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2부 감(柿)이 익다
8화제11장 눈이 오기 전에
1941년 10월 ~ 11월 7일 · 모자이스크 → 모스크바 서쪽 교외 → 붉은광장
진창은 소리가 있었다. 발을 뽑을 때 나는 그 소리를 빌헬름 코르텐은 하루에 이천 번쯤 들었고, 열흘째 되는 날에는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숨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십월 중순의 길은 길이 아니었다. 사단의 트럭 절반이 모자이스크 동쪽 이십 킬로 지점부터 그대로 서 있었다. 차축까지 잠긴 것을 견인하려면 다른 차가 필요했고 그 차도 잠겼다. 그래서 사단은 마을에서 말과 수레를 걷었다. 바퀴가 얇고 축이 나무인 러시아 수레는 진흙을 이상하게 잘 지나갔다. 열흘 만에 보급 중대의 짐은 대부분 그 수레에 실렸고, 코르텐은 운전병이었다가 마부가 되었다.
"자네 말 다뤄 봤나." 슈밋 중위가 처음에 물었다.
"할아버지가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럼 자네가 전문가야."
기갑사단이라는 이름은 서류에만 남았다. 중대 마당에 서 있는 것을 세어 보면 굴러가는 차보다 네 발 달린 것이 언제나 많았다.
말은 사흘에 한 마리씩 죽었다. 먹이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먹이가 도착하지 않아서였다. 코르텐은 짚 대신 초가지붕을 뜯어 먹였다. 지붕을 뜯긴 집의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서 보았다.
중대의 고참들은 구월에 시작한 것을 두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시월에 시작했으면 지금쯤 뱌지마 근처에서 서 있었을 거라고 했다. 코르텐은 그 계산을 해 볼 만큼 지도를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은 자기 중대가 팔월 말부터 잠을 못 잤다는 것과, 진창이 시작됐을 때 자기들은 이미 모자이스크를 지나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동복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십일월 이일자로 중대에 배급된 것은 외투가 아니라 신문지였다. 군화 안에 신문지를 접어 넣으면 하루쯤 발이 덜 시리다고 오래된 병장이 가르쳐 주었다. 코르텐은 그 신문지에 적힌 것을 읽어 보지 않았다.
앞에서는 계속 이겼다. 보로디노 들판을 지날 때 누가 그 이름을 알아보고 소리쳤고, 옛 기념비 옆에 소련군 참호가 파여 있었다. 소총 사단 하나가 그 자리에서 사흘을 버티고 없어졌다. 나중에 사로잡힌 자들의 신분증에 극동 출신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저놈들 나머지는 안 온다는군." 슈밋이 말했다. "일본이 아무르강을 건넜대."
코르텐은 말발굽을 들어 올려 편자 사이에 낀 진흙을 파내고 있었다. 그 말이 좋은 소식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손안에서 말굽은 여전히 무거웠다.
십일월 초에 그들은 모스크바 서쪽 교외의 어느 마을에서 사흘을 묵었다.
코르텐이 배정된 집에는 노파 한 사람이 살았다. 문을 열자 노파는 놀라지 않았다. 놀라기에는 이미 여러 번 열린 문이었다. 그녀는 벽난로 반대편 구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거기서 자라는 뜻이었고, 코르텐은 거기서 잤다.
밤에 그는 벽에 걸린 사진을 보았다. 액자가 아니라 못에 걸린 사진이었다. 젊은 남자가 군복을 입고 서 있었다. 옷깃 모양이 이쪽 것이 아니었고 아주 오래된 사진 같았다.
노파가 그의 시선을 따라왔다. 그녀는 사진을 가리키고 말했다. 두 마디였다. 그러고는 자기 가슴을 두 번 두드렸다.
코르텐은 러시아 말을 몰랐다. 그 두 마디가 이름인지 지명인지 알 수 없었다. 첫 마디는 짧고 뒤에 붙는 마디가 길었으니 아마 이름일 것이다. 사람 이름은 어느 나라 말이든 그렇게 생겼다.
"아들입니까." 그가 독일어로 물었다.
노파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그 두 마디를 말했다. 아까보다 천천히, 그에게 가르치듯이. 코르텐은 따라 해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잘못 발음할 것 같았고, 잘못 발음하는 것보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둘 다 알았다.
노파는 그에게 삶은 감자 두 개를 주었다. 코르텐은 배낭에서 각설탕 세 개를 꺼내 식탁에 놓았다. 그녀는 그것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창밖을 보며 뭐라고 길게 말했다. 하늘을 가리키고, 손을 아래로 흔들고, 다시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 손가락 하나가 무엇을 뜻하는지 코르텐은 끝내 몰랐다.
이튿날 아침 마당에서 소련군 정치장교 하나가 끌려 나갔다. 전날 밤 헛간에서 잡힌 자였다. 통역병이 뭔가를 묻고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두 번 물었다. 그러고 나서 상등병 둘이 그를 데리고 나무 뒤로 돌아갔다.
코르텐은 그때 말발굽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것은 어제도 하던 일이었고 내일도 할 일이었다.
십일월 칠일 아침, 제10기갑사단의 일부가 붉은광장에 들어섰다.
광장은 생각보다 좁았다. 사진에서 본 것보다 짧고, 돌바닥이 둥글게 솟아 있어 걸으면 발목이 조금씩 틀어졌다. 오른쪽에 색색의 양파 지붕을 인 성당이 있었고, 왼쪽 성벽 아래에 붉은 화강암 건물이 낮게 앉아 있었다. 문은 봉인되어 있었다.
"안에 아무것도 없다더군." 누가 말했다. "여름에 어디로 빼돌렸다는 거야."
"그럼 여기가 뭐가 되나."
"돌이 되지."

선전중대가 사다리를 세우고 삼각대를 폈다. 장교들이 대열을 맞추었다. 정렬은 세 번 다시 했다. 카메라를 든 소위가 손을 크게 저으며 뭐라고 외쳤고, 부사관 하나가 코르텐 쪽으로 달려왔다.
"말 치워. 수레도. 화면에 들어와."
코르텐은 고삐를 잡고 광장 북쪽 끝으로 물러났다. 수레 세 대와 말 여섯 마리가 그를 따라 왔다. 거기 서서 그는 자기 중대가 사진 찍히는 것을 보았다. 대열은 반듯했고 전차 두 대가 뒤에 세워져 있었고 아무도 진흙을 묻히고 있지 않았다. 좋은 사진이 될 것 같았다.
셔터 소리는 여기까지 들리지 않았다.
옆에 선 마부 하나가 침을 뱉었다. "저 사진, 고향에 걸린다더라."
"우리 어머니가 보면 내가 어디 있냐고 물을 텐데."
"없다고 해."
코르텐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었다. 아침에 슈밋 중위가 중대 앞에서 말해 주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해마다 이날 이 광장에서 열병식을 했고, 올해는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십사 년째 되는 해라고 했다. 중위는 그 말을 하면서 조금 웃었고 병사들도 웃었다.
말 한 마리가 코를 킁킁거리며 앞발로 돌바닥을 긁었다. 코르텐은 목을 두드려 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회색이 낮게 깔려 있었다.
첫눈은 그날 오후에 왔다. 광장의 돌 위에 내려앉자마자 녹았고, 저녁이 되어서야 지붕에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맘때면 이미 발목까지 왔어야 한다고 했다.
1942년 7~9월 · 함경남도 함흥, 함흥–홍원 간 기차 / 함흥경찰서
창을 다 열어 놓아도 바람이 뜨거웠다.
박영희는 손수건을 목덜미에 대고 있었다. 함흥을 떠난 지 이십 분, 논이 창밖에서 계속 지나갔다. 벼는 아직 이삭이 나오기 전이라 물빛이 그대로 보였고, 멀리 남쪽에 흥남 쪽 굴뚝 두 개가 서 있었다.
"아이고, 더워라."
말이 저절로 나왔다. 순옥이가 옆에서 웃었다.
"야, 그 손수건 나 좀 주라."
"싫다."
셋이 웃었다. 세 마디였고, 웃음이 그보다 길었다. 객차 안에 사람은 열둘쯤이었고, 통로 건너에서 보퉁이를 안은 노인이 졸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영희는 다시 국어로 돌아왔다. 방학 숙제 이야기, 담임의 흉내, 홍원 외갓집에서 먹을 것 이야기. 국어로 하는 이야기가 더 길었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쓰는 말이 그쪽이었으니 당연했다.
앞자리에 국민복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신문을 무릎에 펴고 있다가, 세 마디가 지나간 뒤에 신문을 접었다.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어 옆구리에 끼웠다. 그러고는 창밖을 보았다.
영희는 그 사람을 보지 않았다. 여학생 셋이 앞자리 남자를 볼 이유는 없었다.
홍원에서 내릴 때 순옥이가 손수건을 뺏어 달아났고, 영희는 치마를 잡고 쫓아갔다. 개찰구에서 역원이 뭐라고 소리쳤다. 그 남자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보지 않았다.
외갓집에서 이틀을 자고 돌아왔다. 여름은 그대로 지나갔다. 팔월에 학교가 다시 열렸고, 근로 봉사로 논에 두 번 나갔고,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가 굳었다.
구월 초 어느 날 오전, 담임이 교실 문에 와서 영희를 불렀다.
복도에서 그는 안경을 벗었다 다시 썼다. 서른둘이나 셋쯤 되는 사람이었고 평소에 목소리가 컸는데 그날은 작았다.
"경찰서에서 사람이 왔다. 잠깐 물어볼 게 있다는구나."
"저 말입니까."
"아무 일 아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자기가 그 말을 한 것을 곧 후회하는 표정이 되었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알겠니. 묻지 않은 건 말하지 말고."
영희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교무실 앞 복도 끝에 국민복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영희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교무실 앞 복도 끝에 국민복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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