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무슨 자료냐."
"국어 해득률하고 취학률을 연도별로 받으려고 합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무엇에 쓰느냐고 묻지 않으셨고 개정안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다. 신문에 났으니 모르실 리는 없다.
"조사계는 세 시 넘어야 사람이 온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앉아 있어라."
아버지는 옆자리 빈 의자를 손으로 가리키고 다시 서류로 돌아가셨다. 손등에 힘줄이 굵게 서 있었다. 오른손 가운뎃손가락 첫 마디 옆이 눌려서 굳은살이 앉아 있는데, 그것은 붓을 오래 잡은 사람 손이다.
책상 옆 시렁에 견본이 몇 권 꽂혀 있었다. 나는 앉아서 기다리다가 그중 하나를 뽑았다. 『국어 보급 교본』 권1. 성인용이다. 낡아서 등이 갈라져 있었다.
펴 보니 각 과의 아래 절반이 대역란이었다. 왼쪽에 국어 문장, 오른쪽에 대역. 국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뜻을 알려 주려고 조선말을 붙여 놓은 칸이다. 오른쪽 활자가 왼쪽보다 한 호 작았다.
밥을 먹었습니다. 문을 닫으십시오. 오늘은 날이 좋습니다.
오른쪽 칸의 글자는 내가 읽을 수 없다. 자음과 모음을 붙여서 소리를 내는 법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 획이 몇 개고 동그라미가 어디 붙었는지는 보이는데 거기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그림처럼 두 쪽쯤 넘겨 보다가 도로 꽂았다.
아버지는 고개를 들지 않으셨다.
가와바타 촉탁이 차를 내왔다.
"과장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오카다 과장은 안쪽 방에 있었다. 마흔 대여섯쯤. 안경을 이마 위에 올려놓고 교정지를 보고 있다가 안경을 내리며 일어섰다.
"윤 의원님 쪽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아버님이 자랑을 안 하셔서 우리가 늦게 알았어요."
"아버님이 원래 말씀이 없으십니다."
"없으시지요. 그런데 야스모토 편수관은 우리 과에서 제일 오래된 사람입니다. 내가 스물넷에 촉탁으로 들어왔을 때 벌써 계셨어요. 아라키 과장 때였고, 그 뒤로 과장이 넷 바뀌었습니다. 편수과 서고에 뭐가 어디 있는지는 저 사람한테 물어야 압니다."
"그렇습니까."
"교과서라는 게 말입니다, 한 번 판을 짜면 십 년을 갑니다. 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해요."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창 쪽을 봤다. 창 쪽에는 아버지 자리가 있었다.
"승진은 어떻습니까."
물어놓고 나는 그것이 아들이 할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오카다 과장은 안경을 다시 이마로 올렸다.
"편수관은 편수관입니다. 위가 없어요. 사무관으로 가려면 내지에서 시험을 봐야 하는데, 그건 스물몇에 하는 겁니다."
"예."
"본인이 안 옮기려고 하시기도 하고요. 재작년에 학무과에 자리가 하나 났을 때 내가 말씀을 드렸는데 안 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서고 정리가 아직 안 끝났다고요."
그는 웃었다. 나도 웃었다. 아버지가 하실 만한 말이었다.
그는 웃었다. 나도 웃었다. 아버지가 하실 만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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