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8부 재(灰)
44화제62장 밥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었다.
세 그릇을 안쳤다. 어머니는 십일월에는 두 그릇을 더 안친다. 설에는 안 그런다. 설에는 산 사람 것만 한다.

떡국을 먹고 나서 어머니가 상을 옮기자고 했다. 텔레비전 앞이 더 따뜻하다고.
상을 옮기고 내가 아까 앉았던 쪽에 앉으려는데 어머니가 손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앉아라."
"예?"
"이쪽으로."
나는 자리를 옮겼다. 옮기고 나서 알았다. 어머니가 내 오른쪽에 앉게 됐다.
어머니는 아무 설명도 안 했다. 국그릇을 옮기고, 김을 내 앞으로 밀고, 텔레비전 소리를 조금 키웠다.
"언제부터 아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뭘."
"…아닙니다."
"먹어라."
어머니는 국물을 떠먹었다. 나는 그 옆얼굴을 봤다. 작년 여름에 전화했을 때, 내가 두 번 되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인가 보다. 아니면 그전인가 보다.
물어보지 않았다.
그날 밤에 나는 아랫목에 누웠다.
보일러를 세게 틀어 놔서 장판이 뜨거웠다. 등이 데일 것 같아서 이불을 한 겹 깔았다. 옆방에서 누나하고 어머니가 얘기하는 소리가 났다. 무슨 얘기인지는 안 들리고 소리만 났다. 가끔 어머니가 웃었다.
나는 왼쪽으로 누워 있다가 오른쪽으로 돌아누웠다.
오른쪽으로 누우면 오른쪽 귀가 베개에 눌린다. 그러면 아무것도 안 들린다. 왼쪽은 원래 안 들리니까 양쪽 다 없어진다.
인천 하숙방에서는 이렇게 못 잤다. 소리가 없으면 무서워서 왼쪽으로 눕고 밤새 다 들었다.
여기서는 됐다.
바닥이 뜨겁고 이불이 무겁고 벽 너머에서 어머니가 웃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소리로 듣지 않고 그냥 알았다. 그러고 아주 오래 잤다.
2013년 10월 · 연평도
산이 얼룩덜룩했다.
멀리서 보니까 처음에는 그늘인 줄 알았다. 가까워지니까 아니었다. 검게 남은 밑동 사이사이에 초록색 점이 줄을 맞춰 박혀 있었다. 소나무 묘목이었다. 무릎께나 올까 싶은 것들이 등고선을 따라 가로로 줄줄이 심겨 있었다.
리성철이 난간에 붙어서 그걸 봤다.
"저거 언제 큽니까."
"모르지."
"십 년은 걸리겠습니다."
"더 걸릴걸."
그놈은 그러고 조타실 쪽으로 갔다. 갔다가 다시 왔다. 결국 배가 붙을 때까지 난간에 있었다.
우리 배가 연평 항로를 다니게 된 건 그해 봄부터다. 자재하고 기름하고 사료를 싣고 온다. 이번 배에 내가 탄 건 순번이 그렇게 돼서인데, 순번을 바꿔 달라고 하지 않은 건 내가 그렇게 한 거다.
물때 때문에 여섯 시간을 대야 했다.
배가 붙는 동안 나는 섬을 봤다.
부두는 새로 깔았다. 콘크리트 색이 아직 밝았고 계선주도 새것이었다. 그 뒤로 창고가 두 동 서 있는데 하나는 지붕이 새것이고 하나는 벽만 있었다. 마을은 지붕이 반쯤 파랬다. 새로 얹은 집들이다. 그 사이사이에 안 얹은 집이 있었고 그런 집은 마당에 풀이 허리까지 자라 있었다.
산 중턱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옮기면 우리가 있던 데가 나온다.
거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도 안 심었고 건물도 안 올렸다. 흙이 그대로 있고 능선 선이 좀 뭉개져 있었다. 나는 그쪽을 삼 초쯤 보고 눈을 돌렸다. 배가 붙었고 밧줄을 던져야 했다.
부두에서 짐을 내리고 있는데 노인이 하나 서 있었다.
작업복 위에 조끼를 입고 장화를 신고 있었다. 짐 내리는 걸 한참 보다가 나한테로 왔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바로 알았다. 굴 하는 집이다. 철 되면 우리 중대에 굴을 한 자루씩 들려 보내던 분이다.
"자네."
"예."
"해병이지."
"예. 삼 년 전에 있었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러고는 내 왼쪽으로 와서 뭐라고 했다. 나는 못 들었다.
"어르신, 이쪽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오른쪽 귀를 가리켰다. 노인이 자리를 옮겼다.
"자네 그때 그거 못 알아들었지."
"…예?"
"그날 저녁에. 산 타는 날. 내가 자네한테 뭐라고 했는데 자네가 멀뚱히 서 있었어."
기억이 났다. 그날 저녁에 누가 내 앞에서 입을 움직였다. 나는 그때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첫 발 이후로 계속 그랬다. 나는 목례만 하고 지나갔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노인이 손으로 마을 쪽을 가리켰다.
"우리 집에 물 나온다고. 와서 씻고 가라고 그랬어. 자네들 얼굴이 새까매서."
나는 그 말을 듣고 좀 웃었다. 웃을 데가 아닌데 웃음이 났다.
"별거 아니지." 노인이 말했다. "지금도 나와."
오후에 노인을 따라 갯벌로 내려갔다.
여섯 시간을 부두에 앉아 있느니 뭐라도 하는 게 낫다고 했더니 노인이 그러라고 했다. 리성철도 따라왔다. 노인은 그놈 말투를 듣고 한 번 쳐다봤을 뿐 아무것도 안 물었다.
배 위에 자루가 쌓여 있었다. 열어 보니 굴 껍데기였다.
"이게 종패입니까."
"그래."

"껍데기밖에 없는데요."
"여기 붙어 있어." 노인이 껍데기 하나를 들어서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게 씨야. 지금은 손톱 밑에 낀 것만 하지."
나는 눈을 가까이 대고 봤다. 껍데기 안쪽에 좁쌀보다 작은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회색이었다. 만지면 안 된다고 해서 안 만졌다.
껍데기를 열 개씩 줄에 꿰어 놓은 것을 연이라고 했다. 그 연을 물속에 늘어뜨린다. 그러면 이 년 뒤에 굴이 된다.
"이 년이요."
"이 년."
"그전에 태풍 오면요."
"오면 나가지."
노인은 그렇게만 말하고 배 시동을 걸었다.
굴밭은 마을 서쪽이다.
말뚝이 서른두 개 서 있었다. 여덟 개는 나무 색이 밝았다. 작년에 박은 것이라고 했다.
물이 반쯤 차 있어서 배를 대고 뱃전에서 작업했다. 노인이 줄 한쪽을 말뚝에 매고, 나는 연을 하나씩 물에 내렸다.
손이 물에 들어갔다.
시월 물은 차다. 처음 담글 때는 손목까지 시린데 조금 지나면 손가락 끝이 무뎌지고, 무뎌지고 나면 오히려 낫다. 나는 그게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 있었다. 케이블 이을 때도 그랬다.
연을 내리면서 나는 셌다.
하나, 둘, 셋.
껍데기가 서로 부딪는 소리가 났다. 물에 들어가기 직전에 자기들끼리 한 번 부딪고 들어간다. 그 소리가 계속 났다.
열둘, 열셋, 열넷.
리성철이 반대쪽에서 줄을 잡아 줬다. 그놈은 아무것도 안 세는 척했다. 나는 그놈이 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요새 내가 아는 숫자는 이런 것들이다. 인천에서 백령도까지 네 시간 반. 시멘트 한 파레트에 사백스물. 하숙방 월세 이십오만 원. 우리 어머니 쉰여덟. 김 중사님 딸이 올해 네 살.
스물아홉, 서른, 서른하나.
노인이 뒤에서 말했다.
"천천히 해. 서두르면 붙은 게 떨어져."
나는 천천히 했다.
중간에 한 번 쉬었다.
노인이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 줬다. 종이컵이 아니라 뚜껑에 따라서 돌려 가며 마셨다. 뜨거운 게 손에 닿으니까 손가락이 아팠다.
리성철이 북쪽을 보고 있었다.
여기서 보면 육지 끝자락이 손바닥 하나 폭으로 들어온다. 그날은 흐리지 않아서 능선까지 다 보였다. 이제 그쪽도 이쪽 물이라는데 배는 아직 못 간다고 한다.
노인이 그놈 시선을 따라갔다가 돌아왔다.
"저기 가 봤나."
"…예."
"뭐 있나."
"바위밖에 없습니다."
노인은 더 안 물었다. 뚜껑에 남은 커피를 마저 따라 주고 자기는 안 마셨다.
여든여섯에서 자루가 비었다. 노인이 다음 자루를 끌어다 놨다. 그러고 나서 물때가 다 됐다고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나머지는 사흘 뒤에 한다고 했다.
"사흘 뒤에 또 오나."
"배는 목요일에 옵니다."
"그럼 목요일에 와."
"예."
부두로 올라오는 길에 위령비가 있었다.
지난 칠월에 세웠다고 했다. 화강암이고 사람 키보다 조금 높고, 앞면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세로로 줄을 맞춰 놓았고 글자에 검은 칠이 들어가 있었다.
지나가면서 읽혔다.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 김치백. 배복철. 표준호 상사. 배승기 일병. 그 아래로 이름이 더 있었고, 이름 뒤에 나이가 적힌 것도 있고 안 적힌 것도 있었다.
앞에 국화가 놓여 있었는데 시들어 있었다. 누가 놓고 간 지 며칠 된 것 같았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려고 하면 멈출 수 있었을 텐데 발이 그냥 갔다. 리성철이 내 뒤에서 반 걸음 늦게 걸었다. 그놈도 안 멈췄다. 우리는 그 앞을 지나서 부두 쪽으로 내려갔다.
다음에 오면 멈출 것이다. 목요일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배는 여섯 시에 나간다.
갑판에 남은 자루를 다시 묶어 놓고 나는 뱃전에 앉았다. 노인이 부두에 서 있다가 손을 한 번 들고 갔다. 리성철은 조타실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 저쪽 육지 끝자락이 보이는 자리였는데 그놈은 그쪽을 안 봤다.
담배를 다 피우고 그놈이 내 옆으로 왔다. 오른쪽으로 왔다. 이제 이 새끼는 늘 오른쪽으로 온다.
"형님."
"어."
"목요일에 또 옵니까."
"온다."
"저도 순번 바꿔 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든가."
그놈이 뱃전에 팔을 걸치고 앉았다. 우리는 그 뒤로 아무 말도 안 했다.
해가 낮아지면서 물빛이 바뀌었다.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배가 조금씩 위아래로 움직였다. 손끝이 아직 얼얼했고 소매가 젖어서 팔뚝에 달라붙었다. 목요일에는 장갑을 챙겨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배가 흔들릴 때마다 자루 안에서 껍데기들이 서로 부딪었다.
그 소리가 오른쪽으로 들어왔다.
그 소리가 오른쪽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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