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IONTOON

31화제44장 유로

· 44화 중 31화 · 3,673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2010년 12월 ~ 2011년 5월 · 더블린 / 아테네 / 브뤼셀 / 프랑크푸르트

에이단 오리어리는 서명 자리를 세고 있었다.

확전 31화 제44장 유로 — 헤더컷

포스트잇은 노란색이었고, 그는 그것을 서류 옆면에 반씩 걸치게 붙였다. 다 붙이고 나니 서류 단면이 노란 이빨처럼 되었다. 마흔한 군데였다.

방에는 여섯 사람이 있었다. 펜은 두 개 준비했는데 하나가 안 나왔다. 오리어리가 그것을 종이 귀퉁이에 몇 번 그어 보다가 주머니에 넣고 자기 것을 꺼내 놓았다.

숫자는 다 알려진 것이었다.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에서 675억. 자국 준비금과 연기금을 합쳐 850억. 그중 은행 쪽으로 340억쯤이 간다.

원래는 11월 말에 끝났어야 하는 일이었다. 한 달이 밀렸다.

복도 텔레비전은 소리를 줄여 놓았다. 화면에는 눈 덮인 능선과 자막이 있었고, 자막은 한 시간째 같은 문장을 돌렸다.

기자는 둘이었다. 한 명은 라디오였고 한 명은 통신사였다. 사진기자는 오지 않았다.

"사진 안 찍습니까." 오리어리가 물었다.

통신사 기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찍어도 안 나갑니다. 오늘 지면이 없어요."

"지면이 없다니."

"이번 주 내내 없었습니다."

서명은 십일 분 만에 끝났다.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방에서 제일 큰 소리였다. 마지막 장에서 오리어리가 포스트잇을 떼어 손바닥에 붙였고, 마흔한 장이 다 떨어졌을 때 그의 손등이 노랗게 덮여 있었다.

밖으로 나오기 전에 그는 창가에 잠깐 섰다. 거리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작년 이맘때 이 건물 앞에 무엇이 서 있었는지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중계차 세 대와 조명과 사다리차 하나.

"아무도 안 보네요." 옆에서 젊은 직원이 말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야." 오리어리가 말했다. "안 보면 값이 덜 흔들려."

"안 보고 있어서 값이 안 흔들리는 겁니까, 다른 데가 더 무서워서 안 흔들리는 겁니까."

오리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서류를 왼쪽부터 순서대로 모아 가슴에 안았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른트 카이저는 그래프에 종이를 한 장 더 붙였다.

인쇄한 것이 위쪽 여백을 뚫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A4 한 장을 반으로 잘라 셀로판테이프로 위에 이어 붙이고, 자를 대고 선을 손으로 연장했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의 가산금리는 그 종이 위에서도 계속 올라갔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날 아침 그가 화면에서 본 것은 숫자가 아니라 빈칸이었다. 포르투갈 십 년물 호가창에 팔겠다는 쪽만 있고 사겠다는 쪽이 없었다. 값이 나쁜 게 아니라 값이 없었다. 그는 브로커 두 곳에 전화를 걸었고, 두 곳 다 같은 말을 했다.

"오늘은 안 돕니다."

돈은 어디론가는 갔다. 독일 국채 금리가 내려갔고, 스위스 프랑이 올라갔고, 금이 올라갔다. 세상의 돈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무서워하면 한군데로 모인다.

오후에 그는 자기 모델을 돌렸다. 오류가 떴다. 유가 입력값이 허용 범위를 넘었다는 것이었다. 상한이 배럴당 150으로 잡혀 있었다. 그는 코드에서 그 숫자를 찾아 250으로 고치고, 저장하고, 다시 돌렸다.

모델은 돌아갔다. 나온 숫자를 그는 믿지 않았다.

그는 프로그램을 껐다가 다시 켰다. 같은 숫자가 나왔다. 그것을 보고서에 옮기면서 각주를 하나 달았다. 상한값을 임의로 수정하였음. 그리고 날짜를 적었다.

회의에서 부서장이 물었다.

"이 모델에 그쪽 변수는 어떻게 들어가 있나."

"안 들어가 있습니다."

"넣게."

"넣을 칸이 없습니다." 카이저가 말했다. "제 모델은 유가와 환율과 신용스프레드를 받습니다. 전쟁은 그 세 개를 통해서만 들어옵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면 세 개가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모델이 가정합니다."

"돌아오나?"

"모델은 그렇게 압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소피 델보가 취소해야 하는 것은 회의가 아니라 그것에 딸린 모든 것이었다.

통역 부스 배정. 스물세 개 언어. 케이터링. 오전 커피와 점심과 오후 커피. 지하 주차장 배정표. 경호 동선. 취재석. 그녀는 목록을 위에서부터 지우면서 전화를 걸었고, 케이터링 업체 사람은 세 번 되물었다.

"전부요?"

"전부요."

"이 주 전에 확정하신 건데요."

"압니다."

메일 본문을 쓰는 데 제일 오래 걸렸다. 그녀는 사유 칸을 세 번 고쳤다. 처음에는 회원국 사정을 감안하여라고 썼다. 그것을 지우고 일정 조정의 필요에 따라라고 썼다. 그것도 지우고, 결국 추후 통지 시까지 연기라고만 적었다.

각국에서 온 회신은 각기 달랐다. 어떤 대표부는 장관이 국내 비상 대응 체제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했다. 어떤 곳은 항공편이 감편되어 왕복 일정을 맞출 수 없다고 했다. 두 곳은 아무 이유도 적지 않았다.

마지막에 그녀는 회의실에 들어가 명패를 걷었다. 스물일곱 개였다. 상자에 넣으니 절반쯤 찼다. 그녀는 상자를 캐비닛 맨 위 칸에 올려놓았다.


스텔리오스는 사다리를 세우고 숫자판을 갈았다.

주유소 가격표는 아직도 손으로 타일을 끼우는 것이었다. 그는 겨울부터 이 일을 일주일에 두세 번씩 했다. 처음에는 뒤에서부터 한 자리씩 바뀌더니, 봄이 되면서 앞자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 그가 문제에 부딪힌 것은 1이 모자라서였다. 상자에 남은 타일 중에 1이 없었다. 그는 7을 뒤집어 볼까 하다가 관두고, 사무실에 들어가 옆 지점에 전화를 걸었다.

"1 좀 있냐."

"없어. 우리도 어제 다 썼어."

그는 사다리에서 내려와 담배를 피웠다. 앞 도로에는 차가 평소보다 적었다.

확전 31화 제44장 유로 — 전환컷

일곱 시에 문을 닫고 그는 걸어서 광장 쪽으로 갔다. 지하철을 타려면 그쪽을 지나가야 했다.

벽에는 겨울 내내 있던 글씨들 위에 새 글씨가 덧칠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는 그가 오늘 사다리 위에서 끼운 것과 같은 숫자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광장에 있었다. 작년 봄에도 있었고 여름에도 있었다. 그때 들고 있던 종이에는 연금과 임금과 세금이 적혀 있었다. 지금도 그 종이들이 있었고, 그 옆에 새로 만든 것이 섞여 있었다. 새것에 적힌 것은 기름값이었다. 글씨가 급하게 쓰여 아래로 흘렀다.

앉아 있는 쪽이 서 있는 쪽보다 많았다. 어떤 여자가 식초에 적신 천을 여러 장 접어 무릎에 올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 장씩 나눠 주고 있었다. 스텔리오스는 받지 않았다. 아직은 괜찮았다.

계단 입구에서 한 남자가 라디오를 켜 놓고 있었다. 아나운서가 어떤 반도의 지명을 읽고 있었는데, 스텔리오스는 그 발음을 따라 할 수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그는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밤공기에 오렌지꽃 냄새가 났고, 그 밑에 다른 것이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씻겨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의 셔츠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다.


2010년 12월 17일 ~ 2011년 3월 · 튀니지 시디부지드 / 카이로 타흐리르 / 워싱턴

하비브가 튀니스로 넘긴 것은 세 줄이었다.

시디부지드 도청 앞에서 오전에 일이 있었다는 것. 스물여섯 살 노점상이었다는 것. 그의 손수레와 저울이 그날 아침 단속에 걸려 압수되었다는 것.

그는 전화로 그것을 불러 주었다. 받아 적는 쪽에서 한 번 되물었다.

"저울이라고요?"

"저울."

"그게 왜 들어가요."

"그게 없으면 장사를 못 하니까요."

편집자는 오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 왔다. 목소리가 급했다.

"오늘은 자리가 없어. 아시아가 다 먹었어."

"몇 줄이면 됩니다."

"몇 줄도 없어. 지금 반도 이야기만 종일 나가."

세 줄은 이튿날 지역 소식란 아래쪽에 두 단으로 실렸다. 제목은 없었다.

하비브는 그날 오후에 도청 앞으로 걸어 나가 사람을 세어 보았다. 서른 몇 명이었다. 다음 날 다시 세었다. 백 명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세지 않았다.

그가 그 며칠 동안 통신사에 다시 넘긴 것은 없었다.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1월 14일 저녁에 튀니스에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편집자가 아니라 편집국장이었다.

"12월에 자네가 넘긴 거 있잖나. 그거 원문 남아 있나."

"세 줄짜리요."

"그거."

하비브는 수첩을 뒤졌다.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열두 쪽 뒤에 있었고, 그 쪽 아래에 그날 마신 커피값이 같이 적혀 있었다.

"있습니다."

"보내. 지금."

"이제는 자리가 있습니까."

전화기 저쪽이 잠깐 조용했다.

"지금은 그것밖에 없어."


타리크는 사람 사이를 지나가는 법을 광장에서 배웠다.

어깨를 옆으로 돌리고, 팔은 위로 들고,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하면 못 간다. 빵은 머리 위로 넘긴다. 물은 아래로 돌린다. 사람이 어느 정도로 빽빽해지면 발이 땅에 안 닿는 구간이 생긴다는 것도 그는 이 광장에서 처음 알았다.

찍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파는 것이 어려웠다.

인터넷이 끊긴 뒤로는 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카드를 빼서 담뱃갑에 넣고 강변 호텔 로비까지 걸어갔다. 거기 외신 사람들이 있었다.

로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카메라 가방이 몇 개 벽에 기대어 있었고, 그 옆에 삼각대가 접힌 채로 놓여 있었다.

"어제 새벽 것도 있습니다." 타리크가 말했다. "다리 쪽입니다."

기자는 노트북을 열지 않았다. 손바닥만 내밀었다.

"보여만 줘."

타리크가 휴대폰 화면을 켜서 넘겼다. 기자는 두 번 넘겨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쓸게. 근데 값은 이만큼밖에 못 줘."

타리크는 그 액수를 들었을 때 웃었다. 화를 내는 것보다 그게 빨랐다.

"지난달에는 이 세 배 줬잖습니까."

"지난달에는 데스크가 있었어." 기자가 말했다. "지금 우리 부서 사람 절반이 서울에 있고 나머지가 도쿄에 있어. 여기는 나 하나야."

호텔 앞에 위성 중계차가 두 대 서 있었다. 원래는 다섯 대가 서 있던 자리였다.

타리크는 돈을 접어 신발 안에 넣고 다시 광장 쪽으로 걸었다. 걸으면서 세어 보니, 오늘 그가 찍은 것은 여덟 시간 분량이었다.

2월 11일 저녁에 광장이 한꺼번에 소리를 냈을 때, 그는 사람들 어깨 위로 팔을 뻗어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화면은 보지 못했다. 팔이 흔들려서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절반이 하늘이었다.

그날 밤 호텔 로비에 가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프런트 직원이 말했다.

"오늘은 다들 밖에 나가 있어요."

"내일은요."

"내일은 몰라요."

'오늘은 다들 밖에 나가 있어요.'

남은 13화 · 약 45,891자 · 약 6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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