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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제28장 요정 니시무라의 밤

· 44화 중 21화 · 3,360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현관에서 신을 신는데 초선 의원이 옆에 와서 섰다. 얼굴이 아직 붉었다.

"선생님."

쇼와 사십년 21화 제28장 요정 니시무라의 밤 — 헤더컷

"아직 할 말이 있소?"

"아까 여쭌 건, 따지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한종석은 구둣주걱을 내려놓고 그를 봤다. 마흔셋이면 아직 여섯 번은 더 나올 수 있는 나이다.

"평남 제1구는 유권자가 몇이오."

"이천사백입니다."

"그 이천사백 명부를 다 읽어 봤소?"

"…… 훑어는 봤습니다."

"읽으시오. 한 줄씩. 그러고 나서 다시 나한테 물으시오." 그가 신을 마저 신었다. "그때도 같은 걸 물으면 내가 대답을 다르게 하리다."

거짓말이었다. 그는 대답을 다르게 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명부를 다 읽고 나면 저 사람이 같은 것을 묻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는 열한 시가 넘어 출발했다.

창밖으로 국철 고가가 지나갔다. 고가 아래에 포장마차가 서너 개 붙어 있고 국민복 입은 남자들이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한종석은 그 등들을 봤다. 저 중에 조선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이제는 알 수가 없다. 스무 해 전에는 알 수 있었다.

네온이 지나가고 공사장 가림막이 지나갔다.

그는 눈을 감고 명부를 떠올렸다. 함흥부 중정(中町), 제1권 첫 장 셋째 줄. 오야마 히사오. 잡화상. 직접국세 십오 엔 사십 전.

사십 전이 문제였던 해가 있었다. 쇼와 삼십이년에 그 사람 세적이 잘못 잡혀서 십사 엔 육십 전으로 올라갔고, 그러면 명부에서 떨어진다. 한종석이 세무서에 두 번 갔다. 잡화상 재고 산정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정리가 됐고, 그해 가을에 오야마 히사오는 투표를 했다.

그를 만나면 한종석은 오 서방이라고 부른다. 오재수. 명부에는 그 이름이 없다.

차가 신호에 걸렸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명부의 넷째 줄로 넘어갔다.


1965년 5월 12일 · 도쿄 우에노, 제국도서관

열람실 천장에 선풍기가 넉 대 달려 있고 그중 두 대가 돌았다. 오월인데 벌써 등에 땀이 찼다. 창은 높고 좁아서 빛이 바닥까지 내려오지 않는다.

청구표를 넉 장 냈다.

「영제국 헌정 관계 자료 제3집」. 「대영제국 자치령 제도 개관」. 「델리 헌장 및 부속 협정 원문(영문·일역 대조)」. 그리고 「세계연감」 쇼와 이십이년판부터 사십년판까지.

사서는 마흔쯤 된 여자였다. 그는 청구표 넉 장을 손끝으로 가지런히 맞춘 다음, 세 번째 장에서 손을 멈췄다.

"이건 서고 삼층입니다. 마흔 분쯤 걸립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열람 목적을 여기 적어 주십시오."

목적란. 나는 조사 참고라고 적었다. 사서는 그것을 읽고, 도장을 찍고, 청구표를 대나무 통에 넣었다. 통이 관을 타고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마흔 분 동안 나는 「세계연감」 색인을 봤다.

독립. 이 항목은 쇼와 이십일년과 이십이년에 길다. 필리핀. 인도·파키스탄의 자치령 이행. 그다음 해에는 짧아지고, 이십사년판부터는 항목 자체가 '식민지 통치 개황'으로 통합되어 있다. 삼십년대 이후 연감은 아예 그 표제가 없다. 나는 삼십오년판과 삼십육년판을 나란히 놓고 색인 ㄷ 부분을 두 번 훑었다. 두 번 다 없었다.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오래 걸리는 것은 그다음이다.


델리 헌장 원문은 얇았다.

부속 협정까지 합쳐도 서른 몇 장이고, 표지에 붙은 대출 기록표에는 도장이 세 개 찍혀 있었다. 쇼와 이십사년, 이십칠년, 삼십일년. 아홉 해 동안 아무도 이 책을 꺼내지 않았다.

제1조. 인도는 대영제국 내의 자치령(Dominion)이 된다.

제9조. 인도의 방위 및 대외 관계에 관한 사항은 국왕 폐하의 정부에 유보된다. 인도 정부는 이에 관하여 협의를 받는다.

협의를 받는다. 일역판 각주에 shall be consulted의 역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각주를 오래 봤다. 협의를 받는다는 것은 결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을 조문으로 쓰면 이렇게 된다.

제12조. 총독은 국왕 폐하가 임명한다.

뒤쪽에 개정 기록이 붙어 있었다. 두 건이었다. 쇼와 이십육년의 관세 관련 부속 협정 개정, 쇼와 삼십년의 통화 관련 부속 협정 개정. 제9조는 없었다. 제12조도 없었다.

십팔 년이다. 쇼와 이십이년에 정해진 것이 쇼와 사십년에 그대로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수첩에 적고, 밑에 밑줄을 그었다가 지웠다. 밑줄 그을 일이 아니었다. 우리 쪽 십오 엔은 스무 해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세 시쯤 들어왔다.

키가 크고 마른 남자였고, 공학부 강의 노트를 펼쳐 놓고 있었다. 진동 해석 도표 같은 것이었다. 그가 내 책상 위의 책 표지를 보더니, 잠깐 있다가 영어로 물었다.

"델리 헌장을 왜 읽습니까."

내 영어는 좋지 않다. 읽는 것은 되고 말하는 것은 반쯤 된다.

"저는…… 일을 합니다. 의회에서. 참고를 찾습니다."

"조선분입니까."

"예."

그가 노트를 덮었다. 라오라고 했다. 스물여섯, 도쿄제대 공학부. 마드라스에서 왔고 삼 년째라고 했다.

쇼와 사십년 21화 제28장 요정 니시무라의 밤 — 전환컷

"참고라니, 무슨 참고입니까."

나는 그 대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준비했더라도 영어로는 안 됐을 것이다.

"우리는…… 요건을 낮추려고 합니다. 선거의. 단계적으로. 그래서 다른 곳의 예를 찾습니다. 자치령이라든가, 그런……"

거기서 막혔다. 단계적이라는 말이 영어로 무엇인지 몰랐다.

"Step by step." 라오가 말해 주었다.

"예. 스텝 바이 스텝."

라오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인도가 부럽다고 말하는 겁니까."

"부럽다고까지는……"

"부럽다는 겁니다."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내지 않아서 더 곤란했다. "우리는 그걸 굴욕이라고 부릅니다. 열여덟 해 동안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압니다. 제9조를……"

"제9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우리 형이 케냐에 갔습니다. 형은 군인입니다. 인도 사람이 왜 케냐에 갑니까. 제9조 때문입니다. 방위는 유보되어 있으니까요."

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조선인 현역 병력의 배치표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인도차이나, 동인도, 말라야 국경. 열두만.

라오가 물을 마시고 다시 물었다.

"조선에는 도쿄 의회에 의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몇 석입니까."

"스물세 석입니다."

"전체가 몇 석인데요."

전체 의석 수를 말했다. 라오가 그 두 숫자를 머릿속에서 나누는 것이 보였다. 공학부라서 빠를 것이다.

"유권자는 몇입니까."

"팔만 남짓입니다."

"인구는."

"삼천백팔십만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표정을 바꿨다. 놀란 것이 아니라, 뭔가를 이해한 얼굴이었다.

"신문은 있습니까. 당신들 말로 나오는 신문."

"없습니다."

"하나도요?"

"예."

라오는 그 대답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인도의 신문 이름을 몇 개 댔다. 영어로 나오는 것, 힌디로 나오는 것, 타밀로 나오는 것. 검열이 심하고 발행 정지를 자주 당한다고 했다. 자주 당한다는 것은 자주 나온다는 뜻이다.

"우리한테는 런던 의회에 의석이 없습니다. 하나도. 대신 델리에 우리 의회가 있습니다. 반쪽짜리지만 우리 겁니다." 그가 노트를 다시 폈다. "당신네는 저쪽 의회에 스물세 개를 받았군요. 그건 자치가 아니라 편입 아닙니까."

편입. 그 단어를 그는 incorporation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알아듣고 나서, 대답할 것을 찾았다. 영어로도 일본어로도 없었다.


여섯 시에 문을 닫았다.

계단은 넓고 얕아서 내려가는 데 걸음이 잘 맞지 않는다. 우에노 숲 위로 해가 남아 있었고, 아래쪽 길에서 아이스크림 파는 손수레가 종을 쳤다.

계단 중간에 서서 수첩을 꺼냈다.

오늘 확인한 것을 적어야 했다. 참조할 만한 선례로 남은 것은 인도 하나이고, 그 하나는 열여덟 해 동안 제9조에 묶여 있고, 그 사람들 자신은 그것을 굴욕이라고 부른다. 필리핀은 남의 나라 법률로 정해진 일이라 우리 쪽에는 쓸 수가 없다. 그 밖에는 연감 색인에 아무 항목도 없다.

그런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세 줄이면 될 것을 세 줄로 쓰지 못하고 한참 서 있었다. 그러다 알았다. 그 세 줄을 한마디로 줄이면 되는데, 그 한마디가 일본어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소리로 왔다. 어릴 때 집에서 듣던 소리였다. 글자로 어떻게 쓰는지는 모른다. 소리만 안다.

나는 그것을 가타카나 세 자로 적었다.

オプタ. 없다.

적어 놓고 보니 세 자가 너무 작아서, 밑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이번에는 손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하는가.


1965년 5월 20일 · 도쿄 가스미가세키, 척무성 관리국 자료실

자료실 캐비닛은 열두 개고 그중 셋에만 열쇠가 걸려 있다. 창이 북향이라 오후에도 형광등을 켜야 한다. 누마타 히사시는 이 방에 십오 년 동안 백 번쯤 왔고, 백 번 다 형광등을 켰다.

척무성 사무관이 사다리를 딛고 위 칸에서 상자를 내렸다.

"교류 자료는 연도별이 아니라 상대국별로 되어 있습니다. 독일 것은 여기, 이탈리아 것은 저기. 이탈리아 건 세 부밖에 없어요."

"독일 것만 보면 됩니다."

"동방 관계는 이쪽입니다. 판무관부 넷이 다 따로 되어 있어서 상자가 넷입니다." 사무관이 먼지를 털었다. "누가 이걸 찾는 건 삼 년 만입니다."

삼 년 전에 찾은 사람이 누마타였다.

삼 년 전에 찾은 사람이 누마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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