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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제6장 상황판

· 44화 중 5화 · 3,472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서울은 밤 아홉 시였다.

합참 지하에서 한지환은 세 시간째 같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연평 상공의 표시는 다 사라졌고 지상 상황만 남았다. 산불 구역이 노란 빗금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빗금이 아까보다 넓어져 있었다.

확전 5화 제6장 상황판 — 헤더컷

작전본부장이 그를 불렀다.

"미측에 우리 오후 사격 총량 통보한 거, 몇 발로 나갔나."

"백육십팔로 나갔습니다."

"북측 피해는."

"아직 없습니다. 위성은 내일 새벽에 지나갑니다."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한지환은 책상 위 전화기 쪽으로 손을 뻗었다. 집에 전화할 생각이었다. 아내가 뉴스를 봤을 것이고, 아들은 고3이라 이 시간에 학원에 있을 것이다. 별일 없다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 통화였다.

그는 수화기를 들고 첫 두 자리를 눌렀다.

그리고 화면 쪽에서 누가 그를 불렀다.


2010년 11월 23일 16시 42분 · 연평도 진지 · 마을 · 부두

소위는 내 손을 십 초쯤 봤다.

"위생병한테 가."

"괜찮습니다."

"가라니까."

"지금 위생병이 저 볼 시간이 있겠습니까."

이준하 소위는 대답을 안 하고 판때기를 옆구리에 끼웠다. 그러고는 자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나한테 내밀었다. 접힌 자국이 반듯한 걸 보니까 오늘 아침에 접은 거였다.

나는 그걸 받아서 오른손에 감았다. 매듭은 왼손하고 이로 지었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들었더니 산이 타고 있었다.


불은 위로 안 가고 옆으로 갔다.

나는 산불을 그날 처음 봤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건 위로 치솟는데 실제로는 능선을 따라 옆으로 기어간다. 기어가다가 소나무 하나를 만나면 그때만 잠깐 위로 선다. 소나무는 기름이 많아서 그렇다고 나중에 누가 그랬다.

바람이 산에서 마을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물이 없었다. 그게 제일 어이없는 부분이었다. 사방이 바단데 산에 뿌릴 물이 없었다. 바닷물은 퍼 올릴 것이 있어야 퍼 올린다. 호스가 있어야 하고 펌프가 있어야 하고 그걸 산 위까지 끌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날 그 세 가지가 다 부족했다. 소방차라고 부를 만한 게 이 섬에 몇 대나 있었겠나. 사람들이 삽을 들고 올라가서 불길 앞의 흙을 뒤집었다. 나무를 없애서 불이 못 건너오게 하는 것이다. 그게 그날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정한길이 삽질을 하다가 허리를 폈다.

"형님, 이거 하나 마납니까."

"들려."

"뭐라고예?"

"들린다고. 아까보다."

정한길이 웃었다. 이번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멀리서 나는 것처럼 들렸지만 들렸다.

그놈이 뭐라고 더 말했는데 그건 못 알아들었다.

능선 너머로 마을이 보였다. 지붕 몇 개가 아직 붙어 타고 있었다. 기와집은 연기가 희고 슬레이트는 검다. 검은 게 더 많았다.

냄새가 여러 겹이었다. 제일 위에 나무 타는 냄새가 있고, 그 밑에 플라스틱 냄새가 있고, 그 밑에 뭔지 모르겠는 게 있었다. 아무도 그게 뭐냐고 묻지 않았다.


부상자는 언덕 아래 공터로 모았다.

들것에 실려 오는 사람이 있고 부축을 받아 오는 사람이 있고 혼자 걸어와서 앉는 사람이 있었다. 앉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앉아서 자기 팔이나 다리를 들여다봤다.

위생병들이 뛰어다녔다. 뛰어다니는데 어디로 뛰는지는 아는 것 같았다.

나는 들것 뒤쪽을 두 번 잡았다.

한 번은 우리 중대 사람이 아니었다. 얼굴을 알긴 아는데 이름은 몰랐다. 그 사람이 실려 가면서 내 손목을 잡았다. 뭐라고 하려고 하는데 말이 안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손을 그냥 잡고 있었다. 공터까지 열몇 걸음이었다.

내려놓고 나서 그 사람이 내 손을 놨다.

두 번째 들것은 아무 말도 안 했다. 그쪽이 더 무거웠다.

강민수 대위가 공터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수첩을 펴 들고 앉아 있는 사람들 쪽을 보고 있었는데, 적지는 않고 그냥 들고만 있었다. 한참 그러고 있다가 위생병 하나를 불러서 뭘 물었다. 위생병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만들어 보였다. 중대장은 그제야 수첩에 뭘 적었다.

우리 중대장은 뭐가 잘못되면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적는 사람이다. 그날은 적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상이 여섯이고 경상이 열이라는 말을 저녁에 들었다. 민간인도 몇 있다고 했다. 그 숫자를 누가 세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누군가는 세고 있었을 것이다.

헬기가 왔다.

나는 그게 오는 걸 소리로 안 게 아니라 흙으로 알았다. 공터 흙이 갑자기 옆으로 눕고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웅크렸다. 모포가 뒤집혀서 날아갔다. 그다음에야 소리가 왔다. 소리라기보다 가슴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들것 두 개가 올라가고 문이 닫혔다. 뜨는 건 금방이었다.

배승기가 그걸 보면서 서 있길래 내가 어깨를 밀었다.

"가서 물 마셔."

"예."

"승기야."

"예."

"너 지금 손 떨고 있는 거 아냐?"

그 애가 자기 손을 봤다. 그러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일곱 시가 넘어서 부두 쪽으로 내려갔다.

짐을 옮기라고 했다. 주민들을 인천으로 내보낸다는데 배편이 언제 되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몰랐다. 사람들이 부두에 나와 있었다. 보따리를 든 사람, 아무것도 안 든 사람, 개를 안고 있는 사람.

부두 끝에 더플백이 몇 개 서 있었다.

세워 놓은 그대로였다. 아침에 누가 거기 놔둔 것처럼 반듯하게 서 있었고, 하나는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그 위에 흙하고 재가 앉아 있었다.

우리 중대 애 하나가 그걸 보고 물었다.

"저건 누구 겁니까."

확전 5화 제6장 상황판 — 전환컷

"휴가 나가는 애들 거겠지."

"배 안 떴는데."

"안 떴지."

우리는 그걸 한쪽으로 옮겨 세웠다. 옮기면서 이름표를 안 봤다. 나는 그때 이름표를 볼 생각을 안 했다. 짐은 짐이고 옮기라면 옮기는 것이었다.

나중에 나는 그 순간을 여러 번 다시 봤다. 그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노인 하나가 내 앞을 막았다.

작업복에 장화 차림이었고 손등이 굵었다. 나한테 뭐라고 물었다. 입술이 움직이는 건 보이는데 소리가 안 왔다.

"예?"

노인이 다시 말했다. 이번엔 크게 말한 것 같은데 그래도 안 왔다. 나는 귀를 가리켰다.

"안 들립니다. 죄송합니다."

노인이 잠깐 나를 봤다. 그러고는 한 손을 들어서 마을 쪽을 가리켰다. 아래쪽이었다. 그리고 그 손으로 자기 얼굴 앞을 두어 번 문질렀다.

무슨 시늉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면서 끄덕이는 게 그날 내가 제일 많이 한 짓이었다.

노인은 더 안 물었다. 물러서서 자기 갈 길을 갔다. 장화가 콘크리트에서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들렸다.


여덟 시 반쯤 포상으로 올라왔다.

김선우 중사가 3번포 옆에 서 있었다. 담배를 물고 있는데 불은 안 붙어 있었다.

"인원."

"예."

"세."

나는 셌다.

하동찬. 정한길. 배승기. 윤지호. 그리고 나.

다섯이었다.

하동찬은 포탑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고 있었다. 정한길은 물통을 들고 있었다. 배승기는 벽에 기대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었고, 윤지호는 오른쪽 귀에 거즈를 붙이고 서 있었다. 거즈가 비뚤어져 있었다.

"다섯입니다."

"다시 세."

"…다섯입니다."

중사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빨고 나서 나를 안 보고 말했다.

"어. 알았어."

그러고는 갔다.

나는 포신 옆에 손을 짚었다. 아직 미지근했다. 쇠가 이렇게 오래 온기를 갖고 있는 줄 몰랐다.

짚은 손이 이상했다.

손바닥은 가만있는데 손가락 끝이 저 혼자 떨렸다. 아까 노인 앞에서도 이랬나. 들것 잡을 때도 이랬나. 나는 그걸 몰랐다.

한참을 보다가 손을 떼서 주머니에 넣었다.


2010년 11월 23일 21시 00분 · 연평도 포7중대 진지 · 벙커

벙커는 원래 스무 명이 자는 데가 아니다.

그날 밤에는 서른 몇이 들어갔다. 야전침대를 붙여 놓고 그 위에 두 명씩 걸터앉았고, 바닥에 앉은 사람이 그보다 많았다. 문을 닫으면 공기가 금방 탁해져서 누가 자꾸 조금 열었다. 열면 재 냄새가 들어왔다.

라디오는 켜져 있었다.

취사장에서 들고 온 거였다. 안테나를 뽑아서 벽 쪽으로 눕혀 놓으면 그나마 잡혔다. 뉴스가 나오는데 나한테는 절반이 안 왔다. 사람 목소리는 물속처럼 들리고 중간중간 낱말만 튀어나왔다.

연평. 포격. 전사. 정부.

사람들은 각자 다르게 견뎠다.

하동찬은 잤다. 진짜로 잤다. 코를 골았고 누가 발로 밀어도 안 깼다. 정한길은 반대였다. 계속 말을 했다. 아무한테나 말을 걸었고 대꾸를 안 해도 혼자 계속했다. 부산 놈은 원래 그렇지만 그날은 더했다.

배승기는 자기 관물에서 편지지를 꺼내 놓고 아무것도 안 썼다. 한 시간쯤 그러고 있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나는 반합을 닦았다. 닦을 게 없는데 닦았다.

"뭐래."

내가 물으니까 하동찬이 얼굴을 내 쪽으로 돌렸다.

"두 명이랍니다."

"두 명."

"전사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명이 누군지는 안 나왔다. 나오지 않는 게 당연한 시각이었는데도 나는 계속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대통령이 뭐라고 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다음에 다른 얘기가 나왔는데 앞엣것하고 뒤엣것이 좀 다르게 들렸다. 그때는 내 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정한길이 휴대폰을 들고 벙커 밖으로 나갔다가 이 분 만에 들어왔다.

"안 됩니다."

"뭐가."

"신호가 갔다 안 갔다 합니다."

몇 명이 밖으로 나가서 팔을 올렸다 내렸다 했다. 언덕 위쪽이 좀 낫다고 누가 그랬다. 그러니까 또 몇 명이 그리로 갔다.

우리 소대 부사관 하나는 번호를 다 누르고 통화 버튼을 안 눌렀다. 한참 화면을 보고 있다가 닫았다.

"안 겁니까."

"어."

"왜요."

"자고 있을 거야."

아홉 시 반이었다.

김선우 중사도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켜서 뭘 잠깐 보고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그게 다였다. 뭘 봤는지는 안 물어봤다.

김선우 중사도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켜서 뭘 잠깐 보고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그게 다였다. 뭘 봤는지는 안 물어봤다.

남은 39화 · 약 137,683자 · 약 3시간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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