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3부 쇼와 사십년
13화제17장 아침 전차
광화문통 정류장에서 내렸다. 총독부 청사의 돔이 정면에 있었고, 그 앞으로 자전거가 줄줄이 지나갔다. 나는 길가에 비켜서서 겨드랑이의 신문을 뽑아 폈다. 의회가 휴회에 들어간 뒤로 경성에 와 있은 지 열흘째였다.
윤 의원께서는 도쿄에 남으셨다. 남으신 김에 정조회 쪽 사람들을 만나 보시겠다고 했고, 나에게는 전보 한 장이 왔다. 경성부 유권자 관계 자료를 정리해 둘 것, 육월 회기 전에 초안을 올릴 수 있게. 전보는 열여덟 자였고 그중 열 자가 자료의 이름이었다. 오늘은 부청에 가서 그 자료의 열람 신청을 넣어야 했다.

1면은 봉축 준비 위원회 발족 기사였다. 사진 속의 사람들이 전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2면은 남방 항로 유조선 증편과 흥남 제3공장 준공. 3면으로 넘겼다.
3면 위쪽은 게르마니아에서 열린 무슨 박람회 사진이었다. 지붕이 하늘을 다 덮은 건물 안에 사람이 개미처럼 들어차 있었다. 그 밑으로 도쿄 물가, 조선 미곡 시황, 그리고 맨 아래 왼쪽 구석에 활자 두 줄이 있었다.
영국 전 수상 윈스턴 처칠 씨 지난 1월 24일 런던에서 병사(病死). 향년 90.
바로 옆 칸이 미쓰코시 백화점 광고였다. 봄 신상품, 부인 양산과 아동 통학 가방, 3월 20일까지 특별 진열, 본정 1정목. 광고가 부고보다 다섯 배는 컸다.
처칠이라는 이름은 안다. 중학 때 근대사 시간에 나왔다. 1940년 오월에 수상이 되었다가 유월에 물러난 영국의 정치가. 교과서에는 그 한 줄과, 그다음 줄에 핼리팩스라는 이름이 있었다. 시험에 나오는 것은 뒤엣 이름이었다. 선생이 앞엣 이름을 지나가면서 뭐라고 한마디 붙였던 것 같은데 그게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물러난 뒤로 스물다섯 해를 더 살았던 모양이다. 그 스물다섯 해 동안 그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두 줄 안에 없었다. 병사라고만 적혀 있고 무슨 병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장례에 대해서도 한 자가 없었다.
3면 하단에 실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나는 그때 생각하지 않았다. 신문에는 매일 사람이 죽고, 죽은 사람은 대개 하단에 실린다. 상단에 실리려면 상단에 실릴 만한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
읽는 데 걸린 시간은 눈이 두 줄을 훑는 시간이었다.
바람이 신문을 젖혀서 광고 쪽이 위로 왔다. 양산을 든 여자의 그림이 접히면서 반으로 갈라졌다. 등 뒤로 자전거 종이 두 번 울렸고, 청사 정문 쪽으로 국민복 무리가 시계 맞춘 듯이 몰려 들어가고 있었다. 여덟 시 십오 분 전이었다. 나는 신문을 세로로 한 번, 가로로 한 번 접어 다시 겨드랑이에 꽂고 부청 쪽으로 걸었다.
1965년 3월 16일 저녁 · 경성 종로 6정목 자택, 애국반 제17반 상회
스미코가 먼저 앉고 내가 그다음에 앉았다. 할머니는 벌써 상 앞에 계셨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시래깃국을 들고 들어오면서 발로 문턱을 짚었다.
"스미코, 저 종지 좀."
스미코가 간장 종지를 옮겼다. 어머니는 국그릇을 할머니 앞에 먼저 놓고, 놓으면서 말을 바꾸었다.
"어머님, 뜨겁습니다."
말이 바뀌는 순간에는 소리가 조금 낮아진다. 어머니는 이십 몇 년째 저렇게 한다.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리면 국어가 나오고 할머니 쪽으로 돌리면 조선말이 나온다. 몸이 돌아가는 각도와 말이 바뀌는 지점이 정확히 붙어 있어서, 나는 어릴 때 그것이 목이 아니라 어깨에서 나오는 일인 줄 알았다.
할머니가 숟가락을 들다 말고 스미코 쪽을 보셨다.
"재숙아."
스미코가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는 이 애를 재숙이라고 부르신다. 호적에는 스미코로 되어 있고 학교도 회사도 스미코다. 이 애는 재숙이라는 소리가 자기를 가리킨다는 것은 안다. 그 소리에 뜻이 있다는 것은 모른다.
할머니가 뭐라고 물으셨다. 전화국 이야기인 것 같았다. 밤에도 부린다더냐, 하는 대목까지는 나도 알아들었고 그 뒤는 놓쳤다. 스미코는 웃었다. 못 알아들었을 때 웃는 것이 이 애의 버릇이다. 웃으면서 어머니를 봤다.
"밤에도 일을 시키느냐고 하신다."
"아, 야근이요. 한 달에 나흘이에요. 나흘 하면 수당이 붙어서 좋아요, 할머니."
할머니는 스미코를 보고 계셨다. 스미코는 할머니를 보면서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상다리 하나 거리밖에 없었다.
"한 달에 나흘 나간답니다. 돈을 더 준다고요."
어머니가 그렇게 옮기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뭐라고 한마디 더 하셨는데, 이번에는 어머니가 옮기지 않았다. 옮길 필요가 없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스미코는 벌써 김치에 손이 가 있었다.
"오빠, 그 김치 이리 좀."
김치, 라고 스미코는 말한다. 국어 문장 한가운데에 그 두 글자만 조선말로 박혀 있는 것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말한다. 김치, 시래기, 간장,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그것 말고는 다 국어다.
스미코는 밥을 먹으면서 오늘 교환대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어느 회사 지배인이 안둥에 거는 장거리를 열두 번이나 다시 걸게 했다는 이야기였다. 말이 빨랐다. 손짓이 붙었다. 할머니는 국을 뜨다 말고 스미코의 입을 보고 계셨다. 이야기가 웃기는 대목에 오면 스미코가 웃고, 그러면 할머니도 조금 웃으셨다. 무엇이 웃긴지는 모르시고 웃으셨다.
나도 한마디 거들려고 했다.
"할머니, 그 지배인이……"
거기까지는 나왔다. 그다음이 안 나왔다. 열두 번을 다시 걸었다는 말을 조선말로 어떻게 붙이는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열두 번은 알겠는데 그 뒤에 붙는 것이 걸다인지 하다인지, 걸다면 걸었다인지 걸게 했다인지가 목구멍에서 서로 엉켰다. 나는 잠깐 서 있다가 국어로 끝냈다. 어머니가 옮겨 주셨다.
듣는 것은 거의 다 된다. 말하는 것은 반쯤 된다. 반쯤 되면 집에서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아버지는 여덟 시가 넘어서 들어오셨다.
자전거를 마루 밑에 넣는 소리, 손 씻는 소리, 그리고 방문이 열리는 소리. 어머니가 아랫목에 묻어 둔 밥을 꺼냈다. 아버지는 국민복 윗도리를 벗어 못에 걸고 상 앞에 앉으셨다.
"진지 잡수셨습니까."
국어였다. 아버지는 할머니께도 국어로 여쭙는다. 할머니가 조선말로 뭐라고 대답하셨고 아버지가 국어로 짧게 되받으셨다. 두 마디, 세 마디. 그러고는 끝이었다.
편수과가 삼월에 바쁜 것은 안다. 교과서 견본이 넘어가는 철이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사월에도 늦고 시월에도 늦으신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랬다. 어머니는 물어보신 적이 없고, 물어보지 않는 사람이 집에 하나 있으면 나머지도 묻지 않게 된다.
"부청에는 다녀왔니."
"신청만 넣었습니다. 명부 집계는 열람 허가가 나와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냐."
아버지는 국에 밥을 말아 드셨다. 그릇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세 번 났다.
여덟 시 반에 상회가 있었다.
반장 댁은 골목을 돌아 세 번째 집이다. 어머니가 배급 통장을 들고 나서길래 나도 따라나섰다. 마루에 아홉 집 사람이 앉았고 대개 안주인들이었다. 신정효 반장은 나를 보더니 자리를 앞으로 당겨 주었다.
"의원님 비서관께서 오셨네. 여러분, 이 댁 아드님이 도쿄 의회에 계십니다."
"의회에 있는 게 아니라 의원 사무소에 있습니다."
"그게 그거지요."
반장은 국민복 차림에 각반까지 차고 있었다. 마루 한가운데 가방을 놓고 지퍼를 열었다. 안에서 나온 것은 등사한 종이 뭉치였고, 그는 그것을 세 뭉치로 나누어 손에 쥔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십일월 봉축 제등 할당이 한 집에 두 개. 값은 나중에 정산. 방공훈련은 사월 첫 일요일, 반드시 세대주가 나올 것. 저축 조합은 이번 달부터 한 구좌를 더. 배급일은 이번 달까지 이십팔일, 다음 달부터 이십칠일로.
"그리고 이게 있습니다."
세 번째 뭉치였다. 반장은 그것을 돌리면서 한 집씩 이름을 불렀다. 국어상용 가정 재심사 통지. 오월 중에 부에서 실사가 나오고, 인정증은 재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대로 쓴다는 내용이었다.
"작년에 등급이 내려간 댁은 이번에 올릴 기회니까 미리들 준비하세요. 별거 아닙니다. 실사 나온 사람 앞에서 온 집안이 국어를 쓰면 되는 거예요."
어머니가 통지서를 받아 반으로 접으셨다. 어머니 배급 통장 겉장에는 인정증 딱지가 붙어 있다. 재작년까지는 붉은 테였고 작년부터 파란 테다. 파란 테는 쌀 등급이 한 급 낮다. 그 이야기가 나온 것은 작년 여름이었고, 그때 우리 집에서 아무도 그 이유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낼 것도 없었다. 우리 집에서 국어를 못 하시는 분은 한 분뿐이다.
"우리 반은 아홉 집 중에 여섯 집이 갑입니다. 종로 6정목에서 이만하면 괜찮은 거예요."
건넛집 아주머니가 손바닥으로 마루를 짚으며 물었다.
"반장님, 실사 나오는 날짜를 미리 알 수는 없습니까."
"알면 그게 실사입니까."
몇이 웃었다. 반장은 웃지 않고 종이를 마저 돌렸다. 가방 안에는 아직 종이가 남아 있었다. 겉장이 누런 것과 흰 것이 섞여 있었고, 흰 것 쪽은 인쇄가 촘촘해서 멀리서 보면 잿빛으로 보였다.
"내년에는 좋아지겠지요."
돌아설 때 반장이 어머니한테 그렇게 말했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그 종이를 스물다섯 해쯤 돌려 왔고, 돌리는 사람의 얼굴로 그 말을 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통장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으셨다.
돌아설 때 반장이 어머니한테 그렇게 말했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그 종이를 스물다섯 해쯤 돌려 왔고, 돌리는 사람의 얼굴로 그 말을 했다.…
남은 31화 · 약 112,664자 · 약 2시간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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