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5부 사전(辭典)
29화제40장 삼만 개
1965년 8월 3일 밤 · 경성 종로 6정목 자택 안방
할머니는 저녁을 세 술 뜨고 숟가락을 놓으셨다.

어머니가 상을 물리면서 남은 것을 들여다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당에 뿌린 물이 마르지 않은 저녁이었다. 옆방에서 할머니가 돌아눕는 소리가 났고, 그다음에 뭐라고 한마디 하셨는데 나는 뒤의 두 음절만 들었다.
서고에 다녀온 뒤로 닷새 동안 우리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침상에서 아버지는 국을 뜨셨고 나는 신문을 폈다. 낮에는 의원 사무소에 나가 부결된 개정안의 참고 자료를 상자에 담아 창고로 올려 보냈다. 종이 마흔여덟 장이 상자 하나에 다 들어갔다.
아버지는 아홉 시에 들어오셨다.
그 시각에 들어오시는 것을 나는 여러 해 만에 봤다. 아버지는 우물가에서 손을 씻고, 여느 때보다 짧게 씻고, 마루로 올라와 안방 문을 여셨다.
"들어와라."
안방에는 천장에 알전구가 하나 달려 있고 줄이 아랫목까지 내려와 있다. 어머니가 저녁마다 그 줄을 감아 벽에 걸어 둔다.
아버지는 방 가운데 앉으셨다. 앞에 아무것도 놓지 않으셨다. 서류도, 공책도, 담배도 없었다.
"흥남 건은 내가 간다. 이달 안에 간다."
"저도 가겠습니다."
"너는 가지 마라." 아버지가 무릎에 손을 얹으셨다. "네가 두 번 가면 그 조회가 두 줄이 된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조회를 넣은 것은 나였고 사유란에 유권자 명부 정리라고 적은 것도 나였다.
"오늘 셈을 한 번 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가 물어볼 것 같아서."
"예."
"마흔한 종이다. 교본이 다섯, 국어독본이 여섯 학년 치로 열둘, 교사용 지도서가 아홉, 상회 교재와 부인회 소책자가 열다섯. 소화 십팔년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다. 스물두 해다."
아버지는 그 목록을 종이를 보지 않고 말씀하셨다.
"표제어로 삼만 천사백 개다."
나는 그 숫자를 두 번 들었다. 두 번째는 내가 되뇐 것이었다.
"세어 놓으신 겁니까."
"세지 않으면 심을 자리를 못 정한다. 같은 낱말을 두 번 넣으면 한 자리가 죽는다."
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가 주전자를 올려놓은 모양이었다.
"그러면 그게 사전입니까."
"아니다."
아버지는 오른손을 들어 무릎 위에 놓고, 왼손 엄지로 오른손 새끼손가락부터 하나씩 접으셨다. 손톱이 짧고 검지 첫 마디 옆에 굳은살이 앉아 있었다.
"하나. 낱말은 마흔한 권에 흩어져 있다. 한 권에 스물이 안 되게 넣었으니 흩어진 것을 도로 모아야 한다."
새끼손가락이 접혔다.
"둘. 원고는 청사 서고에 있다. 저건 관청 물건이다. 내가 밤마다 고치고 있지만 내 것이 아니야. 폐기 예정품 목록에 올라 있고 그 목록은 해마다 한 번 다시 짠다. 짜는 사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나는 모른다."
"셋. 시옷에서 이응 앞까지가 빠져 있다. 그건 흥남 마루 밑에 있다. 삼천팔백 장이다."
"넷." 아버지가 마지막 손가락을 접으셨다. 주먹이 되었다. "찍을 것이 없다. 조선에 한글 활자가 없다."
"활자요."
"소화 십구년에 다 걷어 갔다. 자모까지 걷었다. 자모가 있어야 활자를 부어내는데 자모가 없으면 처음부터 깎아야 하고, 그건 사람이 없다."
"황금정에 다녀왔습니다." 나는 말했다. "고물상을 세 집 들렀습니다."
"있더냐."
"없다고들 했습니다."
"없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버지."
"말해라."
"앵정국민학교 다카야마 훈도 말씀입니다.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저는 스물세 군데를 못 봤을 겁니다."
"안다."
"아십니까."
"대출증에 내가 이름을 적었다." 아버지는 무릎 위의 손을 내려다보셨다. "자료 배부는 편수관 결재다.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한다."
"그 사람한테 해가 됩니까."
"신청서 한 장이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런 걸로 잡혀간 사람을 나는 몇 봤다."
주먹이 무릎 위에 그대로 있었다. 넷 중 하나만 없어도 사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아버지는 하지 않으셨다. 손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문지방에 어머니가 서 계셨다.
주전자에서 김이 오르는 소리가 뒤에서 났다. 어머니는 행주를 손에 쥔 채로 방 안을 한 번 보셨다. 아버지의 주먹을 보고, 나를 보고,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부엌으로 가셨다.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무슨 이야기냐고 묻지도 않으셨고, 문을 닫아 주지도 않으셨다. 어머니는 삼십 년 동안 이 집에서 저 문지방을 하루에 스무 번씩 넘으셨다. 아버지가 새벽에 들어오시는 것도, 손을 오래 씻으시는 것도, 편지를 부치러 나가시는 것도 어머니가 다 보셨을 것이다. 나는 그날 밤에 그 생각을 처음 했다.
부엌에서 물 따르는 소리가 났다.

"내 대에는 안 된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예?"
"넷이 한자리에 모여야 사전이다. 나는 못 한다. 스물다섯 해 걸려서 하나 반쯤 했다." 아버지는 주먹을 펴서 무릎을 한 번 쓸으셨다. "나는 쉰일곱이고, 저 원고는 앞으로 스무 해쯤 더 손을 봐야 한다."
"그러면 왜 하십니까."
내 목소리가 컸다. 옆방에서 할머니가 돌아누우셨다.
아버지는 나를 보셨다. 화를 내지 않으셨다.
"하던 것이니까."
한참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옆방의 숨소리가 들렸다. 짧고 얕았다. 나카무라 의원은 연세라고만 했고 먹는 약 두 봉을 주었다.
아버지가 조선말로 물으셨다.
여섯 마디쯤 되었다. 앞의 두 마디는 알아들었고 뒤는 못 알아들었다. 그런데 그 못 알아들은 자리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한 번 내려갔고, 나는 그것이 물음이라는 것만 알았다.
"제가 하겠습니다."
국어로 말했다.
말해 놓고 나는 그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조선말로 물으셨고 나는 국어로 답했다. 이 집에서 이십칠 년 동안 매일 있던 일이다. 할머니가 조선말로 부르면 어머니가 조선말로 대답하고 내가 국어로 대답한다. 재숙이는 웃는다.
"뭘 하겠다는 거냐."
이번에는 국어였다.
"넷을 모으겠습니다."
"어떻게."
"모르겠습니다."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아버지 혼자보다는 둘이 낫습니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으셨다.
무릎 위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도 그대로였다. 예의로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으셨고, 그만두라고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아버지가 무슨 말이든 하시기를 기다렸고, 기다리는 동안 벽에 걸린 달력에서 팔월의 붉은 날들을 세었다. 세 개였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그릇을 엎어 놓는 소리가 두 번 났다.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벽에 감아 둔 전등 줄을 풀어 손에 쥐시고, 잠깐 그대로 계셨다. 내가 아직 앉아 있는 것을 보셨는지는 모르겠다.
그러고는 줄을 당기셨다.
1965년 8월 10일 · 경성 본정 3정목 최정규 미곡상 사무실 → 경무국 보안과 응접실
딸의 방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최정규는 문지방에 서서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장마 끝물의 눅눅한 바람이 열어 둔 창으로 들어와 책상 위의 종이를 들썩였다. 그는 마루로 물러나 신을 벗고 다시 들어갔다.
책상에 학무국에서 찍은 『국어 보급 교본』이 네 권 있었다. 표지 색이 다 다르고 모서리가 닳아 둥글었다. 그가 모르는 책이 아니었다. 스무 해 전에는 그의 가게 점원들도 저녁마다 그것을 펴 놓고 발음을 따라 했다. 국어를 못 하면 되를 못 잡았다.
한 권이 펼쳐져 있었고, 펼쳐진 면의 대역란에 붉은 연필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한 면에 하나씩, 없는 면도 있었다. 동그라미 옆에는 딸의 글씨로 작은 표가 그려지고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무엇을 세어 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책상 서랍이 한 뼘쯤 열려 있었다. 그 안에 표지에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공책이 한 권 있었다. 그는 그것을 펴 보았다. 낱말이 줄줄이 옮겨져 있었고, 언문이었다. 그는 언문을 읽을 줄 알았다. 배운 지 오십 년이 넘었고 그 뒤로 쓸 일이 없었을 뿐이다. 낱말 옆에 국어 뜻이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딸의 글씨는 국어 쪽이 훨씬 빨랐다. 언문 쪽은 획을 하나하나 그렸다. 처음 쓰는 손이었다.
그는 책을 덮고 뒤쪽 판권장을 봤다. 편찬 겸 발행 조선총독부 학무국. 인쇄소 이름. 정가 표시는 없었다.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 이름이 없었다. 이 책은 관청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름은 다른 종이에 있었다.
교본 밑에 편수과 자료 대출증이 깔려 있었다. 대출자 다카야마 리쓰코, 소속 경성 앵정국민학교 훈도. 자료 네 점. 반납 기한. 그리고 사유 난에 딸의 글씨로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본교 삼학년 아동 중 국어 해득이 지체된 자가 있어, 그 아동이 쓰는 말을 알기 위하여 신청함.
최정규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딸의 글씨는 반듯했다. 어릴 때 습자를 시킨 것이 그였다.
증서 맨 아래 담당자 난에 도장이 찍히고, 그 옆에 만년필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학무국 편수과 편수관 야스모토 게이샤쿠.
책에는 없는 이름이 서류에는 있었다.
그는 교본을 원래 펴져 있던 면으로 되돌려 놓고, 대출증을 처음 깔려 있던 자리에 밀어 넣었다. 공책은 서랍에, 서랍은 한 뼘. 붉은 연필은 손대지 않았다.
가게 사무실은 늘 서늘했다. 벽 한쪽에 도량형기 검정필 표찰이 걸리고, 그 아래 부에서 내준 배급 지정 판매소 간판이 세로로 걸려 있었다. 스물두 해째 걸려 있는 물건이었다. 저 간판이 있어서 그의 가게에는 애국반 반장들이 통장을 들고 왔고, 반장들이 오니까 부회 표가 왔고, 부회에 앉아 있으니까 저 간판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이제 생각하지 않았다.
"어르신, 서대문 쪽 삼백 가마 건은 내일 아침으로 미룰까요."
사무원이 장부를 안고 서 있었다. 스물 몇 살이나 되었을까, 손톱이 짧고 깨끗한 아이였다.
"미뤄라."
"예."
"오늘 몇 일이냐."
"팔월 십일입니다."
최정규는 주판알을 손가락 등으로 한 번 밀어 올렸다. 스물다섯 해 전 오늘, 그는 부청 창구에서 창씨 신고서를 냈다. 마감 당일이었고 줄이 길었고 그 줄에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명함집을 꺼냈다. 경성부회 의원 다카야마 마사노리. 종이가 두꺼워서 손끝으로 돌리면 가장자리가 손가락 마디를 눌렀다. 그는 그것을 세 번 돌렸다.
교원 신분은 신원 조회로 유지된다. 조회는 삼 년마다 갱신된다. 딸은 재작년 봄에 갱신했으니 다음은 재후년이다. 그때까지 무엇도 나오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무엇이 나오는 것은 그가 정하는 일이 아니다.
먼저 말한 사람은 협조자가 된다. 나중에 말한 사람은 공범이 된다. 이것은 계산이지 배신이 아니다. 그는 평생 계산을 해서 먹고살았고 계산이 틀린 적은 별로 없었다.
그는 명함을 안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그는 명함을 안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남은 15화 · 약 55,532자 · 약 79분
좋아요와 책갈피는 이 기기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