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7부 남은 자들
37화제51장 스물세 해 만의 같은 방
함흥에서 야스다 경부보는 학적부 두 장을 가져왔다.
1942년 겨울이었다. 유치장 바닥에 깔린 널에 물이 얼어 있었고 취조실에는 난로가 있었다. 난로 때문에 취조실에 불려 가는 것이 기다려졌다. 그 사실을 그는 그해 겨울 내내 스스로에게 숨겼다.

야스다는 서류를 넘기다가 두 장을 뽑아 나란히 놓았다. 안재영, 열한 살. 안재호, 다섯 살. 재호는 아직 학적이 없어서 유아 조사표였다. 두 장의 아래 모서리가 책상 모서리와 나란하게 놓여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각도다. 야스다는 그 종이들에 대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배급 통장은 그 이튿날에 나왔다.
그해 겨울에 아내가 함흥까지 왔다. 면회는 되지 않았고, 차입만 받았다. 솜옷 한 벌과 버선. 목록에 이름을 쓴 손이 떨려서 다마(玉) 자의 점이 아래로 처져 있었다. 그는 그 점을 보고 아내가 함흥역에서 몇 시간을 서 있었는지 계산해 보았다. 계산이 되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이번에도 목록이 들어왔다. 같은 글씨였다. 스물세 해 동안 그 점은 같은 자리에서 처진다.
그는 아홉 달을 더 버텼다. 아홉 달을 버틴 이유를 그는 나중에도 설명하지 못했다. 1943년 9월에 그는 서명하고 걸어 나왔다. 이윤재 선생은 그해 십이월에, 한징 선생은 이듬해 이월에 함흥에서 죽었다.
오전 열한 시에 오카다 마사노리가 참고인으로 들어왔다.
학무국 편수과장이다. 마흔여섯이다. 스물네 살에 촉탁으로 들어온 그를 형석이 가르쳤다. 그때 그는 조선어 어미 활용표를 못 외워서 손바닥에 적어 왔다.
오카다는 형석의 왼쪽 뒤에 앉았고, 진술하는 동안 한 번도 그를 보지 않았다.
"안 편수관이 야근을 자주 한 것은 사실입니다."
"내용은 아셨습니까."
"모릅니다. 편수과는 각자 담당 권종이 있고, 서로의 원고를 보지 않습니다."
"열쇠 관리는."
"서무 고원이 합니다. 야근계를 내면 내어 줍니다."
"안 편수관이 야근계를 낸 횟수를 아십니까."
"세어 보지 않았습니다."
넉 줄이었다. 오카다는 넉 줄을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거짓말은 한 줄도 없었다.
형석은 화가 나지 않았다. 그는 오카다의 구두를 보았다. 새것이었다.
스물두 해 동안 오카다가 그의 밤에 대해 말한 것은 딱 한 번이다. 어느 해 십이월에 퇴청하면서 문간에서 한 번 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안 선생, 난로를 끄지 말고 가시오. 아침에 다시 붙이기 성가시니까."
그것이 전부다. 그 한 문장으로 오카다는 이십이 년을 살았고, 오늘 넉 줄로 앞으로 이십 년을 살 것이다. 나라도 그렇게 했겠지, 하고 형석은 생각했다. 아니, 나는 그만큼도 못 했겠지.
오카다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형석은 셈을 했다. 그가 평생 해 온 일이 셈이다. 항목과 용례를 세고, 빠진 것을 세고, 남은 것을 센다.
아들은 스물일곱이고 관직을 잃었다. 사상 관계로 기소되면 형이 얼마가 되든 그 뒤가 없다. 신원조회가 삼 년마다 돌고, 조회에 한 번 걸린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소가 유예되면 서류에는 처분 미상이 남는다. 처분 미상은 죽은 이름이 아니다. 죽은 이름과 죽지 않은 이름 사이의 거리가 이 나라에서는 사람의 남은 생 전부다.
그가 가진 것은 두 가지다. 그가 아는 것과, 그가 쓸 수 있는 이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앞의 것이 아니다. 상자는 이미 그들 손에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뒤의 것이다.
형석은 고개를 들었다.
"경부보님."
가와카미가 그를 보았다.
"무엇을 쓰면 됩니까."
가와카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서랍을 열고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위쪽에 인쇄된 몇 줄이 형석 쪽으로 오도록 돌려서 책상 위로 밀었다.
1965년 10월 20일 · 서대문형무소 유치장 복도, 목욕 순번 대기 줄
목욕은 열흘에 한 번이고, 방마다 나무패를 받는다.
패는 손바닥만 하고 앞면에 붉은 먹으로 순번이 적혀 있다. 우리 방은 열일곱이었다. 열일곱이 불릴 때까지 복도에 서서 기다린다. 벽을 보고, 손을 앞으로 모으고, 말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가 규칙이고 세 번째만 지키기 어렵다.
서대문에 온 지 열이레가 되었다.
하루는 이렇게 되어 있다. 여섯 시에 기상, 여섯 시 반에 점호, 일곱 시에 아침. 미결수는 작업이 없으므로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다. 열한 시 반에 점심, 그다음에도 아무것도 없다. 네 시 반에 저녁, 여덟 시에 취침 점호. 아무것도 없는 시간이 하루에 열두 시간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각자 정한 것을 한다. 배급 부정은 손톱을 다듬는다. 절도는 잔다. 이유 없음은 벽을 본다. 나는 처음 사흘은 취조에서 물을 것을 짐작해 보았고, 그다음에는 짐작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열이레 동안 다섯 번 불려 갔고 물어본 것은 처음 것과 같았다. 몇 번을 같은 것으로 물었는지 세어 보다가 백을 넘기고 그만두었다. 세는 것도 그들이 준 일거리다.
이런 데서는 사람이 이상한 것을 기다리게 된다. 나는 목욕 순번을 기다렸다.
시월인데 복도는 축축했다. 목욕장 쪽에서 김이 밀려 나와 천장 밑으로 깔리다가 콘크리트에 맺혀 떨어진다. 바닥에 물이 얇게 깔려 있고 발밑이 미끄럽다. 앞사람의 뒤통수에 이발기 자국이 층으로 나 있는 것을 나는 오래 보았다. 볼 것이 그것뿐이었다.
들어가는 줄과 나오는 줄이 복도 중간에서 스친다. 나오는 사람들은 머리가 젖어 있고 얼굴이 붉다. 그중 하나가 나를 보았다.
박두환이었다.

머리를 밀었다. 열흘 전에 들어왔다고 들었다. 얼굴이 상해 있었다.
오른쪽은 멀쩡했다. 왼쪽이 부어 있었고, 눈이 감기지 않았다. 감으려는 움직임은 있는데 위 눈꺼풀이 반쯤에서 멈춘다. 그래서 그가 웃었을 때, 웃음이 얼굴의 절반에서만 났다.
간수는 사(舍) 끝 계단 앞에 있었다. 거기서 우리 있는 데까지 마흔 걸음쯤 된다. 그가 걸어오기 시작했고, 한 걸음에 한 초씩 갔다.
"왔네." 두환이 말했다.
"얼굴이."
"안 아파. 아픈 건 사흘이고 그다음은 그냥 붓는 거야." 그가 왼쪽 눈두덩을 손등으로 눌렀다. "너는 몇 번 불려 갔어."
"다섯 번."
"나는 열한 번." 그는 그것을 자랑하듯 말하지 않았다. 숫자를 말하듯 말했다. "열두 번째도 같은 걸 물을 거고."
앞줄이 한 칸 움직였다. 우리도 반 걸음씩 움직였다.
그의 손이 보였다. 손톱 밑과 손가락 마디 접히는 자리가 검다. 납이다. 문선공은 하루에 활자를 몇천 개 집는다. 십 년을 집으면 그 색이 손금 안으로 들어가서 안 나온다고 그가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책은." 내가 물었다.
"압수. 목록에 사상 관계 서적 일 책이라고 적히더라." 그가 반쪽으로 웃었다. "그거 헌책방에서 사십 전에 산 건데. 이십오 년 전에 나온 책이야. 그걸 지금 압수한다고."
"내가 여기서 제일 못 견디는 게 뭔지 아나." 그가 말했다. "맞는 게 아니야."
"……."
"우리는 종이를 안 써. 말도 안 하고, 이름도 안 쓴다. 삼 년을 같이 다닌 사람인데 나는 그 사람 이름을 몰라. 그쪽도 내 이름을 몰라. 그게 규칙이니까."
물방울이 그의 목덜미로 떨어졌다. 그는 닦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죽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되는 거야. 문서가 없으니까. 아무도 안 물어보니까. 조서에는 박두환이 문선공이고 사상 관계라고 적히겠지. 그게 다야. 우리가 뭘 했는지는 어디에도 안 남아."
"두환아."
"우습지. 안 남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막상 안 남는다니까 이게 이렇게 견디기가 어려워."
"우리 아버지도 들어와 계셔."
"알아." 그가 말했다. "여기서는 그런 건 다 안다. 밥 나르는 잡역부가 사(舍)마다 도니까."
그는 잠깐 앞을 보았다. 김이 우리 사이로 한 번 지나갔다.
"너희 아버지는 나보다 나은 데가 있다. 그 양반은 뭘 만들었잖아. 나는 만든 게 없어. 나는 안 만드는 걸로 이십 대를 다 썼다."
간수가 스무 걸음쯤 왔다.
그가 턱으로 저쪽을 가리켰다. 나오는 줄의 맨 끝, 창 밑에 사람 하나가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마흔쯤 된 사람이다. 어깨가 좁고 목이 짧았다. 손등에 검푸른 것이 배어 있는 것이 여기서도 보였다. 잉크다. 씻어도 안 지워지는 자리에 배어든 잉크다.
"대구." 두환이 말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았다. 사월에 처음 들은 이름과 유월에 내가 옮긴 열한 글자와 저 좁은 어깨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이름으로만 안다. 얼굴을 보아도 모를 것이다. 지금 돌아선다 해도 모를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이름뿐이고, 여기까지 오게 한 것도 이름뿐이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을 세어 보면 넉 줄이다. 대구 서문로에서 인쇄소를 한다. 마흔둘이다. 학생 때 한 번 붙잡혀 갔다가 나왔다. 그리고 두환의 연락을 받는다. 넉 줄 중 세 줄을 나는 유월에 도쿄의 요정 이차 자리에서 말했다. 그 자리에는 여섯 사람이 있었고 나는 취해 있지도 않았다.
저 등에 대고 할 말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저 사람 것이 아니다. 저 사람은 나를 모른다. 모르는 사람에게 사과를 하면 사과하는 쪽만 편해진다.
간수가 열 걸음 앞에 왔다. 계단 앞에서 여기까지 마흔 걸음이었다. 그날 밤 방에 돌아가서 나는 그 걸음을 세어 보았다. 우리에게 있었던 시간은 마흔 초다.
"거기 둘."
두환이 나를 보았다. 감기지 않는 왼쪽 눈이 나를 보고 있었고 오른쪽도 나를 보고 있었다. 눈 두 개가 서로 다른 속도로 나를 보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안재호."
그가 창씨명을 부르지 않았다.
"너는 살아서 나가. 그건 내가 안다. 너 같은 놈은 나가."
"두환아."
"남는 건 너다. 나 같은 건 안 남고 너 같은 게 남아. 이 나라가 그렇게 돼 있어."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아니라고 하든지, 네가 나가면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하든지. 입안에서 문장이 두 번 만들어졌다가 두 번 다 무너졌다. 다섯 번의 취조에서 나는 한 번도 말이 막힌 적이 없었다. 나는 말을 만드는 일로 밥을 먹던 사람이다.
간수가 두 걸음 앞이었다. 곤봉 끝이 벽을 한 번 쳤다. 두환이 앞을 보고 손을 모았다. 그러고는 앞을 본 채로, 입만 움직여서 말했다.
"나가서 뭐라도 해. 안 하면 그냥 남은 거지."
'나가서 뭐라도 해. 안 하면 그냥 남은 거지.'
남은 7화 · 약 27,279자 · 약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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