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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제41장 먼저 말한 사람

· 44화 중 30화 · 3,593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경무국 보안과 응접실에는 창이 하나 있었고 그 창으로 광화문통의 플라타너스 잎이 보였다. 엽차가 나왔다.

"어르신, 이거 여기까지 걸음 하시게 해서 송구합니다."

쇼와 사십년 30화 제41장 먼저 말한 사람 — 헤더컷

조선말이었다. 최정규는 찻잔을 든 채로 잠깐 멈췄다.

"별말씀을."

그는 국어로 대답했다.

가와카미 경부보는 마흔 몇쯤 되어 보였고 옷깃이 반듯했다. 그는 웃을 때 눈이 먼저 접혔다.

"저는 조선에서 났습니다. 대구 서문 밖에서요. 어려서 동무가 죄 조선 아이들이라 이 말부터 배웠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한테 혼나고요."

"국어가 유창하십니다."

"어르신 국어도 훌륭하십니다."

가와카미가 찻잔을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저는 이 말이 없어지는 게 아깝습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어르신 연배가 다 가시고 나면 이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저 같은 것들만 남습니다. 우스운 일이지요."

최정규는 웃었다. 웃는 데 힘이 들었다.

"세상이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세상이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창밖에서 전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부회에서 미곡 배급 개선안을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읽었습니다. 좋은 안이었습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따님이 훈도시라지요. 앵정 쪽이라고."

최정규는 찻잔을 받침에 내려놓았다. 도자기가 도자기에 닿는 소리가 났다.

"예."

"요즘 훈도들이 고생이 많습니다. 학급이 육십 명이라면서요."

가와카미가 서랍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위쪽에 상담 기록이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이건 조서가 아닙니다. 상담입니다. 여기 오신 분이 말씀을 주시면 저는 그걸 적어 두었다가 나중에, 그러니까 혹시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분은 먼저 말씀을 주셨던 분이다, 그렇게 씁니다. 제 버릇입니다."

"…예."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어르신."

한 시간 이십 분이 걸렸다. 그중 사십 분은 쌀값 이야기였고 이십 분은 부회 이야기였다. 딸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최정규가 이름을 댄 것은 마지막 십 분이었고, 그가 댄 것은 책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었다. 야스모토 게이샤쿠. 학무국 편수과.

가와카미는 그 이름을 적으면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성함은 여기 아래에만 적겠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는 세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나는 무엇을 신고하러 온 것이 아니라 상담을 하러 왔다. 상담 기록이라고 종이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둘째, 나는 딸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 딸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셋째—이것이 가장 편한 것이었는데—저쪽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앵정이라고 저쪽이 먼저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면 내가 말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현관을 나서자 볕이 정수리에 얹혔다. 관사 담장을 따라 매미가 울었다.

저녁에 딸이 돌아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책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방에 들어갔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리쓰코, 요새 학교에서 무슨 조사 같은 건 안 하느냐. 별거 아니고, 아버지가 부회에 앉아 있으니 그런 걸 미리 알아 두면 네가 편하다.

그는 전차 정류장 쪽으로 걸으면서 그 문장을 두 번 다듬었다. 세 번째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였다.


1965년 8월 14일 · 총독부 편수과, 종로 약국, 조성만의 하숙

약국 유리문에 종이가 붙어 있었고 사람들은 그 종이를 읽으려고 반쯤 몸을 옆으로 틀었다.

조성만은 세 번째로 읽었다. 팔월분 결핵 치료제 배정 순위표. 경성부 취급분, 부양자 근무지 접수분 포함. 이름은 창씨명으로만 적혀 있었다. 그는 위에서부터 손가락을 대지 않고 눈으로만 내려갔다. 스물여섯 번째까지 굵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이번 달에 약이 나가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가와바타 스에.

서른일곱 번째였다.

그는 그 이름을 잠깐 보았다. 어머니를 스에라고 부르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호적을 만들 때 면서기가 박말녀의 말(末) 자를 그대로 가져다 스에라고 읽었고, 어머니는 그것을 스물다섯 해 동안 한 번도 자기 이름으로 여겨 본 적이 없다.

약은 앰풀로 나온다. 근육주사고, 처음 두 달은 하루 한 대씩이다. 면 소재지 의생이 놓아 준다. 어머니는 작년 겨울에 두 달 치를 맞았고 그때 열이 내렸다. 봄에 다시 올랐다.

앞에 선 여자가 창구에 통장을 밀어 넣었다가 도로 받았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으로 비켰다. 손등에 밥풀 같은 것이 말라붙어 있었다.

"가와바타 씨."

약사가 창구 안에서 그를 불렀다. 흰 가운의 소맷부리가 누랬다.

"산정표는 보셨지요."

"예."

쇼와 사십년 30화 제41장 먼저 말한 사람 — 전환컷

"댁이 국어상용 가정이 아니지 않습니까. 거기서 이십 점이 빠집니다. 그리고 촉탁은 근무 성적 사정 대상이 아니라서, 그 칸은 점수가 아니라 사선입니다. 사선은 영 점이에요."

"압니다."

"고원만 되어도 열다섯은 붙습니다."

약사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하루에 이 설명을 열 번쯤 했고, 그래서 문장이 매끄러웠다.

"다음 달에는 됩니까."

"윗분들이 빠지면요. 죽거나 낫거나 해야 빠집니다."

조성만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나왔다. 종로 쪽 볕이 지독했다. 그는 손수건으로 목덜미를 닦았다. 손수건은 어머니가 재작년에 보낸 것이었다.


편수과의 오후는 조용했다. 창밖으로 경복궁 쪽 나무들이 보이고 매미가 울었다.

세 시가 되면 그가 차를 낸다. 삼 년째 하는 일이라 순서가 몸에 붙어 있었다. 과장 책상에 먼저, 그다음 창가 쪽 편수관 둘, 마지막이 안형석의 자리였다.

"수고하네."

안형석이 교정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어머님은 좀 어떠신가."

"…예. 그저 그러십니다."

"철원이면 가을이 빠르지. 서리 내리기 전에 한번 다녀오게. 과장한테는 내가 말해 두지."

"예."

안형석은 늘 고개를 반쯤만 들었다. 그는 차를 바로 마시는 법이 없었다. 식은 뒤에 마셨다. 책상 위에는 교정지가 넓게 펴져 있고 그 옆에 붓이 가로로 놓여 있었다. 손등에 검버섯이 두 개 있었다.

조성만은 쟁반을 배 앞에 붙이고 물러났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스스로 확인했다. 떨릴 이유가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촉탁은 일 년마다 다시 발령이 난다. 삼월에 종이 한 장이 오고 거기 이름이 있으면 그해에도 나온다. 없으면 안 나온다. 그것뿐이고 이유를 적는 난은 없다. 고원이 되면 그 종이가 오지 않는다. 대신 봉급표에 이름이 실리고, 관사 신청을 할 수 있고, 근무 성적이 매겨진다. 성적이 매겨진다는 것은 점수가 생긴다는 뜻이고, 점수가 생긴다는 것은 어머니 이름이 스물여섯 번째 줄 위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이 계산에는 배신이라는 항목이 없었다. 그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없었다.

책상 사이를 지나면서 그는 서고 문 쪽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는 것도 삼 년째라 몸에 붙어 있었다.


강만수를 만난 것은 팔월 초, 청사 뒷문 자전거 보관대 옆이었다. 순사부장은 사복이었고 담배를 권했다. 조성만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받았다.

"가와바타 씨, 철원 출신이라면서요. 나도 강원도요. 평강."

"예."

"평강서 철원이 한나절이지. 눈 오면 이틀이고."

강만수는 그 말을 조선말로 했다가 곧 국어로 돌아왔다. 청사 뒷마당이라 사람이 없었는데도 그랬다.

"안 편수관, 요새도 늦게까지 남습니까?"

"…남으십니다. 여덟 시 넘어서 나가실 때가 많습니다."

"열쇠는 누가 갖고 있소. 서고 말이오."

"과장님하고, 안 편수관님이 하나 더 가지고 계십니다. 제삼열 쪽은 안 편수관님이 정리하십니다. 상자가, 스무 개쯤 됩니다."

강만수는 수첩을 꺼내지 않았다. 그냥 담배를 빨았다.

물음은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조성만의 입에서 한 가지가 더 나왔다.

"지난달에 아드님이 한 번 오셨습니다. 저녁에요. 두 시간쯤 계시다 가셨습니다."

말해 놓고 그는 자기가 왜 그 말을 했는지 잠깐 생각했다. 침묵이 길어지는 것이 싫어서였다. 그것뿐이었다.

강만수는 그제야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짧았다. 그러고는 수첩을 닫고 손으로 무릎을 한 번 쓸었다.

"가와바타 씨, 어머님 편찮으시다면서요."

"…예."

"본청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배급 순위 같은 건 손이 좀 갑니다. 이건 규정에 있는 얘기가 아니고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순사부장은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조서도 없었고 서명도 없었다. 조성만은 자기가 진술을 한 것이 아니라 대화를 했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그날 이후로 바뀌지 않았다.


하숙방은 서향이라 밤에도 벽이 더웠다. 그는 밥상을 펴고 편지지를 놓았다.

편지는 국어로 썼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1938년생이고 학교에서 언문을 배운 적이 없다. 어머니는 국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그래서 그의 편지는 언제나 아랫말 성구가 마루에 앉아 소리 내어 읽고, 성구가 아는 만큼만 조선말로 옮겨서 어머니에게 들어간다. 성구는 열여섯이고 국민학교를 마쳤다.

그는 그것을 알면서 썼다. 알기 때문에 문장을 짧게 썼다. 성구가 막히지 않게. 어려운 한자는 쓰지 않고, 쓰더라도 옆에 가나를 달았다.

이달 봉급에서 하숙비와 전차 회수권을 빼면 남는 것이 얼마인지 그는 이미 세 번 세어 보았다. 우편환으로 부칠 액수는 정해져 있었다. 그 액수로는 약을 살 수 없다. 애초에 그 약은 돈으로 사는 물건이 아니다. 돈이 아니라 줄이다.

몸은 어떠신지. 여름에는 저녁에 마당에 나가 앉지 마시라. 이달 봉급에서 조금 부쳤다. 명절에 못 갈지도 모르겠다. 과장님이 요새 바쁘시다.

약 이야기를 쓸까 하다가 그는 쓰지 않았다. 서른일곱이라는 숫자를 성구가 읽고 어머니가 그 뜻을 물으면 성구는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붓을 놓고 창을 열었다. 골목에서 누가 물을 버리는 소리가 났다.

다시 앉아 마지막 줄을 썼다.

「어머니, 다음 달에는 꼭 됩니다. 그때까지 아침마다 볕에 나가 앉으십시오.」

「어머니, 다음 달에는 꼭 됩니다. 그때까지 아침마다 볕에 나가 앉으십시오.」

남은 14화 · 약 51,939자 · 약 7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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