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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제20장 말을 잃은 아이

· 44화 중 15화 · 3,847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하교 당번은 교문이었다.

넷씩 짝을 지어 나가는 줄이 이십 분 동안 이어졌다. 아이들은 교문을 나서면 곧바로 흩어진다. 문에서 스무 걸음쯤 왼쪽, 전신주 옆에 광주리를 인 여자가 서 있었다. 무명 저고리에 몸뻬였고 광주리 밑에는 젖은 신문지가 깔려 있었다.

쇼와 사십년 15화 제20장 말을 잃은 아이 — 헤더컷

구레하라 요시오가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리쓰코는 그 자리에 섰다. 스무 걸음 거리였고 바람은 그녀 쪽으로 불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높고 빨랐다. 문장이 끊기지 않았다. 손이 같이 움직였다. 어딘가를 가리키고, 무엇을 크기로 재어 보이고, 누군가의 흉내를 냈다. 어머니가 웃으면서 뭐라고 되받았고 아이는 그 위에 대고 또 말했다. 말이 서로 겹쳐서 굴러갔다.

그녀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낱말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 어디서 한 문장이 끝나고 어디서 다음 문장이 시작되는지도 몰랐다. 사람 소리라는 것과, 저것이 즐거운 소리라는 것까지만 알 수 있었다. 그 이상은 벽이었다.

여자가 광주리를 내려놓고 아이의 옷깃을 세워 주었다. 아이가 그동안에도 말을 했다. 여자가 아이의 이마를 손등으로 짚었다가 뭐라고 짧게 말했고, 아이가 그 말끝을 받아서 되받았다. 두 사람의 말이 물어보고 대답하는 모양으로 착착 맞아 들어갔다.

교문에서 나오던 아이 둘이 그 옆을 지나가며 힐끗 보고 갔다. 그중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뭐라고 했고 둘 다 웃었다. 구레하라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어머니 쪽만 보고 계속 말했다.

두 사람이 걸어갔다. 광주리가 흔들리고 아이가 그 옆에서 계속 말했다. 골목을 돌 때까지 아이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리쓰코는 아이들이 다 나갈 때까지 교문에 서 있었다. 교실에서는 저 아이가 온순하고 조용하다. 학적부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방금 본 아이는 온순하지도 조용하지도 않았다.


교무실에는 그녀 혼자 남았다.

학적부를 다시 폈다. 지우개로 마지막 줄을 문질렀다. 종이가 얇아서 두 번 만에 보풀이 일었다. 문지른 자리가 다른 데보다 희어졌고, 만년필 자국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아서 비스듬히 보면 눌린 홈이 남았다.

문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다나베 교장이 모자를 들고 지나가다가 걸음을 늦추었다.

"다카야마 선생, 늦었네."

"학적부를 좀 보고 있었습니다."

"이학년 때 담임이 온순하다고 써 놨더군. 잘 지도해요. 그런 애들은 삼학년에 잡아 줘야 사학년에 따라옵니다."

"예."

교장이 나갔다. 복도 끝에서 유리문이 두 번 흔들렸다.

그녀는 반 전체의 학적부를 처음부터 넘겨 보았다. 이름 칸 옆에는 작은 병기란이 있고 거기에 호적상의 본래 성명이 한자로 들어간다. 서류를 만들 때 한 번 옮겨 적고 나면 삼 년 동안 아무도 다시 보지 않는 칸이다. 예순두 장 가운데 그 칸이 조선 성으로 채워진 것이 쉰다섯 장이었다. 나머지 일곱은 내지에서 온 아이들이었다.

쉰다섯 개의 글자를 그녀는 전부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었다. 전부 국어 음으로였다.

그녀는 구레하라 요시오의 것을 다시 폈다. 이름 칸 옆 작은 칸에 한자 세 자가 있었다.

吳吉男

고 기쓰단.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아까 전신주 옆에서 여자가 아이를 부르던 소리를 떠올렸다. 두 음절이었는지 세 음절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 소리와 이 세 글자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은 알겠는데, 어떻게 같은 것인지가 잡히지 않았다. 입을 조금 벌려 보았다가 다물었다.

그녀는 서랍에서 자기 교원 이력서 사본을 꺼냈다. 성명란에 다카야마 리쓰코, 그 아래 괄호 안에 세 글자가 있었다.

崔英善

사이 에이젠, 이라고 읽으면 된다. 서류에서는 늘 그렇게 읽는다. 스물네 해 동안 아무도 다르게 읽은 적이 없다.

조선말로는 어떻게 되는가.

그녀는 그 자리에 앉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기 이름 세 글자였다.


1965년 3월 28일 · 경성 종로 6정목 배급소, 애국반장 신정효의 집

어머니는 재봉틀에서 발을 떼지 않은 채로 통장을 내미셨다. 아랫도리에 시침질한 광목이 무릎에 걸쳐져 있었고 입에는 시침핀이 세 개 물려 있었다. 오늘까지 넘겨야 하는 물건이라고 했다. 나는 통장과 자루를 받아 들고 나왔다.

배급소는 골목을 나가 큰길에서 왼쪽으로 백 보쯤이다. 아홉 시에 문을 여는데 여덟 시 반에 갔더니 벌써 줄이 있었다.

줄은 두 개다.

왼쪽 줄이 짧고 오른쪽 줄이 길다. 창구 두 개 위에 각각 나무 팻말이 붙어 있고, 왼쪽 팻말에는 국어상용 가정, 오른쪽 팻말에는 일반이라고 쓰여 있다. 팻말은 낡았다. 붉은 칠이 벗겨져서 글자 획 안쪽에만 색이 남았다.

나는 오른쪽에 섰다.

왼쪽 줄에서 배급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 줄 앞을 지나 나갔다. 자루를 어깨에 메거나 함지에 이고 갔다. 자루 목이 벌어진 것을 하나 봤는데 쌀이 희었다. 우리 줄에서 나가는 자루는 위에서 보면 희고 아래에서 보면 누렇다. 잡곡이 밑에 깔린다.

"어유, 김 씨 댁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

앞의 아주머니가 왼쪽 줄에서 나가는 여자에게 인사를 했다. 여자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손만 흔들었다.

"저 댁은 작년에 갑으로 올라갔지요."

"딸을 사범학교에 넣으려고 아주 작정을 했다는데요."

"애들 내신에 붙는다니까 그러지요. 우리 집은 이제 늦었어요."

"늦기는요. 시어머님만 안 계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쇼와 사십년 15화 제20장 말을 잃은 아이 — 전환컷

말한 여자가 곧 자기 입을 손등으로 눌렀다. 옆의 여자가 웃었다. 웃고 나서 둘 다 앞을 봤다.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낼 자리가 아니다. 왼쪽 줄에 서라고 아무도 등을 떠밀지 않았고, 오른쪽 줄에 서라고 벌을 주지도 않았다. 한 사람 앞에 몇 홉이라는 것도 갑이나 을이나 같다. 다른 것은 그 몇 홉 안에 무엇이 얼마나 들어 있느냐다.

문이 열리자 줄이 한 뼘씩 앞으로 밀렸다. 배급소 안은 어둡고 먼지가 떴다. 저울 옆에 됫박이 셋 놓여 있고 벽에는 이달의 배급 기준이 붓글씨로 붙어 있었다. 쌀, 잡곡, 설탕, 성냥, 고무신은 별도 통지. 창구 안쪽에서 가마니 터는 소리가 났다.

창구에서 직원이 통장을 받아 겉장의 딱지를 손톱으로 한 번 긁었다. 딱지가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손버릇 같았다. 파란 테였다. 재작년까지는 붉은 테였다. 그는 장부에서 우리 집 줄을 찾아 도장을 찍고, 자루를 저울에 올렸다가 내리고, 되돌려 주면서 다음, 하고 불렀다. 나에게 한 말은 그 한 마디였다.


배급소 문 옆 벽에 기대어 신정효 반장이 서 있었다.

국민복 차림에 각반. 왼손에 가방, 오른손에 접은 종이. 우리 반 사람이 나올 때마다 이름을 확인하고 종이에 뭔가를 그었다. 나를 보더니 손을 들었다.

"어머님은요."

"삯일이 밀려서 제가 왔습니다."

"그럼 잘됐네. 이왕 나온 김에 우리 집에 잠깐 들르세요. 세대주 도장을 하나 받아야 하는데 아버님은 뵙기가 어려워서요."

반장 댁 마루에는 볕이 잘 들었다. 안방에서 라디오 소리가 낮게 났고, 안쪽에서 여자가 나와 차를 놓고 들어갔다. 그가 방석을 하나 내주고 자기는 마루 끝에 앉았다.

가방을 열자 종이가 나왔다. 서식 뭉치는 손가락 두 마디쯤 두꺼웠고, 종류별로 신문지를 잘라 사이에 끼워 두었다. 등사 잉크 냄새가 났다. 어떤 것은 새것이고 어떤 것은 접힌 자리가 닳아서 실밥처럼 일어나 있었다. 밑에는 먹지가 두 장 깔려 있었다. 한 번 쓰면 세 장이 나온다고 했다.

"세대주 도장은 여기 이 재심사 신청 확인란에 찍으시면 됩니다. 아버님 도장 가지고 다니시지요?"

"어머니가 챙겨 주셨습니다."

"그럼 됐고요."

그는 내 도장을 받아 인주에 두 번 굴려 정확한 자리에 찍었다. 찍고 나서 손바닥으로 종이를 한 번 쓸었다.

"이게 매달 이십오일까지 정회로 올라갑니다. 정회에서 부연맹으로 가고요."

그는 만년필을 열더니 이야기를 하면서 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손이 눈보다 빨랐다. 어느 칸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보지 않고 아는 손이었다.

"의원님 사무소에서는 요즘 무슨 일을 하십니까. 신문 보니까 선거권 이야기가 또 나오던데."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아직 초안도 안 나왔습니다."

"내리면 좋지요. 십오 엔이 뭡니까 십오 엔이. 나는 이 반에서 이십오 년을 반장을 했는데 표는 한 번도 못 찍어 봤어요."

"반장님 같은 분이 못 찍는 게 이상한 겁니다."

"이상하긴요. 법이 그런데."

그는 웃으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나는 차를 마시면서 그 손을 봤다. 볼 것이 없어서 봤다.


서식은 세로로 길고 칸이 열두 개다.

위에서부터 반 번호, 호수, 상회 개최 일자, 출석 호수, 결석 호수와 사유, 궁성요배 및 서사 제창 실시, 저축 조합 실적, 공출 및 헌납, 근로 봉사 연인원, 방공 훈련 참가, 그다음 칸, 그리고 맨 아래 특기 사항.

그다음 칸의 이름이 가정 내 국어 사용 정도였다.

그 칸은 다시 잘게 나뉘어 있었다. 호수마다 한 줄이고, 한 줄에 등급과 이유가 들어간다. 등급은 갑, 을, 병 셋이다. 반장은 그 칸을 채울 때만 잠깐 손을 멈추고 위쪽을 한 번 올려다봤다가 적었다.

"이건 내가 지어내는 게 아니라 있는 대로 적는 겁니다. 없는 걸 적으면 실사 나왔을 때 내가 곤란해져요."

"압니다."

"상회 나오시는 것만 잘 나오시면 됩니다. 그게 반이에요."

아홉 줄 가운데 여섯 줄이 갑이었다. 을이 둘, 병이 하나. 병은 골목 끝 셋방 사는 집이었다. 노인 둘과 손자가 산다.

"저 댁은 어떻게 안 됩니까."

"안 되지요. 노인 두 분이 국어를 아주 못 하시고, 애가 아직 국민학교 이학년이라 집에서 국어가 안 돌아갑니다. 애가 사학년쯤 되면 을은 갑니다."

"그때까지는요."

"그때까지는 병이지요."

그는 그것을 딱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딱하다고 생각하면서 그 칸을 채우는 데는 삼 초가 걸렸다.

밑에 깔린 것은 지난달 것이었다. 이월분. 같은 서식, 같은 열두 칸, 같은 순서. 다섯 번째 줄의 이유란에 같은 문장이 있었다. 글씨만 조금 더 흐렸다. 그 밑에는 일월분이 있을 것이고 그 밑에는 작년 십이월분이 있을 것이다.

우리 집은 다섯 번째 줄이었다.

야스모토 게이샤쿠 세대. 호수 다섯. 등급 칸에 을. 이유란은 등급 칸보다 세 배쯤 넓고 괘선이 아주 가늘다. 거기 적힌 글씨는 반장의 다른 글씨보다 작았다. 그가 여러 해 같은 줄을 옮겨 적어 왔기 때문에 손에 붙어 버린 문장 같았다.

나는 방석에서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반장은 다음 장으로 넘어가서 방공 훈련 칸을 채우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정오 시보가 났고, 안방에서 누가 볼륨을 줄였다. 찻잔이 식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다시 놓았다. 놓는 소리가 나지 않게 놓았다.

이유란은 두 번 읽었다. 두 번째는 글자를 하나씩 짚어 가며 읽었다. 열 자가 안 됐다.

同居 尊屬 一名 國語 不解. 年齡 八十.

同居 尊屬 一名 國語 不解. 年齡 八十.

남은 29화 · 약 105,168자 · 약 2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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