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사십년 제2부 감(柿)이 익다
12화제16장 편수과 서고 제3열
십이월 열이레에 함흥에서 짐이 왔다.
목록에는 조선어 어휘 정리 자료라고 적혀 있었다. 서무 고원 둘이 짐수레로 뒷문에서 서고까지 날랐다. 형석은 인수인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름 옆에 도장을 찍었다.

서고는 편수과 안쪽 복도 끝에 있었다. 창이 없고 전등이 하나였다. 선반이 다섯 줄이었고 셋째 줄이 비어 있어서 새로 온 것을 거기에 넣었다.
인수증에는 함흥지방법원 검사국 도장이 찍혀 있었다. 사건이 끝난 물건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었고 기소된 사람들은 그곳에 남아 있었다. 다만 증거로 쓸 것과 쓰지 않을 것을 골라낸 뒤에 나머지가 이리로 온 것이었다. 골라낸 사람이 무엇을 기준으로 골랐는지 목록에는 적혀 있지 않았다.
고원 하나가 짐수레를 밀면서 물었다. "이거 다 뭡니까."
"낱말이오."
"낱말이 왜 이렇게 무겁습니까."
형석은 웃어 주었다.
고원들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형석은 전등 아래에 섰다.
상자들은 사과 궤짝만 했다. 나무결이 그대로 보이고 모서리에 못이 나와 있는 것도 있었다. 옆면마다 붓으로 쓴 여섯 자리가 있었다. 굵은 획이었다. 서툰 붓이었다.
그는 왼쪽부터 읽어 나갔다. 셋째 줄 아래 칸, 안쪽에서 두 번째.
거기 있었다.
숫자가 그가 외운 순서 그대로였다. 봉인지는 한 번 뜯겼다가 다시 붙어 있었고, 새로 붙인 종이가 원래 것보다 희었다.
형석은 손을 뻗어 상자 옆면에 손끝을 댔다. 먹 위로 먼지가 앉아 있어서 손끝이 미끄러졌다. 손가락을 떼자 획을 따라 자국이 났고, 손끝에는 회색이 묻었다.
그는 그것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그러고 나서 서고를 나와 문을 닫고 열쇠를 서무 고원에게 돌려주었다. 고원이 열쇠 대장에 시각을 적었다. 형석은 그 옆에서 기다렸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날 그는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온 것은 여덟 시가 넘어서였다.
정옥분이 부엌에서 나오며 배급 통장을 들고 있었다. 표지 안쪽에 종이 한 장이 풀로 붙어 있었다. 인정증이었다. 십일월 자로 부에서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이번 달부터 등급이 올라간대요."
형석은 그것을 받아 들여다보았다. 인정증에는 세대주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 가족 수와 판정 일자가 있었다.
"잘됐소."
옥분은 통장을 도로 받아 반닫이에 넣었다. 넣고 나서 손으로 뚜껑을 한 번 쓸었다.
『국어 보급 교본』 권1의 재교지가 올라온 것은 이듬해 사월이었다.
성인 강습소용이었고, 판형이 작고 종이가 나빴다. 각 과의 아래 절반이 대역란이었다. 왼쪽에 국어 문장, 오른쪽에 대역. 오른쪽 것은 어디까지나 왼쪽 것을 알아듣게 하기 위한 사다리였고, 사다리는 다 올라가면 치우는 물건이었다.
형석은 붉은 펜을 들었다.
제1과부터 보았다. 인사, 숫자, 물건 이름. 오식이 세 군데 있었다. 활자가 뒤집힌 데가 한 군데. 그는 여백에 부호를 넣고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제6과에서 그는 잠깐 멈췄다.
예문 셋째 줄이 비어 있었다. 편집에서 문장 하나가 빠졌고 그 자리에 연필로 작게 '보충'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흔한 일이었다. 이런 자리는 대개 교정 보는 사람이 채웠다.
그는 원고지 조각에 왼쪽 문장을 먼저 썼다. 어느 물건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를 묻고 답하는 문장이었다. 초급 강습소에서 이 단계에 나오는 문장은 어느 교본이나 비슷했고, 이 문장으로 사람을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고 나서 오른쪽 칸을 썼다.
낱말 하나를 골랐다. 고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화동정 벽을 따라 놓여 있던 카드 상자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이 그 낱말의 상자였다. 뜻이 여덟이었고 용례가 백 장이 넘었다. 그중 어느 하나도 활자가 된 적이 없었다.
그는 용례 하나의 뼈대만 남겨 문장을 짧게 줄였다. 강습소에서 쓰기에 알맞을 만큼 짧았다.
다 쓴 뒤에 소리 내어 읽어 보지 않았다. 여기서는 읽지 않는다.
원고지 조각을 교정지에 풀로 붙이고, 붉은 펜으로 삽입 부호를 그었다. 펜이 그 줄 위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번 지나갔다.
아라키가 뒤로 지나가다가 책상 옆에 섰다.

"제6과 그거 비어 있던 데지."
"채웠습니다."
과장은 교정지를 집어 들고 팔을 뻗어 멀리 놓고 보았다. 노안이었다. 왼쪽 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초급 강습소용 문장이었으므로 짧았고 아무 데도 걸리지 않았다.
"쉽군. 좋아." 그는 교정지를 내려놓았다. 오른쪽 칸은 보지 않았다. 보아도 읽지 못했을 것이다.
교정지는 그날 오후에 인쇄소로 넘어갔다. 초판은 이만 부였다. 권1 제6과 대역란 셋째 줄, 오른쪽 칸 문장의 끝에 두 글자가 앉았다.
있다.
1965년 3월 15일 아침 · 경성 종로 6정목에서 광화문통, 종로선 전차
동대문 앞에서 이미 사람이 찼는데도 차장은 문을 닫지 않았다. 뒤에서 밀고 앞에서 버티는 소리가 한참 났고, 누군가의 도시락 보자기가 내 허리께에 눌려 있었다. 된장 냄새가 났다. 국민복 등판과 몸뻬 옆구리 사이에 끼여 서서 나는 신문을 반으로 접어 겨드랑이에 꽂았다. 펼 자리가 없었다.
"아저씨, 조금만 들어가시라니까요."
"들어갈 데가 있어야 들어가지."
차장이 사람들 사이로 팔을 뻗어 정기권을 확인했다. 손등에 잉크가 묻어 있었다. 종로 5정목에서 또 넷이 탔고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유리창이 안쪽부터 뿌옇게 흐려져서 바깥은 지나가는 색깔로만 보였다. 검정, 회색, 국방색, 다시 회색.
앞쪽에서 국민학생 하나가 손잡이에 매달렸다가 어깨를 얻어맞았다. 여섯이나 일곱쯤 되는 무리였다. 가방 대신 보자기를 등에 멘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창가에 붙어 서서 노래를 불렀다. 어느 학교나 삼월에 가르치는 그 노래였다. 바다를 건너 아침 해가 온다는 데까지 부르다가 목소리가 갈라지자 다 같이 웃었다.
"기무라, 너 어제 안 왔지."
"안 온 게 아니라 늦은 거야."
"늦은 게 안 온 거지."
"우리 어머니가 배급 타러 가서 나 밥을 못 먹었단 말이야."
"그건 안 온 거잖아."
아이들은 서로를 성으로 불렀다. 기무라, 마쓰다, 가나야마. 대여섯 아이가 대여섯 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중에 조선 성은 하나도 없었다.
전차가 종로 4정목을 지나면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종로 3정목 파출소 앞에 순사 둘이 나와 서서 자전거를 세우고 있었다. 뒤쪽에서 늙은 여자 하나가 차장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뭐라고 물었다. 조선말이었다. 어디서 내려야 화신 앞이냐는 것 같았다. 차장은 앞을 본 채로 대답했다.
"종로 2정목입니다."
여자가 다시 물었다. 같은 말을 조금 더 크게. 차장은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여자의 귀에 대고 짧게 옮겨 주었다. 늙은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전차는 계속 갔다.
천장 광고판이 흔들리고 있었다. 결핵 예방 주간, 저축 채권, 그리고 오래되어 귀퉁이가 말린 종이 한 장. 국어를 쓰는 집에 밝은 내일이 옵니다, 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 밥그릇 그림이 있었다. 밥그릇에서 김이 세 줄 올라가는 그림이었다. 그 종이는 내가 이 노선을 타기 시작한 뒤로 계속 거기 있었다.
일곱 시 사이렌이 울린 것은 종로 네거리에서였다.
차장이 손잡이 줄을 당겼고 전차가 섰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났다. 서 있던 사람들은 모자를 벗었다. 나도 벗었다. 종로 네거리에서 남쪽으로 길이 트이면 남산이 통째로 오는데, 그 중턱에 신궁의 도리이가 흰 뼈처럼 서 있다. 아침 해가 아직 낮아서 도리이 밑동은 그늘에 잠겨 있었다.
동쪽으로 몸을 돌린다. 허리를 굽힌다. 열다섯을 센다. 편다.
이것을 하는 데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팔이 옆구리에 붙고 목이 알아서 각도를 잡는다. 국민학교 이 학년 때부터 매일 아침 한 번씩 이십 년을 했으면 그렇게 된다. 앞에 선 아이들도 벌써 그렇게 되어 있었다. 아까 웃던 아이가 웃음을 지운 얼굴로 정확한 각도를 만들고 있었다.
전차 안이 조용해지면 바깥 소리가 들어온다. 자전거 체인 소리, 어디선가 비질하는 소리, 남산 쪽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낮은 울림. 도리이 밑으로 계단이 이백 몇 단인가 있고 그 위에 배전(拜殿)이 있다. 삼월과 십일월에 학교가 줄을 세워 올라간다. 올라가면 경성이 다 내려다보이는데, 내려다보이는 것 말고는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전차가 다시 움직였다. 사람들이 모자를 썼다. 그리고 아까 하던 이야기의 중간부터 이어졌다.
"그러니까 다음 주부터 배급일이 바뀐다는 거예요?"
"바뀌는 게 아니라 앞당긴다더군요. 십일월에 봉축이 있으니까 미리 손을 봐 두는 거지."
"십일월이면 아직 여덟 달인데."
"여덟 달이니까 지금부터 하지."
"우리 반은 벌써 제등 값을 걷었어요. 한 집에 삼십 전씩."
"그럼 그 댁은 미리 낸 거니까 나중에 또 걷어도 억울해할 것 없겠구먼."
두 사람 다 웃었다.
'그럼 그 댁은 미리 낸 거니까 나중에 또 걷어도 억울해할 것 없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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