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8부 불씨
42화제59장 겨울 아침
1965년 12월 20일 아침 · 종로 6정목 자택
아버지의 손이 이불 밖에 나와 있었다.

여섯 시 반이면 마루에서 물소리가 나야 했다. 파면 통지를 받은 십이월 오일 이후로도 그 시각은 바뀌지 않았다. 갈 데가 없어진 사람이 같은 시각에 일어나 같은 대야에 물을 붓고 같은 순서로 세수를 하고, 그다음에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방에 앉아 있었다. 보름 동안 그랬다.
그날 아침에는 물소리가 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먼저 방문을 열었고 나는 그 뒤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반듯이 누워 있었고 이불이 가슴 위까지 덮여 있었고 오른손만 밖에 나와 요 위에 놓여 있었다. 손가락이 조금 구부러져 있었다. 검지 첫마디 안쪽에 붓자루가 눌러 만든 굳은살이 있고 그 옆에 먹이 배어 지워지지 않는 자리가 있었다. 스물다섯 해 동안 그 자리는 늘 거기 있었다.
방은 추웠다. 아궁이는 새벽에 한 번 더 때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거나, 땠는데도 이 방까지 오지 않았거나였다. 문살에 성에가 안쪽으로 끼어 있었다. 유리에 손을 대면 손자국이 남고 그 자리가 곧 다시 하얘졌다.
어머니가 방에 들어가 그 손을 이불 안으로 넣었다. 그러고 나서 이불깃을 두 번 폈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똑같은 자리를 폈다. 옷장에서 흰 천을 꺼내는 데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나를 부르지도 않았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의 손이었다.
곡소리는 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울지 않았고 나도 울지 않았고, 그래서 그 방에서 제일 큰 소리는 마루 밑에서 도는 바람 소리였다.
재숙이 방문 앞에서 멈춰 서 있었다. 전화국 제복 위에 외투를 걸친 채였다. 여덟 시 교대였다.
"오빠."
"국에 전화해라. 저 아래 담배 가게에서."
재숙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 애의 어깨를 돌려세워 문 쪽으로 밀었다.
왕진 의사는 종로 오정목에서 왔다. 예순쯤 된 조선 사람이었고 가방을 놓기 전에 손부터 비볐다.
청진기를 대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눈꺼풀을 들어 보고, 턱과 목을 만져 보고, 이불을 걷어 팔을 들었다가 놓았다.
"심장입니다." 그가 말했다. "굳은 정도로 보면 새벽 다섯 시 전후."
"앓으신 적이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이런 건 앓지 않습니다." 의사는 이불을 다시 덮으면서 말했다. "누워서 갑니다. 아프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그 말이 위로가 되라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고, 그가 그 말을 여러 번 해 본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억양이 매끄러웠다.
그는 무릎 위에 가방을 얹고 그 위에 서식을 폈다. 진단서는 두 장을 겹쳐 쓰게 되어 있었고 사이에 먹지가 들어갔다. 칸이 많았다.
"성명은 야스모토 게이샤쿠. 본적."
내가 대답했다.
"생년월일."
내가 대답했다.
"직업란은."
나는 입을 열었다. 총독부 학무국 편수과 편수관. 스물두 해. 그 말은 목 뒤까지 올라왔다가 거기서 멈췄다.
"무직입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의사가 나를 한 번 보고 어머니를 한 번 보았다. 그리고 무직이라고 적었다. 글씨가 작았다.
먹지를 빼는 소리가 났다. 아래장이 조금 흐렸다.
건넌방에 아버지의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벼루도 붓도 종이도 없었다. 스물세 해 동안 그 위에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그것을 이 집에서 가장 지루한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학교에서 돌아와 그 방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빈 책상을 보았고, 아버지는 저 앞에 앉아서 대체 무엇을 하는가 생각했고, 나중에는 그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는 그 빈 책상이 무엇이었는지 안다. 집을 뒤지러 오는 사람은 책상부터 본다. 스물세 해 전 함흥에서 한 번 겪은 사람은 그것을 배운다. 배운 사람의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는 이 방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서랍을 열었다.
첫 칸에 도장 하나와 인주. 인주 뚜껑에 먼지가 없었다. 둘째 칸에 봉투 몇 장. 그중 하나가 총독부 봉투였고 뜯긴 채 속이 비어 있었다. 셋째 칸은 비어 있었다.
셋째 칸 안쪽에 엽서가 한 장 놓여 있었다. 흥남 소인이었고 십이월 십삼일에 도착한 것이었다. 가장자리에 검은 줄이 둘려 있었다. 상주의 이름은 내가 모르는 이름이었고, 고인의 이름은 내가 아는 이름이었다. 배윤식. 십이월 십일일 자택에서. 향년 예순다섯.
아버지는 이 엽서를 받고 이레를 더 살았다. 답장을 쓴 흔적은 없다. 쓸 종이도 이 방에는 없었다.
나는 서랍을 닫았다.
저녁에 빈소를 차렸다.
병풍은 반장 집에서 빌려 왔다. 향은 명치정에서 사 온 것으로 냄새가 셌다. 사진은 총독부 신분증에 붙였던 것을 확대한 것뿐이어서 아버지의 얼굴이 정면으로 굳어 있었다.

밤 아홉 시까지 열한 사람이 다녀갔다.
반장과 그 아내, 옆집 노인, 골목 끝 쌀가게, 재숙의 국(局)에서 둘, 아버지의 옛 동창이라는 노인 하나. 편수과에서 셋이 왔다. 촉탁 가와바타는 오지 않았다. 흥남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고 올 사람이 없었다.
편수과에서 온 셋은 나란히 앉아 십오 분을 있다가 함께 일어섰다. 그중 제일 젊은 축이 나가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편수관님은 원고를 한 번도 늦게 내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아는 전부였고 거짓말도 아니었다.
반장은 오래 앉아 있었다. 술을 두 잔 마시고 나서, 이런 일에는 반에서 얼마씩 걷는 규정이 있다고, 내일 돌리겠다고 했다. 그는 서식을 아는 사람이고 사람의 죽음에도 서식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열한 번째가 오카다 마사노리였다.
편수과장은 열 시가 다 되어 왔다. 외투를 벗지 않고 문간에서 목례를 하고 들어와 향을 집었다. 향 세 개를 한꺼번에 집었다가 하나만 남기고 도로 놓았다. 그것을 향로에 꽂고 두 손을 모으는 데 보통 사람보다 오래 걸렸다.
내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도 하지 않았다. 위로의 말을 잊은 사람이 아니라 하지 않기로 한 사람의 침묵이었다.
그는 스물두 해를 아버지 옆방에 앉아 있던 사람이다. 결재란에 도장을 찍은 사람이고, 아버지가 낸 원고를 제일 먼저 읽은 사람이고, 시월 이후로 그 원고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대여섯 가지 있었고, 그중 어느 것도 이 방에서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향이 반쯤 탔을 때 그가 일어섰다.
댓돌에서 구두를 신는 데 오래 걸렸다. 뒤축을 손가락으로 두 번 밀어 넣고, 외투 자락을 한 번 털고, 마당으로 한 걸음 내려섰다. 거기서 멈췄다.
등이 문지방 불빛 안에 반쯤 들어와 있었다. 나머지 반은 어두웠다. 어깨가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 마당의 서리가 구두 밑에서 소리를 내지 않았고, 골목 쪽에서 자전거 벨이 두 번 울렸다.
나는 그 등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꽤 오래 그대로 있었다.
1965년 12월 22일 밤 · 종로 6정목 자택 안방
어머니가 안방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열 시가 넘어 있었다.
발인은 전날 끝났다. 상복은 개어 윗목에 놓여 있었고 향로는 씻어 엎어 두었다. 이 집에서 죽은 사람이 석 달 사이에 둘이었는데,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준비가 빨랐다. 사람이 그런 것에도 익숙해진다.
"거기 앉아라."
어머니는 반닫이 앞에 앉아 있었다. 시집올 때 가져온 것이라고 들었다. 앞면 아래쪽 절반이 문이고, 무쇠 장석이 네 귀에 박혀 있고, 그 장석이 오래되어 검다. 나는 이 궤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을 스물일곱 해 동안 보았고 안을 들여다본 기억이 없다.
재숙이 등잔을 들고 따라 들어와 문가에 앉았다. 전등은 켜지 않았다.
어머니가 문을 내렸다. 좀약 냄새가 방 안으로 퍼졌다. 그 냄새는 이 궤 안에서만 나는 냄새여서, 어릴 때 이불을 꺼낼 때마다 맡았고, 겨울 초입에 한 번씩 맡았고, 그것을 어머니 냄새라고 생각했다.
맨 위에 이불 홑청이 있었다. 그 밑에 무명 몇 필. 그 밑에 재봉 실패 상자.
어머니가 실패 상자를 두 손으로 들어 옆에 놓았다. 상자 안에서 실패들이 서로 부딪는 소리가 났다. 이십 년 넘게 삯일을 한 사람의 상자여서 무거웠다.
그 밑에 신문지가 깔려 있었다. 신문지를 걷었다.
공책이 있었다.
한 권씩 꺼내 방바닥에 놓는데 어머니의 손이 규칙적이었다. 세는 사람의 손이 아니라 늘 같은 순서로 만져 온 사람의 손이었다. 다 놓고 나니 두 줄이었다. 위에 일곱, 아래에 일곱.
열네 권.
표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앞의 것들은 종이가 누렇고 결이 거칠었다. 만지면 손끝에 부스러기가 묻었다. 전쟁 통에 나온 종이다. 뒤로 갈수록 종이가 매끈해지고 표지에 색이 들어갔다. 열네 권을 옆으로 늘어놓으면 스물다섯 해 동안 이 나라의 종이가 어떻게 좋아졌는지가 그대로 보였다.
"열어 봐라." 어머니가 말했다.
첫 권을 폈다.
세로줄이 빽빽했다. 한 면에 마흔 줄쯤. 연필로 썼고 아주 잘게 썼다. 획이 짧고 곧았다. 급하게 쓴 자리가 없고, 고쳐 쓴 자리도 없고, 줄이 아래로 처지지도 않았다. 종이를 등불에 기울이면 눌러 쓴 자국이 뒷장까지 배어 있었다.
한 줄은 이렇게 되어 있었다. 처음에 책 이름이 한자로 있고, 다음에 권과 쪽수와 줄 번호가 숫자로 있고, 그리고 줄 끝에 조선 글자 몇 자가 있었다.
책 이름을 나는 읽었다. 『국어 보급 교본』. 아는 책이다. 국민학교 이 학년 때 나도 받았다. 쪽수를 읽었다. 줄 번호를 읽었다.
줄 끝은 읽지 못했다.
한 줄에서 마지막 것만 못 읽었다. 그다음 줄도 그랬다. 다음 장도, 그다음 장도 그랬다. 나는 마흔 줄짜리 면을 넘기면서 서른아홉 개를 읽고 하나를 못 읽었다. 획은 보였다. 세로로 긴 것과 가로로 짧은 것과 동그란 것이 있었고, 어떤 것은 세 부분이고 어떤 것은 두 부분이었다. 같은 모양이 여러 줄 건너 다시 나오기도 했다. 그것뿐이었다.
중간쯤에 글씨가 달라지는 데가 있었다. 획이 더 둥글고 조금 컸다. 열 줄쯤 그러다가 다시 원래 글씨로 돌아갔다.
"그건 내가 썼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이 손이 떨리는 날이 있었다."
나는 첫 권을 놓고 열네 번째 권을 집었다.
뒤쪽으로 갈수록 줄이 성겨졌다. 마지막으로 글씨가 있는 면에는 열두 줄뿐이었고, 열두 번째 줄은 다른 줄보다 조금 짧았다. 마지막 획이 오른쪽 아래로 흘러 있었다.
그다음 장부터는 비어 있었다. 스물몇 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손바닥으로 눌러 보니 종이가 서로 붙지 않고 잘 넘어갔다. 한 번도 넘긴 적이 없는 종이였다.
"거기서 그쳤다." 어머니가 말했다. "시월 초하루 아침에 그이가 나가고, 그날 저녁에 순사들이 왔다."
'거기서 그쳤다.' 어머니가 말했다. '시월 초하루 아침에 그이가 나가고, 그날 저녁에 순사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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