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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제50장 조선말로 묻는다

· 44화 중 36화 · 3,566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1965년 10월 7일 · 경기도경찰부 취조실

취조실의 창은 서서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높이에 있다. 유리에 철망이 들어 있고 그 너머로 하늘만 보인다. 오전 아홉 시 조금 지나서 하늘은 흰색이었고, 세 시간 뒤에도 흰색이었다. 그 사이에 무엇이 지나갔는지는 알 수 없다.

쇼와 사십년 36화 제50장 조선말로 묻는다 — 헤더컷

책상은 둘이다. 큰 것 앞에 내가 앉고, 벽 쪽 작은 것에 서기 순사가 앉는다. 서기는 스물 몇쯤 되어 보였고 펜을 쥔 손 옆에 압지를 놓았다. 큰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류철도 없었다. 다만 오른쪽 끝에 책 다섯 권이 쌓여 있었다. 『국어 보급 교본』 권1에서 권5까지다. 표지가 낡았고 갈피마다 붉은 종이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경부보 가와카미 소이치가 들어와 앉았다. 국민복 차림이었고 모자를 벗어 책상 모서리에 놓았다. 그가 나를 한 번 보고 웃었다.

"안 서방, 아침은 자셨는가."

조선말이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소리가 이 방에서 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아서다.

"예. 먹었습니다." 일본어가 나왔다.

그는 그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것을 물었다. 계속 조선말이었다.


세 시간 동안 그는 나를 때리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그가 한 것은 묻는 것뿐이다.

언제 알았나.

처음 안 날이 며칟날인가.

그날이 몇 시였나.

먼저 말을 꺼낸 쪽이 자넨가 아버님인가.

같은 것을 그는 열 번 넘게 물었다. 낱말을 바꾸고 순서를 바꾸어서, 아까 물은 것과 지금 묻는 것이 같은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물었다. 나는 같은 대답을 했다. 일곱 번째쯤부터 내 대답이 처음과 똑같은지 아닌지 스스로 확신할 수 없어졌다. 서기의 펜 소리가 났다. 내가 말할 때 나고, 내가 말을 멈추면 조금 더 나다가 그쳤다.

그 조금 더가 견디기 어려웠다.

"천천히 하게." 가와카미가 말했다. "우리는 시간이 많다."

그가 특히 오래 붙든 것은 순서였다.

"칠월 스무아흐레 밤에 자네가 청사로 갔지. 아버님이 부르셨나."

"아닙니다. 제가 갔습니다."

"가서 뭘 물었나."

"묻지 않았습니다. 보았습니다."

"보고 나서 뭐라 했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이 먼저 말씀하셨겠구먼."

"예."

"그러면 자네가 가서, 아버님이 말씀하시고, 자네가 들었다. 이 순서가 맞는가."

맞았다. 나는 맞다고 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서기 쪽을 보았고 펜이 움직였다. 그러고 십 분쯤 뒤에 그는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날 밤에 무엇을 하러 갔는지부터 물었다. 하러, 라는 말이 붙자 순서가 조금 달라졌다. 나는 그것을 알아챘고, 알아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조선말로 대답하라고 하지 않았다. 이 방에는 말이 둘 있고 그중 하나는 그의 것이다. 그가 그것으로 묻고 내가 다른 것으로 대답한다. 세 시간 동안 그 어긋남이 한 번도 고쳐지지 않았다.


두 번, 나는 그가 쓴 낱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한 번은 엮다였다. 그는 상자에 든 것을 누가 엮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 소리에 뜻을 붙이지 못했다. 얼굴에 그것이 드러났던 모양이다. 그가 잠깐 기다렸다가 일본어로 바꾸어 말해 주었다. 편찬. 아, 하고 나는 말했다.

또 한 번은 갈무리다. 그는 다시 일본어로 바꾸어 주었다. 그때는 미안해하는 얼굴을 했다.

"내가 옛말을 쓰네." 그가 조선말로 말했다. "자네 어머니 되시는 분은 아실 낱말인데."

그러고는 교본 권1을 끌어다 붉은 쪽지가 낀 데를 폈다. 페이지를 돌려 내 쪽으로 밀어 놓지는 않았다. 자기 앞에 둔 채로 한 줄을 읽었다. 왼쪽 칸이 일본어고 오른쪽 칸이 조선말인 대역란이다. 그가 오른쪽 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레."

그가 나를 보았다. "뜻을 아나."

나는 몰랐다. 칠일이라고 하면 알았을 것이다.

"이레." 그가 다시 말했다. "일곱 날. 국민학교 일 학년이 국어를 배우는 책에 이런 게 들어 있다. 자네가 이 책으로 배웠을 텐데."

나는 그 페이지를 보았다. 오른쪽 칸의 획들이 보였다. 획이 보였고 줄이 보였고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점심이 들어왔다. 그는 나가지 않고 같은 방에서 먹었다. 먹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가 조선에 온 것이 1908년이라고 했다. 통감부 시절이다. 대구 서문 밖에서 잡화를 했고, 가와카미 자신은 대구에서 났다.

쇼와 사십년 36화 제50장 조선말로 묻는다 — 전환컷

"내가 조선말을 어디서 배웠는지 아나. 젖어미한테 배웠다. 이름이 순남이었네. 성은 모르지."

그가 젓가락을 놓았다.

"그 사람이 나를 업고 다니면서 밤낮 노래를 불렀는데, 나는 지금도 그걸 다 안다. 우리 어머니는 그 노래를 몰랐어."

그가 웃었다. 억양이 그때 분명해졌다. 경성 사람의 조선말이 아니다. 말끝이 위로 잠깐 올라갔다가 떨어진다. 대구다. 대구 사람들이 자네, 하고 부를 때 그렇게 한다.

"안 서방. 나는 조선을 사랑한다." 그가 말했다. "이 말을 내지 사람이 하면 우스운 줄은 아네. 그런데 나는 조선말로 자고 조선말로 꿈을 꾸는 사람이다. 자네보다 내가 낫지."

사실이었다. 그것이 이 방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자네 아버님 같은 분들이 뭘 하는지 나는 안다. 조선말을 종이에 담아서 묻어 두려는 거지. 묻어 두면 남는다고 믿는 거야. 그런데 그게 무슨 짓인지 아나. 조선 사람을 조선 안에 가두는 짓이다."

그는 조선말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신징에서도 일해 봤고 부산 부두에서도 일해 봤다. 거기서 조선 사람이 배를 부리고 장부를 적고 사람을 부리는 걸 봤어. 스무 해 전에는 없던 일이지. 그게 어떻게 됐겠나. 말이 하나가 되니까 된 거다. 둘이면 안 되는 거야. 둘이면 반드시 한쪽이 아랫자리로 간다."

그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 번 두드렸다.

"나는 아무것도 금한 적이 없다. 나는 열다섯 해 동안 이 자리에 있었지만 조선말을 하지 말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런데도 아이들이 안 쓴다. 왜 안 쓰는가. 자네가 대답해 보게."

나는 조선말로 대답하려고 했다. 저는, 까지 나왔다. 그다음이 오지 않았다.

일본어로 바꾸어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어서 그가 모자를 집었다.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서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를 물었다. 앉아 있을 때보다 목소리가 편했다.

"자네는 자네 아버지가 만든 책으로 국어를 배웠지."

서기의 펜이 멈추었다.

나는 열 살까지 그 책 다섯 권을 밥상머리에 두고 읽었다. 아버지가 그것을 만든다는 것을 알았고, 그 사실이 어린 나를 부끄럽게 했고, 부끄러움의 이유를 나는 스무 해가 넘도록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가와카미가 기다렸다. 그는 오래 기다리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그러고는 문 쪽으로 가면서 조선말로 말했다.

"그만 가 보게. 몸조심하고."

"실례하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1965년 10월 12일 · 경기도경찰부 별관 취조실 / 1942년 함흥경찰서

방에 들어서면서 안형석이 맨 먼저 본 것은 창의 높이였다.

바닥에서 창턱까지 어른 키보다 조금 높다. 함흥의 방도 그랬다. 그때는 그것이 함흥의 사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스물세 해 뒤에 경성에서 같은 높이를 보고 나니 사정이 아니라 도면이었던 것이 분명해졌다. 어디선가 누가 한 번 그려서 내려보낸 도면이다. 앉은 사람이 하늘만 보게 되어 있고, 하늘은 시각을 알려 주지 않는다.

책상 위 조서 용지의 아래 귀퉁이에 인쇄된 것이 있다. 서식 번호다. 그는 그것을 읽었다.

함흥에서 본 번호와 같았다.

편수 일을 스물두 해 했다. 그동안 총독부 발행물의 판은 세 번 갈렸고, 활자도 세 번 바뀌었다. 그런데 이 용지는 그대로다. 활자만 늙었다. 자획의 모서리가 닳아서 획 끝이 뭉개져 있다. 같은 연판을 이십 년 넘게 돌려 찍은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웃지는 않았다.


열이틀이 지났다.

열이틀 동안 그가 받은 질문은 스물몇 가지였고 전부 같은 것이었다. 밤에 청사에 남은 날이 몇 날인가. 서고 열쇠는 누가 관리하는가. 상자 스무 개를 언제부터 알았는가. 같은 것을 매번 조금 다르게 물었고, 그는 매번 같게 대답했다. 대답이 같으면 조서가 쌓이지 않고, 조서가 쌓이지 않으면 시간이 간다. 그들은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시간은 그들의 것이고 그의 것이 아니다.

그는 열이틀 동안 다른 것을 기다렸다.

첫 주에는 아무 일도 없다. 둘째 주에는 같은 질문이 온다. 그다음에 가족이 온다. 순서를 그는 안다. 그 순서를 아는 사람은 조선에 몇백 명쯤 있을 것이고 그중 하나가 그다.

한 가지가 달랐다.

가와카미 경부보는 그에게 조선말을 쓰지 않는다. 열이틀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이 사람이 조선말을 잘한다는 것은 총독부 안에서도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방에서는 쓰지 않는다.

형석은 그 이유를 사흘째에 이해했다. 조선말은 그것을 잃은 사람에게만 연장이 된다. 형석에게는 연장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쓰지 않는 것이다. 낭비를 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물도 없었고 몽둥이도 없었다. 함흥에는 있었다. 스물세 해 사이에 그것이 없어진 것은 누가 인정을 배워서가 아니다. 사람을 때리면 사람이 상하고, 상한 사람은 서명을 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그들은 그것을 알아냈다. 알아내고 나서 방법을 고쳤다. 이제 그들이 쓰는 것은 시간뿐이다. 시간은 값이 들지 않는다.

이날 아침, 경부보 가와카미가 종이 한 장을 책상 위에 놓았다.

중의원 의원 윤태섭 사무소. 비서관 촉탁 해촉의 건.

가와카미는 그 종이를 두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손끝으로 조금 밀어서 형석 쪽으로 각을 맞추었다. 읽으라는 뜻도 아니고 읽지 말라는 뜻도 아닌 각도다.

형석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그는 그것이 안도라는 것을 알았고, 그 사실을 부끄러워할 겨를이 없었다.

여기까지 왔다. 이제부터가 거래다.

여기까지 왔다. 이제부터가 거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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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사십년전 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