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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제37장 춘원(春園)

· 44화 중 27화 · 3,890자 · 약 6분 · 무료

글자3 / 5

여름 모시 적삼에 흰 바지를 입고, 여름인데 무릎에 얇은 담요를 덮고 있었다. 머리가 다 셌고 얼굴이 작았다. 안경을 코 아래쪽에 걸치고 나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

"앉으시오."

쇼와 사십년 27화 제37장 춘원(春園) — 헤더컷

국어였다. 발음이 정확하고 억양에 조선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내지 사람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소개장을 내밀었다. 노인은 봉투를 뜯지 않고 옆에 놓았다.

"이토 의원이라면 나주 사람이지."

"예."

"전에 한 번 왔었소. 십 년쯤 됐을까." 노인이 안경을 밀어 올렸다. "그때도 무슨 자문이라고 했소."

낮은 상 위에 원고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백 자 원고지고, 오른쪽 위에 장수가 적혀 있었다. 삼백사십일. 붓이 벼루 자리에 가로로 놓여 있었다. 만년필은 보이지 않았다.

글자는 국어였다.

"읽어도 되겠습니까."

"읽으시오. 읽으라고 펴 놓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첫 줄을 눈으로 따라갔다.

경성학교 영어 교사 이형식은 오후 두 시 사학년 영어 시간을 마치고, 내리쬐는 유월 볕에 땀을 흘리며 안동 김 장로의 집으로 간다.

"소설입니까."

"소설이오."

"쓰고 계신 겁니까."

"다시 쓰는 것이오." 노인이 담요 위에서 손을 한 번 뒤집었다. 손가락이 길고 손등에 검버섯이 앉아 있었다. "사십팔 년 전에 내가 쓴 것이오. 그때는 조선말로 썼소."

"옮기시는 겁니까."

"옮기는 것은 번역이오. 이건 다시 쓰는 것이오." 그는 그 차이를 설명하지 않았다. "삼백사십일 장 왔소. 원래 것이 팔백 장이 좀 넘으니 반쯤 왔지."

"다 되면 어떻게 하십니까."

노인은 원고지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눌러 폈다.

"글쎄.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해 봤소."


자문 항목은 여섯 개였다. 나는 수첩을 펴고 순서대로 물었다.

봉축 대전에 조선 고전 예술 종목을 넣는 것이 어떻겠는가. "넣으시오. 어차피 넣을 거면서 왜 묻소."

조선 문학의 대표작을 국어로 번역해 내지에 소개하는 사업은 어떤가. "번역할 사람이 없소.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는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삼십 년 뒤에는 원문을 볼 사람도 없을 것이오. 그건 사업으로 될 일이 아니오."

셋째와 넷째와 다섯째에는 예, 아니오만 답했다. 여섯째에는 답하지 않고 창밖을 봤다.

가정부가 냉수를 내왔다. 그러면서 노인에게 조선말로 뭐라고 했다. 약 드실 때 됐다는 소리 같았다. 노인은 국어로 이따가, 하고 대답했다. 여자는 알아듣고 물러갔다.

나는 수첩을 덮었다.

"선생님."

"말씀하시오."

"제가 조선말을 배워 보려고 합니다."

노인의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왜."

"집에 할머니가 계십니다. 여든이십니다. 요새 자리에 누우셨는데, 저는 그분 말씀을 반밖에 못 알아듣습니다."

"반은 알아듣소?"

"예."

"그럼 반은 배운 것이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조선말로 한 문장을 만들어 보았다. 머릿속에서 국어로 짜고 낱말을 하나씩 바꿔 끼우는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다.

"우리 할머니는 요새 자리에 누웠습니다."

노인이 나를 봤다. 그러고는 담요 위의 손을 움직이지 않고, 아주 짧게 말했다.

"할머니가 요새 자리에 누우셨습니다."

조선말이었다. 그 집에 온 뒤로 그가 조선말을 쓴 것은 그때 한 번이었다.

는이 가로 바뀌었고, 누웠습니다가 누우셨습니다가 되었다. 두 군데였다. 나는 그 두 군데가 왜 바뀌어야 하는지 몰랐고, 다만 바뀐 쪽이 맞다는 것은 알았다. 소리를 들으면 그건 안다.

"예." 나는 국어로 대답했다.

"물 드시오."

그는 다시 국어로 돌아갔다. 우리 둘 다 방금 있었던 일을 못 본 척했다. 매미가 한 번 끊겼다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돌아갈 열차 시각까지 사십 분이 남았다.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자문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물으시오."

"쇼와 십칠년에 조선어 사전을 만들던 사람들이 함흥으로 끌려간 일이 있습니다. 그중에 이듬해 가을에 나온 사람이 있습니다. 안형석이라고 합니다."

노인은 원고지를 봤다.

"모르오."

"학무국 편수과에 있습니다. 이십이 년째입니다."

"모르는 이름이오." 그는 붓을 집었다가 도로 놓았다. "그 무렵에 사람이 많이 드나들었소. 나한테 오는 사람도 있었고 나를 피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름을 다 못 외우오. 늙으면 이름부터 없어집니다."

"예."

노인은 원고지 오른쪽 위의 장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가 뗐다. 매미가 한 번 더 끊겼다.

"무신생 아니오, 그 사람."

나는 수첩을 쥔 채로 가만히 있었다. 간지를 배운 적이 없어서 그것이 몇 년인지 그 자리에서는 세지 못했다. 노인은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지 않았다. 묻고 나서 곧바로 나온 말이었다.

"무신이 몇 년입니까."

"메이지 사십일년이오." 노인은 나를 보지 않았다. "그해 정월에 났으면 섣달생 노릇을 하오. 조선에서는 그런 걸 따집니다."

쇼와 사십년 27화 제37장 춘원(春園) — 전환컷

아버지는 메이지 사십일년 정월 열아흐레에 났다.

노인은 더 말하지 않고 붓을 들어 먹을 찍었다. 삼백사십이 장째 첫 칸에 붓끝을 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조심해 가시오. 논둑이 미끄럽소."


가정부가 대문까지 따라 나왔다. 빗장을 걸면서 그 여자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춘원 선생 낮잠 시간인데."

춘원이라는 말을 나는 알았다. 아버지 책장에 세로쓰기 책이 몇 권 있고, 그중 한 권 등에 붓으로 그렇게 적혀 있는 것을 어릴 때 본 적이 있다. 무슨 뜻인지는 물어본 적이 없다.

논둑길로 내려섰다. 해가 서쪽 소나무 위에 얹혀 있었고 논물에 그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 개구리가 한꺼번에 울었다가 발소리에 한꺼번에 그쳤다.

역까지 이십 분. 나는 그 이십 분 동안 수첩을 두 번 폈다. 한 번은 무신이라는 두 글자를 보려고 폈고, 한 번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도로 접었다.

뒤에서 대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1965년 7월 22~23일 · 경성역 → 원산 → 함경남도 흥남, 배윤식의 집

경성역 밤 열 시 오십분 청진행은 삼등칸이 열두 량이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봉투를 무릎에 얹고 있었다. 안에 든 것은 종이 두 장이다. 의원회관 자료실에서 베낀 쇼와 십팔년 구월 기사의 기소자 명단, 그리고 부 호적계에 조회해 받은 주소 한 줄. 함경남도 함흥부 흥남읍 서호리. 조회는 윤 의원 사무소 이름으로 넣고 사유란에 유권자 명부 정리라고 적었다. 그 종이도 어딘가 접수철에 한 장 늘었을 것이다.

맞은편 일본인 둘은 흥남 공장으로 가는 기술자였고 밤새 유안 값과 전력 배정 이야기를 했다. 통로 쪽 청년 셋은 징병 검사 이야기를 국어로 했다.

내 옆 노인이 자다 깨서 나에게 뭐라고 물었다. 어디까지 가느냐는 말인 줄 알고 흥남이라고 대답했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잤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원산에서 사십 분을 섰다. 플랫폼에서 오징어 삶는 냄새가 올라왔다.

거기서부터 바다가 오른쪽으로 붙었다. 동해는 흐리고 파도가 없었다. 여섯 시 반에 해가 물 위로 올라왔고 여덟 시가 지나면서 창밖에 굴뚝이 나타났다.

세어 보니 열두 개였다. 연기가 옆으로 뉘어 있고 그 아래로 회색 건물이 몇 정보씩 이어졌다. 조선의 공업 외지화를 말할 때 개정안 이유서에 우리가 넣은 문장이 이 풍경 하나였다.


서호리는 공장 뒤 언덕에 붙은 사택 구역이었다. 회를 다시 바르지 않은 지 오래된 목조 연립이다.

문을 두드리자 삼십 대 여자가 나왔다.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나를 위아래로 봤다.

"경성에서 왔습니다. 배윤식 어른을 뵈러 왔습니다."

"편찮으십니다."

"안형석 씨 아들입니다."

여자의 손이 앞치마에서 멈췄다. 아무 말 없이 옆으로 비켜섰다.

방에 약 냄새가 꽉 찼다. 아랫목에 요를 깔고 노인이 누워 있고 머리맡에 약탕관이 놓였다. 뚜껑 가장자리에 검은 것이 눌어붙어 있었다.

"어르신."

노인이 눈을 떴다. 눈꺼풀이 얇았다. 몸을 일으키려다가 기침이 시작됐다.

기침은 길었다. 어깨가 앞으로 말리고 이불 위의 손이 요를 움켜쥐었다. 며느리가 등 뒤로 들어가 어깨를 받쳤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은 채로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기침이 그치고 노인이 수건에 입을 닦아 접어 두었다.

"안형석이." 노인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형석이 아들이라고."

"예. 안재호입니다."

"몇째냐."

"둘째입니다. 형은 십일 년 전에 갔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고 국어로 바꿔 물었다.

"자네 조선말 하나."

"반쯤 합니다."

"반쯤이면 못 하는 거다." 노인은 다시 조선말로 돌아갔고, 그 뒤로 국어를 쓰지 않았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의 대여섯 마디에 한 마디씩을 놓쳤다.


며느리가 냉수를 놓고 나갔다.

"자네 아버지가 보내서 왔나."

"아닙니다. 아버지는 제가 여기 온 것을 모르십니다."

"그럼 어떻게 알고 왔어."

"쇼와 십팔년 구월 신문에 이름이 있었습니다."

노인이 웃었다. 웃다가 기침을 조금 했다.

"신문에 났지. 그때 우리 이름이 다 났다. 사진도 났고." 그는 천장을 봤다. "삼 년 받았다. 나와서 여기 서기로 스무 해 있다가 재작년에 그만뒀고, 그 뒤로 이러고 있다."

"어르신."

"말해라."

"쇼와 십팔년에 압수품이 함흥에서 경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궤짝 스무 개입니다. 지금 총독부 학무국 서고 제삼열에 있습니다."

"봤나."

"사월에 봤습니다.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습니다."

노인의 손가락이 요 위에서 한 번 움직였다.

"스무 개가 갔고 스무 개가 왔다." 그가 말했다. "다만 하나는 속이 비었을 게다."

방 밖에서 공장 기적이 울렸다. 여덟 시 반 교대다.

"그해 섣달에 함흥역 하치장으로 사역을 나갔다. 형무소에서 사람을 스물씩 내보내던 때다. 짐 옮기고 목록에 도장 받는 일이었어. 나는 글을 아니까 목록 쪽에 붙었지."

"궤짝을 여셨습니까."

"열여섯 번째 것을 열었다. 뚜껑 못을 뽑고 뭉치를 들어내고, 봉인지를 도로 붙이고 못을 박았다. 반나절 걸렸다." 노인이 물을 조금 마셨다. "목록은 손도 안 댔어. 스무 개 실었으니 스무 개 적혀 있고, 경성에서도 스무 개 받았을 거다. 관청은 궤짝을 세지 속을 안 센다."

"뭉치는요."

"가마니에 담아서 소화물로 부쳤다. 유치품으로. 임자 이름 적는 칸에 우리 밀양 삼촌 이름을 적었어. 그 양반은 그때 이미 돌아가셨고." 그는 수건을 다시 접었다. "유치품은 일 년 지나면 경매로 넘어간다. 나는 그걸 계산할 처지가 아니었다."

"경매에 안 넘어갔습니까."

"전쟁 통에 밀려 있었지. 스물한 달 만에 나가서 인수증에 도장 찍고 지게로 실어 왔다. 하치장 서기가 묻더군. 이거 뭡니까, 무겁습니다. 종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니까."

'전쟁 통에 밀려 있었지. 스물한 달 만에 나가서 인수증에 도장 찍고 지게로 실어 왔다. 하치장 서기가 묻더군. 이거 뭡니까, 무겁습니다. 종이라고 했다. 맞…

남은 17화 · 약 63,031자 · 약 1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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