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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제51장 평양에 들어간 날

· 44화 중 36화 · 3,716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딩자오밍은 자기 방에서 문서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한 장은 베이징에서 왔다. 문장이 짧고 명사가 많았다. 민감 시설의 확보. 사회 질서의 유지. 필요한 모든 조치.

확전 36화 제51장 평양에 들어간 날 — 헤더컷

다른 한 장은 그가 부르는 대로 참모가 받아 적는 중이었다.

"첫째," 그가 말했다. "간판을 내리지 마라. 어느 건물이든 그 나라 간판이 붙어 있으면 그대로 둔다. 둘째, 우리 기를 올리지 마라. 마당에도 올리지 마라. 셋째, 저쪽 군대가 서 있으면 그 옆에 서라. 앞에 서지 마라."

참모가 펜을 멈췄다.

"넷째는 그 집 얘기입니다."

"넷째." 딩자오밍이 창 쪽을 봤다. "그 집 앞에 우리 초병을 세운다. 문서에는 경호라고 쓴다."

"경호입니까."

"경호라고 쓰라고 했다."

참모가 적었다. 딩자오밍은 그가 다 적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른 종이를 집었다.

"그거 말고. 오늘 아침에 올라온 거."

"양곡 소요량입니다."

"숫자 다시 읽어."

참모가 읽었다. 딩자오밍은 그것을 한 번 더 읽게 했다.

"이건 한 달치인가 일 년치인가."

"한 달입니다, 부군장 동지."

"베이징에 보내."

"뭐라고 붙일까요."

"아무것도 붙이지 마." 딩자오밍이 말했다. "숫자만 보내."


4월 11일, 닝볜.

조선말로 영변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왕레이가 그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그날 아침이었고, 그 전까지 그 지명은 임무 문서에 목적지 세 곳 중 하나로만 적혀 있었다.

건물이 길었다. 왕레이는 벽을 따라 걸으면서 걸음을 셌다. 예순두 걸음이었다. 그의 걸음으로 예순둘이면 오십 미터쯤 된다고 그는 어림했다. 폭은 짧았다. 열 걸음 조금 넘었다.

안쪽에 은색 통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통 사이가 좁아서 두 사람이 나란히 못 지나갔다. 통은 사람 키보다 조금 컸고 위아래로 관이 물려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관이 통 위로 들어가 있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지 오래된 냄새가 났다.

이런 방이 여섯이라고 누가 말했다. 왕레이는 두 번째 방까지 들어가 보고 나왔다. 세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세는 사람은 따로 왔고 그 사람들은 군복이 아니었다.

밖에는 둥근 콘크리트 통이 서 있었다. 위가 뚫려 있고 안에 비계가 남아 있었다. 짓다 만 것이었다.

"손대지 마라." 상위가 말했다. "세고 적기만 해라."

마당 끝에 트럭 세 대가 서 있었다.

왕레이는 그 앞을 두 번 지나갔다. 두 번째에 걸음이 멎었다.

가운데 화물차 조수석 문에 흰 페인트로 숫자가 적혀 있었다. 세 자리였다. 붓으로 대충 그린 것이라 4의 아래 획이 흘러내려 있었다.

417.

그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수첩은 겨울에 받은 것이고 표지가 젖었다가 말라서 우글거렸다. 3월 30일 자 쪽에 그날 새벽 도로에서 세운 차량 번호가 세 줄 적혀 있었다. 그날 그가 한 일은 그것이었다. 서기니까 적었다.

가운데 줄에 417이 있었다.

그는 새 쪽을 폈다. 4월 11일이라고 쓰고, 소재지를 쓰고, 그 옆에 차량 번호를 적었다.

417.

종이가 눅눅해서 붓펜이 미끄러졌다. 획 끝이 번졌다. 그는 손등으로 종이를 한 번 눌러 보았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눌렀다. 종이는 눌린 자리가 도로 부풀지 않았다.


2011년 8월 20일 ~ 9월 18일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 서울

탁자는 가운데가 닳아 있었다.

푸른 천이 덮인 긴 탁자였고,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마이크선이 지나갔다. 선은 원래 선을 표시하려고 놓은 것이 아니었는데 오십팔 년 동안 선 노릇을 했다. 천이 그 자리만 색이 옅었다.

8월 20일 열 시. 예비접촉.

먼저 걸린 것은 의자였다.

유엔사 쪽 명단에 한국군 장교 넷이 들어 있었다. 북측은 그 넷을 뺀 명단으로 회담을 하자고 했다. 근거는 오십팔 년 전 문서였다. 그 문서에 한국은 서명하지 않았다.

"저쪽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유엔사 실무진의 미군 중령이 말했다. "문서상으로는요."

"문서상으로는 저쪽 나라 절반이 지금 우리 관할입니다." 한지환이 말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제이슨 박이 그것을 옮겼다. 옮기면서 '관할'이라는 단어에서 반 박자 멈췄다.

의자를 여덟 개 놓을지 열 개 놓을지를 정하는 데 한 시간 사십 분이 걸렸다. 그동안 아무도 앉지 않았다. 서서 이야기했고, 서서 종이를 넘겼고, 두 번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창밖으로 초소가 보였고 초소 위에 앉은 새는 두 번 다 같은 자리에 있었다.

옆방 문이 한 번 열렸다. 중국 옵서버가 물을 가지러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그는 회담장에 앉지 않았다. 앉지 않는데도 그 방에 있는 모두가 한 번씩 그 문 쪽을 봤다.

세 시간이 지났다. 결정된 것은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캘러헌 대령이 말했다.

"오늘 뭘 한 겁니까, 중령님."

"의자를 셌습니다." 한지환이 말했다.

"내일도 셉니까."

"내일은 탁자를 잴 겁니다."

캘러헌이 웃지 않았다. 웃을 자리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것을 한지환은 뒤늦게 알았다. 그는 창밖을 봤다. 밭이 있었고 밭 가운데에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구역 안에는 마을이 하나 있고 거기 사람이 산다는 것을 그는 서류로만 알고 있었다.


확전 36화 제51장 평양에 들어간 날 — 전환컷

두 번째 회담부터 문안이 나왔다.

한 문장이었다. 그 한 문장을 놓고 아홉 번 중 다섯 번을 썼다.

"쌍방은 …을 정지한다"인지 "쌍방은 …을 중지한다"인지가 먼저였다.

북측이 '정지'를 밀었다. 정지는 상태다. 멈춰 있는 것이고, 멈춰 있는 것에는 원래대로라는 말이 붙기 쉽다. 유엔사 쪽 법무참모는 '중지'를 밀었다. 중지는 하던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만둔 주체가 있다는 뜻이고, 주체가 있으면 재개도 있다.

한지환은 그 논쟁을 사흘 들었다. 사흘째 밤에 그는 숙소에서 두 단어를 종이에 나란히 써 놓고 오래 봤다. 어느 쪽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다음은 조사였다.

'적대행위를 정지한다'와 '적대행위에 대한 일체의 행위를 정지한다'는 다르다. 앞의 것은 하지 않겠다는 말이고 뒤의 것은 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해서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뒤의 것을 쓰면 정찰이 걸린다. 정찰이 걸리면 미군이 안 받는다.

닷새째 오후에 그들은 '을'을 '에 대하여'로 바꿨다가 다음 날 도로 '을'로 되돌렸다.

"이거 우리가 지금 뭘 하는 겁니까." 젊은 소령이 복도에서 담배를 물고 물었다.

"조사를 고치고 있습니다." 한지환이 말했다.

"그게 총 쏘는 거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없으면 좋겠는데, 상관있습니다."

서울에서는 김관진이 보고서를 읽었다. 그는 문안 대조표를 두 번 넘기고 나서 딱 한 가지를 물었다.

"저쪽 대표가 서명할 권한이 있습니까."

아무도 즉답하지 못했다.

"그걸 먼저 확인하시오."

확인에는 엿새가 걸렸다.

일곱 번째 회담에서 북측 수석대표가 문서 한 장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유엔사 쪽에서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서울로 보냈고, 서울에서 그것을 두 시간 들여다봤다.

인장은 평양의 것이 맞았다. 발급 번호도 형식에 맞았다. 다만 그 문서가 평양의 어느 방을 지나서 여기까지 왔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실한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방들 위에 지금 무엇이 얹혀 있는지를 이쪽은 대강 알고 있었고, 저쪽 수석대표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은 문서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권한 있는 걸로 봅니다." 유엔사 법무참모가 말했다. "권한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우리가 물을 일이 아니고요."


여섯 번째 회담에서 제이슨 박은 한 문장을 옮기지 않았다.

휴회 중이었다. 유엔사 쪽 사람들만 남아 있는 줄 알고 캘러헌이 말했다. 실제로는 북측 연락장교 하나가 문 안쪽에 서 있었다. 제이슨 박은 그것을 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지금 멈추는 건 우리가 이겨서가 아니에요." 캘러헌이 말했다. "포탄이 떨어져서 멈추는 거지. 우리도 마찬가지고. 그 얘길 그냥 해 버리면 이거 사흘이면 끝납니다."

"대령님."

"박 대위, 옮겨요. 나 저 사람 눈 보면서 얘기하고 싶어요."

제이슨 박은 문 쪽으로 반쯤 몸을 돌렸다. 북측 연락장교는 서류를 들고 서 있었고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보고 있지 않은 자세로 서 있는 사람의 어깨가 어떤 모양인지 그는 알았다.

그가 조선말로 말했다.

"대령께서는 오늘 오후 일정에 대해 확인을 요청하셨습니다."

연락장교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시계를 봤다. 그리고 나갔다.

캘러헌이 그를 봤다.

"그거 뭐라고 한 겁니까."

"일정 확인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런 말 했어요?"

"안 하셨습니다."

캘러헌은 잠깐 그를 보다가 종이컵을 집어 들었다. 그 뒤로 그 얘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회의록에도 그 문장은 없다. 제이슨 박은 그날 저녁 숙소에서 자기가 옮기지 않은 그 두 문장을 영어로 한 번, 조선말로 한 번 속으로 되뇌었다. 두 번 다 맞는 말이었다.


9월 18일 오후에 시각이 정해졌다.

문안은 사흘 전에 끝나 있었다. 남은 것은 언제부터냐 하나였다.

북측은 9월 20일 00시를 냈다. 자정은 날이 바뀌는 시각이라 어느 날의 일인지 나중에 다투기 좋다는 것을 양쪽 다 알았다. 유엔사는 9월 19일 일출을 냈고, 그건 위도에 따라 다르다는 이유로 깨졌다.

그다음에 나온 것이 09시였다.

09시는 정각이라 좋지 않다고 누가 말했다. 정각은 시계가 틀린 부대에서 사고가 난다고 했다. 전선의 시계가 다 맞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09시 15분이 나왔고, 20분이 나왔고, 그러다가 실무진 중 하나가 말했다.

"19일이니까 09시 19분으로 하시지요."

방이 조용해졌다. 아무도 그 말이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북측이 십 분 자리를 비웠다가 들어와서 동의했다. 중국 옵서버는 그 자리에 없었고, 그날 저녁 옆방에서 그 시각을 통보받고 두 번 확인했다.

한지환은 수첩을 꺼냈다.

9월 19일 09시 19분. 그렇게 적었다. 적고 나서 앞장을 넘기지 않았다. 그 수첩 앞쪽에는 8월 12일에 적어 놓은 것이 있고, 그는 그 장을 그날 이후로 펴지 않았다. 서울 사무실 결재함에 8월 손실 보고가 그대로 들어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그것도 열지 않고 판문점에 왔다.

옆에서 젊은 소령이 물었다.

"중령님, 왜 하필 그 시각입니까."

한지환은 수첩을 닫았다.

"9월 19일이니까."

'9월 19일이니까.'

남은 8화 · 약 27,551자 · 약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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