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3부 서울
15화제21장 김포
12월 4일 아침에 보충병이 왔다.
포대 전체로는 열 몇 명이었고 3번포로는 하나였다. 그래도 자기소개는 다 같이 시켰다. 이준하 소위가 진지 뒤 공터에 셋을 세워 놓았다.

"이병 서준혁. 스물셋입니다. 대전입니다."
"이병 임세영. 스물둘입니다. 광주에서 왔습니다."
세 번째가 한 발 나섰다.
"일병 조성민. 스물하납니다. 경기도 안산입니다."
스물하나.
배승기가 스물하나였다. 정선 애였고 목소리가 작아서 복창할 때마다 김 중사님한테 다시 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인천 구민회관에서 명단을 돌릴 때 그 이름 옆 칸이 비어 있었고, 한길이가 볼펜을 든 채로 손을 멈췄었다.
나는 조성민을 봤다. 얼굴이 안 닮았다. 닮을 이유도 없었다.
"3번포." 소위가 말했다. "조성민 일병."
"예."
"오태석 병장한테 붙어라."
지호가 조성민을 데리고 갔다. 지호는 자대 온 지 사십 일이었는데 이제 쉰 날이 넘었고 밑에 사람이 생겼다.
그날 오후에 지호가 조성민한테 탄약 상자 여는 법을 가르치는 걸 봤다. 잘못 가르치고 있었다. 클립을 손톱으로 젖히면 안 되고 공구로 젖혀야 하는데, 지호도 손톱으로 배웠다. 나는 그걸 가르친 게 배승기였다는 걸 기억해 냈다.
"손톱 쓰지 마라."
"아, 예."
"뜯긴다."
"예."
지호가 조성민한테 다시 말했다. "손톱 쓰지 마라. 뜯긴다." 조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 목소리가 아까보다 반 톤 낮았다.
저녁에 한길이가 나한테 왔다.
"행님, 지호 저거 요새 말이 많아졌다 아입니까."
"그래."
"어제는 지 침낭도 안 갠 놈이 남 침낭 개는 거 갖고 뭐라 캅디다."
"놔둬."
"놔두면예?"
"그러면 저도 갠다."
한길이가 잠깐 생각하더니 그렇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십 분쯤 더 떠들다 갔다.
12월 5일 새벽에 첫 사격을 했다.
포상은 밭이었다. 얼어서 딴딴했고 그래서 오히려 방렬이 쉬웠다. 부무장 걸고, 수평 잡고, 방위각 잡고, 유선 연결하고. 손이 알아서 했다. 새 포라도 손잡이 위치는 같다.
제원이 내려왔다. 김 중사님 목소리였다. 무전기 스피커가 새것이라 지지직거리지 않았고, 그래서 그 사람 목소리가 이상하게 가까이 들렸다.
방위각, 사각, 장약. 나는 복창했다. 지호가 받아 복창했다.
북쪽이었다.
연평도에서는 그날 오전 내내 서남쪽으로 쐈었다. 서남쪽은 아무것도 없는 쪽이다. 바다밖에 없다. 나는 그때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여기서는 포구가 북쪽을 보고 있었다. 강 건너다. 강 건너에 뭐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좌표는 숫자로 온다. 숫자에는 그 자리에 뭐가 있는지가 안 적혀 있다.
여섯 발 나갔다.
첫 발에 조성민이 주저앉았다. 귀를 두 손으로 막고 앉아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그놈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일으켜 놓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괜찮다고. 소리로 말해 봐야 안 들린다.
둘째 발부터는 서 있었다. 다섯째 발에는 손이 움직였다.
쏘고 나서 나는 포구 앞을 봤다. 안개가 강 위에 깔려 있었고 건너편은 안 보였다. 소리도 안 돌아왔다. 너무 멀거나, 아니면 왼쪽 귀 때문이거나.
강민수 대위가 포상을 돌면서 사격일지를 확인했다. 3번포 앞에서 멈춰 서더니 발수를 손가락으로 짚어 읽었다.
"여섯."
"여섯 발입니다."
"기록해라. 앞으로는 발수를 니가 적어서 올려라."
"예."
대위는 다음 포상으로 갔다. 그 사람은 요새 말끝을 짧게 끊는다. 섬에서는 안 그랬다.
밤에는 초소를 선다.
동쪽 하늘이 밝았다. 구름 아랫면이 주황색인데 한 군데가 아니라 넓게 번져 있었다. 낮에는 안 보이고 밤에만 보인다. 첫날 밤에 나는 그게 뭔지 몰라서 한참 봤다.
둘째 날 밤부터는 안 보기로 했다.
안 보는 데도 요령이 있다. 초소에 설 때 그쪽을 등지고 서면 된다. 그런데 등지면 왼쪽 귀가 그쪽으로 간다. 왼쪽은 안 들린다. 그래서 몸을 돌려 오른쪽 귀를 그쪽에 놓게 되고, 그러면 눈이 따라간다. 나는 그걸 세 번 하고 나서 아예 앉아 버렸다.
12월 6일 밤 열두 시 교대 때 조성민이 올라왔다. 손을 비비면서 왔고 방한화 끈이 풀려 있었다.
"끈 매라."
"예."
그놈이 쭈그려 앉아 끈을 맸다. 매고 나서 일어나 동쪽을 봤다. 한참 봤다. 나는 그놈이 볼 만큼 두었다.

"반장님."
"어."
"저기가 서울입니까."
나는 초소 벽에 등을 붙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귀마개를 꺼내 그놈 손바닥에 놓았다.
"야. 그거 두 개씩 갖고 다녀라. 하나는 꼭 잃어버린다."
2010년 12월 5일 ~ 12월 8일 · 서울 → 대전 → 부산
사장이 셔터를 반쯤 내리고 그 아래에 앉아 있었다.
사무실 안은 어두웠다. 전기가 아침부터 안 들어왔고 형광등은 꺼진 채였다. 책상 여섯 개는 그대로였고 컴퓨터도 그대로 있었다. 달라진 것은 창문에 붙인 청테이프뿐이었다. 남기석이 사흘 전에 혼자 붙인 것으로, 십자로 붙이지 않고 대각선으로 붙여 놓아서 격자가 비뚤었다.
"통장은 챙겼어?"
"예."
"잔고는 못 봤지."
"은행이 안 열었습니다."
남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서랍에서 봉투를 꺼내 책상 위로 밀었다. 두꺼웠다. 은행이 안 열렸는데 어디서 났는지 지원은 묻지 않았다.
"12월 것까지 넣었어. 미연이 것도 있고."
"사장님은요."
"나는 여기 있어야지. 상하이에서 그거 확인 서명한 거 아직 살아 있어. 물건이 부산에 있단 말이야."
지원은 결재판을 집어 그 안의 견적서를 봤다. 열이틀 전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도로 끼우고, 대신 이면지 한 장을 꺼내 볼펜으로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금고 열쇠 위치. 세금계산서 철이 있는 칸. 팩스 용지 여분. 거래처 도장이 든 상자. 다 쓰고 나서 종이를 사장 책상 유리 밑에 밀어 넣었다.
"이거 뭐야."
"제가 없을 때 필요하실 것들입니다."
남기석은 안경을 올려 쓰고 유리 밑을 들여다봤다. 한참 봤다. 그러고는 탕비실로 들어가더니 원두 봉지를 들고 나왔다. 뜯지 않은 것이었다.
"이거 가져가."
"물이 없는데요."
"그러니까 가져가라고."
서울역 광장에는 줄이 없었다.
줄 대신 무리가 있었다. 매표소 셔터는 내려가 있고 그 앞에 접이식 책상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완장을 찬 사람 넷이 앉아서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 뒤에 경찰이 서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책상 앞에 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지원은 삼십 분 동안 들었다.
여기 애가 셋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여든셋이에요. 저는 투석을 해야 합니다. 남편이 대구에 있는데 지금 병원에 있어요. 저기 저 사람은 아까 왔었는데 또 왔습니다.
마지막 말을 한 남자에게 완장 찬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내렸다.
열차는 하루 네 편이었다. 오후 편은 열한 시에 마감되었고, 마감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사람들은 열두 시 반까지 서 있었다.
미연이 지원의 팔을 잡았다.
"언니, 저기 버스 있대요. 영등포에서."
"확실해?"
"아니요."
"가자."
박순임은 밥솥을 두고 오지 않았다. 열이틀째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코드가 몸통에 감겨 있고 그 위에 노끈이 한 바퀴 돌아 있었다. 지원은 그것을 두 번 말렸고 두 번 다 실패했다.
경부고속도로 갓길로 사람이 걸었다.
차는 옆에서 같이 갔다. 사람 걷는 속도였다. 어떤 구간에서는 사람이 빨랐다. 승용차 창문이 내려가고 안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면 그 연기가 걷는 사람 얼굴로 왔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화장실이 없었다.
휴게소는 두 곳이 닫혀 있었다. 세 번째 휴게소는 열려 있었는데 화장실 물이 안 내려갔다. 사람들이 그래도 줄을 섰다. 여자들은 방음벽 뒤로 갔다. 세 사람이 가면 둘이 서서 등을 돌리고 우산을 폈다. 우산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불을 들어 줬다. 그 이불은 차 지붕에서 내린 것이었고, 다 끝나면 다시 지붕에 올라갔다.
지원은 걷다가 이상한 것들을 봤다.
화분을 안고 가는 남자가 있었다. 잎이 넓은 것이었고 그는 그것을 아기처럼 안고 있었다. 세탁소 비닐이 씌워진 양복을 어깨에 걸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가족은 갓길에 멈춰 서서 쓰레기를 봉지에 모아 묶은 다음, 그것을 표지판 아래 가지런히 놓고 다시 걸었다. 치우러 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태우는 잘 걸었다. 일곱 살이 걸을 수 있는 거리가 그렇게 긴 줄 지원은 몰랐다. 대신 아이는 자꾸 멈춰 서서 뒤를 봤다.
지원은 전봇대를 셌다. 오십까지 세면 쉬자고 혼자 정해 놓고, 오십에서 다시 하나부터 셌다. 세 번째 오십에서 그만뒀다. 전봇대 간격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밤에는 차들이 시동을 껐다. 기름을 아끼는 것이었다. 시동을 끄면 히터가 안 나오니까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갓길에서 발을 굴렀다. 어떤 차는 트렁크를 열어 놓고 그 안에 아이를 눕혔다. 이불을 덮어 주고 트렁크 문을 반쯤 내려서 바람만 막았다.
박순임의 손을 잡은 것은 그 밤부터였다.
노인이 넘어질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노인은 넘어지지 않았다. 다만 어두워지면 걸음이 반 박자씩 늦어졌고, 그러면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났다. 지원은 왼손으로 그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 물통을 들었다. 노인의 손은 마르고 뜨거웠다. 손톱이 두꺼웠다.
한 번은 노인이 손을 빼려고 했다.
"됐어. 무거워."
"안 무거워요."
"거짓말."
지원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 뒤로는 노인도 빼지 않았다.
지원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 뒤로는 노인도 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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