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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제56장 조용한 방

· 44화 중 40화 · 3,795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1965년 11월 25일 · 경기도경찰부 취조실

스무여드레 만에 호송차를 탔다.

쇼와 사십년 40화 제56장 조용한 방 — 헤더컷

아침에 이름이 불렸을 때 나는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다. 차 안에서도 순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무 덧문 틈으로 전차 궤도 소리가 두 번 났다. 그것으로 어디를 도는지 알았다. 이제 이 길을 나는 소리로 안다.

취조실은 지난번과 같은 방이었다.

창의 높이가 같고 책상 위치가 같고 서기 순사도 같은 사람이다. 다른 것은 난로가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톱밥 난로다. 방이 더웠다. 앉아 있으니 목덜미에 땀이 났다. 이 방에서 땀이 나는 것이 이상했다.

가와카미 경부보가 들어와 모자를 벗고 앉았다.

"몸은 어떤가." 조선말이었다. "얼굴이 상했네."

"괜찮습니다."

그가 서류철을 폈다가 도로 덮었다. 그러고는 국어로 바꾸어 말했다.

"부친께서는 십일월 십오일에 서명하셨다."

난로에서 톱밥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두 번째지. 이십이 년 만이다. 부친은 조건을 하나 다셨어. 아들 이름을 조서에서 빼 달라고. 그건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조서는 이미 검사국으로 넘어갔으니까."

"그러면."

"기소 유예는 된다." 그가 말했다. "부친 것 하나로는 안 되고, 자네 것이 있어야 돼. 둘이 있어야 서류가 맞는다."

그는 그것을 협박처럼 말하지 않았다. 사무를 설명하는 사람의 어조였다. 사실 그것은 사무였다.

"기소 유예가 되면 서류에는 뭐라고 남습니까."

"처분 미상." 그가 말했다. "전과가 아니야. 다만 신원조회에는 나온다. 삼 년마다 나오지. 그건 자네가 죽을 때까지 나온다."

"아버지는요."

"학무국 처분이 따로 있을 게다. 그건 내 소관이 아니고."

나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물었다.

"십팔일에 병감에서 나간 사람 말입니다. 무연고로 처리됐습니까."

가와카미가 서류철을 손끝으로 두 번 두드렸다.

"이십일에 끝났다."

"끝났다는 것은."

"화장하고 묻었다는 뜻이다. 형무소에서 하는 대로 했겠지." 그가 나를 보았다. "지금 자네가 서명을 하든 안 하든 그건 달라지지 않아. 그건 알고 하게."


종이는 한 장이다.

위쪽에 인쇄된 것이 여섯 줄 있고 그 아래는 비어 있다. 활자가 낡아서 획 끝이 뭉개져 있었다.

본인은 종래 조선어 문헌의 수집 정리에 관여하여 국체의 본의에 어긋나는 사상적 경향에 물들었음을 인정함. 본인은 이러한 경향이 오류였음을 깨닫고 이를 청산함. 본인은 금후 제국 신민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며 다시는 이와 같은 일에 관계하지 아니할 것을 서약함.

그다음에 날짜 칸과 이름 칸이 있다.

여섯 줄 안에 내가 쓸 것은 하나도 없다. 문장은 이미 다 만들어져 있다.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적혀 있지 않다. 이 서식도 스물세 해 전에 함흥에서 쓰던 것과 같은 것일 텐데, 나는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내가 채울 것은 날짜와 이름이다.

이름 칸은 여섯 글자가 들어갈 만한 넓이였다.

여섯 줄을 세 번 읽었다.

청산이라는 말이 걸렸다. 장부에서 쓰는 말이다. 미곡상이 가을에 받을 것과 줄 것을 맞추어 끝낼 때 쓰는 말이고, 회사가 문을 닫을 때 쓰는 말이다. 사람의 지난 이십 몇 년에 그 말을 붙여 놓았다. 붙여 놓고 나면 남는 것이 영(零)이 된다는 뜻이 된다.

두 번째 줄과 세 번째 줄 사이에 활자가 한 칸 벌어져 있었다. 조판할 때 공목이 하나 더 들어간 자리다. 두환이 하던 일이 그것이다.


가와카미가 일어섰다.

"밖에 있겠네."

그가 나가면서 문을 반쯤만 닫았다. 서기 순사가 의자를 조금 돌려 벽 쪽을 보았다. 나를 안 보려는 자세인데, 안 보려고 애쓰는 자세라기보다 그렇게 하라고 배운 자세로 보였다.

그것이 그들의 예의다. 서명하는 것을 보지 않는다. 나는 그 예의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안다. 본 사람이 없으면 나중에 그것은 스스로 한 일이 된다.

방이 조용해졌다.

들리는 것은 난로에서 톱밥이 내려앉는 소리와 복도 저쪽에서 누가 걸어가는 소리와 내 숨소리였다. 두 달 동안 나는 조용한 데 있어 본 적이 없다. 감방에는 사람이 여섯이고 밤에도 누가 뒤척인다. 취조실에는 서기의 펜이 있다. 서기는 지금 벽을 보고 있고 펜을 놓았다.

오래 앉아 있지는 않았다.

결심을 한 기억이 없다. 십팔일 오후에 나는 벽을 보면서 셈을 했고, 셈이 끝난 뒤에 남은 것은 순서뿐이었다. 오늘은 그 순서 가운데 하나가 온 날이다. 하려고 마음먹은 것을 하는 것과, 셈이 끝나서 하는 것은 다르다. 뒤의 것은 팔이 알아서 움직인다.


쇼와 사십년 40화 제56장 조용한 방 — 전환컷

붓이었다.

만년필을 주지 않았다. 자루가 나무고 촉이 모(毛)로 된 것이다. 옆에 놓인 벼루에 먹이 갈려 있었다. 붓끝을 거기 담갔다 빼자 먹 냄새가 올라왔다.

날짜를 먼저 썼다. 쇼와 사십년 십일월 이십오일. 숫자는 잘 써졌다.

이름 칸으로 옮겼다.

야스모토 다케오. 안(安) 자를 먼저 쓴다. 점, 가로, 그리고 여자 여(女).

가로획을 긋는 중간에 손이 떨렸다. 떨린다는 것을 쓰는 도중에 알았고, 알고 나서 멈추었고, 멈추자 촉이 종이에서 떨어졌다. 다시 대고 이었다. 이은 자리에 먹이 겹쳐서 조금 굵어졌고 그 앞뒤가 하얗게 비었다.

본(本) 자를 썼다. 나무 목(木) 위에 가로를 하나 긋고 아래에 짧게 하나를 더 긋는다. 위의 가로획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 손이 떨렸고, 촉이 떨어졌고, 다시 이었다.

무(武) 자와 웅(雄) 자는 끊기지 않았다. 획이 많은 글자가 더 잘 써진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옆방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벽 하나 너머다. 나무 의자 다리가 마루를 긁는 소리고, 두 번 났다. 앉는 소리인지 일어서는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별관에 취조실이 몇 개인지 나는 모른다. 지난 두 달 동안 옆방에서 사람 소리가 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그것이 누구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물어볼 수는 있다. 물어보면 그런 건 묻는 게 아니라는 대답이 온다.

붓을 벼루에 걸쳐 놓았다.

스물두 해 동안 나는 아버지가 1943년에 왜 서명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해하려고 한 적이 없다. 그는 서명하고 살아 나온 사람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열 살 때부터 알았고, 그 사실 때문에 학교에서 아무도 나를 놀리지 않았다. 놀림을 받지 않는 것도 그 서명이 사 준 것이다.

지금도 이해한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같은 방에 앉아 있다. 이해와 그것은 다른 것이다.

문이 열리고 가와카미가 들어왔다. 그는 종이를 집어 들고 눈으로 훑었다. 이름 칸에서 잠깐 멈추었다가 서류철에 끼웠다.

"수고했네." 그가 말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튿날에도 나는 호송차를 탔고, 그다음 날에도 탔다. 서약서와 상신서와 신원 관계 조사표가 남아 있었고, 그것들은 대필이 안 되고 본인 필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붓을 썼다. 사흘째에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그가 종이를 집기 전에, 나는 그것을 한 번 보았다.

안(安) 자의 가로획 가운데가 하얗다. 붓이 떨어졌다가 다시 닿은 자리가 그 양쪽에 굵게 남아 있고, 그사이가 비어 있다. 획 하나가 두 토막으로 되어 있다.

본(本) 자의 가로획도 같다. 끊긴 자리가 획의 가운데에서 조금 왼쪽이다.

두 글자에 각각 하나씩, 두 군데다.


1965년 11월 28일 · 경성 남산 조선신궁, 부민관 앞 광장

앞사람 외투의 등판이 코앞에 있었다. 밀면 밀리는 대로 갔고, 앞이 막히면 선 자리에 섰다. 남산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위에서부터 막혀 있어서, 중턱의 우리는 한 발을 올린 채 다음 발을 올리지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오빠, 등 좀 바로 들어요. 촛농 떨어져요."

재숙이 내 손목을 쳤다. 대나무 자루 끝에 매단 종이등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붉은 물감으로 봉축 두 글자, 그 아래 잔글씨로 국민총력조선연맹. 부민관 앞 광장에서 애국반 반장들이 한 집에 하나씩 나눠 준 것이었고, 반납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등을 들지 않았다. 손이 시리다고 해서 재숙이 대신 들었다. 열아홉 살짜리가 양손에 하나씩 들고도 걸음이 가벼웠다.

어제 오후 세 시에 나는 서대문에서 나왔다. 사흘 전에 나는 한 장에 서명했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국민복을 다려 놓았고, 반장이 저녁에 반원 명부를 들고 골목을 한 바퀴 돈다고 했다. 아버지는 총독부 직원 대열이라 아침부터 따로 나갔다.

두 계단 아래에 종로에서 얼굴을 아는 사람이 서 있었다. 쌀가게 앞에서 여러 해 인사를 주고받은 사람이다. 그가 나를 보았고, 보았다는 것을 내가 알 만큼 오래 보았고, 그다음에 등을 조금 돌려 아들의 목도리를 고쳐 매 주었다. 목도리는 처음부터 잘 매여 있었다.

손이 시렸다. 손톱 밑에 아직 검은 것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인주가 아니라 먹이었다. 사흘 동안 같은 책상에서 같은 붓을 잡았고, 마지막 날에는 다 쓴 뒤에 손을 씻을 물이 없었다.

계단이 다시 조금 움직였다.


능선을 따라 등불이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남대문 쪽에서 올라오는 줄, 광장에서 갈라져 나온 줄, 그리고 우리가 낀 줄. 신문에 실릴 숫자는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다. 제등 십만.

배전반 냄새가 났다. 계단 옆 평지에 발전차가 서 있고 굵은 검은 줄이 흙 위로 지나가 있었다. 그 끝에 조명등이 세 개, 그 옆에 지붕 위로 짧은 기둥을 세운 상자차가 있었다. 옆구리에 흰 글씨가 붙어 있었다. 조선방송협회. 그 뒤에 사람 키만 한 검은 통이 삼각대 위에 얹혀 천천히 왼쪽으로 돌았다.

"저기 찍는 거예요?" 재숙이 발끝을 들었다. "우리 국(局) 숙직실에도 있는데, 다방 거보다 화면이 커요."

"앞쪽만 찍는다."

"그럼 앞으로 가요."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줄을 밟지 말라고 소리치며 지나갔다. 내지 말씨였다. 그 뒤로 여학생 한 무리가 손을 잡고 지나갔고, 맨 끝 아이가 선을 넘어 밟았고, 남자가 다시 소리쳤고, 아이들이 웃었다.

조선 안에 수상기가 사만 대라고 했다. 관공서와 다방과 일본인 집. 오늘 밤 그 사만 대에서 이 산이 보일 것이고, 내일 신문은 그것을 다시 글자로 옮길 것이다. 화면에 들어가는 것은 산이 아니라 조명이 닿는 데까지다.

앞줄은 이미 채워져 있었다. 국민복 상의를 입고 어깨띠를 두른 사람들,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힌 여학생들, 그리고 아이를 목말 태운 남자들이 조명 안쪽에 고르게 배치되어 있었다. 배치되어 있다는 말이 맞았다. 어깨띠를 두른 사람 하나가 줄 사이를 다니며 아이 업은 여자를 앞으로, 노인을 뒤로 옮겨 놓고 있었다.

재숙이 두 걸음 밀고 들어갔다가 앞사람 등에 막혔다. 조명 밖이었다. 아이는 앞이고 노인은 뒤였다.

재숙이 두 걸음 밀고 들어갔다가 앞사람 등에 막혔다. 조명 밖이었다. 아이는 앞이고 노인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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