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5부 사전(辭典)
28화제38장 흥남 가는 길
마루 끝의 널판 두 장이 다른 것들보다 색이 옅었다.
며느리가 쇠꼬챙이로 널판을 들어냈다. 아래는 마른 흙이고 그 위에 기름종이로 싼 것이 노끈에 열십자로 묶여 있었다. 며느리가 그것을 끌어내 마루에 올리고 짚수세미로 흙을 털었다.

관에서 쓰는 물건이 아니었다. 사과 궤짝에 못을 다시 박은 것이다. 뚜껑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누렇게 삭았어도 인쇄된 칸은 남아 있었다. 소화물 유치표. 취급역 함흥. 품명 서적류. 임자 이름 칸에 붓글씨로 석 자가 있었고 나는 그 석 자를 읽지 못했다.
"열어 봐도 되겠습니까."
"열어라."
기름종이를 걷었다. 원고지 뭉치가 나왔다. 이백 장씩 노끈으로 묶어서 층층이 쌓았고, 사이사이에 신문지를 끼워 놓았다. 신문지는 쇼와 십팔년 것이다.
"열아홉 뭉치다." 노인이 말했다. "삼천팔백 장이야."
첫 뭉치를 들어 무릎에 올렸다. 종이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맨 위 장에 붉은 인찰선이 있고 그 안에 글자가 있었다. 획이 굵고 촘촘했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뭐라고 적힌 겁니까."
노인이 나를 봤다. 눈을 두 번 깜박였다.
"자네 못 읽나."
"예."
방이 조용해졌다. 며느리가 부엌으로 갔고 거기서 물 붓는 소리가 났다.
노인이 벽장을 가리켰다. 며느리가 상자 하나를 꺼내 왔다. 봉투가 가득 차 있었다. 세로로 꽂혀서 가운데가 눌려 배가 불렀다.
"몇 통입니까."
"세 봤다. 작년에 셌어. 삼백열두 통이다."
봉투 하나를 뽑았다. 겉면에 흥남 주소와 배윤식이라는 이름, 보내는 쪽에 경성 종로 육정목과 야스모토라는 성만 적혀 있었다. 아버지 글씨였다. 나는 아버지 글씨를 안다. 세로획이 아래로 갈수록 왼쪽으로 조금씩 밀린다.
안에서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접힌 자국이 세 개였다.
인사가 없었다. 날짜가 없었다. 첫 줄부터 낱말이었다. 두 자, 세 자, 네 자짜리가 줄을 맞춰 내려가고, 어떤 것 옆에는 작은 점이 찍혀 있었다. 스물몇 개쯤 되어 보였다. 그것뿐이었다.
"이게 뭡니까."
"그달에 자네 아버지가 어디에 뭘 넣었는지다." 노인이 이불 밖으로 손을 조금 내밀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심은 걸 자기가 다 못 지킬 줄 알았어. 그래서 목록을 딴 데 뒀다. 나는 이걸 이십 년 받아만 놓고 한 번도 답장을 안 했다."
"왜 안 하셨습니까."
"답장이 오면 그쪽 우편이 두 배가 되니까."
나는 봉투를 도로 궤짝에 꽂았다. 손끝이 축축했다.
"어르신, 이걸 제가 경성으로 가져가겠습니다. 총독부 서고에 있는 것과 합치면……."
"안 준다."
"예?"
노인은 요를 조금 끌어 올렸다. 숨이 짧아서 말이 한 번에 나오지 않았다.
"자네는 이걸 읽지도 못하잖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자네 아버지한테 오라고 하게." 노인이 말했다. "직접 오라고 해."
1965년 7월 29일 밤 11시 · 조선총독부 청사 학무국 편수과 서고 제3열
야간 통용문은 청사 서쪽 끝, 지하로 반 층 내려간 자리에 있었다.
수위실 창만 노랬다. 노인이 유리문을 열고 나를 위아래로 봤다.
"어디 가십니까."
"학무국 편수과입니다."
"이 시간에요."
신분증을 내밀었다. 노인은 그것을 등불 아래로 가져가 오래 봤다. 사진과 얼굴을 두 번 맞춰 봤다.
"야스모토 편수관님 아드님이시죠."
"예."
"닮으셨습니다." 노인이 신고부를 밀어 놓았다. "성함하고 용무하고 시각을 적으십시오."
야스모토 다케오. 용무란에는 부친 면회라고 적었다. 열한 시 사분. 노인이 도장을 찍었다. 종이가 또 한 장 늘었다.
"복도 불은 다 꺼졌습니다. 계단 조심하십시오."
대리석은 밤에도 발소리를 두 번씩 되돌려준다. 낮에는 사람 소리에 묻혀서 모른다.
편수과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사무실은 캄캄하고 창으로 들어온 가로등 빛이 책상 열넷의 모서리만 희게 만들었다. 뒤쪽 서고 문이 손가락 두 마디쯤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빛이 한 줄 새어 나와 바닥에 누웠다.
사월에도 그 문은 그만큼 열려 있었다. 그때 나는 봄이라 환기를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문을 밀었다.
제1열, 제2열은 어두웠다. 통로 끝, 제3열 안쪽에 갓 씌운 전등이 하나 켜져 있었다. 빛이 아래로만 떨어져서 상자 옆면과 바닥과 사람의 어깨까지만 밝았다.
아버지가 등을 보이고 앉아 계셨다.
궤짝 하나를 무릎 앞에 열어 놓고 원고지 뭉치를 무릎에 얹은 자세였다. 오른손에 펜을 들고 한 장씩 넘기고 계셨다. 넘기는 속도가 일정했다. 어떤 장에서는 멈추고, 멈추면 펜이 내려갔다.
나는 통로 입구에 섰다.
몇 분이나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전등이 낮은 소리로 울었다. 그동안 아버지는 세 장을 넘기고 두 번 멈추셨다. 나는 그 등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마주 앉아 본 것이 언제인지 세어 보려고 했다. 밥상은 세지 않기로 했다. 밥상에서는 마주 앉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상 앞에 앉는 것이다.
세지 못했다.
"거기 서 있지 말고."
아버지는 돌아보지 않으셨다. 목소리가 낮았고 놀라지 않았다.

나는 통로를 걸어 들어갔다. 상자가 양쪽으로 스무 개 쌓여 있었다.
옆면에 붓으로 쓴 여섯 자리가 있었다. 획이 굵고 서툴렀다.
170632.
사월에 나는 이 앞을 지나가면서 그 숫자를 눈으로 한 번 읽었다. 읽었다는 것뿐이었다. 관청 물건에는 어디에나 번호가 붙어 있다고 생각했고, 그건 틀린 생각이 아니었다.
숫자 뒤에 가지번호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열여섯 번째 상자 앞에서 나는 걸음을 늦췄다. 뚜껑이 다른 것들과 똑같이 덮여 있었다.
아버지는 뚜껑을 덮지 않으셨다. 무릎 위의 뭉치도 내려놓지 않으셨다. 내가 옆에 와서 설 때까지 하시던 것을 계속하셨고, 한 장을 마저 넘긴 다음에야 펜을 상자 턱에 놓으셨다.
"흥남에 갔다며."
"…예."
"윤식이가 뭐라더냐."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직접 오시라고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것뿐이었다. 놀라움도, 물음도, 화도 없었다. 나는 무슨 말을 준비해 갔는지 그 자리에서 잊어버렸다.
"앉아라."
앉을 데가 없어서 나는 빈 궤짝 하나를 옆으로 돌려놓고 그 위에 앉았다.
아버지가 조선말로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은 그때부터였다.
나는 그 소리를 처음 들었다. 집에서 아버지는 할머니에게도 국어로 대답하신다. 할머니가 조선말로 물으면 아버지는 국어로 답하시고, 두 분은 그렇게 이십오 년을 하셨다.
목소리가 달랐다. 높이가 아니라 자리가 달랐다. 국어를 하실 때보다 소리가 목 안쪽에서 나왔고, 문장의 끝이 내려가지 않고 조금 남았다.
"이게 회수다."
회수. 그 두 음절은 알아들었다.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도 알았다.
그다음에 아버지가 여덟 마디쯤 더 하셨다. 나는 그중 앞의 셋과 맨 끝의 하나를 알아들었다. 흩어 놓은 것, 이라는 말이 있었고, 도로, 라는 말이 있었다. 가운데는 소리로만 들렸다. 소리는 들리는데 거기서 뜻이 나오지 않는 상태를 나는 그날 밤에 여러 번 겪었다.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아버지는 다시 말씀하셨다. 천천히도 아니고 쉽게도 아니고, 똑같이 하셨다.
같은 자리에서 또 놓쳤다.
"흩어 놓은 것을 도로 거두어들인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무엇을 흩으셨습니까."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무릎 위의 뭉치를 상자에 넣으셨다. 그러고는 상자 뚜껑을 세워 안쪽을 나에게 보이셨다.
나무 안쪽에 연필로 쓴 날짜가 층층이 적혀 있었다. 위쪽 것은 거의 지워졌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진했다. 스물다섯 해 치였다. 날짜마다 옆에 두 글자가 붙어 있었고, 그 두 글자는 매번 같았다.
回收.
한자는 내가 읽을 수 있다. 나는 그것만 읽었다.
"교본을 봤다고 하더구나."
"예."
"몇 권이나 봤느냐."
"다섯 권입니다. 소화 십구년부터 삼십팔년까지요."
"교본만 있는 게 아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국어였다. 셈을 말씀하실 때만 국어로 돌아오셨다. "독본이 있고 지도서가 있고 상회 교재가 있고 부인회 소책자가 있다."
"거기에 전부……."
"넣었다."
나는 무릎 위에서 손을 폈다가 다시 쥐었다. 화가 나기를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다. 대신 목 아래가 조여 왔다. 그것은 아버지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안쪽으로, 내 쪽으로 돌아왔다.
사월에 나는 이 서고 앞을 지나갔다. 그때 통로 가운데의 먼지가 얇은 것을 보고, 편수과 사람이 드나드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삼 초를 서 있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말해라."
"왜 저한테 말씀 안 하셨습니까."
아버지는 상자 턱에 놓았던 펜을 집으셨다.
"말하면 네가 알게 된다."
"…예."
"아는 사람이 하나 늘면 그만큼이다." 아버지는 펜 뚜껑을 닫으셨다. "네 어미한테도 안 했다."
아버지가 뭉치에서 원고지를 한 장 뽑으셨다.
이백 자짜리였고 붉은 인찰선이 있었다. 종이가 얇아서 등불에 대면 뒷장 글자가 비쳤다. 아버지는 그것을 두 손으로 잡아 나에게 건네셨다.
"읽어 봐라."
받았다. 맨 위 칸에 두 글자가 있었다. 그 아래로 줄이 여덟 개쯤 내려갔고, 줄마다 획이 촘촘했다. 어떤 자리에는 동그라미가 붙어 있고 어떤 자리에는 세로로 긴 획이 있었다. 먹의 농담이 두 가지였다. 아래쪽 몇 줄은 색이 옅고 획이 굵었다. 그건 오늘 쓰신 것이다.
나는 맨 위 두 글자를 봤다.
동그라미가 하나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획이 있었다. 옆에 짧은 것이 붙었다.
거기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자음과 모음을 붙여서 소리를 내는 법을 나는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 소화 이십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갔고, 그해에 조선어라는 과목은 이미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개정안 이유서에 표로 만들어서 도쿄에 가져갔었다. 연도별로 칸을 나누고 줄어드는 쪽에 화살표를 그려 넣었다. 그 표를 만든 사람이 나다.
"아버지."
아버지는 나를 보고 계셨다. 처음부터 알고 계신 얼굴이었다.
전등이 한 번 깜박였다가 돌아왔다.
나는 원고지를 두 손으로 든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목 아래가 계속 조여 있었고, 입을 벌리면 소리가 아니라 다른 것이 나올 것 같아서 벌리지 않았다.
나는 원고지를 두 손으로 든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목 아래가 계속 조여 있었고, 입을 벌리면 소리가 아니라 다른 것이 나올 것 같아서 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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