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2부 감(柿)이 익다
7화제9장 감을 세는 사람들
팔월 구일 아침, 참모본부 작전실의 창은 활짝 열려 있었고 매미 소리가 회의 내내 그치지 않았다.
하얼빈 특무기관에서 올라온 감청 요약은 두 장이었다. 극동 방면 무선망의 호출부호 배열이 유월 말부터 바뀌었고, 사라진 호출부호들이 시월에 다시 나타난 곳은 우랄 서쪽이었다. 시베리아 철도 서행 편성이 여름 내내 상행보다 많았다.

"익었습니다." 보고 장교가 말했다.
"익은 것과 떨어진 것은 다르네." 스기야마가 말했다.
"떨어질 때까지 서 있으면 남이 줍습니다." 다나카가 받았다. "독일이 혼자 끝내면 우리 몫으로 남는 것은 아무르강 이쪽뿐입니다. 하바롭스크는 지도에서 두 뼘이지만 결재란에서는 한 줄입니다."
"철도 편성표를 어떻게 믿나." 스기야마가 물었다. "저쪽도 우리가 듣고 있다는 걸 아네."
"압니다. 그래서 호출부호를 바꿉니다." 보고 장교는 두 번째 장을 넘겼다. "속일 작정이면 편성을 늘려 보이지 줄여 보이지 않습니다. 극동에 남겨 둔 부대의 무선 교신량이 유월의 사분의 일입니다. 없는 부대를 있는 것처럼 꾸미는 건 쉽지만, 있는 부대가 말을 하지 않게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도조는 어제 관동군에서 온 병력 보고를 다시 펼쳤다. 유월에 만주에 있던 병력이 팔월에 배가 되어 있었다. 병사들은 이미 가 있었다. 서류만 아직 연습이었다.
그는 실무 장교를 불렀다.
"팔월 구일자로 기안하게. 관특연은 이로써 종료하고—" 잠깐 멈췄다. "종료가 아니라 이행이야. 이행으로 쓰게."
"조건 조항은 어떻게 적습니까."
도조는 안경을 벗지 않았다. 이 숫자는 외울 것이 없었다.
"익었다고 적어라."
회의는 열한 시 전에 끝났다. 관저를 나서자 매미 소리가 담 밖에서 다시 시작됐다. 옆 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열매는 손톱만 하고 푸르렀다. 도조는 모자를 고쳐 쓰고 차에 올랐다. 차 안은 아침보다 더웠다.
1941년 9월 18일 새벽 ~ 10월 · 만주 무단장 → 연해주 국경 → 우수리
말이 먼저 알았다.
안개가 사람 가슴께까지 차 있어서 문상길은 앞 수레의 바퀴만 보고 걸었는데, 그 안개 속에서 말들이 한꺼번에 목을 들었다. 열두 마리가 거의 동시에 귀를 세웠다. 그러고 나서 동쪽에서 소리가 왔다. 낮고 둔한 소리가 배로 먼저 들어오고 귀로 나중에 들어왔다.
"엎드려." 오시마 하사가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엎드리지 않았다. 그 소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소리였다.
포병이 삼십 분쯤 쳤다. 안개가 걷힐 무렵 선두 수레가 움직였고, 문상길이 속한 병참 열은 그 뒤를 따라 국경 표주를 지났다. 표주는 시멘트로 만든 네모난 기둥이었고 한쪽 면에 글자가 있었는데 지나가면서는 읽을 수 없었다.
트럭은 앞쪽에만 있었다. 뒤는 전부 마차였다. 탄약 상자, 말먹이 자루, 야전취사 솥, 그리고 또 말먹이 자루. 말을 먹이려고 싣는 짐이 말이 끄는 짐의 절반이라는 것을 문상길은 무단장을 떠나던 날 알았고, 그 계산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계속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나." 오시마가 옆으로 붙어 걸으며 말했다. 그는 스물여덟이었고 오사카 사람이었고 말이 많았다.
"모릅니다."
"만주사변 십 주년이야. 십 년 전 오늘 밤에 류탸오후에서 철도가 끊어졌지.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어." 오시마는 웃었다. "십 년 만에 여기까지 왔다."
문상길은 스물둘이었다. 열두 살에 그 소식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자네 고향이 어디랬지."
"경성입니다."
"게이조? 그럼 도시 사람 아닌가."
"글자는 같습니다만 다른 곳입니다. 함경북도 쪽입니다." 문상길은 잠깐 뒤에 덧붙였다. "여기서 더 가깝습니다."
오시마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는 표정을 짓다가 그만두었다.
"자네들은 좋겠어. 총을 안 메니까."
"예."
"지원병 나간 조선 사람도 있다더구먼. 우리 연대에도 하나 있었어. 그 친구는 총을 메지." 오시마는 어깨를 돌렸다. 그의 등에는 소총이 있었고 문상길의 등에는 없었다. "자네들은 아직 아니야. 몇 해 있으면 어떨지 모르지만."
정오 무렵 앞쪽 수레의 말 한 마리가 주저앉았다. 다리가 부러진 것이 아니라 그냥 서 있지 못했다. 상등병 둘이 마구를 풀고 짐을 옆 수레로 옮겼고, 말은 길가에 남았다. 행렬은 서지 않았다. 한 시간쯤 뒤에 뒤쪽에서 총소리가 한 번 났다.
수분하 집적소는 사흘 만에 화차 두 대 분량으로 불어났다. 조선인 군속은 열둘이었고 그중 넷이 문상길과 같은 함경도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맡겨진 일은 짐을 내리고, 무게를 달고, 표를 써서 붙이고, 다시 싣는 것이었다.
문상길은 계량대 옆에 서서 자루를 셌다. 저울추를 올리고 자루를 올리고 눈금을 읽고, 다음 자루.

"여섯, 일곱, 여덟."
혼잣말이었다. 셈은 조선말로 하는 것이 빨랐다. 머릿속에서 옮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손이 먼저 움직였고, 사흘째 밤이라 그는 이미 반쯤 자면서 일하고 있었다.
"아홉, 열—"
오시마의 손이 왔다. 소리가 먼저 나고 얼굴이 나중에 뜨거워졌다.
계량대 위에서 저울추가 미끄러져 두어 번 굴렀다. 다른 군속들이 하던 일을 멈췄다가, 멈춘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곧 다시 움직였다.
"여기가 어디야." 오시마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게 더 나빴다. 화를 내면 지나가는 일이지만 이건 가르치는 일이었다. "여기는 전선이다. 전선에서는 국어를 쓴다. 옆 사람이 못 알아듣는 말을 하면 그게 신호인지 셈인지 누가 아나."
"죄송합니다."
"다시 세."
문상길은 저울추를 제자리에 놓았다. 자루를 올렸다.
"로쿠. 시치. 하치. 규. 주."
혀가 조금 늦게 움직였다. 열이라는 소리와 주라는 소리 사이에 아주 짧은 자리가 있었고, 그는 그 자리를 지나가면서 한 번 삼켰다. 오시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갔다.
저녁에는 표를 썼다. 종이는 손바닥 두 장 크기였고 칸이 다섯이었다. 품명, 수량, 중량, 발송 부대, 수령자. 문상길은 붓에 침을 묻혀 끝을 세우고 칸을 채웠다. 다섯 번째 칸에는 자기 이름을 썼다. 두 자를 쓰고 한 자를 더 썼다.
표를 자루에 매달아 놓으면 그것이 그 자루의 전부가 되었다. 안에 무엇이 들었든 열어 보는 사람은 없었다. 열어 보지 않아도 되게 하려고 표를 쓰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문상길은 셈을 국어로 했다. 처음 며칠은 조선말이 먼저 떠올랐다가 밀려나는 것이 느껴졌고, 열흘쯤 지나자 그 순서가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날도 없었다.
시월에 그들은 우수리강 서안까지 올라갔다. 강은 이미 가장자리부터 얼고 있었다.
강으로 가는 길에 빈 마을을 지났다. 지붕이 내려앉은 집이 스물 남짓이었고 사람은 없었다. 벽이 남은 집 하나에 들어가 보니 방바닥이 이쪽이 높고 저쪽이 낮았다. 아궁이 자리가 있고 굴뚝이 뒤로 빠져 있었다. 문상길은 손바닥을 방바닥에 대 보았다.
"온돌이네." 뒤에서 함흥 사람 하나가 말했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마당의 우물은 판자로 덮여 있었고 판자에 못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떠날 때 박은 못이었다. 급히 떠난 사람은 우물을 덮지 않는다.
오시마가 문간에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기 뭐 있나."
"아무것도 없습니다."
포로 대열이 강변길로 내려온 것은 오후였다. 소련군 국경수비대였고, 외투가 젖어 검게 보였다. 백 명이 조금 넘었다. 문상길은 마차 뒤에 서서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짐을 지키라는 명령이었다.
대열 가운데쯤에서 한 사람이 발을 헛디뎠다. 앞사람의 등에 부딪히고, 뒷사람이 그의 팔을 잡아 세웠다.
"조심하오."
문상길의 손이 멈췄다.
잡아 준 쪽이 한 말이었다. 짧고 낮았고, 옆에 선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아무 뜻도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이 넓적하고 광대가 나온 남자였다. 스물몇쯤. 문상길과 눈이 마주쳤다.
셋을 셀 동안이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제야 안 것 같았다. 눈이 아주 잠깐 커졌다가 그대로 굳었다. 문상길은 입을 열지 않았다. 열려고 하지도 않았다. 자기 입이 안 움직인 게 아니라 처음부터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그는 정확히 알았다.
대열이 지나갔다. 앞에서 호송병이 뭐라고 소리쳤고, 남자는 앞사람 등을 보며 걸어갔고, 그다음은 없었다.
옆에 있던 함흥 사람이 낮게 물었다. "저 사람 뭐라고 했소."
"러시아 말이겠지." 문상길은 마차의 밧줄을 다시 조였다. 밧줄은 이미 충분히 조여져 있었다.
밤에 천막 안에서 문상길은 담요를 턱까지 끌어올리고 누워 있었다. 옆에서 누가 이를 갈았다. 밖에서 말이 발을 굴렀다.
그는 어둠을 보며 입술만 움직여 보았다.
"분 쇼키치."
소리가 나지 않게 한 번 더.
"분 쇼키치."
발음이 어렵지 않았다.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발음이 어렵지 않았다.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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