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3부 쇼와 사십년
18화제24장 아버지의 책상
돌아 나오는 길에 서고를 지났다.
편수과 서고는 사무실 뒤에 붙어 있고 문이 열려 있었다. 시렁이 다섯 열이고 통로가 좁다. 지나가면서 보니 제1열과 제2열은 연도별 교과서 판본이었다. 등이 반듯하게 서 있고 먼지가 없었다.

제3열은 안쪽이 어두웠다. 끝까지 가면 창이 없어서 낮에도 등을 켜야 할 것 같았다. 그 끝에 나무 상자가 쌓여 있었다.
스무 개쯤 되어 보였다. 크기가 다 같고 뚜껑을 노끈으로 열십자로 묶었는데 노끈 색이 다 바랬다. 상자 이음매에 종이가 붙어 있던 자국이 있고, 그 종이는 대부분 삭아서 가장자리만 남았다. 바닥에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었다.
옆면에 숫자가 있었다.
붓으로 쓴 여섯 자리였다. 획이 굵고 글씨가 서툴렀다. 상자마다 같은 여섯 자리고 그 뒤에 붙은 가지번호만 달랐다. 스무 해도 더 되어 보이는데 먹은 그대로였다. 종이는 삭아도 먹은 남는다.
나는 그 앞에 이삼 초쯤 섰다. 여섯 자리를 눈으로 한 번 읽었다. 읽었다는 것뿐이다. 관청 물건에는 어디에나 번호가 붙어 있고, 번호는 그 물건을 어느 장부의 어느 줄에서 찾으라는 뜻이다. 나는 그 장부를 볼 일이 없었다.
먼지를 밟은 자국이 하나 있었다. 통로 가운데로 사람 하나가 지나다닌 폭만큼 먼지가 얇았다. 서고에는 사람이 드나든다. 편수과 사람이 드나들 것이다.
가와바타 촉탁이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사계에서 사람이 왔답니다."
"고맙습니다."
"차를 더 드릴까요."
"아닙니다. 가 보겠습니다."
그는 내가 나갈 수 있게 옆으로 비켜섰다. 나가면서 보니 그가 문을 잡고 있었는데, 내가 지나간 뒤에도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손가락 두 마디쯤 열려 있었다. 봄이라 환기를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께 인사를 하려고 안쪽을 한 번 봤다.
아버지는 등을 보이고 앉아 계셨다.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자리들은 종이가 산인데 그 자리만 나무 색이 그대로 보였다. 필통 하나와 결재함 하나. 필통에는 연필 두 자루와 붓 한 자루가 꽂혀 있었고 결재함은 비어 있었다.
깨끗한 것이 그분답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방은 늘 그랬다. 손대는 것마다 제자리로 돌아가 있었고, 어머니는 그것을 두고 손이 야무진 양반이라고 하셨다.
나는 고개만 숙이고 나왔다. 복도 끝에서 조사계 사람이 서류철을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1965년 4월 20일 · 경성역 → 부산 → 관부연락선 → 시모노세키
그릴의 창은 플랫폼 쪽으로 나 있었다. 아침 여덟 시, 유리 아래에서 사람들이 열 명씩 한 줄로 서 있었다. 인솔자가 든 노끈을 각자 한 손으로 잡는 방식이었다. 잡은 손이 느슨해져 줄이 늘어지면 인솔자가 뒤를 돌아보았고, 그러면 줄이 다시 팽팽해졌다.
커피는 팔십 전이었다. 접시에 각설탕이 두 개 얹혀 나왔다.
옆 탁자에서는 고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말라야 국경 쪽 시세가 어떻고, 배가 언제 들어오고, 작년 이맘때는 얼마였고. 두 사람 다 조끼를 입었고 한 사람은 회중시계를 꺼내 보았다. 돔 아래로 들어온 빛이 그 시계 뚜껑에서 한 번 튀었다.
윤태섭 의원은 어제 김포에서 비행기를 탔다. 비서관 여비 규정은 이등 선차(船車)로 되어 있고, 규정은 규정이다. 나는 열 시 이십 분 급행을 타면 저녁에 부산에 닿고, 밤 배를 타면 아침에 시모노세키에 닿는다. 도쿄는 그다음 날이다. 의회는 스무사흗날 열린다.
가방 안에는 지난 회기의 예산위원회 속기록 발췌와, 조선총독부 세무감독국이 보내온 납세자 통계 사본이 들어 있었다. 사본은 세 부였다. 한 부는 윤 의원 것, 한 부는 박용구 의원 것, 한 부는 내 것이다. 통계표는 군(郡)별로 되어 있고, 세액 구간이 다섯 칸으로 나뉘어 있다. 나는 그 표를 이 주일 동안 봤고, 셋째 칸과 넷째 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이제 눈을 감고도 안다.
이 길을 오간 지 네 해째다. 첫해에는 회기 중에 세 번 갔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근거가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
급사가 물을 채워주고 갔다. 나는 각설탕 하나를 넣고 저었다. 남은 하나는 그대로 두었다.
부산 잔교에서 배에 올랐을 때는 벌써 어두웠다.
이등 선실에 짐을 두고 나오는데 아래층 계단참에서 인솔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국민복 위에 완장을 두른, 마흔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내 옷깃과 손에 든 서류 가방을 한 번 훑더니 아주 정중하게 물었다.
"글씨를 좀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삼등 선실은 마루가 넓고 천장이 낮았다. 담요와 짐과 사람이 구별되지 않게 깔려 있었다. 기름 냄새와 사람 냄새와, 어디선가 삶은 달걀 냄새가 났다. 나는 사십 명쯤으로 세었다. 스무 살 안팎이었다. 국민학교만 마치고 온 아이들이라고 인솔자가 말했다. 경상남도 여섯 군에서 모았고, 부산까지 오는 데 사흘 걸렸다고 했다.
이름표는 가슴에 다는 천 조각이었다. 소속·성명·행선지 세 칸이 인쇄되어 있었다. 성명란에 창씨명을 한자로 적어야 하는데 자기 이름의 획을 틀리게 쓴 것이 여덟이었다. 계약서에 적힌 것과 이름표에 적힌 것이 다르면 하선지에서 인원이 맞지 않는다고, 인솔자가 그 말만 두 번 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여덟 장을 고쳐 썼다. 먹을 묻힌 펜이 천에 번져서 획을 굵게 그을 수밖에 없었다. 여덟 명이 차례로 내 앞에 와 앉았다. 이름을 물으면 대답은 다들 정확했다. 소리로는 알고 있고 글자로는 모르는 것이다. 이런 일은 편수과에 있는 아버지 쪽 이야기이지 내 일이 아닌데, 그날 밤에는 내가 하고 있었다.
행선지란은 이미 다 채워져 있었다. 팔렘방, 사이공, 발릭파판. 팔렘방이 제일 많았다. 열여섯 장쯤 되었을 것이다.

"저기가 어디랍니까."
내 앞에 앉은 아이가 물었다. 손톱이 짧고 깨끗했다. 나는 남쪽이라고 대답했다.
"많이 덥습니까."
덥다고 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깐 있다가 눈이 온 적은 있느냐고 물었다. 없을 거라고 하자 아이는 웃었다. 웃는 데 이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여덟 번째 아이가 이름표를 받아 들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접은 종이를 내밀었다. 자기 계약서였다.
"여기 이 줄이, 언제 돌아온다는 겁니까."
계약 기간 이 개년.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사업소 사정에 따라 동일 조건으로 갱신할 수 있으며, 갱신 시 본인 동의를 요하지 아니한다. 나는 두 줄 다 읽어 주었다. 두 번째 줄까지 읽고 나서 아이 얼굴을 봤는데, 아이는 그 줄이 무슨 뜻인지 묻지 않고 종이를 도로 접어 품에 넣었다. 묻지 않는 편이 나은 것을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인솔자가 계약서 묶음을 넘기며 일당란을 보여주었다. 이등 인부, 팔십 전. 도장이 세 개 찍혀 있었다. 나는 아침에 마신 커피를 생각했다. 생각하는 데 이 초쯤 걸렸고, 그동안 손은 계속 획을 쓰고 있었다.
갑판으로 올라가니 바람이 옆에서 불었다.
배는 벌써 육지 불빛에서 멀어져 있었다. 난간 왼쪽 끝에 노인이 서 있었다. 두루마기 위에 국민복 상의를 걸쳐 입은 차림이었다. 그런 옷차림은 요즘 경성 부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보퉁이를 발치에 놓고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있었는데, 그 손등이 검고 갈라져 있었다. 나는 두어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서서 담배를 꺼내다 말았다. 바람 때문에 불이 붙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노인이 나를 보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젊은이, 이 배가 새벽에 닿는다지."
조선말이었다. 나는 알아들었다. 알아듣는 데는 조금도 걸리지 않았다.
"예."
"아들놈이 시모노세키 어디께 산다는데, 내리면 물어볼 데가 있겠소?"
있다. 잔교를 나가면 오른편에 안내소가 있고, 거기서 주소를 보여주면 전차 번호를 적어준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것과 별개로, 입을 열었을 때 나온 것은 이랬다.
"내리시면…… 저, 나가서 오른쪽에……"
거기서 끊겼다. 안내소를 뭐라고 하는지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그 자리에 놓을 낱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떠오르지 않는 동안 문장 뒤쪽이 통째로 무너졌다. 조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잊었다. 열여덟 자를 쓸 자리에 여섯 자를 놓고 서 있는 꼴이었다.
이 초쯤 그러고 있다가 나는 일본어로 다시 말했다.
"잔교를 나가시면 오른쪽에 안내소가 있습니다. 주소를 보여주시면 가는 길을 적어 줍니다. 글자를 못 읽으셔도 그쪽에서 읽어 줍니다."
말은 매끄럽게 나왔다. 조사 하나 걸리지 않았다.
노인은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서 뭔가가 지나갔다면 나는 보지 못했다. 노인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화를 내지도, 실망하지도, 다시 조선말로 되묻지도 않았다. 알아들었다는 뜻인지 그만두겠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바다 쪽을 보았다.
나는 잠깐 그대로 서 있다가 난간을 잡았다. 물은 검고, 배가 지나간 자리만 흰 줄로 남았다가 곧 없어졌다. 아래층에서 인솔자가 인원을 부르는 소리가 환기구를 타고 올라왔다. 하나, 둘, 셋. 노인은 아까 서 있던 자세 그대로였다. 아들이 산다는 곳은 아직 보이지 않았고, 노인은 그쪽을 보고 있었다.
1965년 4월 23일 · 도쿄 나가타초, 제국의회 의사당
의사당 중앙홀에서는 구두 소리가 두 번씩 났다. 한 번은 발이 내는 소리고, 한 번은 천장이 돌려주는 소리다. 대리석은 국산이라고 했다. 야마구치, 도쿠시마, 오키나와. 벽에 붙은 안내판에 산지가 적혀 있었는데 조선이라는 글자는 없었다.
윤태섭 의원은 홀을 가로지를 때 걸음이 조금 느려진다. 아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오른손으로 악수하고 왼손으로 상대의 팔꿈치를 짚는 버릇이 있다.
"이토 선생, 이번 회기는 짧다면서요."
"짧을수록 일이 많지요."
"그건 그렇고, 올해 반도 쌀은 어떻습니까. 작년 같으면 곤란한데."
"작년보다 낫습니다. 비가 제때 왔어요."
"그거 다행이군. 다행이야."
윤 의원은 그런 대화를 스무 번쯤 하면서 홀을 건넜다. 스무 번 다 쌀 이야기였다는 뜻은 아니다. 쌀, 무연탄, 흥남의 유안 비료, 그리고 징병 적령자 수. 조선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다음에 붙는 명사는 대개 셀 수 있는 것들이다.
의석은 회파별로 배정된다. 익찬정치회 안에도 계열이 있어서 조선에서 온 스물세 명은 본회의장 안에서 넷, 셋, 둘씩 흩어져 앉는다. 나는 좌석표를 외우고 있었다. 열세 개 선거구에서 온 스물세 사람의 자리를 종이 위에 점으로 찍으면, 그것이 무슨 모양도 되지 않는다.
의석은 회파별로 배정된다. 익찬정치회 안에도 계열이 있어서 조선에서 온 스물세 명은 본회의장 안에서 넷, 셋, 둘씩 흩어져 앉는다. 나는 좌석표를 외우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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