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5부 임계(臨界)
25화제35장 진격의 나날
같은 날 오후에 남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북쪽으로 갔으니까 그 사람들과 계속 마주쳤다. 짐을 이고 지고 걸었고, 소달구지도 있었고, 자전거에 이불을 묶은 사람도 있었다. 아무도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쳐다보지 않는 게 아니라 쳐다보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걸었다.

여자 하나가 애를 업고 있었다. 애는 자고 있었고 머리가 뒤로 넘어가 있었다. 지호가 궤도에서 뛰어내려서 건빵 봉지를 내밀었다.
여자가 멈췄다. 받지도 않고 안 받지도 않고 그냥 서 있었다.
"드시라고요."
지호가 봉지를 한 번 더 밀었다. 여자가 그걸 받아서 애 엉덩이 밑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갔다.
"어디까지 가는지 물어볼까예."
한길이 그랬다.
"묻지 마라."
"와예."
"모를 거다."
한길은 그래도 궁금해했다. 그놈은 궁금한 걸 못 참는다.
"저 사람들 남쪽 내려가면 우째 됩니까. 우리 쪽으로 오는 거 아입니까."
"오겠지."
"오면 어디서 잡니까."
"몰라."
"우리도 작년에 우리 식구들 어디서 잤는지 모르는데예."
한길은 그 말을 하고 나서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 얼굴이 됐다. 그러고는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놈이 한 시간 넘게 조용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나흘 동안 사격 임무는 두 번 왔고 진지는 일곱 번 옮겼다.
일곱 번이면 방렬을 일곱 번 했다는 뜻이고, 그때마다 수포판을 놓고 방위각을 맞추고 각목을 깔았다는 뜻이다. 쏘는 시간은 다 합쳐서 십 분이 안 됐다. 우리는 대포를 끌고 다니는 부대가 아니라 대포를 이사시키는 부대 같았다.
지호가 사흘째에 물었다.
"오 병장님, 우리 이거 언제까지 갑니까."
"몰라."
"평양까지 갑니까."
"몰라."
"저는 갔으면 좋겠습니다."
"왜."
지호가 잠깐 생각했다. 그 애는 생각할 때 아랫입술을 안으로 넣는다.
"가야 끝나는 거 아닙니까."
한길이 궤도 위에서 그 말을 받았다.
"야, 끝나는 거는 위에서 정하는 기다. 우리가 어디까지 가고 마고 하고는 상관이 없어."
"그럼 뭐 하러 갑니까."
"가라니까 가지."
8일 저녁에 이 소위가 지도를 들고 왔다.
축소한 지도를 판때기 위에 펴고 각목으로 눌렀다. 등화관제라 손전등에 빨간 셀로판을 씌워서 비췄다. 그 불빛 아래서 등고선이 다 같은 색이 됐다.
"여기가 우리 자립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사 킬로."
그 사람 손가락이 길을 따라 올라갔다. 길이 두 산 사이로 들어가는 데서 멈췄다.
"여기가 좁습니다. 양쪽이 다 산이고, 도로가 하나예요. 하나뿐입니다."
"거기로 들어갑니까."
"미군 대대가 아침에 들어갑니다. 우리 기갑여단 선두도 같이."
"돌아가는 길은 없습니까."
"있는데 이틀 더 걸립니다."
강 대위가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다가 말했다.
"병목이지."
"예. 병목입니다."
이 소위는 그 말을 자기가 먼저 안 했다. 나는 그걸 눈치챘다. 그 사람은 규정에 있는 말만 쓰는 사람인데, 규정에 없는 말은 남이 하면 그때 따라 쓴다.
우리는 그날 밤 그 자리에 방렬했다. 사 킬로 뒤였다. 포신을 북쪽으로 눕히고 사격제원을 세 개 받아 두었다. 세 개 다 그 골짜기 안쪽 좌표였다.
김 중사님이 앞으로 간다고 한 건 밤 열 시쯤이었다.
사격지휘소가 앞으로 나가고 그 사람이 거기 붙는다고 했다. 나는 그때 신관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태석아."
"예."
"내일 아침에 좌표 받으면 두 번 복창해라."
"강 대위님이 세 번 하라 그랬습니다."
"그럼 세 번 해."

그 사람이 차에 오르려다 돌아섰다.
"내 라이터."
"예?"
"어제 니 줬잖아."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있었다. 초록색 일회용 라이터였고 밑에 반쯤 남아 있었다.
"여깄습니다."
내밀었는데 그 사람이 안 받았다.
"됐다. 갖고 있어."
"예?"
"이따 와서 받을게. 어차피 니가 담배 더 피우잖아."
"안 피웁니다."
"피워, 인마."
그 사람은 웃지 않고 그렇게 말하고 차에 올랐다. 문을 닫는 소리가 났고 차가 출발했다. 뒷바퀴가 진창에서 한 번 헛돌았다가 잡혔다.
차는 도로로 나가서 북쪽으로 갔다. 뒤에 흙먼지가 났다. 등화관제 중이라 미등도 없어서, 흙먼지만 보이고 차는 안 보였다.
나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도로 넣고 신관 상자를 들었다. 상자를 들고 서서 그쪽을 봤다. 흙먼지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2011년 3월 5일 ~ 3월 9일 새벽 · 평양 국방위원회 / 황해북도 은파 폐광
명령서는 두 문장이었다.
정만복 소장은 그것을 세 번 읽었다. 세 번을 읽어도 두 문장이었다. 첫 문장은 장치 한 기를 지정된 위치로 이동시키라는 것이었고, 둘째 문장은 이동과 설치의 전 과정을 총참모부 작전국이 직접 관장한다는 것이었다. 용도에 관한 말은 없었다. 시각에 관한 말도 없었다.
그는 군 생활 삼십 년 동안 이보다 짧은 명령서를 본 적이 없었다. 짧은 명령서는 두 가지 중 하나다. 아주 사소하거나, 문서로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이 있거나.
책상 저쪽에서 총참모장이 말했다.
"동무는 이 문건에 손을 대지 마시오. 손댈 것이 없소."
"알겠습니다."
"질문은."
정만복은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이 방에서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것을 물었다.
"운반 부대는 어느 부대를 씁니까."
"동무가 정하시오. 작은 부대로."
복도로 나와서 정만복은 자기가 하지 않은 질문을 다시 생각했다. 그것은 이런 질문이었다. 그다음에는 무엇이 옵니까.
그는 그 질문을 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답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답을 아는 사람이 방에 없다는 것을 방 안의 모두가 알고 있는데, 그 사실을 소리 내어 확인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오래 못 산다. 오래 못 사는 것 자체는 그가 여러 번 각오해 본 일이지만, 그가 각오하지 못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가 없어져도 명령서는 그대로 나간다는 것.
논의라고 할 만한 것은 그 전날 있었다.
국방위원장은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그날은 사십 분쯤 앉아 있었고 말은 두 번 했다. 오른손으로 탁자를 짚고 왼팔은 무릎 위에 놓은 채였다.
먼저 남쪽 축선의 지도가 걸렸다. 사리원 남방에 붉은 화살표가 셋 있었고 셋 다 북쪽을 향했다. 그중 하나는 이미 사리원 시가지 남단에 걸쳐 있었다.
"평양까지 며칠이오."
작전국장이 답했다.
"현재 속도면 열흘. 저항선이 서면 스무 날."
"저항선이 서겠소?"
"…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대장 계급장을 단 젊은 쪽이 말했다.
"수도를 겨눌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땅에서 막으면 됩니다."
방이 조용해졌다. 정만복은 그 조용함의 성질을 나중에 여러 번 되짚어 보게 된다. 그것은 놀라서 조용해진 것이 아니었다. 이미 나와 있던 문장이 마침내 소리가 되어 나왔을 때 방이 내는 소리였다.
"서울에 떨구면 우리가 끝납니다. 그건 우리도 압니다. 그런데 우리 땅에서 침략군을 막는 것은 다릅니다. 그건 방어입니다. 세상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 우리는 그렇게 부르면 됩니다."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사람이 그 방에 없었기 때문이다. 반박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두 명이었고, 한 명은 그 말을 한 사람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왼팔을 무릎에 놓고 앉아 있었다.
정만복은 그 문장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보았다. 그것은 사실이어서 힘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모두에게 각자 다른 것을 준다는 데서 힘이 나왔다. 군부에게는 방어라는 말을 준다. 젊은 쪽에게는 결단이라는 말을 준다. 남은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이 결정에 찬성한 것이 아니라 방어에 찬성했을 뿐이라는, 나중에 쓸 수 있는 말을 준다.
그는 그 문장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어디가 틀렸는지는 말할 수 없었다. 자기 땅에 떨구는 것과 남의 땅에 떨구는 것을 세상이 다르게 볼 것인가 — 그는 그 질문의 답을 몰랐고, 답을 아는 사람도 못 봤다. 다만 그는 이런 것을 알았다. 이 방이 그 답을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고, 그 방법을 쓰고 나면 답이 무엇이든 되돌릴 수 없다.
국방위원장의 두 번째 말은 이것이었다.
"바람은."
기상 담당이 나와서 말했다.
"이 철에는 서북에서 붑니다. 떨어지는 것은 남동으로 갑니다."
"남동이 어디요."
"개성. 그 아래로는 남조선입니다."
국방위원장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것이 그날 회의의 끝이었다.
트럭은 세 대였다.
가운데 한 대에 물건이 실렸고 앞뒤 두 대는 비었다. 호송 지휘관은 서른아홉 살의 상좌였고 스무 해 동안 미사일 부대에 있었던 사람인데, 이번 화물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다. 그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요구하지 않는 것이 그가 스무 해 동안 살아남은 방식이었다.
밤에만 달렸다. 낮에는 나무 밑에 세우고 위장망을 덮었다. 사흘 걸릴 거리를 사흘 반에 갔다. 노면이 얼었다 녹았다 해서 진창 구간에서 두 번 빠졌고, 두 번 다 사람이 밀어서 뺐다. 화물차를 미는 동안 아무도 그 화물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계속 소리가 났다. 높은 데서 나는 소리였고 그 소리는 그들을 찾고 있지 않았다. 상좌는 그것을 알았다. 찾고 있었으면 벌써 왔을 것이다.
둘째 날 밤 검문소에서 지방 보위 요원 하나가 화물칸을 보겠다고 했다. 상좌는 통행 문건을 내밀었다. 요원이 그것을 손전등으로 비춰 읽고, 한 번 더 읽고, 두 손으로 돌려주었다. 돌려주는 손이 떨렸다. 상좌는 그 떨림이 자기 문건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끝내 판단하지 못했다.
둘째 날 밤 검문소에서 지방 보위 요원 하나가 화물칸을 보겠다고 했다. 상좌는 통행 문건을 내밀었다. 요원이 그것을 손전등으로 비춰 읽고, 한 번 더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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