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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제7장 베네치아의 물

· 44화 중 5화 · 3,288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1940년 7월 14~19일 · 베네치아, 그리고 베를린

무솔리니는 조인식 사진에서 자기가 설 자리를 사흘 전에 정해 두었다.

쇼와 사십년 5화 제7장 베네치아의 물 — 헤더컷

대운하 쪽 창을 등지고 탁자 가운데. 왼쪽에 독일, 오른쪽에 영국. 사진사가 두 걸음 물러서면 창밖 물이 배경으로 들어오는데, 그 물이 조금 흔들려 있어야 사진이 살아난다고 그는 생각했다. 치아노가 그것을 받아 적었다.

"영국 쪽 서열은 어떻게 됩니까." 치아노가 물었다. "차관이 왔습니다, 두체. 장관이 아니라."

"핼리팩스는 총리요." 무솔리니가 말했다. "총리가 조약에 직접 서명하러 오는 나라는 지는 나라요. 저들은 그것을 알고 있소. 그래서 차관을 보냈고, 그래서 나는 그것을 존중해 주는 것이오."

칠월 십사 일이었다. 사흘 뒤면 그의 군대가 영국령 소말릴란드로 들어가지 않고도 그 땅을 받게 되어 있었다. 몰타의 포대가 헐리게 되어 있었고, 수에즈 운하의 통행료 계산서에 이탈리아어 항목이 생기게 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그는 총 한 발 쏘지 않고 얻었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완성했는지 알고 있다고 믿었다.

오월 말 됭케르크에서 독일 기갑부대는 사흘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두고 참모본부가 무슨 소리를 하든 상관없었다. 그는 히틀러라는 사람을 여섯 해 보아 왔고, 그 사람이 영국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미워하지 않는 상대에게 사람은 문을 반쯤 열어 둔다. 히틀러가 그 문을 열어 두었고, 자기가 그 문으로 영국을 걸어 들어오게 만들었다.

"두체." 치아노가 말했다. "독일 측은 그런 설명을 좋아하지 않을 텐데요."

"독일 사람들은 자기가 관대했다는 말을 듣는 걸 좋아하오. 다만 자기 입으로는 못 하지." 무솔리니가 창가로 갔다. "그러라고 내가 있는 것이오."


칠월 십육 일 오전 열한 시, 조인.

낭독은 이탈리아어, 독일어, 영어 순이었다. 조항이 서른한 개였으므로 오래 걸렸다. 방은 더웠고 창을 열면 물 냄새가 들어왔다.

버틀러는 서른일곱 살이었다. 그는 낭독 내내 자기 앞의 사본을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따라갔다. 리벤트로프는 짚지 않았다. 짚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이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었다.

제9조에서 대륙 문제 불간섭이 낭독됐다. 제11조에서 각 망명정부에 대한 승인 철회. 제14조에서 프랑스 함대에 관한 일체의 요구 철회. 제17조에서 탕가니카. 제22조에서 해상봉쇄의 상호 해제.

제26조는 짧았다.

낭독자가 그 조항을 읽었다. 체약국 영국은 대륙으로부터의 추가적 난민 수용을 중지한다. 이미 영국 영토에 있는 자의 처리는 영국의 국내 사항으로 한다.

호어는 마드리드에서 어제 왔다. 그는 사본을 무릎에 놓고 있었고, 낭독이 다음 조항으로 넘어가고 나서 페이지를 넘겼다. 한 박자였다. 옆에 앉은 바스티아니니가 그것을 보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버틀러는 짚던 손가락을 그대로 두었다가 다음 줄로 옮겼다.

무솔리니는 상석에서 그 방을 보고 있었다. 영국 사람들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조금 언짢게 했다. 그는 이 방에서 누군가 안도하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안도야말로 자기가 이 사람들에게 준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치아노가 그날 밤 수첩에 적은 것은 달랐다. 열한 시 사십 분, 제26조. 영국 대표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들지 않음. 우리가 얻은 것은 소말릴란드, 독일이 얻은 것은 시간, 영국이 얻은 것은 자기 집. 그 밖의 것에 관해서는 조항이 없음.

서명은 열두 시 사 분에 끝났다. 사진사가 들어왔다. 무솔리니가 가운데, 왼쪽에 리벤트로프, 오른쪽에 버틀러. 버틀러는 자기 자리로 안내받은 곳에 섰다. 사진에서 그는 탁자 오른쪽 끝에 있고, 그의 오른팔 바깥으로 사진의 테두리가 지나간다.


칠월 십구 일 저녁, 베를린 크롤 오페라하우스.

히틀러는 두 시간 가까이 말했다. 후반부에 그는 이성에의 마지막 호소라는 표현을 썼고, 그 대목에서 회의장이 오래 울렸다.

그다음이 임명이었다.

원수(元帥) 열두 명의 이름이 차례로 불렸다. 이름이 불린 사람은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지휘봉은 뒤에 따로 준다고 했다.

룬트슈테트의 이름이 불렸다.

그는 일어섰다. 예순네 살이었고 무릎이 좋지 않았으므로 앞자리 등받이를 한 번 짚었다. 통로로 나가 단상 쪽으로 걸었다.

걸으면서 그는 앞을 보지 않았다. 시선은 카펫의 이음매에 가 있었다. 붉은 카펫이 두 장 이어져 있고 이음매가 조금 어긋나 있어서, 걸을 때 발끝에 턱이 걸렸다.

단상에서 악수를 했다. 손을 놓고 돌아설 때까지 그는 사 초쯤 그 자리에 있었다.

객석으로 돌아와 앉으면서 그는 오른쪽 무릎을 손으로 눌렀다. 옆자리 사람이 무어라고 축하를 했다. 그는 고맙다고 대답했다.


쇼와 사십년 5화 제7장 베네치아의 물 — 전환컷

같은 시각 런던은 저녁 여덟 시였다.

핼리팩스는 관저 서재에서 라디오를 켜 두고 있었다. 독일 방송을 중계로 받고 있었으므로 잡음이 많았고 통역이 반 박자 늦었다. 통역이 원수 열두 명의 이름을 다 읽는 데 일 분이 걸렸다.

그는 삼십칠 년 십일월에 베르히테스가덴에 갔던 일을 생각했다.

차에서 내렸을 때 계단 아래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자동차 문 옆에 서서 기다리는 자세였다. 핼리팩스는 그 사람이 하인이라고 생각했고, 외투를 벗어 건네려고 팔을 반쯤 들었다. 옆에 있던 독일 외교관이 낮게 말했다. 총통입니다.

그때 그는 팔을 내렸다. 그것으로 끝난 일이었고 아무도 다시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 뒤로 그는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자기가 그 사람을 무엇으로 보았는지를 잠깐씩 다시 보았다.

통역이 조약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그는 창을 보았다. 이 여섯 주 동안 그가 지킨 것의 목록은 짧았다. 제국, 해군, 이 섬. 내준 것의 목록은 길었고, 그중 제26조 하나는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그는 그 조항을 두 번 고쳤다. 이미 들어와 있는 자를 돌려보내라는 문구를 지웠고, 그 자리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비워 둔 것으로 자기가 무엇을 얻었는지 그는 문장으로 만들 수 있었다.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늘 좋은 일은 아니었다.

라디오에서 박수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라디오 앞으로 갔다. 다이얼을 잡은 것은 왼손이었다. 장갑 속 나무 엄지가 금속 손잡이에 닿으면서 마른 소리를 냈다. 그는 그 손으로 다이얼을 돌리지 않고, 그냥 스위치를 눌렀다.

방이 조용해졌다. 창밖으로 세인트제임스 공원 쪽 하늘이 아직 밝았다.


베네치아의 그 방은 십칠 일 오후에 정리됐다.

탁자를 벽으로 붙이고 의자를 겹쳐 쌓았다. 사흘 뒤 창의 덧문은 닫혀 있었다. 대운하 쪽에서 보면 닫힌 덧문 네 짝이 물에 비쳤다. 바포레토가 지나갈 때마다 그 네 짝이 물 위에서 늘어났다가 끊어졌다가 다시 붙었다.


1940년 7월 20~21일 · 경성 화동정, 그리고 종로 6정목

교정지에 파리가 앉았다.

안형석은 손등으로 쫓았다. 파리는 삼십 센티쯤 날았다가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창을 열어 두면 화동정 골목의 개천 냄새가 올라오고 닫아 두면 방 안 사람들이 견디지 못했으므로, 사전편찬실은 유월부터 창을 열어 두고 파리를 쫓으며 일했다.

교정지는 ㄱ이었다. 활자를 뽑아 조판한 뒤 한 벌 찍어 온 것으로, 붉은 잉크가 여백에 빽빽했다. 형석은 왼손으로 자를 대고 오른손으로 줄을 짚어 내려갔다.

방에는 책상이 다섯이었고 그 뒤 벽을 따라 카드 상자가 놓여 있었다. 낱말 하나에 종이 한 장씩, 뜻과 용례와 출전을 적어 넣은 것이 십 년째 쌓인 것이었다. 상자에 손을 대면 마른 종이 냄새가 났고 여름에는 거기 곰팡이 냄새가 조금 섞였다.

"이건 못 넘어갑니다." 정인승이 자기 몫의 교정지를 들고 왔다. 그는 삼백열여섯 쪽을 폈다. "계시다입니다."

이극로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무엇이 문제요."

"표제어로 세워 두고 뜻풀이를 있다의 높임말이라고만 달았습니다. 그러면 사전이 아니라 대조표지요."

"높임말인 건 사실 아니오."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계시다를 있다 대신 쓰지 않습니다." 정인승이 손가락으로 짚었다. "어머니가 방에 계시다, 이건 됩니다. 붓이 책상에 계시다, 이건 안 됩니다. 사람에게만 씁니다. 그것을 안 적으면 이 항목은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용례를 하나 더 넣으면 되지 않소."

"용례 하나에 활자가 몇 자입니까." 정인승이 말했다. "지금 ㄱ만 스물두 쪽이 넘었습니다."

한징이 책상 저쪽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아침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넣읍시다." 한징이 말했다. "쪽수는 나중에 줄이면 되고, 안 적은 것은 나중에 넣을 데가 없습니다."

이윤재가 웃었다. 그는 이 방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고 다투는 자리에서는 대개 마지막에 한마디 했다.

"형석이가 적게." 이윤재가 말했다. "젊은 사람 글씨가 인쇄소에서 덜 틀리네."

형석이 붉은 펜을 들었다. 계시다 항목 여백에, 사람 및 사람에 준하는 것에만 쓴다, 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용례를 하나 적었다.

그 줄을 적는 데 이십 초가 걸렸다. 이십 초 뒤에 그는 다음 쪽으로 넘어갔고, 그날 오후 세 시까지 열한 쪽을 더 보았다.

그 줄을 적는 데 이십 초가 걸렸다. 이십 초 뒤에 그는 다음 쪽으로 넘어갔고, 그날 오후 세 시까지 열한 쪽을 더 보았다.

남은 39화 · 약 139,139자 · 약 3시간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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